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lytic/Phil of Mind

기계와 인간의 인식적 차이 탐구 - 인간 사고의 환원가능성에 관하여

Soyo_Kim 2019. 10. 30. 18:55

2015-1 인식론

 

<기계와 인간의 인식적 차이 탐구

- 인간 사고의 환원가능성에 관하여>

 

 

 

0. 요즘 테크닉의 발달로 음성인식이나 지문인식이라는 기계의 기능이 일상에서 활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기계가 인식을 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아니 그 전에, 기계에게 인식이 가능한가? 만약 가능하다면, 그들의 인식은 인간의 인식과 동일한 것일까 다른 것일까?

카스파로프는 최연소로 세계챔피언에 오른 이후 15년 동안 무패를 기록한 체스역사상 가장 뛰어난 선수였다. 하지만, 도전자였던 슈퍼컴퓨터 딥블루는 그가 그동안 두었던 기보들을 모두 가지고 있었고, 그대로 따라했다. 챔피언은 자신의 수를 뛰어넘을 신의 한수를 찾지 못했고, 딥블루 또한 자신이 이길 수 있는 수를 DB에서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계속되는 무승부 끝에 챔피언은 점차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시작했고, 어이없는 실수를 하며 그대로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나 연구자들은 자신이 수를 계산하지 못하고, 기보에 의존하는 딥블루를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라고 불러야할지 곤란해 한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에 대한 일반적 정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서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에서 다루는 지능과 인식의 문제들, 더 나아가 인간의 인지능력과 추론능력을 인공적으로 모델링함으로써 외부 대상을 지각하고 자연언어와 같은 구문적 패턴까지 이해하는 능력을 구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위의 정의가 다소 어렵게 느껴진다면 결과적으로, ‘지성을 가지고 사고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려는 시도라 이해해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슈퍼컴퓨터 딥블루는 이 영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일까? 잠시,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인공지능에 관련된 연구는 기계의 인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딥블루가 체스를 두는 행위도 기계가 인식의 주체로서 인식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볼 수 있다면, 인식주체로서의 인간과 기계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일까? 도대체 인간에게 있어서 인식이란 무엇일까? 또, 기계에 있어서 인식이란 무엇일까?

나는 이 글에서, 인지과학의 발전과정을 대략적으로 서술하여, 현대과학이 기계의 인식을 어떻게 규정해냈으며, 또 기계와 인간의 인식이 동일하다는 생각에 어떻게 도달했는지에 대한 전 과정을 유추해낸 후, 인공지능 발전의 추세를 통해, 현대 인공지능이 인간의 사고영역까지 진보할 수 있을 것임을 주장하고자 한다. 만약에 그러하다면, “기계의 인식이 인간의 인식과 동일한 것인가?”라는 처음의 물음은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다. 현대 인공지능이 인간의 사고영역까지 진보할 수 있다면, 기계의 인식이 인간의 인식과 동일하다는 사실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주장에 대한 근거는 후술하도록 하겠다.

