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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인 (2021) 탈북여성의 기억으로 본 남북의 젠더의식 비교

Soyo_Kim 2024. 11. 30. 14:19

박재인. (2021). 탈북여성의 기억으로 본 남북의 젠더의식 비교. 통일인문학, 86, 43-88.

Park, Jai In. (2021). A comparison of the gender consciousness of North and South Korea through the memories of female North Korean defectors. The Journal of the Humanities for Unification, 86, 43-88.

 

1. 서론

고난의 행군 시기의 탈북은 기아와 극빈에서 탈피하기 위한 생존의 목적이었으며, 대체적으로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에 이루어 졌다. 반면 장마당세대의 탈북은 새로운 삶을 위한 이주가 목적이며, 2010년대에 이루어졌다. 이들이 경험한 북한사회와 남한사회가 그 모습이 다르기도 하고, 그 연령대 별 세대적 차이도 벌어져 있었다. [47]

 

2. 여성 건강과 의료 문제에 대한 남북의 차이

먼저, 고난의 행군 시기에 탈북한 중년여성들은 이 어려운 시기 때 잠시 월경이 멈추었다는 공통된 기억을 이야기했다. 영양 상태가 좋지 않으니 월경부터 멈췄고, 이후 중국에 나와 끼니를 챙겨먹을 수 있으니 다시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북한 수용소에 수감된 경험이 있는데 이때에 월경 문제가 참 어려웠다고 말했다 [49]

고난의 행군 시기 여성과 장마당세대 여성 모두 북한사회는 예방의 료 시스템이 잘 되어있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탈북여성 (가)는 루프시술을 받고 그대로 방치하였다가 한국에 와서 자궁적출 수술을 받았고,6) 탈북여성 (다)는 어머니가 유방암으로 사망하셨다. 그래서 이들은 비교적 예방의료 시스템이 잘 구축된 남한사회를 바라보며, 과거 북한에서의 삶을 떠올렸던 것이다. 북한여성들은 당장 아프지 않으면 자기 몸을 돌보지 못하거나 혹은 자기 몸을 돌보지 않는 일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이 이들이 생각하는 북한사회의 현실이 었다. [52]

한편 출산 경험이 있는 고난의 행군 시기 여성들에게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기억도 물어보았다. 먼저 화자 (가)는 남한과 비교하며 임산부를 위한 영양과 의료적 관리가 행해지지 않은 북한사회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하였다.7) “여기에서는 해산하면 떠받들고”라고 말하 며 북한과 남한의 태도 차이를 언급하였는데, 이는 선행연구에서도 탈북여성들이 남한에 와서 경험하는 충격 중에 하나라고 논의되기도 했었다. [52-53]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이렇게 배급도 안 줘서 굶어 죽게 된 세월인 데도 임신이 있었어. … 사람들의 정신상태는 그걸로 머물러 있는 거야. 지금 여기서 생각하면은 그 땅에서 임신 된다는 거이 얼마나 웃기니? 당장 굶어 죽게 됐는데 무슨 애를 낳니. … 갑자기 배급을 안 준다고 해서 어디가서 갑자기 피임을 할 때도 없거니와, 또 피임에 언제 신경을 쓸 새도 없었고. 여자들이 먹고 사는 게 바쁘니까. 그래서 걸려든 여자들 이 임신한 여자들이 있었다니까. … (1차 탈북시도 실패 후) 두만강 동네에서 살다가 부령이라는 데로 쫓겨 갔는데, 초면 아니야. 이 동네에 나를 아는 사람이 없잖아. 가서 사는데. 참 웃기더라고. 감옥에서 지금 사람 잡아 먹는 게 들어오지. 지금 난리법석, 세상이 이게 무슨 세상인지 모르겠는데 또 바깥에 나가 보니까 우리 딱 앞집하고 옆집하고 두 집이 임신이 된 거야. 여자들이 배불러서 다니는 거야. 하니까 내가 ‘ 팩 ’ 하고 웃음이 나더라고. 이야, 이거 너무 안 맞는 거다. 내가 이거 내가. 내가 픽 하고 웃음이 나가. … 그 다음에는 사람들이 머리가 바뀌잖아. 애 낳으면 안 되겠구나. 이 생각이 섰겠지, 잠자리를 덜 했겠지. 신경 쓸 새도 없지. 생각이 바뀌었으니까 점점 애를 안 낳았지. 사람들이 점점점점 계몽이 되는 거야. 쉽게 말하자면. (탈북여성 가) [56]

 

