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lytic/Social & Political Phil

성정현 (2016) 탈북여성들에 대한 남한 사회의 ‘종족화된 낙인(ethnicized stigma)’과 탈북여성들의 공동체 형성 및 활동

Soyo_Kim 2024. 11. 30. 13:59

성정현. (2016). 탈북여성들에 대한 남한 사회의 ‘종족화된 낙인(ethnicized stigma)’과 탈북여성들의 공동체 형성 및 활동. 한국가족복지학, 53, 79-115.

Sung, JungHyun (2016). The Ethnicized Stigma against Women Escaped from North Korea and Their Community Building and Coping Strategies toward it in Contemporary South Korea. Korean Journal of Family Social Work, 53, 79-115.

1. 서론

이런 가운데 외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례로서, 1990년대 후반부터 같은 민족 이지만 분단으로 인해 서로 단절된 채 살아온 북한주민이 탈북 후 중국과 몽골, 캄보 디아 등 제 3국을 거쳐 남한에 입국하는 사례가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그 수가 2016년 3월 현재 약 29,000여 명에 이르고 있는데(통일부, 2016), 문제는 북 한이탈주민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차별, 그리고 낙인으로 인한 부정적 현상이 나타나 고 있다는 점이다. 오랜 분단의 역사와 다른 체제로 인해 언어와 문화, 생활양식이 달 라지면서, 한민족이지만 마치 다른 종족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으며 여기서 비롯된 또 다른 낙인(stigma)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80]

남한주민들에게 북한이탈주민은 같은 역사적 배경을 가진 한민족이라는 점에서 이주노동자나 국제결혼이민자와는 다른 동질성이 있지만 언어와 문화, 생활양식, 이념 의 차이가 외국인과 별반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낯설고 이질적이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80-81]. 게다가 이들 중 상당수는 남한에 입국하기까지 중국을 비롯한 제 3국에 체류하면 서 인신매매, 강제결혼, 성폭력, 죽음의 목격과 위협 등 심각한 외상을 경험한 상태에서 입국하기 때문에 일정기간 동안은 트라우마(trauma)로 인한 후유증에 대한 전문 적이고 장기적인 치료적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 따라서 언어와 문화를 포함한 생 활양식이나 사고 면에서는 이주노동자나 국제결혼이민자 만큼 이질적일 뿐만 아니라 상당한 정도의 국가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집단이라는 점에서 단기적으로는 부담스러운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 [81]

이런 이유로 남한 사람들은 이들을 ‘열등 국민’, ‘무능한 존재’, ‘세금을 축내는 사 람’, ‘통일이 되어도 국가로서는 세금을 퍼주어야 할 3류 민족’이라는 낙인감을 부여 하고 있다(유해숙・이현숙, 2014; 성정현, 2014). 일종의 ‘구별 짓기(distinction)’를 통해 북한이탈주민을 특정 집단으로 일반화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차 세대의 고정관념과 편견, 차별행위로 전이되고, 인간관계에서 편파나 왜곡을 일으킬 수 있으며, 북한이탈주민의 적응과 사회통합을 저해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사회불안 의 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전우택 외, 2011; 정희주, 2011: 이병수, 2014). 따라서 이러한 부정적 인식과 낙인이 발생하는 이유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81]

 

2. 선행연구

북한이탈주민은 남한사회가 한민족이라는 인식을 갖고 대하거나 혹은 수용하지 않 고 세금을 더 내어 도와주어야 할 부담스런 존재로 인식하고 있으며(성정현, 2014), 북한에 대한 왜곡된 정보를 바탕으로 북한이탈주민 개개인의 특성을 무시하거나 과 도하게 일반화함으로써 부정적이고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생각했다. 또 서로 경계의 벽을 쌓고 또 차별의식과 거리감, 적대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 었다. 전영선(2014)은 이런 현상을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배타적 인식, 경멸과 무시의 폭력적 시선, 보이진 않는 폭력에 대한 무감각 등으로 평가하면서 이를 ‘은밀한 적대 감’으로 명명했다. 즉, 차별의식이 이면의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행위로 표출되고, 친 절 속에 거리감이 숨겨져 있으며, 적대감은 세련된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83]