위의 질문들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인지과학자들이 어떤 식으로 인지와 인식을 정의내리고 그 둘의 차이를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지, 또, 인지과학자들이 인식론을 탐구하는 철학자들과 비교해봤을 때 인간의 인식을 파악하는데 있어 어떠한 관점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보통, 인지과학자들은 철학자들이 탐구하는 인식과 차별화하기 위해 (자신들이 탐구하는) 인식을 비교적 수동적 과정이라 볼 수 있는 정보처리 개념이 강조되지 않은 형태로의 앎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철학자들이 탐구하는 인식의 경우, 정보처리 과정을 거친 능동적 앎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인지의 경우에는, 그러한 수동적, 능동적 과정을 모두 포함하는 앎을 지칭하며, 특히 정보 처리 (information processing) 과정을 거친 앎의 과정과 내용을 지칭한다고 규정하여 차별화한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철학에서의 인식 개념 역시 수동적, 및 능동적 앎의 과정을 모두 지칭하며 사용해왔기에, 철학자들이 사용하는 인식이라는 단어와, 인지과학자들이 사용하는 인지라는 단어를 구분하기가 한층 더 애매해지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인식과 인지의 실질적 차이는 1950년대부터 시작된 정보처리 패러다임의 강조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마음이, 어떤 구조를 가지며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해, 자연과학적인 방법으로 탐구하기 시작한 심리학이 생긴 이후로, 심리학자들은 어떤 이론이 현실을 가장 잘 관찰하고 설명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론적 틀, 즉 패러다임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초기에 많은 심리학자들의 지지를 받았던 패러다임은 행동주의 심리학이었다. 행동주의 심리학을 주장한 과학자들은,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만을 과학 탐구의 대상으로 삼아야하며, 모든 과학적 용어는 경험적으로 관찰 가능한 것만으로 정의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경험적으로 관찰하기 곤란한 '마음'의 상태와 작용을 개념화하고 연구한다는 것은 비과학적이며, 마음에 대해서 알 수 없다고 생각한 심리학자들은 마음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를 꺼리게 되었다. (즉 그들은 마음에 대한 탐구자체를 포기하였다.) 대신에, 이들은 마음을 하나의 수동적인 스위치 연결 상자로 보았다. 다시 말하면, 마음속에 자극과 반응의 접속관계가 기계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자극 S가 입력(I)되면, S에 대해 관계를 지니고 있는 반응 R이 마치 함수처럼 기계적으로 출력(O)되는 것을 마음이 작동하는 과정이라 본 것이다. 따라서 마음은 이러한 기계적 S-R 연결들을 중계할 뿐인,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는 하나의 암흑상자(black box)이며 마음(M)의 본질을 추론하기보다는 입력(I)에 따른 출력(O)의 관계를 추론하는 것을 주요 탐구과제로 생각하게 되었다.

마음 M
자극 S(또는 입력 I) -----→ Switch Box -----→ 반응 R(또는 출력 O)
f [(S) × (M)] = R : (M은 불변하는 상수)
∴ M = 상수 :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음.
따라서 S'→R'의 관계만 연구가능

그러나 1950년대 이후로 이들의 생각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마음과 컴퓨터의 관계에 집중하였다. 이들은 인간의 마음과 컴퓨터가 기본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활동을 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 따라서 이들의 입장을 정보처리 패러다임이라 흔히 말하며, 이 패러다임에서는 인간의 마음과 그것에 대한 물리적 구현체인 두뇌, 그리고 컴퓨터를 정보처리적인 틀로 간주한다.

여기서 말하는 ‘정보(information)’란 통상적으로 말하는 의미(意味)가 할당되고 해석된 기호가 아니다.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정보를 단순히 의미를 지니고 있는 기호들이라는 용어로 사용하는 반면, 인지과학에서 정의하는 정보는 대중들이 흔히 사용하는 정보의 의미와는 차이가 있다. 정보의 수학적 이론에 의하면, 정보는 시스템 사이의 소통을 위해 생성되고, 전달되고, 수용되는 신호(signal)로서, 그 신호를 해석하고 사용하는 지적인 주체의 바깥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다. 즉 여기서 말하는 정보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주체의 해석을 거치지 않고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상태이며, 따라서 흔히 정보로 간주되는 명제나 진술은 그것들의 원천(source)으로서의 정보와 구별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보들은 외부에 존재하던 정보를 우리의 인지체계에 의해 주체적으로 해석해낸 것으로, 지금까지의 심리학에서 정의하던 것처럼 마음을 단순한 스위치 연결 상자로 보는 것에서 빠져나와, 마음을 정보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로서, 즉 정보를 처리해내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입장에서는 외부 환경으로부터 정보를 입력(I)하는 것과 이에 대한 인간의 정보처리 결과인 출력(O) 사이의 기계적(mechanistic) 관계를 탐구하기보다는, 입력(I)과 출력(O) 사이에 어떠한 심리적 과정이 일어나기에 이러한 I와 O의 연결이 가능하게 되는가에 대한, 즉 마음(M)의 과정과 내용에 대한 추론을 집중적으로 탐구하게 되었다. 마음은 잠재적인 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자극으로부터 정보를 추출하고(선별), 해석에 따라서 상징화하여 조직하고, 처리함으로써 이것들을 상징구조로 저장하여 처리 결과를 반응으로 출력해내는 정보처리 시스템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전까지는 마음을 기존의 수동적 기계장치로 이해한 것에 비해, 정보처리 패러다임 내에서는 마음을 I와 O 사이에서 정보를 해석하고 결정하며 스스로를 점검(모니터)하는 역동적인 상징조작체계(symbol manipulation system)로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체계란 여러 하위 체계 또는 구성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부분들이 다양하게 상호작용하며 환경에서 입력을 받아 출력을 내어놓는 개방적인 전체를 말한다.

