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lytic/Social & Political Phil

손명아, 김석호 (2017) 북한이탈주민의 가족이주에 관한 연구: 연쇄이주 현상을 중심으로

Soyo_Kim 2024. 11. 28. 00:57

손명아 and 김석호. (2017). 북한이탈주민의 가족이주에 관한 연구: 연쇄이주 현상을 중심으로. 한국인구학, 40(1), 57-81.

Son, Myung-ah and Kim, Seokho (2017) Family Migration of North Korean Defectors: With a Focus on the Phenomenon of Chain Migrations. Korea Journal of Population Studies, 40(1), 57-81.

Ⅰ. 문제제기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기존 연구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은 개인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북한이탈주민 개인이 북한 탈출을 감행하고 남한에 도착한 후 적응 과정에서 겪은 경험들을 분석하여 이들의 성공적 정착을 위한 정책적 제안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즉, 대부분의 기존 연구는 북한이탈주민의 남한 사회 적응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과 문제점을 개인적인 수준에서 도출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 경향은 현상적 수준의 정책적 대응에 중점을 둠으로써 탈북 현상의 구조와 변동을 포착할 수 있는 맥락적 요인을 간과할 위험이 있다.

최근에는 경제적 요인뿐만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추구하려는 목적으로 탈북의 동기가 달라지고 있으며, 전문 브로커의 등장, 제3국 장기 체류, 탈북 네트워크 활용, 여성 및 가족 입국 증가 등으로 탈북의 양상이 그 맥락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중앙일보, 2016.10.6; 윤인진, 2007).

이와 같은 기존 연구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본 연구는 이주사회학적 관점을 차용하고자 한다. 북한이탈주민을 이주자로 보고 이들의 개인적 상황부터 정체성, 사회경제적 조건, 사회환경적 변화 등에 이르기까지 탈북 과정과 남한 정착 경험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을 추구하고자 한다. 2) 특히 본 연구는 이주가 개인이 아닌 가족 단위로 결정되는 것이며,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한 초국적 가족 유대를 기반으로 확장된다는 이론적 관점에 주목한다. [58]

 

Ⅱ. 북한이탈주민 연구에서 가족적 관점의 필요성

북한이탈주민 가족은 2000년대 이후 전문 브로커의 등장으로 가족 동반 입국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들이 시기를 달리하여 탈북한 뒤 남한에서 결합하는 경우도 증가했다(김유정, 2011: 101). 북한이탈주민 가족에 관한 대부분의 연구 역시 가족의 적응 실태를 연구함으로써 정책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들은 남한 사회에서 실업과 저소득, 문화적·심리적 부적응, 가족이산, 가족관계 갈등, 법률, 건강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적응에 있어서 가족의 역할은 지지와 위로를 통해 고립감, 외로움 등의 정서적 문제를 해소시켜줄 수 있으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의 역할을 조정하는 것으로 드러난다(장혜경·김영란, 2000; 윤인진 외, 2007; 진미정·이순형, 2007: 2). [59-60]

북한이탈주민 가족은 주어진 환경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생존과 발전을 위해 주체적으로 적응 방법을 모색한다(이순형 외, 2009). 북한은 가부장제적 사회주의를 근간으로 국가적, 사회적, 개인적 수준에서 가족을 통치 기제로 활용해 왔다. 북한에서 가족은 위기에 대처하고 체제의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박현선, 2003).

그러나 탈북과 남한 사회 정착 과정을 통해 북한 사회에서 형성된 전통적 의미의 가족은 해체되고 재구성된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탈주민 가족은 동반 입국의 경우를 제외하면 탈북 과정에서 가족 이산을 겪고, 남한 입국 후 시간을 두고 재결합하거나 결혼과 이혼, 재혼 등 가족 관계와 형태가 변화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중국이나 제3국에서 조선족이나 한족과 동거나 혼인한 경우 남한 정착 이후 가족 구성원을 초청하기도 한다. 또한, 북한이탈주민이 남한 주민과 새로운 가정을 형성하기도 하는 등 복잡하고 다양한 가족 유형이 형성되는 것이다(김유정, 2011: 105).