3. 가정과 사회 속 북한 여성과 남한 여성

차별 없어. 북한에는 특별히 남녀평등 하니까. 남녀평등을 북한처럼 부르짖은 국가는 없잖아. 남녀평등은 한데, 가부장적인 것은 있었어. 북한은 남편 말이면 다야. (탈북여성 가) [58]

고난의 행군 시기에 탈북한 여성들은 북한은 양성평등을 주창하지 만, 생활세계에서는 가부장적인 문화가 만연하다고 말했다. 양성평 등과 가부장제가 연상되는 현상인데, 탈북여성들의 사유 속에서도 이 두 가치는 충돌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59]

그런데 이 양성평등에 대한 이야기에서 세대 별 차이가 드러나기도 했다. 고난의 행군 시기 여성들은 북한에서 양성평등 교육이 있었다 고 기억했는데, 장마당세대 여성들은 평등 교육은 이뤄졌으나 양성 평등 교육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 거였는데 지금은 서로간에 존중을 하고 상황으로 개발해 주고 이렇게 해야 한다 라고 교육은 하죠. (탈북여성 다)

학교에서 평등에 대해서 교육은 하거든요. 그런데 남녀평등 이런 교육은 안, 안 해요. 그냥 인간에 대한 평등. 사실 북한에서 인권 교육을 안 한다고 하는데 인권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는 해요. 도덕 시간에 모든 사람은 자유권을 다 가지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기는 하는데 그거를 구체적으로 하지는 않죠.(탈북여성 라) [59]

장마당세대 여성들은 이렇게 여성의 의무만 강조하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이들에게 북한은 여성을 위한 정책이 실행되는 공간이라 여겨지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장마당세대 화자 들은 북한에서 여성은 경제적 능력이 있지만 권리를 주장하기 힘든 존재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60]

이제 북한은 장마당시대가 되어 여성들의 경제적 능력이 발달되었 고, 그럼으로써 ‘남자가 필요 없는 사회’가 되었다. 지금은 장마당 아니면 살기 어려운데, 가부장적 분위기 때문에 남자들은 장사 일을 하지 않아서 생활전선에 뛰어든 여성들이 경제력이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가정에서 여성의 존재감이 커졌고 남자의 역할 과 힘이 상대적으로 필요 없어졌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 점을 “아빠 없이는 살아도 엄마 없이는 못 살아”, 혹은 “여자가 결혼할 이유가 없네요” 등으로 표현하였다. 이제 북한은 남성을 필요로 하지 않은 사회가 되었으며, 북한여성들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남성과 가정 을 보필하는 삶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63]

탈북여성(나)는 권력자가 약자를 약탈해가는 구조 속에서 가장 맨 밑에 여성들이 “사람답지 못하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 사회가 가부장적 사회주의16)임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발언이 며, 그 권력의 수직구조 속에 늘 힘없는 여성들이 희생당하고 있다는 냉철한 비판이었다. 그리고 장마당세대들도 북한여성들은 높은 지위 로의 사회적 진출이 힘들고, 북한은 남성에게 더 유리한 사회라고 하였다. 가정과 사회가 여성의 경제적 힘으로 지탱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북한은 여성의 위치를 가장 아래에 두고 있는 것이다. [66]

 

4.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두 사회의 온도 차

북한여성들이 장마당으로 진출하고 국경장사가 부를 축적하는 수단이 되면서 미혼자, 기혼자 모두에게 기존의 정조의식과 충돌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탈북 때의 인신매매는 원하지 않는 결혼을 하게 되고, 국경장사를 나서면 불법을 감행하는 데 있어서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하게 되는데, 이 문제는 소위 “손을 탔다”는 식의 비난으로 이어질 때가 많았다. 연구자가 과거에 접한 탈북여성들 중에는 남한에 와서 도 그 멍에를 벗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경우들이 있었다. [71]

이 여성은 당시 북한에서는 국경을 넘는 여성들에 대해서 수군거리 며 비난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굶어죽는 상황에 서 자신의 식구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며, 이를 문제 삼는 남한주민에게 탈북여성들에게 상처주지 말라는 일갈 을 했었다고 하였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모두가 똑같을 것이라며, “피눈물”이라는 표현으로 탈북여성들의 상처를 이야기했다 [72]

