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21 - [Research/Publications] -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내재적 비판철학 : 스테니우스의 칸트적 해석에 관한 비판적 고찰
2022 석사논문 제3장 제2절
칸트와 전기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네 가지 유사성
그러나 이제 『논고』에서 제시되고 있는 형이상학적 진리들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비트겐슈타인은 어떤 이성적 논증을 사용하여 그러한 진리들의 존재를 도출했는가? 우리가 『논고』를 통해 전달된 불가침적이고 결정적인 진리들을 받아들여야 할 근거는 무엇인가? 1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칸트적 해석을 통해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는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즉, 『논고』의 형이상학적 진리들은 의미 있는 언어와 세계의 선험적 가능 조건들로서, 초월적 논증을 통해 도출된다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칸트는 형이상학에 대한 흄의 비판을 수용함으로써 자신이 독단의 선잠에서 깨어났다고 고백한다(칸트 (2018), 27쪽 참조). 그는 이전까지의 초재적 혹은 독단적 형이상학이 아무런 제약 없이 경험의 한계를 넘어 초감성적 영역을 탐구하려 했기 때문에 모순과 어둠에 빠지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강영안 (2009), 39-40, 44쪽 참조). 반면, 흄이 제시했던 형이상학 비판의 문제점은 “아무것도 우리에게 약속하지 않는, 심지어 허용된 무지상태에 은거하는 것조차 약속하지 않는 회의론”(칸트 (2018), 47쪽)이라는 점에 있다. 그리하여 칸트는 독단에 빠진 기존의 이성적 형이상학과 일체의 형이상학을 폐기하는 회의주의를 모두 비판하고, 이성의 한계를 규명함으로써 형이상학을 정초하려 시도한다 (백종현 (2017), 64-65쪽 참조). 그는 『학문으로 등장할 수 있는 미래의 모든 형이상학을 위한 서설』(이하 『형이상학 서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형이상학은 이성의 자연성향으로는 현실적이지만 역시 그것 자체만으로는 […] 변증적이며 기만적이다. 그래서 이것에서 원칙들을 취하려는 것과 그것을 사용해서 자연적이긴 하지만 잘못된 가상들을 따라가는 것은 결코 어떠한 학문도 생겨나게 할 수 없으며, 오로지 공허한 변증적 기술만 낳는다. […] 그런데 형이상학이 학문으로서 기만적인 설득뿐 아니라 통찰과 확신까지도 요구하려면 이성비판 자체가 아프리오리한[선험적인] 개념들의 전체 저장품들을 [하나의 완전한 체계에서 상세히 설명해야 한다] 그러니까 이들 개념들을 감성, 지성, 이성이라는 서로 다른 원천들에 따라 구분하는 것, 더 나아가 이들의 완전한 표와 이 모든 개념과 그것들에서 따라 나올 수 있는 것들을 분석하는 것, 이에 근거를 두어 무엇보다 이들 개념의 연역을 수단으로 한 아프리오리한[선험적인] 종합인식의 가능성과 이들 개념 사용의 원칙들, 마지막으로 이들의 한계까지 모든 것을 하나의 완전한 체계에서 상세히 설명해야 한다. 칸트 (2018), 164쪽.
칸트는 이러한 작업을 통틀어 초월-철학이라 부르며, 본디 스콜라 철학에서 ‘초재적’이라는 개념과 상호 교환 가능한 용어로 사용되었던 ‘초월적’이라는 개념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백종현 (2017), 118쪽 참조). 예컨대, 우리는 감성적 직관의 순수한 두 형식인 공간과 시간과 같은 “표상들이 전혀 경험적 기원의 [표상들이] 아니라는 인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어떻게 선험적으로 경험의 대상들에 관련할 수 있느냐 하는 가능성만을 초월적이라 부를 수 있다” (KrV, A 56-57/B 81). 즉, 칸트에게 있어 초월적인 것은 그 자신은 경험적이지 않으나 경험적 인식을 가능케 하는 조건들(Bedingungen)이며, 그는 이러한 조건들의 체계를 초월-철학이라 부른다. 2 그리하여 칸트 이후로 ‘초재적’이라는 개념은 일반적으로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을 뜻하게 된 반면, ‘초월적’이라는 개념은 모든 경험에 논리적으로 선행하면서 경험적 인식을 가능케 하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3
이렇게 경험적 인식이 성립하기 위한 선험적 가능 조건들의 체계에 관한 탐구를 통해 칸트가 보이고자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칸트는 판단을 개념(주어와 술어)들의 관계에 대한 표상으로 이해하며 그러한 판단 활동의 선험적 근거를 탐구하는 학문을 초월적 논리학(die transzendentale Logik)이라 부른다 (강영안 (2009), 72-73쪽 참조). 또한, 감성적 직관의 대상을 사고하는 능력인 지성은 판단하는 능력으로 표상될 수 있다 ( KrV, A 52, 69/B 76-77, 94). 그리하여 초월적 논리학은 초월적 분석학(die transzendentale Analytik)과 초월적 변증학(die transzendentale Dialektik)으로 나뉜다. 전자는 경험적 사용에 대해서만 타당성을 갖는 순수한 지성 인식의 요소와 원리들을 규명하는 작업인 반면, 후자는 그러한 요소와 원리들을 경험의 한계를 넘어 오용하는 것에 대한, 즉 지성과 이성의 초자연적 사용에 대한 비판이다 (KrV, A 62-64/B 87-88). 따라서 초월 철학은 이론적 지식의 영역에 한계를 긋는다. 그것은 이론적 지식의 영역에 속하는 적법한 담론의 형식을 규명하는 동시에 이 영역의 한계 밖에 있는 철학적 담론을 독단론이라 비판하는 작업이다 (Glock (1997), p. 287 참조).