I ---> M ---> O
물리적 심적 자극(입력) 마음이라 불리는 것 정보처리과정을 거친 반응(출력)
f(I × M)= O
추론된 마음 M <- f([I'] × [O'])

이 패러다임에서 지적하는 내용, 즉 ‘인간의 마음과 컴퓨터는 기본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는 활동을 하며, 각종 자료는 인간의 마음이나 컴퓨터에 주체적 해석을 거친 형태로 저장되어있어 어떠한 특정 상황 속에서 마음의 작용과 내용을 간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사실은 얼핏 보기에 간단하지만 인지과학의 입장에서는(물론 철학적 입장에서도) 두 가지 측면에서 굉장히 혁신적인 내용이었다.

첫 번째는 기존의 마음을 과학적 탐구대상에서 제외하려던 심리학이, 마음을 간접적인 방법으로나마 탐구할 수 있음을 보이고, 마음에 대한 탐구를 주요과제로 삼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마음에 대한 연구를 철학에서 수행했다면, 이제는 인지과학, 또는 인공지능의 영역에서 역시 철학에서 진행하던 연구들, 즉 철학의 문제를 다루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공학적 측면에서 컴퓨터의 정보처리과정을 설계하는 공학자들, 혹은 인지과학자들의 탐구는, 인간의 마음 역시도 그러한 정보처리과정의 시스템으로 생각하게 되면서, 인간의 인식 역시도, 기계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즉 인간의 마음(그리고 그것의 물리적 구현체인 두뇌)은 하나의 컴퓨터이며, 환원할 수 있는(일일이 계산해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고 파악하게 된 것이다.

결국 인지과학은 그 발전으로 인해 철학에서 다루던 마음의 문제를 환원주의적 입장에서(인간의 사고가 계산 가능한 것이라고 파악하는 입장에서) 다루게 되었다. 따라서 이후부터는 이러한 관점을 거부하는 기존의 철학자들과 일정 부분 대립하게 되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들이 파악한 인식과 인지의 차이를 조금만 더 자세히 살펴보자. 철학에서는 흔히 인식을 다룰 때 앎의 개념에 집중한다. 즉, 이들이 주로 탐구하는 주제는 “앎으로 성립할 수 있는 조건은 어떤 것인가?”, “인식 주체는 어떤 것을 앎으로 받아들이는가?” 같은 것들이다. 그래서 Epistemology(인식론)를 간단히 Theory of Knowledge, 즉 앎에 대한 학문으로 부르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실들이 철학에서 인식을 앎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철학에서 앎을 인식의 주요 탐구과제로 다루고 있으며, 그렇기에 인지과학자들이 초기에 철학에서의 인식을 “능동적 앎”을 뜻하는 것이라 해석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교는 그다지 선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후부터는 철학과 인지과학에서의 인식의 차이를 정보처리 패러다임의 강조여부로 판단하게 되었다.)