남북하나재단의 조사결과(2014)에서도 응답자의 25.3%가 지난 1년간 차별과 무시 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이유로 북한이탈주민은 자신들의 말투와 생활방 식, 태도 등 문화적 소통방식이 다른 점(68.6%)과 남한사람들의 북한이탈주민의 존 재에 대한 부정적 인식(42.6%), 전문적 지식과 기술 등에 있어 남한사람들에 비해 능 력이 부족함(19.2%) 등을 들었다. 또 서울시 여성가족재단(2009)이 조사한 바에 따 르면, 북한이탈주민 응답자의 63.1%가 차별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차별경험 의 상황은 직장채용에서가 44.1%, 직장 승진 과정이 25.4%, 임금이 30.8% 등 직장 및 임금 부분에서 가장 많았고, 상점이나 음식점에서는 16.2%, 학교나 단체는 11.0%, 공공기관이 10.8%로 나타났다. 이렇게 북한이탈주민은 발음과 억양, 말투와 언어의 차이로 탈북자임이 드러날 때 남한주민들이 자신들을 동포라는 인식보다는 ‘오지 말 았어야 할 사람’으로 규정하고 사회적으로 배제함으로써 일자리나 임금, 그리고 대 우 면에서 차별과 냉대를 한다고 평가했다(성정현, 2014; 정윤경・김희진・최지현, 2015). [83]

 

3. ‘종족화된 낙인(ethnicized stigma)’

종족 또는 종족집단(ethnic group)은 조상이 같고, 성(姓)과 본(本)이 같은 겨레붙 이 혹은 같은 계통의 언어・문화 따위를 가지고 있는 사회 집단을 의미한다. 그리고 종족성(ethnicity)은 특정한 집단에 계승되어 온 것으로 간주되는 상징과 신화의 복합체를 의미한다(Smith, 1995; 남근우, 2012). 즉, 종족성은 ‘고유한 집단 명칭, 공동조 상의 신화, 역사적 기억의 공유, 한 가지 이상의 면에서 타자와 구분되는 공동문화 요소들, 특별한 본토라 간주할 수 있는 공간적 귀속성, 주민의 상당수가 공유하고 있는 연대감’등과 같은 상징과 신화가 주된 속성이기 때문에 그 종족 또는 종족집단의 역 사적 근원을 찾고 이를 통해 현재의 종족집단을 정당화하려는 혈연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85]

하지만, 종족성 혹은 종족적 공통성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다른 종족으로부터 구분하는 것을 의미하는 종족 정체성(ethnic identity)은 상황과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김게르만, 2011). 그 예로, 홉스봄(Eric Hobsbawm)은 한민족의 사례를 든 바 있다(남근우, 2012 재인용). 남북한 주민이 반백년 동안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 살아 왔고, 남한주민은 ‘반공주의’와 ‘레드콤플렉스’로 인해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포용력이 낮아졌으며, 북한이탈주민 역시 북한사회의 특수성이 반영된 ‘유일영도문화’속에서 생활하면서 ‘김일성민족’이라는 특정한 종족명으로 지칭될 정도로 상호타자화 된 문화를 형성함으로써, 이제는 동질성보다는 오히려 차별성을 한층 더 경험하고 있다 (이은혜, 2006; 남근우, 2012). [85-86]

이런 이유로 일부에서는 북한주민을 한민족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들과는 다른 별도의 종족집단에 속한 사람들을 일컫는 이방인으로 인식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박순발, 2006). 그동안 북한에 대해 가져왔던, 분단되었지만 한민족이라는 혈통에 입각한 추상적 인식이 이제는 실생활에서 남한사람들과는 다른 문화를 가진 이방인의 삶이라는 현실로 이미 기정사실화 된 것이다. [86]

실제 북한이탈주민이 남한에 정착하여 생활하면서 사상과 인식의 차이뿐만 아니라, 언어와 생활양식, 문화면에서 서로 생소할 정도로 큰 차이가 있음이 확인되고 있고, 이런 차이는 남북한 주민 간 사회적・경제적 현실의 격차가 커질수록 더욱 뚜렷해지 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는 북한이탈주민이 남한에 정착하여 생활하면서 부정적 인식과 차별, 그리고 ‘종족화된 낙인’(ethnicized stigma)으로 경험되고 있다. [86]