여성(다)는 국경장사를 하는 여성들에 대한 최근 북한의 시선이 달라졌다고 한다. 밀수를 한다고 하면 ‘남자를 많이 만난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되어 있는데, 그것 때문에 주변에서 수군거리기보다는 부러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한국과 비교하자면 “대기업에 취직했다”는 정도로, 그 능력을 인정받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그녀가 기억하는 북한은 경제적 능력에 대한 긍정성이 구시대적 성관념을 뛰어넘는 사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고난의 행군 시기에 탈북한 중년 여성은 정조보다 인간의 생명을 더 우위로 보는 관점을 드러내 고, 장마당세대의 20대 여성은 정조보다 경제력을 더 우월한 가치로 평가하는 것이다 [73]

그럼에도 여전히 구시대적 성관념에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하기 어려운데, 장마당세대들은 남한에서 특히 탈북민들 사이에서 탈북하 여 중국을 거쳐온 여성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주 었다. [74]

저는 그럼 그렇게 물어보고 싶어요. 한국에 있는 친구들 중에 솔직히 처녀가 몇 명이나 되나요? 그거 아니어도 북한을 통해서 이렇게 오는 사람이 아닌 한국에서 타고난 사람도 남자랑 안 자본 사람이 사실은 없잖아요. 이래서 손 탔던 저래서 썼던 사탕은 다 똑같은데. 굳이 탈북 여성이 그렇다고 말한다는 건 그분이 조금 인식 자체가 그냥 … 스스로 자기가 탈북이니까. 요즘은 탈북민을 싫어해요. (탈북여성 다)

자기 스스로가 자기 스스로를 이렇게 낮추는 거죠. 그것 때문에 나는 그게 좀 흠이다 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 자기가 원했던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그것 때문에 간 거지만 또 그게 또 자기 선택이기도 했죠. … 저희가 되게 충격 받은 말이 있는데. 같은 탈북민인데도 불구하고 그 엄마가 그런 이유는 있대요. “여자친구 탈북을 만나는 거 괜찮은데 중국 걸쳐서 오지 않은 여자면 된다. 중국에서 살다 온 여자는 아닙니 다.” 물론 다 걸쳐서 오니까. 그런데 그 말에 되게 충격을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같은 탈북민들끼리 탈북민을 차별을 하는 거죠. 그렇더라 고요. (탈북여성 라) [74]

이들은 북한에서 탈출하여 온 자신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정조와 순결을 문제 삼는 이 사회에 대하여 저항하며 인간적인 대우를 바라고 있는 것이 다. 이렇게 한국사회에서 정조와 순결에 대한 것은 이념 문제와 결합 되어 탈북여성을 억압하는 또 하나의 멍에로 작동하고 있었다. [74-75]

다음은 성문제에 대한 북한의 현실문제 중 하나인 피임과 중절수술 에 대한 이야기이다. 북한에는 남성 피임보다 여성 피임이 더 확산되 어 있으며, 국가적 보급으로 루프시술을 보편화 되어 있다. 고난의 행군 시기 탈북여성들도 당시 북한의 산아제한정책에 의해서 루프시술을 받은 경험이 있었다. 그녀들은 루프시술이 잘 관리되지 않는 문제들을 기억하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런데 반해 장마당세대 여성들은 피임문제에 대하여 특별한 기억들을 더 이야기해 주었다. [75]

고난의 행군 시기의 탈북여성들은 루프시술이 나라에서 무료로 보급되었다고 하였는데, 장마당세대 여성들은 루프시술이 가격이 비싸서 쉽게 시술받기 어렵다고 했다. 그리고 북한에서 남성들이 피임문제에 적극적이지 않다고도 말했다. 피임 문제에 있어서 여성 이 홀로 감당해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였다. [75]

거의 대부분은 결혼하기 전에 남자친구랑 사고 쳐서 그냥 거기 피임이 안 되어 있잖아요. 정말 콘돔도 없고요. (루프시술) 비용도 꽤 비싸고 이래서 대부분이 다 잘 피임이 잘 안 되어 있다 보니까. 저희 나이 또래 제가 주변에 있는 친구들한테 중절 수술 몇 번 하고 이러거든요. 왜냐하 면 계속 피임이 안 되니까 (탈북여성 다)

일단 방금 말했던 성관계. 그 문자에서 탈북민 남성분들이 조금 그게 너무 없어요. 인식이 좀 부족하고 또 임신하는 거에 대해서 그렇게 신경 안 쓰는 것 같고 피임도 안 하고 그게 싫어서 … 콘돔이라는 건 아예 없는 걸 그리고 제가 있을 때까지만 해도 없었고. 지금은 있는 잘 모르겠 는데 지금도 저는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탈북여성 라) [75]