둘째, 그러나 칸트는 이러한 작업이 모든 특수 형이상학을 폐기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왜냐하면, 이성에 대한 비판은 자유, 신, 그리고 영혼불멸과 같은 초감성적 대상들에 대한 실천적-독단적 인식을 확립하기 위한 예비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는 「형이상학의 진보」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론적 관점에서 이성이 아무리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우리는 신이 현존하며 최고선이 현존하고 내세의 삶이 임박했다는 확신에 조금도 가까이 다가서지 못한다. 왜냐하면 초감성적 대상들의 본성을 우리는 전혀 통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천적 관점에서 이런 대상들에 관한 이념이 우리의 순수 이성의 최종목적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는 한, 우리는 이런 대상들을 스스로 형성하는데, […] 이런 최종목적의 가능성은 신, 영혼불멸이라는 이념들과 도덕성 자체에 의해 명령된, 이런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는 신뢰에 의해 보완되며, 또한 이렇게 해서 이 개념에 객관적이지만 실천적인 실재성이 마련된다. 칸트 (2009), 64-65쪽.
이처럼 이론적 인식의 한계를 설정하고, 그 한계 밖에 신앙과 도덕의 자리를 마련하는 칸트의 전략은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서도 핵심적이라는 것이 칸트적 해석의 설명이다. 즉, “비트겐슈타인은 의미 있는 언어를 사실들의 영역에 한계 짓고 논리적 형식을 양자의 조건으로 다룬다” (Appelqvist (2018), p. 1027). 그리고 이러한 한계 설정 작업은 말해질 수 있는 것만을 다루는 과학적 언어에 확고한 토대를 제공하는 동시에, 말해질 수 없되 보일 수만 있는 것, 특히 윤리적인 것의 자리를 마련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Janik and Toulmin (1996), p. 197 참조).
이에 따라 스테니우스를 비롯한 여러 학자는 『논고』의 형이상학이 칸트의 경험의 형이상학에 조응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보기에, 칸트와 전기 비트겐슈타인은 모두, 첫째, 경험적 인식 또는 의미 있는 언어가 성립하기 위한 선험적 가능 조건들의 체계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둘째, 이러한 조건들을 초월적 논증을 통해 도출한다는 점에서, 셋째, “자연 과학의 논쟁 가능한 영역” (TLP, 4.113)이 속하는 이론적 인식 또는 의미 있는 언어의 한계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넷째, 이러한 한계 밖에서만 윤리가 성립할 수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요컨대 칸트가 이성비판을 통해 지성과 이성을 오용하는 독단적 형이상학을 폐기하고 경험적 인식이 성립하기 위한 선험적 가능 조건들의 체계를 제시했던 것처럼,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비판을 통해 언어의 논리에 대한 오해에 근거한 기존의 형이상학을 폐기하고 의미 있는 언어가 성립하기 위한 선험적 가능 조건들의 체계를 제시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비트겐슈타인은 칸트의 초월적 관념론을 이성의 차원에서 언어의 차원으로 옮겨 놓았다(Wittgenstein transferred Kant’s transcendental idealism from the plane of reason to the plane of language).” (Stegmüller (1969), p. 418)라는 스테그뮐러의 테제로 간명하게 요약될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칸트와 전기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네 가지 유사성은 스테니우스에 의해 처음으로 정식화되었으며, 이후 형언 불가능성 해석을 지지하는 여러 학자가 제시한 문헌적 근거와 논증에 의해 구체화되었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근거들을 차례로 확인할 것이다. 이는 다음 장에서 상세히 고찰할 스테니우스의 칸트적 해석에 대한 배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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