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2

'알고 보면 좋은 사람'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라는 표현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 처음부터 좋은 사람으로 느껴진다면 애초에 알아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고, “알고봐야 좋은 사람들” 중 정작 내 사정을 알아봐주려 했던 사람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타주의는 아름다운 덕목이고, 많은 위인들의 실천이 증명하고 있으므로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나는 에고이즘을 이타주의와 대립되는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데, 이타주의자라 해서 관점이 결여되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에고이즘과 이타주의 모두 관점의 표현이라고 파악해보면, 이제 무분별한 이타주의는 책임의 면피와 더불어 전투와 대립에 대한 두려움으로 읽힐 가능성이 생긴다.(푸코는 촘스키와의 대담에서 이와 유사한 논리로 변증법을 비판한 적이 있다.) 실로 개인적..

'아니 막말로'와 아리우스파의 슬픔

저녁 먹으면서 뉴스보고 있는데 자꾸 '아니 막말로'로 문장을 시작하는 정치인들이 많아서 쓰는 글. 수사학Rhetoric을 제대로 공부해 본 적도 없고 국내에 몇 안되는 베스트셀러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읽어 본 적도 없는 내 눈에도, '아니 막말로'로 문장을 시작하는 것은 최악의 선택으로 보인다. 첫째로, '아니 막말로'는 문장 전체의 의미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간단하게 말해, 그냥 빼버려도 내가 말하고 싶은 문장을 전달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면 내가 유일하게 읽어 본 글쓰기 책, 이태준 선생의 "문장강화"를 따라 '퇴고'를 고려해봄직 하다. 그것이 수사에도 악영향만 끼친다면 말이다.둘째로, '아니 막말로'는 수사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아니 막말로'로 ..

Kritik der Urteilskraft §46

46절 미적 기예[예술]은 천재의 기예이다. 천재란 기예에 규칙을 주는 재능(천부의 자질)이다. 이 재능은 기예의 선천적인 생산적 능력으로서 그 자신 자연에 속하므로, 사람들은 또한 "천재란 선천적인 마음의 소질로서, 그것을 통해 자연은 기예에게 규칙을 주는 것이다."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Genie ist das Talent (Naturgabe), welches der Kunst die Regel gibt. Da das Talent, als angebornes produktives Vermögen des Künstlers, selbst zur Natur gehört, so könnte man sich auch so ausdrücken: Genie ist die angeborne Gemütsanlag..

Kritik der Urteilskraft §45

45절 미적 기예[예술]는, 그것이 동시에 자연인 것처럼 보이는 한에서, 하나의 기예이다. (Schöne Kunst ist eine Kunst, sofern sie zugleich Natur zu sein scheint) (예술은 그것이 동시에 자연인 것처럼 드러날 때만, 아름다운 예술일 수 있다.) 미적 기예[예술]의 산물에서 사람들은 그것이 기예이고 자연이 아님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An einem Produkte der schönen Kunst muß man sich bewußt werden, daß es Kunst sei, und nicht Natur;) (사람들은 아름다운 예술 작품에 있어, 그것이 예술이지, 자연이 아니라는 것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에도 그러한 산물의 형식에서..

Kritik der Urteilskraft §44

44절 미적 기예[예술]에 관하여(Von der schönen Kunst) 미적인 것의 학문은 없고, 단지 비판이 있을 뿐이며, 미적 학문[미학]은 없고 단지 미적 기예[예술]이 있을 뿐이다.(Es gibt weder eine Wissenschaft des Schönen, sondern nur Kritik, noch schöne Wissenschaft, sondern nur schöne Kunst.) 전자에 관해서 말할 것 같으면, 그러한 학문에서 어떤 것이 아름답다고 간주되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은 학문적으로, 다시 말해 증명근거들(Beweisgründe)에 의해 결정되어야 할 것이고, 그러므로 미에 대한 판단(das Urteil über Schönheit)은, 만약 그것이 학문에 속하는 것..