이로 인해 가부장제 성역할 태도와 가족주의 가치 정향은 약화되고, 가족의 의미와 정체성이 새롭게 재정립된다(이순형 외, 2009). [60]

 

Ⅲ. 가족이주 관점의 이주사회학과 북한이탈주민

전통적인 신고전경제학(Neoclassical Economics) 접근에서는 이주 현상을 개인이 경제적 효용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행위로 간주한다. 개인은 이주국에서의 기대 수익이 이주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보다 크다면 이주를 결정하게 된다(카슬‧밀러, 2013: 55-56). 그러나 개인은 가족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가족 간 연결은 중요한 방식으로 이주 과정을 구성한다. [62]

경제적 관점에서 이주를 설명하는 신이주경제학적 접근이 북한 주민의 탈북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북한 주민은 체제의 폭력성과 불안정성, 탈북 이외에는 선택지가 없는 극한 상황으로부터의 도피, 자유에 대한 갈망, 보다 향상된 삶의 질에 대한 추구 등 다양한 이유로 북한을 탈출한다. 따라서 경제적 수준의 향상을 위한 가족의 전략적 선택으로만 이들의 이주를 설명하기에는 탈출이 실패했을 경우의 비용과 남겨진 가족이 겪을 잠재적 고초가 크다. 물론 탈북 결정에서 경제적 이유도 크게 작용하겠지만, 이를 전적으로 가족 수입 원천의 다원화와 투자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이주경제학적 접근은 가족의 탈북 결정의 일부만을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북한이탈주민의 이주에서 가족의 역할은 남한에서의 적응과 북한에 있는 다른 가족 구성원을 데려오는 과정을 설명하는 데 유용해 보인다. [62]

북한이탈주민의 탈북부터 남한 입국 및 정착 과정에서 여성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북한이탈주민 입국자 중 여성의 비율은 2000년대 들어 급격히 증가하여, 2015년 기준 전체의 8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국가지표체계, 2016.12.11). 북한 여성은 공식적 생산조직에 예속되어 있는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고, 중국과 아시아 지역의 돌봄 및 결혼 시장 수요로 인해 탈북의 기회가 보장된다. 여성의 탈북 증가 현상은 가부장제적인 성별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맥락에서 초국가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박경숙, 2012: 292-295). 여성은 남한 정착 단계에서 적응과 가족 결속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은 가족의 경제적 자원의 확보뿐 아니라 자녀 양육자, 남한 적응을 위한 정보 제공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장혜경‧김영란, 2000). 따라서 북한이탈주민의 탈북과 남한 정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변화된 위상에 대해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64]

 

Ⅴ. 연쇄이주 현상으로 본 북한이탈주민 가족이주의 재구성

가족 단위의 탈북은 1990년대 말부터 꾸준히 증가하여 2015년과 2016년 사이 전체 입국자 중 약 44%를 차지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남북하나재단 홈페이지, 2017.1.5). 가족 이주의 유형은 가족이 동반 입국하는 경우와 한 명이 먼저 탈북하여 가족을 데려오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가족 전체가 이주하는 유형과 개인 탈북의 가장 큰 차이점은, 가족은 처음부터 남한 입국을 목적으로 탈북을 결정하고 기획한다는 점이다. 사례 1에 따르면, 개인은 대부분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할 목적으로 중국에 갔다가 여러 경로를 거쳐 남한으로 오는데 반해, 가족은 남한으로 가기 위해 세밀한 계획을 세우고 철저한 준비를 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중국 등 제3국 체류가 불가피한 경우가 많은 개인과 달리, 가족은 높은 브로커 비용을 감수하고 남한으로 직행하는 경로를 선택한다. 이는 탈북 도중 가족이 한꺼번에 적발될 경우 ‘한국행 기도’ 혐의로 엄중한 처벌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67]

“(가족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게) 아무래도 더 위험하죠. … 혼자서 가면 ‘중국에서 뭘 하려고 했다’ 해도 되거든요. 한 명 없어지면 사고로 죽은 것 같다고 신고를 해도 되는데, 아무래도 가족이 통으로 오면 한국행이라는 게 다… 북한에서는 한국행을 다 죽이는…”(사례 5-2) [68]

