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cellaneous/Essays

'아니 막말로'와 아리우스파의 슬픔

Soyo_Kim 2024. 7. 11. 21:20

저녁 먹으면서 뉴스보고 있는데 자꾸 '아니 막말로'로 문장을 시작하는 정치인들이 많아서 쓰는 글. 

수사학Rhetoric을 제대로 공부해 본 적도 없고 국내에 몇 안되는 베스트셀러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읽어 본 적도 없는 내 눈에도, '아니 막말로'로 문장을 시작하는 것은 최악의 선택으로 보인다. 

첫째로, '아니 막말로'는 문장 전체의 의미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간단하게 말해, 그냥 빼버려도 내가 말하고 싶은 문장을 전달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면 내가 유일하게 읽어 본 글쓰기 책, 이태준 선생의 "문장강화"를 따라 '퇴고'를 고려해봄직 하다. 그것이 수사에도 악영향만 끼친다면 말이다.

둘째로, '아니 막말로'는 수사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아니 막말로'로 문장을 시작하는 사람은 본인도 지금 자기가 하는 말이 막말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설령 그 내용이 막말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듣는 사람들은 "막말이겠거니" 하고 듣게 되는 자충수가 된다.

마지막으로, '아니 막말로'로 시작하는 문장이 정말 막말이었다고 가정하자. 본인도 그것을 인지하고 있다면야 애초에 막말이 아니라 고운말로 전달하면 되지 않겠는가? 여기서 '아니 막말로'는 발화자의 자제력 없음을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아니 막말로'는 애초에 문장의 시작으로 쓰기에 부적절하지만,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다."는 선인들 말씀을 따라 역사적 근거도 하나 추가해보자. '아니 막말로'로 시작하는 문장을 뱉었다가 파문당했던 아리우스파 이야기이다.
 오늘날 중세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보기에, 아리우스파가 그토록 처절하게 이단으로 몰린건 의문스럽다. 아리우스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유스티누스의 말 "모든 옳은 생각은 기독교인의 것이다."를 실천한 죄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스티누스의 말을 따라 당대의 기독교인들은 열심히 기독교 세계관과 교리의 정당화에 고대 그리스 철학을 이용했다. 마리우스 빅토리누스만 하더라도 엄연한 신플라톤주의자가 아니던가? 물론 가장  노골적이면서 수사학의 걸작을 보여준 사례는 소크라테스의 변론("아테네 시민 여러분")을 원용한 사도바울이다. 즉,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아리우스가 한 일이래봐야 성부-성자-성령에 플로티노스의 철학(일자-누스-프시케)를 그대로 적용한 것밖에 없다.

이러한 관점을 당대에도 어느정도 공감했던 것인지, 아리우스파의 철학은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파문당한 이후에도 한참동안 위세를 떨친다. 문제는 결국 수사학에 있었는데, 제 1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아리우스파는 저 "아니 막말로"로 시작하는 문장을 뱉어버렸던 것이다. "성부, 성자 성령은 일자, 누스(혹은 로고스Logos), 프시케에 대응합니다. 플로티노스의 작업도 이러한 것이었지요. 그러니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도 일자인 성부에 앞서진 못합니다." 라고 고운말로 말하는 것과, "아니 막말로, 말씀Logos인 성자가 그 아무리 위치가 높다 하더라도 일자보다 논리적으로 나중에 나온 것이지요.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 역시 피조물일'뿐'입니다. 논리학 모릅니까?"의 차이는 그 의미가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직감적으로 망했다고 느낄법한 차이이다.

결론적으로, '아니 막말로'라는 수사는 문장의 의미 전달에 있어 아무 차이도 없다. 반대로 말해, '아니 막말로'라는 수사는 같은 의미의 문장으로도 한 집단을 파문으로 이끌만큼 엄청난 차이를 낳는다.

'Miscellaneous > Essay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고 보면 좋은 사람'  (0) 2024.07.11
자살을 촉구하는 문명  (0) 2024.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