도덕 형이상학 정초 (4) 제3절

제3절 도덕형이상학에서 순수실천이성비판으로 이행 자유 개념은 의지의 자율을 설명하는 열쇠 의지는 생명체들이 이성적인 한에서 이들이 지니고 있는 일종의 원인성이다.(따라서 1. 이성적인 생명체들의, 2. 속성이며, 3. 원인성이다.) 자유는 이 원인성이(즉 의지가) 생명체들을 규정하는 외부 원인들(자연적 경향성)에 얽매이지 않고 작용할 수 있을 때 갖는 속성일 것이다.(따라서 자유로운 의지와 자유롭지 않은 의지가 존재할 것임.) 마찬가지로 자연필연성은 외부의 낯선 원인의 영향으로 활동하게 되어 있는 존재자들, 즉 이성이 없는 모든 존재자가 지닌 원인성의 속성이다.(자연 법칙이자, 인간에게 있어서는 자연적 경향성으로 작용하는 것, 또한 자연의 여러 원리들, 물리 법칙, 생물학적, 심리학적 원리 등.) 자유에..

도덕 형이상학 정초 (3) 제2절

제2절 대중적 도덕철학에서 도덕형이상학으로 이행 지금까지 우리가 의무 개념을 실천이성의 일상적 사용에서 끌어냈다고 해서 이 개념을 경험개념으로 다룬 것처럼 추정해서는 결코 안 된다. 오히려 인간의 행동거지에 관한 경험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우리는 자주, 우리 자신이 인정하듯 정당한 불평들과 마주치게 된다. 순수한 의무에서 행하려는 마음씨에 관해 그 어떠한 확실한 실례도 전혀 들 수 없어서 많은 것이 의무가 지시 명령하는 것에 합치하게 일어난다 해도, 이것이 본래 의무에서 일어났는지, 따라서 이것이 도덕적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불평이 바로 그와 같은 경우다. 그래서 인간의 행동들에 이런 마음씨가 실제로 있다는 것을 전적으로 부인하고, 모든 것이 어느 정도 세련된 자기애에서 기인한다고..

도덕 형이상학 정초 (2) 제1절

제1절 도덕에 관한 평범한 이성 인식에서 철학적 이성 인식으로 이행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한에서 세계 안에서도, 심지어 세계 바깥에서도 제한 없이 선하다고 여길 수 있는 것은 오직 선의지 뿐이다. 지성, 재치, 판단력 그리고 그밖의 정신적 재능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 혹은 기질의 특성인 용기, 결연함, 끈기도 확실히 여러 가지 면에서 선하며 바람직스럽다. 하지만 의지-이것은 천성을 사용해야 하고, 그렇기에 그것의 고유한 성질이 성격이라고 불리는데-가 선하지 못할 때는 이것들도 극단적으로 악하고 해로울 수 있다. 행운의 선물(즉 우연성)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권력, 부, 명예, 건강마저도 그리고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갖는 전적인 안녕과 자기 처지에 대한 만족도, 이것들이 마음에 미치는 영향을 올바르게 ..

도덕 형이상학 정초 (1) 머리말

임마누엘 칸트, 『도덕형이상학 정초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번역 김석수, 김종국, 한길사, 2019를 정리한 것이다. 머리말 고대 그리스 철학은 세 학문으로, 즉 자연학Physik, 윤리학Ethik, 논리학LogikLogik으로 나뉘어 있다. 이러한 분류는 사태의 본성에 완전히 적합하다. 그래서 여기에 분류의 원리 정도만 덧붙이면 되지 달리 더 개선해야 할 점은 없다. 우리는 이렇게 함으로써 한편으로는 분류의 완전함을 확실히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반드시 필요한 하위 분류를 제대로 결정할 수 있다. 모든 인식은 질료적이거나 형식적이다. (즉 경험에 근거하거나, 아니면 경험으로부터 독립되어 그것의 형식을 담당한다.) 질료적 이성 인식은 어떤 한 객관Objekt..

“예술철학이란 무엇인가?” - 시(時)와 사유의 관계성을 중심으로

2019-2 예술철학 “예술철학이란 무엇인가?” - 시(時)와 사유의 관계성을 중심으로 우리는 이 글에서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루지 않고, 곧장 “예술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룬다. 왜냐하면 후자의 질문이 합당하게 해명되고 나서야,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다시금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접근은 영미의 분석 철학적 접근을 시도하는 철학자들, 즉 예술 정의 불가론을 주장하는 웨이츠(M. Weitz)나, 정반대로 예술이 정의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단토(A. Danto) 혹은 디키(G. Dicky) 등에게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이들은 “예술은 정의(定議) 가능한가?”라는 문제에 있어 양 극단에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이는 다시 말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