Continental/Ancient & Medieval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정리 (2) 아낙시만드로스

Soyo_Kim 2018. 12. 28. 15:59

2018-1 서양철학고전읽기 

 

2장 아낙시만드로스

1절 개괄

아낙시만드로스는 탈레스가 일식을 예언했던 해(기원전 585/4)에 25살이었다. 이 점에서 그는 탈레스보다 젊었지만 아마도 많이는 아니었을 것이다.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사고라스를 오늘날에는 밀레토스 학파라고 부른다. 아폴로도로스에 따르면, 아낙시만드로스는 탈레스의 혈족이며 제자이며 후계자였다. 그는 처음으로 “자연에 관하여”라는 저서를 저술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지도와 해시계를 만들었다고도 여겨진다. 그 전에는 글을 쓴다는 것이 비판의 대상이었으며 이점에서 아낙시만드로스의 저술은 유럽 최초의 철학책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사물의 생성소멸의 원인에 대한 설명에서 논리적으로 반대-모순 현상으로 파악하고 이의 논리적 관계에 주의하고 철학을 하였기에 그의 철학은 자연 현상의 대립과 사람들의 사유방식의 모순에 대해 사색할 만큼 철학과 과학의 분석적 방법적 시조를 이룬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는 만물의 상호대화는 성질들이 서로 싸우기 때문에 생성소멸하며 그 가운데 기본적인 것이 지수화풍의 성질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대립되는 성질 중 하나를 만물의 근원으로 삼으면 이 우주는 이 근원이 되는 성질에 의해서 지배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만물의 근원이나 원인이 되는 것은 불멸하고 영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는 생성 소멸하는 사물의 성질 중 하나를 만물의 근원으로 삼지 않고, 양적 측면에선 무한정자, 질적측면에서는 무규정자인 아페이론이라 부르고 이에 기초해 우주론과 지수화풍의 생성소멸을 설명하려 했다.

그런데 이렇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지수화풍이 상호 싸우다가 죄를 짓고 정화를 위해 아페이론으로 회귀하였다가 다시 만물로 나타나는 이러한 윤회와 순회사상이 “무로부터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라는 존재론의 모순율인 제 1원리를 담고 있는 것이라 말한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선행자들도 변화를 보았고 그것을 설명하려 노력했으나 그 문제의 논리적인 성격을 미처 깨닫지는 못했다. 그것은 헤라클레이토스에서 상반된 성격의 잠언으로, 파르메니데스에게서 분명 모순으로 나타난다.

 

2절 무한정자에 대하여

아낙시만드로스에게 to aperion 토 아페이론은 우주 만물이 생겨나는 원천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아페이론은 탈레스의 물을 대신하는 원초적 질료이다. 아페이론은 물이나 불, 그리고 다른 철학자들이 근원적인 것으로 생각했던 질료들과는 다르다. 그것은 영원하고, 나이를 먹지 않으며, 운동 중에 있고, 다수의 하늘과 세계들이 이것으로부터 생겨나며 이것에 의해 둘러싸인다고 묘사되는 그런 것이다.

아페이론의 특징은 첫째, 공간적 한계가 없는 무한히 큰 것이며, 둘째, 시간적 한계가 없는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며, 셋째, 다른 것과 구별되는 특정한 어떤 것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는 의미에서 무규정적인 것이다.

