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search/Proposals & Drafts

[초안] 표상하는 주체에서 의지하는 주체로: 비트겐슈타인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치유 허무주의(Therapeutischer Nihilismus)

Soyo_Kim 2024. 7. 12. 02:00

 

“이 책은 신의 영광을 위해 씌어졌다”고 말하고 싶다.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서론

1930년 케임브리지로 돌아온 비트겐슈타인은 그 해 가을 학기동안 어떤 책의 서문을 작성하는 데 몰두한다. 이 책은 그의 다른 저작들과 마찬가지로 생전에 출판되진 못하였으나, 여기서 그는 그의 사유의 방향성과 정신에 대한 실로 중요한 실마리를 언급하고 있다.

“이 책은 이 책이 씌어지게 된 정신에 대해 호의적인 사람들을 위하여 씌어졌다. 내가 믿는 바로는, 이 정신은 유럽적이고 미국적인 거대 문명의 정신과는 다른 것이다. 이 문명의 정신은-그 표현이 현대의 산업, 건축, 음악, 파시즘 그리고 사회주의인데-필자에게는 낯설고 공감가지 않는 정신이다. (...) 내가 전형적인 서구 과학자에 의해 이해 또는 평가될지 여부는 나에겐 아무래도 좋다. 왜냐하면 그는 내가 어떤 정신 속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지를 어쨌든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문명은 진보라는 낱말에 의해 특정지어진다. (...)”

이 초고는 여러 번의 수정을 거친 끝에 오늘날 철학적 소견들에 실린 형태로, 신의 영광을 위해 씌어졌다.”는 서문으로 완성된다. 본고는 (본고가 어떤 성취를 이룬다는 가정 하에) 앞으로 수행할 작업에 비하면 소박한 주장을 입증하고자 한다. 본고는 비트겐슈타인이 1930년에 쓴 이 글이, 이 시기 이후의 그의 사유를 요약할 뿐만 아니라 그가 이러한 입장을 논리-철학 논고(이하 논고로 통칭함.), 나아가 전 생애를 거쳐 일관되게 견지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 함축된 두 가지 전제는 다음과 같다. 1) 논고시기의 전기 비트겐슈타인과 1930년대 이후 철학적 탐구(이하 탐구로 통칭함.) 시기의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작업은, 그의 전환은 오히려 논리학의 위상에 관한 견해가 변화한 까닭이다. 흔히 후기 비트겐슈타인으로 연구되며 학자에 따라 중기와 후기로 나누어지기도 하는 비트겐슈타인은 , 논리-철학 논고 시기의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그 본질에 있어 동일하다. 2)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사에 무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철학 전체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철학사 아래 위치할 때에 보다 올바르게 이해될 수 있다. 나는 이 정신과 결부된 비트겐슈타인의 사유에 반시대적 고찰이라는 이름을 붙이고자 한다.

합스부르크 제국 철학사의 재정립은 오늘날 현대 철학에서 가장 시급하게 이루어져야할 과제이다. 오스트리아 제국(1804-1867)과 오스트리아-헝가리(1867-1918) 제국의 존속 기간동안 빈에서는 고대 그리스, 18-19세기 독일, 20세기 프랑스에 비견될만한 일련의 사유운동이 일어났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시기야말로 대륙철학과 분석철학의 분기와 혼합이 동시에 공존했던 시기라는 사실이다. 그 모든 철학자들의 작업이 제국의 멸망과 함께 파편화되어 흩어지거나 망각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현대 철학은 그들로 인해 성립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라고 할 수 없다. 프로이트가 프랑스 철학에 미친 영향과, 후설이 독일 철학에 미친 영향, 에른스트 마흐, 모리츠 슐리크와 오토 노이라트 등의 빈 학파는 분석철학의 태동에 있어 명백한 선구자들이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을, 후설은 현상학을, 빈학파는 분석철학을 창시했다. 즉 현대 철학의 큰 세 가지 흐름 - 구조주의적 사유와 현상학, 분석철학은 모두 이들의 첫 작업에 의해 탄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프로이트를 라깡과 연결시키지 뵈멘과 빈에서 프로이트에게 영향을 미친 선구자들과 연결시키지 못한다. 후설을 하이데거와 연결시키지 프렌츠 브렌타노, 마이농 그리고 뵈멘의 볼차노를 위시한 개혁 가톨릭주의자들과 연결시키지 못한다.