반면에, 인지과학에서의 인지는, 앎뿐만 아니라, 다른 마음의 여러 가지 기능(가장 간단하게 분류하자면 전통적으로 마음의 세 가지 요소라 일컬어지는 지(智), 정(情), 의(意) - 사고, 감정, 의지의 개념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철학에서 인식론이 앎을 중점적으로 탐구하는 반면에, 인지과학에서는 앎을 탐구한기는 해도, 인지과학 전체의 탐구과제로 봤을 때는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인지과학은 마음 전반을 탐구하고 있기 때문에 인식론처럼 '앎의 과학'(The Science of Intellect)으로 불리지 않고 '마음의 과학‘ (The science of minds)으로 불린다. 따라서 인지과학자들이 말하는 인식은, 인지의 한 부분집합이며, 인지과학자들은 기계의 마음(그 나름의 정보처리과정)을 탐구하고 설계하는데 있어 인식과 관련된 문제들 역시 부분적으로 탐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기계와 관련된 여러 인식의 문제들(인식과정, 인식여부, 인식가능성 등)은 인지과학의 탐구대상이자 인공지능 구현의 필수불가결한 부분집합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는, “과연 인간과 기계의 인식이 동일한 것인가?”라는 처음의 문제로 돌아가게 되었다. 위에 서술한대로, 인지과학자들은 인간과 기계의 인식은 동일할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의 인식체계를 분석하여 설계할 수 있다면 마땅히 인간의 인식체계 역시, 환원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한편에선, 인간의 수준이 기계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한 것이며, 인간을 기계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려는 모욕적 시도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에선, 기계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은 우리의 편견일 뿐이며, 인간은 기계와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는, 생체기계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보일 것이다. 조금 더 노골적으로 얘기하자면, 정보처리과정에서 일어나는 선별과 해석, 또는 논리적 사고 등 사유의 정신은, 그저 두뇌의 신경망 활동에 불과하며 인간은 생물학적 기계이자 고도의 생체기능 컴퓨터(즉 두뇌)를 가진 로봇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인지과학자들이 (인식주체로서의 인간과 기계 사이에서 어떤 차이도 존재하지 않기에) 기술 발전의 차이일 뿐, 인간의 인식과 기계의 인식은 근본적으로 완전히 동일하며,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처럼, 인간 역시도 언젠가는 인간처럼 인식하고 사유할 수 있는 기계를 창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왔다. 나 역시도, 정보처리 패러다임의 내용들을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또, 인간이 기계보다 당연히 우월한 존재라는 (어찌 보면 편견일 수도 있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들을 무시할 수만 있다면 무리 없이 위의 주장에 동의할 것이다.

다만, 정보처리 패러다임의 내용과, 기계(인공지능)와 인간의 인식이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난관이 존재한다. 그것은 인간의 사고가 정말로 환원가능한 성질의 것이냐는 물음이다. 만약에, 인간과 기계 사이의 인식에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한다면, 이것은 인간의 사고와 마음이 근본적으로 환원 불가능한 어떤 것임을 의미할 것이다. 그것은 기존의 정보처리 패러다임으로는 인간의 사고를 온전하게 밝혀낼 수 없음을, 나아가 기계가 인간의 인식수준과 인식체계의 수준에 도달할 수 없음을 암시한다. 인간의 정신 과정이나 '의식'이라고 하는 것들은 계산(computation) 가능한 성질의 것인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인공지능 연구와, 인간과 기계의 인식이 동일하다는 주장에 대한 강력한 반례로서 작용할 것이다.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가서, 인지과학자들에게 있어 어째서 딥블루는 인공지능의 구현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가? 인공지능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지능이라고 부를 것인가를 명확하게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이를테면 인간의 '지능'을 필요로 하는 일을 컴퓨터가 처리할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인공지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능을 필요로 하는 일'을 처리하는 것이 인공지능이라고 정의한다면, 인공지능은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사고하는가를 고민할 필요가 없으며, 감성과 같은 것 또한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다.