“모든 것은 근원이거나 근원으로부터 나온다,”

아페이론은 물도 불도 아니며, 뜨겁지도 차갑지도, 무겁지도, 가볍지도, 축축하지도 건조하지도, 밝지도 어둡지도 않다. 이렇게 무규정적인 것을 규정된 세계에 사는 우리는 부정의 용어로만 표현할 수 있다. 세계 내의 모든 사물들과 모든 성질의 궁극적인 아르케인 아페이론은 사물들 가운데 어떤 것일 수 없으며, 사물들이 갖는 성질 가운데 어떤 성질을 가질 수 없다. 아페이론은 신적이고 사멸하지 않으며, 운동중에 있으므로 탈레스의 생각처럼 살아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페이론은 세계를 생산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아페이론을 신적인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으나 신적인 것은 탄생, 시작이 있으나 아페이론은 시작도 끝도 없다는 점에서 더 본질적인 것이다. 아낙시만드로스가 아페이론을 운동하는 것으로 본 까닭은 그렇지 않을 경우 어떤 변화도 일어날 수 없을 것이고, 그래서 우주는 결코 시작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주의 형성은 아페이론에서 대립자들이 떨어져 나오는데서 시작된다. 우주 발생에서 주요 대립자들은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이 대립자들의 상호작용과 균형을 가정했으며, 우주의 구성과 운행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이 대립자 개념은 이론적인 측면에서 앞서 말한 탈레스의 문제점에 대한 대응책이 된다. 탈레스에게서 원초적 질료인 물로부터 그와 대립되는 성질의 불이 어떻게 나올 수 있을지는 의문으로 남아있다. 그렇다면 어떤 특정한 성질도 갖지 않는 아페이론으로부터 어떻게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이 산출될 수 있는가? 아낙시만드로스는 온과 냉이 아페이론으로부터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온과 냉을 산출하는 어떤 것이 먼저 아페이론에서 분리되어 나온다고 말한다. 온과 냉은 산출자에서 동등한 힘을 가지고 동시에 산출되기 때문에 한 쪽이 다른 쪽을 압도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위에서 전개했던 탈레스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비판 논의를 아낙시만드로스에게도 적용해볼 수 있다. 우리가 위에서 탈레스의 물을 Hyle로 설정했던 아리스토텔레스에 반하여 꼭 그렇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아리스토텔레스가 비록 arche를 substance로 여긴 것으로 보이나, 아낙시만드로스는 어떠면 arche와 substance를 동일한 것으로 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 arche는 무규정적인 것이며, 플라톤의 말을 빌리면 생성되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서 aitia는 존재 차원의 것이며, arche는 존재와 비존재 차원 모두를 포괄하는 것으로 아낙시만드로스가 여겼다고 말해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후 파르메니데스가 정식화 시켰던 철학의 근본물음 “무로부터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아낙시만드로스에게 적용시키는 것은 지나치게 후대의 입장에서 적용한 것일 수도 있다. 오히려 아낙시만드로스는 생성의 문제를 to apairon을 통해 드러냈다고 볼 경우엔 말이다.

 

3절 aitia와 arche의 차이점

사전에서 arche는 시작, 기원, 원인, 목적, 원리, 원소, 힘, 규칙 등으로 번역이 된다. 아르케는 출발점을 뜻한다. 그래서 기원이나 근거로 번역이 가능하다. 그래서 아르케는 원리로 이해한다. 아르케의 본래의미는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은 어떤 행위나 사태의 주체를 의미한다. 아르케가 시간에 대해서 사용되는 경우, 시간적 순서에서 볼 때 새로운 시작의 기점을 나타낸다.

aitia라는 말은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의 철학자들로부터도 사용되었지만, 아이티아를 아르케적 용어로 사용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부터이다. 아이티아를 사전에서 찾으면, 원인 이유 목적 동기 등으로 번역된다.

플라톤은 아르케와 아이티아를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다. 티마이오스에서, 아르케는 신으로부터 생성된 최초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플라톤에게 있어 아르케는 만물의 근원이기보다는 만물을 창조한 신, 데미우르고스에 의하여 창조된 근원들이다. 따라서 플라톤에게 있어 아르케는 신의 자리가 아니다. 신에 의해 만들어진 원소들이다. 그러나 이 우주에 대한 근원들은 지성과 필연성에 의하여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원리라기보다는 규칙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우리는 불 및 다른 물체들의 아르케로서 상정하고, 필연성을 동반하는 이야기를 따라야한다. 그러나 이것들 보다 한층 더 근원적인 아르케들은 신이, 그리고 사람들 중에서는 신의 사랑을 받는 이가 알 것이다.”