여기서 낙인(stigma)은 다시 씻기 어려운 불명예스럽고 욕된 판정이나 평판을 이르 는 말이다. 그리고 ‘종족화된 낙인’(ethnicized stigma)은 성(姓)과 본(本) 등의 조상이나 언어, 문화가 유사한 사회집단이 불명예스런 판정이나 평판으로 인해 거부와 편견, 차별을 경험하는 것을 뜻한다. 이것을 북한이탈주민의 경우에 적용해 보면, 이들이 경험하는 부정적 인식과 차별은 조상이 같고, 성과 본이 같은 겨레붙이 혹은 같은 계통의 언어나 문화 등을 갖고 있는 사회 집단에게 주어지는 낙인이라는 점에서 ‘종족화된 낙인’의 성격을 띤다. 같은 민족이면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집단임에도 불구하고, 체제와 이념이 다른 사회에서 생활하다가 불명예스런 경험을 하고 남한에 입국하여 빈곤하고 어려운 상황과 불이해의 여건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일반적인 차별과 몰이해의 수준을 넘어 종족 낙인의 범주에 속하는 거부감과 부정적 평판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86-87]

 

4. 가난한 ‘탈북종족’으로서의 경험

참가자 들 대부분은 탈북자라서 다른 말과 억양, 그리고 연령 때문에 차별에 직면했다. 특히 자녀가 두 명 이상이거나 연령과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수급자가 되지 못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구직 시도를 반복했는데, 이 과정에서 언어와 억양문제, 그리고 직업경력이 없는 중년 여성이라는 이유로 면접기회 조차 주어지지 않는 다중 차별의 현실을 경험 했다. [93]

연구참가자들이 북한이탈주민으로서 경험하는 억양과 말투로 인한 이질감은 단지 차이의 문제를 넘어 정체성의 문제로 화(化)했다. 이들은 그냥 한국인이 아니라 북한 사람, 고향이 북한인 한국사람, 그리고 북한출산 한국국적자 등으로 불리며 종족성에 대한 정체성 혼란을 경험했다(전우택 외, 2011) 그리고 이런 정체성에 대한 의심은 바로 차별행위로 이어졌다. A와 C, F는 취업을 위해 전화를 하면 억양과 말투 때문에 출신을 묻고 바로 내국인만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으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했으 며, 이것을 북한에서 왔기 때문에 겪는 차별이라고 인식했다. [95-96]

탈북여성들은 내국인 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 공통적으로 분노감을 느꼈는데, 그 것은 무엇보다 한국인이라는 신분과 한민족이라는 정체성을 획득하기 위해 사선을 넘고 제 3국을 경유하여 남한에 입국했다는 사실이 부정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또 한 이것은 북한 가족과 고향을 등지고 선택한 삶이며,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는 가족이자 다시 돌아가지 못할 수 있는 고향을 떠나온 자신들이 이방인으로 취급당하고 주류가 아닌 소수자이며 제 3국에서 겪었던 이방인이자 2등 시민으로 인식되는 것 과 같기 때문이다. [96]

 

5. 부정적 인식과 종족화된 낙인의 원인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이유로 부정적 인식과 낙인을 경험하는 것에 대해 남한주민들의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선(先)경험과 우월감을 그 이유로 꼽았 다. 이중 선경험은 남한에 먼저 입국한 북한이탈주민들에 대한 남한주민들의 경험과 인식을 뜻한다. 남한주민들이 대중매체를 통해 탈북여성들이 남한에 입국하기까지 인신매매를 당하는 경우가 있고 또 남한에서도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있다 는 사실들을 접한 것이 남한주민들의 부정적 인식을 강화시키고 고정관념을 재생산 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이런 선경험과 북한사람과 북한사회에 대한 이해의 부족(금 명자, 2014), 부정적인 정보가 북한이탈주민은 모두 그럴 것이라는 편견과 고정관념 을 형성하고 이런 인식과 신념은 차별적 행동으로 이어져 탈북여성들의 적응을 연기 시키거나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북한 애들이 오면 뭐.. 3국에서 안 좋게 인신매매로 여기저기 팔려 다니다 오고.. 남한 에 와서도 그런 유흥업소에서 하는 애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게 있어가지고.. 오해하 시는 분들이 많아요. 못 먹고 거기에서 나쁜 것만 하고 온 사람들로 다 취급하는데 사 실은 아니잖아요. (H)

북한이탈주민은 이런 부정적 인식의 이면에 남한주민들의 우월감과 자만심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즉, 남한은 북한보다 잘살고 있고, 이들을 받아준 국가로서 국 민이 세금을 내어 북한이탈주민이 국민기초생활보호를 받게 해준다는 점에 대해 우 월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여기에 북한이탈주민은 자본주의 삶에 대해 잘 모를 것이고 학벌도 남한 주민들보다 낮을 것이라는 고정관념까지 작용하면서 북한 이탈주민에 대한 폄하가 발생하고 있다고 인식했다. [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