체스를 두는 것이 바로 이 분야에 들어간다. 대중적으로 컴퓨터가 체스를 둘 수 있는 것이 지능을 가진 증거인 듯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체스 머신은 매우 이른 시기에 인공지능 연구에서 제외되었다. 체스를 연산으로 처리하게 만드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수 하나를 더 내다보려면 평균적으로 26배의 연산이 더 필요해지기 때문에 아무리 현대의 컴퓨터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고 해도 5~6수를 내다보는 것이 고작이며 수십 수를 내다보는 체스 기사들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실제 체스 머신들은 지금까지의 체스 기보를 대량으로 입력한 후 그 체스 기보에서 같은 모양이 나온 적이 있는지를 하나하나 대조하는 방식으로 처리한다. 다만, 뇌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체스실력이 뛰어난 선수일수록 판단력보다는 기억력에 의지해 수를 두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처음 자신의 수를 만들 때는 선수의 창의력이 발휘되지만, 자신만의 기보가 점차 확보됨에 따라, 창의력보다 기존의 기억하고 있던 수에 의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제공해준다. 즉 컴퓨터의 체스행위, 혹은 딥블루의 체스행위는 이미 만들어진 기보전체를 정보로 받아들인 후, 기억력에(이 경우는 컴퓨터의 방대한 연산 작용에) 의존하여 그 기보를 재배열한 것에 불과하다. 즉 딥블루에게는 수를 창조하는 과정이 결여되어있었다. 인간의 체스행위가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수를 ‘창조’해내는 것과 달리, 컴퓨터의 체스행위는 이미 창조된 수를 모두 정보로 받아들여 앞의 수와 대조하고 재배열하는 일련의 ‘계산과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컴퓨터의 체스는 인간이 체스를 할 때 바탕이 되는 사고의 창조성과는 전혀 무관하다. 이는 컴퓨터의 체스가 데이터 병렬처리를 빠른 속도로 해낼 수 있는 슈퍼컴퓨터의 성능 과시용에 불과함을 보여준다. 위의 칸트의 기획을 설명할 때도 지적한 바 있지만, 딥블루는 애초부터 체스의 주어진 수(정보들)를 입력하여 그를 토대로 체스를 둔 것일 뿐 학습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인공지능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학습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덧붙여 이 학습을 위한(귀납편향도 고려한) 알고리듬 설계 역시 인공지능 구현을 위해 필수적이다. 딥블루는 여기에서 실패하였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 최근 각광받는 음성인식과 화자인식이다. 딥블루와 같은 인공지능의 선배들과는 달리, 음성 인식과 화자 인식, 또 최근의 여러 인식이 사용되는 기계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그들이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하는 학습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LA 타임즈>에서는 지진이 발생했을 때 사람이 아닌 퀘이크 봇이 알고리즘 기반의 기사 작성 프로그램으로 기사를 작성한다. 영국의 <가디언>은 사람의 편집 없이 알고리즘으로 종이신문을 발행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수집된 데이터와 정보에 기초해 소프트웨어가 의미를 해석하고, 어울리는 도표와 이미지를 제안해 기사를 작성한다. 화자 인식(Speaker Recognition)은 입력 받은 음성 데이터를 미리 저장된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하여 화자가 누구인지 식별하고, 음성인식은 다양한 화자들이 발성한 음성들을 통계적으로 모델링하여 음향모델을 구성하며 말뭉치 수집을 통하여 언어모델을 구성한 후에, 언어 속에서 다양한 신호를 제어해 잡음을 없애고 키워드를 이해해 맥락을 분석한다. 이들은 어찌 보면 체스를 두는 것보다 훨씬 간단한 행위를 수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하여 스스로 학습한다는 점에서 딥블루보다 훨씬 고급의 인식기술을 발휘하고 있다.