장마당세대 여성들은 북한에서는 피임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주 변에서도 원하지 않은 임신으로 중절수술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 다. 피임의 유일한 수단은 여성의 루프시술인데 비용이 만만치 않고, 남성들은 자신이 피임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 아예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북한남성들은 피임에 대하여 무지하고 무관 심하며, 콘돔은 잘 사용되지 않는다고도 하였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도 그 습관을 바꾸지 못하는 탈북남성 때문에 이들과 교제가 꺼려진 다고 말하기도 했다. [76]

북한에서는 원하지 않는 임신 역시 여성 홀로 감당하는 편이었다. 특히 중절수술은 병원에서 이뤄지기보다는 민간에서 불법적으로 실 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76]

개인이 있어요. 저는 그때 친구 보호자로, 혼자 올 수 없으니까. 그러 니까 마취도 없어요. … 마취 없이. 그때는 제가 들어는 못 가고 그냥 그 수술을 하는 방이 따로 있었는데 이렇게 피도 보니까 이런 테이블 있잖아요. 이런 책상 위에 한 대가 누워야 되고. 그 밑에서 의사분이 이거 의사인지도 모르겠어요. … 그렇게 하고 한국은 보니까 무슨 주사 맞는다고 있는다고 하더라고요. 그거 하고 나면 이렇게 건강 때문에, 그런 것도 없고요. (탈북여성 다)

병원에서도 그냥 숨어서 해 주는 거고 민간에서도 해 줘요. (의사가 아닌 사람이 해 주기도 해요?)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아마 다 의사일 거예요. 의사인데 민간에서 하는 거 집에서. (그게 청소년인데도 알 만큼 빈번하게?) 일반적으로 네. 원하지 않은 임신하면 중전 수술. [76]

일반적으로 북한의 병원에서는 수술을 받는 자체가 어렵기 때문 에, 중절수술은 민간에서 불법적으로 행해진다고 하였다. 탈북여성 (다)는 마취도 하지 않는 경우가 있고, 수술 후에 의료적인 처지도 한국보다는 미흡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탈북여성들이 기억하는 북한 은 여성들이 혼자 피임과 임신 위험까지 감당해야 하는 사회였다 [76-77]

고난의 행군 시기의 여성들이나 장마당세대 여성들은 모두 북한에 서 성폭력 사건이 많다고 말했다. 학교선생님이나 직장 상사, 군대 간부들이 여성들의 신체를 함부로 접촉하는 일이 만연하고, 또래끼 리의 사적인 관계에서도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당하는 일이 빈번하다 고 했다. 권력이 있는 남성이 여성을 건드리는 일은 많고, 성접촉에 있어서 여성의 의사를 묻는 일은 드물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회 전반에서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낮아 여성들은 그런 일을 당하고도 스스로 ‘피해자’라고 인식하기 어려우며,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추어 있지 않다고 했다. [79]

 

5. 결론

다음으로 중요한 사안은 탈북여성 세대별 차이이다. 북한과 남한 사회를 바라보는 고난의 행군 시기 탈북여성과 장마당세대의 공통점 과 차이점이 존재하였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탈북한 중년여성들은 가정 속에 존재하는 남녀의 계급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열등한 존재가 ‘우수한 여성’이라고 평가하고 여성은 가정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고 인식했다. 반면, 장마당세대 20대 여성들은 사회적 편견에도 국경장 사에서 활약하는 북한여성들과 결혼 및 출산을 기피하는 한국사회를 바라보며, 사회와 가정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운 여성 독립의 가능 성을 긍정하였다. [83]

그리고 장마당세대 여성들은 여성 자신을 위한 섹슈얼리티를 사유 하는 세대이기도 했다. 이전의 탈북여성들은 탈북과정에서의 착취와 억압에 대한 상처를 토로하는 데에 그쳤다면, 장마당세대 여성들은 현재 자신의 몸과 마음이 어떠한지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유하고 표현 하였다. 그리고 성문제에 있어서 더 확장된 범위로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 고찰하였다. ‘욕망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여성’에서 ‘욕망을 꿈꾸는 여성’으로 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84]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는 장마당세대 탈북여성, 이것은 그녀가 사회적으로 어떤 여성이 되기를 꿈꾸고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고민하 는 까닭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탈북 자체가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자유의지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장마당세대 여성들의 고민은 이전의 탈북민들과 같으면서도 달랐다. 고난의 행군 시기 여성들과 장마당세대 여성들의 차이, 그 다양함과 역동성은 현재 우리가 마주할 북한의 모습 그 자체일 것이다.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