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cellaneous/Essays

루서 밴드로스 (Luther Vandross)에 대한 단상

Soyo_Kim 2024. 12. 3. 13:47

 

https://youtu.be/gYO6Pzp4OU4?si=0-R7xk7Xbcg8MPZT

루서 밴드로스 (Luther Vandross)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미국 최고의 보컬리스트 중 한명이다. Never Too Much와 Take You Out 등에서 보여 주는 그의 신묘한 보컬은 경이로울 지경이다. 흥미롭게도, 그가 불렀던 노래는 대부분 여성을 향한 사랑 노래였던 반면, 그 자신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평생 커밍아웃을 꺼려 했던 게이였다 (그가 게이였다는 사실은 사후에 패티 라벨 (Patti LaBelle)에 의해 아웃팅 되었다).[각주:1] 라벨에 따르면, 밴드로스는 그저 그의 수많은 여성 팬들과 "세상을 화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he just didn’t want to upset the world). 흥미로운 질문. 평생 자신이 욕망하지 않았던 대상을 사랑한다고 노래하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또 그 노래가 최고의 러브송이자 진정성 있는 음악으로 인정 받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러한 사실을 알고 그의 대표곡인 I'd Rather을 들어보면 가사가 전혀 다르게 들리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곡의 1절에서, 밴드로스는 성별을 모르는 (그리고 마지막까지 밝혀지지 않는) '너(you)'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2절에서 그는 누군가를 새로이 만나고 '그녀(she)'가 '너'를 대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이 새로운 연애는 그저 시간 낭비였다고 밝힌다. "우린 재밌게 지내긴 했지만 서로가 속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 (We had a lot of fun though we knew we were faking). 이어지는 코러스의 가사는 "다른 사람과 좋은 시간을 보낼 바에야 너와 함께 나쁜 시간을 보내겠어," (I'd rather have bad times with you, than good times with someone else) "나 홀로 안전하고 따뜻하게 있을 바에야 폭풍 속에서 너와 함께 있겠어" (I'd rather be beside you in a storm, than safe and warm by myself ) 등이다. 이 가사는 이성애 중심 연애관 속에서 실로 진부하게 느껴지지만, 밴드로스의 상황을 놓고 보면 전혀 다른 의미로, 동성 애인과 헤어져 이성 연애에 적응해 보려다 실패한 화자의 고백으로 다가온다. 최소한 그가 이 노래를 부를 때의 감정은 이 새로운 해석에 더 조응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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