한편 영화 Her에 나왔던 것처럼 대화 예측기술이 상황적 맥락을 파악해 매번 다른 대화가 가능하도록 만들고 심지어 사람에 대한 사랑의 감정까지 느끼는 것은 아직까진 SF의 영역에 머물러 있지만, 이미 실제로 상당부분 구현된 기술이다. 이를테면 MIT에서 개발한 ‘지보’가 인간의 음성과 이미지를 인식해 표정과 심리 상태를 분석하여 (학습을 통해) 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것, 또는 이모스파크가 이미지를 이식하는 감정 프로파일 그래프를 통해 사람의 기분과 감정을 인식해 대화하는 것들은 이미 현실에서 구현되어 상용화를 기다리고 있다.

처음에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실제로 나는 그러한 반론에 대해(인간의 사고가 계산가능한 성질의 것인가?) 제대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더 자세히는, “인간의 사고가 계산가능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에 대한 설득력 있는 근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로 봤을 때, 또 인류의 태동을 생각해 봤을 때, 인공지능이 학습능력을 통해 인간의 인식 영역에 다다르는 것은, 기술적으로 필연적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은 물론 직관에 근거한 것이지만, 나를 이러한 결론에 다다르게 만든 가장 중요한 근거는 과학자들이 미약하게나마 이미 기계에게 학습능력을 구현시켜 주었다는 것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를 바 없었던 시절(즉 사고가 지극히 단순하던 시절), 인간이 사고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내 생각에는) 그들의 학습능력에 있었다. 달리 생각하면, 인류가 뼈다귀를 들었던 유인원에서, 핵미사일을 쏠 수 있게 될 때까지의 역사 진보의 과정 역시, 그들의 학습능력에서 찾을 수 있다. 실제로 문자의 발명이후로, 인간 문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데에는, 문자가 인간의 학습능력과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기에 나는, 기계가 스스로 자료를 능동적으로 해석하게 될 수 있게 되었단 사실만으로도, 그들 역시도 인간만큼이나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지는 않나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참고문헌

1.인지과학(성균관대학교 출판부, 이정모 저, 2009)

2.http://blog.naver.com/metapsy/40171771072

(심리학 인지과학 마을- 성균관대학교 인지과학전공 이정모 교수 블로그)

3. 이정모 (1988a). 과학적 물음의 본질: 과학철학적 관점들과 그 시사점. 한국심리학회(편). 실험심리연구법총론-가설검정, 설계, 실험 및 분석. 성원사, 37-72.

4. 이정모 (1988b). Turing 기계와 마음: 마음은 기계인가? 심리학의 연구문제, 5권.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서울대학교 출판부.

5. 정보처리 패러다임의 특성 - 이 정 모 · 이 흥 철 (2002)

6. How the Mind Works- 2장: Computational Theory of Mind 발췌 - Stephen Pinker (2009)

7.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1950 네이버 영화 Her

8. http://blog.naver.com/gesbroad/60114515572 계산주의에 대한 설명

괴델, 에셔, 바흐 : 영원한 황금 노끈, 더글라스 호프스태더 : 인공지능의 전망 챕터

9. http://plato.stanford.edu/ 스탠포드 온라인 철학사전- 인지과학, 인식, 인지, 화자인식, 음성 인식등 인공지능과 관련된 전반적 개념들, 사례들을 찾아보는데 이용함

10. http://ko.wikipedia.org/wiki/%EB%94%A5_%EB%B8%94%EB%A3%A8 딥블루 위키백과, 사진은 구글링.

11.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36027&cid=40942&categoryId=32845 인공지능 개념 인용 두산백과

12. http://navercast.naver.com/magazine_contents.nhn?rid=1697&contents_id=83121 인공지능의 진화- 네이버 매거진 캐스트, 인공지능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는데 사용

13. http://www.newspim.com/view.jsp?newsId=20141224000310 인공지능 지보 뉴스기사

14.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94810&memberNo=6525697&vType=VERTICAL 인공지능 이모스파크, 네이버 블로그 검색

15. 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557884 인공지능 가디언지, LA타임스의 사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