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lytic/History of Analytic

운명(Schicksal)과 극복(Überwindung), 형이상학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Soyo_Kim 2023. 12. 8. 22:53

1. 칸트는 1781년 출판한 <순수이성비판>의 초판본 서문에서 형이상학적 인식의 특수성에 대해서 밝히며 글을 시작하고 있다. 

“인간의 이성은 어떤 종류의 인식에서는 특수한 운명을 가지고 있다. 인간 이성은 이성의 자연본성 자체로부터 부과된 것이기 때문에 물리칠 수도 없고 그의 전 능력을 벗어나는 것이어서 대답할 수도 없는 문제들로 인해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 유명한 문장은 보다 더 자세히 분석될 필요가 있다. 칸트는 형이상학적 인식의 특수성으로 다음의 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1)형이상학적 문제는 대답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2)형이상학적 문제는 물리칠 수 없는 문제들이다. 1) 명제는 다시금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겠다. 즉, 1)은 지금까지의 형이상학적 기획이 여러 어려움으로 말미암아 좌초했다는 사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이상학적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 명제는 형이상학적 물음의 원초적 해결 불가능성의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이 경우는 앞의 해석과 달리 훨씬 더 적극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왜냐하면 형이상학적 물음이 원초적으로 해결불가능하다는 주장은 그 물음의 본질이 대답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는 것, 다시 말해 “형이상학적 물음의 성립 가능성” 자체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 심각해보이는 지점은 두 번째 지적인데, 여기에서 칸트는 피할 수 없는 운명(Schicksal)으로서의 형이상학적 인식의 특성을 밝히고 있다. 앞의 물음의 두 가지 해석 가능성 중 어느 것이 더 적합한지에 대해 일단 보류해본다면, 이 두 번째 명제는 형이상학의 동기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어떤 낯선 인상을 주고 있다. 그것은 하이데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형이상학이 특수한 종류의 기분(Stimmung)에서 유래한다는 것, 심지어 그것이 하나의 운명(Geschick)이라는 인식이다.



2.이로부터 약 150년 후에 훗날 논리실증주의의 핵심인사로 알려지게 되는 루돌프 카르납은 「Überwindung der Metaphysik durch logische Analyse der Sprache」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한다. “언어의 논리적 분석을 통한 형이상학의 극복”이라는 제목은 비록 논리실증주의자들 개개인의 목표와 이론에 다소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이들의 공통적인 이상(형이상학의 극복)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 이보다 더 칸트와 카르납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지점은 없을 것이다.

 

3.

철학의 의무는 오해에서 생긴 환영을 제거하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 설령 대단히 칭송되고 애호되던 망상이 소실된다 해도 말이다. -칸트, 순수이성비판 머리말
1) 사람들은 철학적인, 즉 문법적인 혼란들 속에 깊이 파묻혀 있다. 그리고 그것들로부터 그들을 해방하는 것은, 그들이 붙잡혀 있는 엄청나게 잡다한 연결들로부터 그들을 벗어나게 하는 것을 전제한다. 그러나 이 언어는 실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을 가졌기-그리고 가지고 있기-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2)철학은 체념을 요구한다. 그러나 지성의 체념이 아니라 감정의 체념을. 그리고 아마도 이것이 많은 이들에게 그것을 어렵게 만드는 것일 것이다. 어떤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눈물을 억제하거나 노여움의 폭발을 억제하는 것이 어려운 것처럼 어려울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 대타자원고 4장, “철학”

우리는 이 유사성으로부터 어떠한 새로운 가능성을 바라볼 수 있다. 그것은 비트겐슈타인이 칸트와 마찬가지로 형이상학의 해결불가능성에 대해 고찰했던 것처럼, 형이상학을 극복(Überwindung)의 대상이 아닌 하나의 운명(Geschick)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칸트가 형이상학을 “자연 본성 자체에서부터 부과된 것이기에” 물리칠 수 없는 것으로 보았던 것처럼, 비트겐슈타인에게 있어 형이상학적 언어는 “실로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을 가졌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그가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행했던 대중강연의 마지막 문장은, 비트겐슈타인이 진정으로 말하고자 했던 바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우리로 하여금 모색하게 한다.

“윤리학이 말하는 것은 (...) 인간 정신 속의 한 경향에 대한 기록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러한 정신을 깊이 존경하지 않을 수 없으며, 죽어도 그것을 비웃지 않을 것입니다.”
-윤리학에 관한 강의

아마 이보다 칸트와 비트겐슈타인 사이의 유사성을 더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지점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