북한이탈주민의 대다수는 남한 입국 후에도 북한의 소식을 제한적이지만 접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고(79.7%),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을 한 경험이 있는 비율이 6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송영훈 외, 2014: 28; 미국의 소리, 2016.06.16). 북한이탈주민이 북한의 가족에게 보내는 돈의 규모는 2011년을 기준으로 약 1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정병호, 2014: 69). [70]

북한이탈주민은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 국경을 넘어 유대를 지속할 뿐만 아니라, 탈북 이후 제3국 체류와 남한 정착 과정에서 가족의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형성한다. 첫 번째 유형으로는 탈북 직후 중국에서 형성하는 가족이 있다. 이는 대체로 북한 여성이 탈북 과정에서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통해 결혼하거나, 장기 체류 시 생존과 신변의 안전을 위해 임시로 구성된다. 이 중 일부는 남한 입국 후 중국에 있는 가족을 국제결혼 형식으로 초청하기도 한다. 두 번째는 남한에서 결혼하여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이순형 외, 2009). 특히 북한에서 이혼을 했거나 자녀가 없는 미혼 여성의 경우, 보다 적극적으로 남한 주민과 가족을 형성하고자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염유식 외, 2011: 119). 단독으로 이주한 사례 3은 남한 사회에 보다 잘 적응하기 위해 북한 남성보다는 남한 남성과의 결혼을 선택했다고 한다. 즉, 가족의 재구성은 정착에 필요한 물질적 기반을 마련하는 한 가지 방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71]

북한의 가족을 초청하기 위해서는 비공식적 이주 네트워크인 브로커 집단에 의존해야 한다. “남한 정부에 알리는 것은 오히려 위험”(사례 3)할 수 있으므로, 대체로 전문 브로커나 중국에 있는 교회 등 기관에 요청한다. 종교 기관을 경유하면 비용은 절감할 수 있지만,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중국에서 장기 체류해야 한다고 한다. 브로커를 통하면 남한으로 직행이 가능하지만, 2016년 현재 1인당 비용이 1,200만 원 이상으로 매우 높은 편이다. 사례 6-1은 입국 후 3년 만에 여동생과 어머니를 1년 간격으로 데려왔다. 그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밤낮으로 일을 하는 한편, 신뢰할 만한 브로커를 섭외하는 데 오랜 시간을 들였다. 브로커와 직접 접촉하기도 하고, 브로커를 통해 탈북한 경험자를 만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지 수차례 검증을 거쳤다. [75]

물론 모든 북한이탈주민이 가족을 데려오고자 하는 것은 아니며, 일부는 지속적인 경제적 지원을 대안으로 선택하거나 아예 초청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탈북 과정에서 생명의 위협과 비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남한의 자본주의에 적응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경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먼저 이주한 가족 구성원은 많은 경우 북한에 있는 가족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가족을 지원하는 데 경제적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북한이탈주민 가족 이주는 탈북을 발생시키고 유지시키는 사회적 자본임과 동시에, 이주의 구조적인 폐쇄성을 심화시키는 기제로 작동하는 이중적인 특징을 띤다. [76]

 

Ⅵ. 요약 및 결론

북한이탈주민의 가족 이주는 동반 입국 유형과 시차를 둔 가족 초청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입국한 이주자와 북한에 있는 가족 사이에 형성된 이주 연결망은 탈북을 결정하고 준비하는 데 매우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남한 사회와 탈북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고, 브로커를 소개받아 탈북을 시행에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남한 정착 이후 북한이탈주민은 북한의 가족에게 정기적으로 송금하여 경제적으로 기여함으로써 유대를 지속한다. 북한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이동의 자유도가 높을 뿐 아니라, 남한 노동시장의 수요로 인해 정착과 적응이 용이하다는 측면에서 가족 초청에서 우선순위를 점하게 된다. 탈북 현상은 동남아 국가들을 가로지르는 비공식적 경로로 제도화되었고, 다국적 브로커가 포진한 거대한 산업이 되었다. 북한이탈주민은 비공식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가족 이주를 감행하며, 그 비용과 위험은 개인이 감당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은 이주 과정에서 가족 구성원 간의 협상과 역할 조정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고 이익을 도모한다. 이처럼 가족 연결망을 활용한 북한이탈주민 가족의 연쇄 이주는 지속적으로 확장되는 특징을 갖는다. [76-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