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숙. (2012). 여성주의 성찰성과 치유의 인문학: 탈북여성문제를 중심으로. 한국여성철학, 18, 69-96.
Heisook Kim (2012). A Feminist Interpretation of Healing Humanities, Korean Feminist Philosophy, 18, 69-96.
조명숙 교감은 북한인들을 규정하는 3종류의 문화를 언급하였다. 첫번째는 가부장 유교문화이다. 어버이 수령을 정점으로 하는 정치적 위계를 확립시키기 위해 유교 가부장 문화는 북한 사회 안에서 매우 공고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는 군사문화이다. 군사문화는 매우 직설적이고 극단적 화법을 북한 화법으로 정착시켰으며,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생존양식을 만들어냈다. 군사 문화 안에서 사람들은 관용의 가치를 익히기보다는 ‘이기지 않으면 죽는다’는 극한 상황의 가치관 하에 잘못을 저질러도 시인 하지 않고 오히려 공격적으로 나가는 일상적 태도를 습관화하였다. 이런 태도는 한국 사회의 기준에서 보면 ‘뻔뻔한’ 태도로 간주되는 것으로, 탈북자들의 소외를 가중시키고 있다. 세번째로는 유물론 문화이다. 기독교의 신에 대해 탈북자들이 ‘보이는 것에 의해서도 속아 넘어간 판에 보이지 않는것을 어떻게 믿겠나’와 같은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로써 우리는 북한사람들이 갖는 비물질적 가치에 대한 냉소적 태도를 읽을 수 있다. 나아가 북한 사회가 한국 사회보다 더 심한 물질주의적 가치관에 경도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믿을 것은 지금, 이 순간의 내 손에 있는 돈과 권력’이라는 생각, 믿을 것은 확실하게 그 힘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라는 태도가 북한 사회 안에 광범위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80]
가부장 유교문화는 북한의 경우 ‘어버이수령’의 정치체를 유지하기 위해 더욱 강화된 측면이 있다. 북한의 여성들을 옭아매고 있는 가부장적 정치, 법, 문화는 여성들이 시장에 나가 활발한 경제 활동을 하는 상황에서도 역설적으로 더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경제난의 일상화는 “시장 중심의 생계활동에 국가 또는 남성이 제도적 통제, 물리적 폭력, 관료적 착취 등의 형태로 보다 많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있다”고 적고있다. [80-81]
북한의 주민제도는 남성을 중심으로 하는 호주제가 기반이 되었다. “남자(가부장)나 어느 가족 구성원에게 조직 생활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이주민 등록 문건에 등록 된 가족의 남성 (세대주)에게 책임을 지우고 그 남성을 중심으로 일가족에게 연좌죄를 들씌워 전 가족이 법 외적 조직처벌(국가재판이 아닌 당의 혁명화)을 받게 한다.” 이런 경우 여성은 법적 차원에서 남성가부장에 속한 종속적 존재가 된다. [81]
호주제 기반 주민제도의 보호를 위해 독신여성은 공공연히 차별을 한다. 주택 배정에서 독신 여성은 제외되고 독신여성은 외국 출장이 금지된다. 또한 결혼여성의 구직은 남편 거주 지역 내에서만 허용된다 [82]
식량 배급에서도 성차별이 발생하고있다. 2002년 7월 1일 식량 배급 개선 조치로 인해 ‘안해’ (아내)는 무상배급(시장가격의1/100정도의 저렴한 국정가격)에서 제외되었다. 여성들은 시장활동을 통해 시장가격으로 쌀을 사게 만들었다. 시장은 여성만 활동하는 공간으로 되었다. 여성들은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몫을 스스로 벌어와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이것이 북한 장마당에 여성들이 나와 앉아있게 된 주된 이유가 되었다. 식량 배급 제외는 또한 남성 가부장이 배급 받아오는 양이 적은 상황에서, 자신과 집식구들을 위해 국경을 넘는 여성들의 수가 급증하게 되는 배경이 된다. [82]
여성들은 성별화된 노동의 영역에 종사하는 한편으로 임금이나 처우에 있어서 성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이기조차 한다 [82]