반면 플라톤에게 있어 아이티아는 보통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탓하다, 까닭, 이유 이며, 또 하나는 원인으로 사용된다. 첫 번째는 그런 까닭, 책임, ~의 탓 등으로 사용되며, 또한 플라톤은 만물의 궁극이 되는 원인으로서 아이티아를 말하기도 한다. 플라톤은 진짜 원인과, 그것 없이는 원인이 결코 원인일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데, “그것 없이는 원인이 결코 원인일 수 없는 것”은 티마이오스에서 언급된 보조적 원인을 뜻한다. 물리적 혹은 물질적 조건은 플라톤에게 있어 그저 보조적 원인일 뿐 진정한 의미의 원인은 아니다.

플라톤의 아르케를 의미하는 뜻으로서의 아이티아는 항상 서술이 붙는다. 즉, ~원인이라는 것이 된다. 즉, 단순히 아이티아의 단어만 가지고는 아르케적 의미를 설명하지 않는다. 원인이 있는데, 그것이 참된 원인인지, 보조적 원인인지를 밝혀내야만 하는 또다른 순서가 필요한 것이다. 오직 플라톤에게 있어 참된 원인은 이데아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생각을 계승하여, edios를 substance로, 사물의 본질로 놓는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아이티아는 곧 아르케이다. 신은 모든 것의 아이티아이며 으뜸가는 아르케이다.

“그러나 아낙시메네스와 디오게네스는 공기를 물보다 먼저로 보았고, 그리고 이것을 단순한 물질들 가운데 가장 아르케인 것으로 놓았다. 반면 메타폰티온의 히파소스와 에페소의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을, 그리고 엠페도클레스는 넷째의 것으로 흙을 더함으로 네 가지 원소를 아르케로 놓았다. 이것들은 항상 존속하며, 새로 생겨나지도 않고, 많든 적든 한가지로 결합되거나 한가지로부터 분리될 뿐이다.”

“아르케는 한 사물에서 가장 먼저 움직일 수 있는 곳이다...각 사물이 가장 잘 생겨날 수 있는 곳이며...맨 처음 어떤 것이 생겨나는 기초(중심부)이다. 동물의 경우 심장, 뇌들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운동과 변화가 처음에 자연적으로 시작되는 곳이 아르케이다. 움직이는 것들을 움직이고, 변하는 것들을 변하게 하는 결정권을 가진 것...사물이 맨 처음으로 알려질 수 있는 곳이 아르케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전 철학자들이, 어떻게 아르케와 사물의 참모습에 관해 언급하면서, 그들이 밑감(바탕)을 하나로 놓든, 여러 가지로 하든, 물질이 되었든 비물질적인 것이 되었든, 아르케로 여긴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전 철학자들이 본질(ousia)와 실체(substance)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했는데, 그 누구보다도 플라톤주의자들이 그랬다고 주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형이상학 1권에서 이전 철학자들이 아르케의 의미를 사용했음을 밝히고 자신은 아르케의 의미에 아이티아를 복합하여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곳에서는 근원적인 원인들을 사용했고, 근원적인 원인들을 대신하여 아이티아로 말하기도 한다.

이전 철학자들을 언급하는 곳에서는 단순히 아르케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한다. 그러나 자신이 사용하는 아르케적 의미를 사용함에 있어서는 아이티아를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아이티아는 아르케가 가진 많은 의미만큼 아이티아가 말해진다.

“아이티아들은 어떤 것 안에 있는 것이 생겨나는 것이며...변화 또는 정지의 맨 처음에 비롯하는 곳이 아이티아들이다....어떤 것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변하게 하는 것의 아이티아들이다...어떤 것은 목적으로서 무엇을 위한 아이티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