물음- “루카치와 만하임으로부터 나온 지식사회학은 비판 이론으로 이어질까?”

: 짧게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1867-1918

길게는 오스트리아 제국부터 2차대전까지 1804-1945

 

1장 모든 가치의 전도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치유 허무주의에 관하여

 

진리로 인해 멸망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예술을 가지고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

모든 가치의 가치전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비더마이어 문화에 적용하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자유주의, 민족주의, 진보사관과 금욕주의...삶을 왜소화시키는 것은 독일적이라는 니체의 말. 그 대척점에 놓여있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정신사

잘 생각해보면, 이는 결국 니힐리즘에 대한 대처를 어떻게 할 것인가? 라는 문제에 다름아니다. 니체는 기독교 전체를 비판하고 있으나, 안티크라이스트와 도덕의 계보학을 보면 사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예수, 사도바울, 르네상스, 체자레 보르지아, 마르틴 루터, 나폴레옹

인간은 의지하지 않기보다는 차라리 무를 의지하고자 한다.

개신교적 금욕주의에 대항하여 그리스 비극에 나타난 능동의 허무주의와 비더마이어 문화의 치유 허무주의 (니체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Wir haben die Kunst, damit wir nicht an der Wahrheit zu Grunde gehen.

철학은 비존재에 대한 끝없는 혐오로 인해 성립한다.

카를 크라우스

 

2장 마우트너의 언어 비판 철학

모든 철학은 언어 비판이다. (그렇지만 마우트너의 뜻에서 언어 비판이라는 것은 아니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3장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과학 철학 담론- 에른스트 마흐와 루트비히 볼츠만을 중심으로

헬름홀츠, 리하르트 아베나리우스 : 경험주의 일원론 / 에른스트 마흐의 사유 경제성 원리

공적 표상으로서의 Darstellung과 심적 표상으로서의 Vollstellung

하인리히 헤르츠와 루트비히 볼츠만

 

4장 오토 바이닝거의 성과 성격 : 세계의 선험적 조건으로서의 윤리와 논리

논리와 윤리는 근본적으로 하나이고 같은 것이다-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다-.
- 오토 바이닝거

논리는 사물의 어떠함에 대해서는 앞서지만 사물의 무엇임에 대해서는 앞서지 않는다.

이 명제에 따라 우리는 비트겐슈타인이 파악한 사물-명제의 영역을 다음의 세 가지로 파악할 수 있다.

사물의 어떠함 sinn - 이건 오히려 에른스트 마흐 혹은 버트란트 러셀의 감각지 정도가 맞을듯 하다.

Sinnlos - 뜻을 결여함 - 논리 헤르츠의 모델을 논리공간으로 확장시킨 것이 비트겐슈타인의 업적이다. 즉 이 모든 작업들이 선제로 깔려 있은 후에야 비트겐슈타인은 케임브리지로 프레게와 러셀을 배우러 갔다.

Unsinn 무의미함- 윤리

의지, 존재 그 자체, 절대적 가치, 윤리적 유아론, 쇼펜하우어

3장과 4장은 긴밀히 연결된다. 이 교두보는 바이닝거의 성과 성격에 있다.

바이닝거의 리하르트 아베나리우스와 마흐 비판

세계의 두 가지 선험적 조건(칸트적 의미에서 그 자신은 경험적이지 않으나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바이닝거에게 있어 논리와 윤리는 모두 의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