남성은 화이트칼라, 여성은 블루칼라직에 배치되며 임금이 적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은 여성에게, 기계나 기구를 다루고 임금이 높은 직업은 남성에게 맡겨진다. 최진이에 따르면, 농촌의 경우 소달구지로 소요물동량을 나르는 일, 기계를 운전하는일, 가래삽으로 논뚝 및 논바닥 고루기 등 찬물에 안들어가고 허리를 굽히지 않는 일은 전부 남자들의 몫이라고 한다. 여자들은 시작부터 끝까지 논물에 다리를 잠그고 허리를 꼬부린 채 손톱이 갈라지도록 모를 뜨고 심고 김을 매야 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일을 한 댓가는 남자보다 훨씬 적게 받는다 [83]
가부장 공간으로서의 북한에서 시장이 여성 공간이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유교 문화 내 공간의 성별화는 집의 구조 안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활동 공간으로서의 공적 공간 영역에서도 드러난다는 점에서 그렇다. 사농공상의 유교적 가치에 의해 북한에서 장사는 ‘낯뜨거운 짓’으로 부끄럽고 천한 일로 여겨졌다. 공적인 직업의 세계는 남성의 영역이고, 가정과 장터의 영역은 사적인 것으로 간주되며 여성의 영역으로 간주된다. 시장이 사적 공간으로 간주되는 이유는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북한에서 시장은 사사로운 경제 활동이 일어나는 곳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연구보고서는 “장사를 하는 여성에게 ‘치마를 입을 것’을 지시하는 당국의 강요는 시장이라는 공간을 철저히 여성의 영역으로 구분 짓는 사회적 편견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83]
남편의 생계 책임 회피, 국가의 방관 등으로 집에서부터 시장 내 장사, 생계를 위한 이동 과정 곳곳에서 남성들로부터 심리적, 언어적, 신체적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시장 활동 경험이 있는 여성 대부분은 인민보안성(경찰), 시장관리소, 당 간부, 운송 관련 남성들, 군인 등으로부터 다양한 폭력을 당했던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홍민은 이를 국가와 관료,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기생하며 착취적으로 인권을 유린하고 있는 구조라고 한다. 한 탈북 여성의 “열차 장사를 하면요, 여자 아래 것은 안전원 거다 그런 얘기가 있어요” 15)와 같은 말은 상황을 적나라하게 말해주고 있다. [83]
군사 문화는 단순히 사회적 영역뿐 아니라 사적인 영역까지 지배하여 폭력적 가정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북한의 가부장제는 가족에 대한 책임의식보다는 남성의 ‘체면’과 ‘군림’이 더 중요한 정치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경제난으로 인해 여성들은 가사, 자녀 양육, 사회노동, 생계노동의 다중 부담에 시달리게 되었고, 남성들은 완강하게 가부장적 체제 뒤에 서서 여성들에게 기생하는 방식의 삶을 취하게 되었다. 최진이는 “습관적 여성 구타의 면에서 북한 남성은 야만적이다. 이에 대한 법적·제도적 장치는 거의 없다” 18)고 적고 있다. 군사 문화는 일상의 문화 안에서 생명 경시의 태도를 만들어내고 있다. 북한에서 낙태 문제는 심각하며, 모성 보호 조치가 매우 열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85-86]
유물론적 문화는 인간을 몸으로 환원시키는 효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몸으로 환원된 여성은 국가 전략의 일부가 되었다. 홍민에 따르면, 1990년대 이전까지 여성은 국가의 정치·경제적 목표에 복종하고 순응하는 노동-기계, 출산-기계, 양육-기계로서 동원과 착취의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다. 여성의 ‘몸’을 가부장적 남성 위계질서의 재생산 수단과 산업적 도구로 바라보고 활용해 왔다는 것이다. “여성의 ‘몸’은 가부장적 ‘보호’의 외피 속에 철저하게 동원과 착취를 위해 수단화되어 왔다” 19)는 것이다. 여성 몸을 한갓 수단으로 여기는 태도는 북한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남한도 양공주, 기생관광, 산업화의 도구로서의 여공과 같은 여성 존재들을 갖고 있으며, 남한 사회의 광범위한 향락 산업 또한 여성을 한갓 몸으로 환원시키는 사회 기제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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