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데카르트 (2021). 제일철학에 관한 성찰. 이현복 옮김. 문예출판사.
René Descartes (1984). The Philosophical Writings of Descartes. translated by John Cottingham, Robert Stoothoff, Dugald Murdoch. Volume II.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During these past few days I have accustomed myself to leading my mind away from the senses; and I have taken careful note of the fact that there is very little about corporeal things that is truly perceived, whereas much 53 more is known about the human mind, and still more about God. The result is that I now have no difficulty in turning my mind away from imaginable things' and towards things which are objects of the intellect alone and are totally separate from matter. And indeed the idea I have of the human mind, in so far as it is a thinking thing, which is not extended in length, breadth or height and has no other bodily characteristics, is much more distinct than the idea of any corporeal thing. And when I consider the fact that I have doubts, or that I am a thing that is incomplete and dependent, then there arises in me a clear and distinct idea of a being who is independent and complete, that is, an idea of God. And from the mere fact that there is such an idea within me, or that I who possess this idea exist, I clearly infer that God also exists, and that every single moment of my entire existence depends on him. So clear is this conclusion that I am confident that the human intellect cannot know anything that is more evident or more certain. And now, from this contemplation of the true God, in whom all the treasures of wisdom and the sciences lie hidden, I think I can see a way forward to the knowledge of other things.
나는 이렇게 요 며칠 정신을 감각에서 떼어놓는 데 익숙해졌고, 또 물체적 사물들에 대해 참되게 지각되는 것이 아주 적다는 것을 그리고 인간 정신에 대해서는 훨씬 많은 것이, 신에 대해서는 훨씬 더 많은 것이 인식된다는 것을 매우 주의 깊게 관찰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아무 어려움 없이 사유를 상상될 수 있는 것에서 순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으로, 모든 물질에서 분리된 것으로 돌릴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인간 정신에 대해, 그것이 길이, 넓이 및 깊이로 연장된 것도, 물체적인 다른 어떤 것을 가지는 것도 아닌 사유하는 것인 한에서, 나는 어떠한 물체적 사물의 관념보다 훨씬 더 판명한 관념을 갖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의심한다는 사실, 즉 나는 불완전하고 의존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주의할 때, 비의존적이고 완전한 존재자, 다시 말해 신에 대한 아주 명석하고 판명한 관념이 나에게 나타난다. 그리고 이러한 관념이 내 안에 있다는 사실, 즉 그 관념을 가지고 있는 내가 현존한다는 이 한 가지 사실로부터 신 또한 현존한다는 것, 그리고 내 현존 전체가 매 순간 신에 의존한다는 것을 아주 명백하게 결론짓는다. 그래서 나는 이보다 더 명증하게 이보다 더 확실하게 인간 지력에 의해 인식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믿음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지금, 지식과 지혜의 모든 보물이 숨겨져 있는 참된 신에 대한 이 관조로부터 그 밖의 것들에 대한 인식에 이르는 어떤 길을 보고 있는 것 같다.
To begin with, I recognize that it is impossible that God should ever deceive me. For in every case of trickery or deception some imperfection is to be found; and although the ability to deceive appears to be an indication of cleverness or power, the will to deceive is undoubtedly evidence of malice or weakness, and so cannot apply to God.
우선, 실로 나는 신이 나를 언제고 속이는 일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한다. 모든 속임수나 기만 안에는 어떤 불완전성이 발견되니 말이다. 그리고 속일 수 있다는 것이 예리함이나 능력의 어떤 방증으로 보인다고 해도, 속이기를 원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악의나 무능을 증시하는 것이고, 따라서 그것은 신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Next, I know by experience that there is in me a faculty of judgement which, like everything else which is in me, I certainly received from God. 54 And since God does not wish to deceive me, he surely did not give me the kind of faculty which would ever enable me to go wrong while using it correctly.
다음으로, 나는 내 안에 있는 나머지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신에게서 받은 것이 확실한 어떤 판단능력 232 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경험한다. 그리고 신은 나를 속이기를 원하지 않으므로, 그는 그 능력을, 내가 그것을 제대로 사용하는 동안, 언제고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그러한 것으로 주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There would be no further doubt on this issue were it not that what I have just said appears to imply that I am incapable of ever going wrong. For if everything that is in me comes from God, and he did not endow me with a faculty for making mistakes, it appears that I can never go wrong. And certainly, so long as I think only of God, and turn my whole attention to him, I can find no cause of error or falsity. But when I turn back to myself, I know by experience that I am prone to countless errors. On looking for the cause of these errors, I find that I possess not only a real and positive idea of God, or a being who is supremely perfect, but also what may be described as a negative idea of nothingness, or of that which is farthest removed from all perfection. I realize that I am, as it were, something intermediate between God and nothingness, or between supreme being and non-being: my nature is such that in so far as I was created by the supreme being, there is nothing in me to enable me to go wrong or lead me astray; but in so far as I participate in nothingness or non-being, that is, in so far as I am not myself the supreme being and am lacking in countless respects, it is no wonder that I make mistakes. I understand, then, that error as such is not something real which depends on God, but merely a defect. Hence my going wrong does not require me to have a faculty specially bestowed on me by God; it simply happens as a result of the fact that the faculty of true judgement which I have from God is in my case not infinite.
이 점에 관해서는, 거기서부터 그러므로 나는 결코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것이 따라 귀결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않는다면, 어떠한 의심도 남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내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 신으로부터 얻는다면, 그리고 신이 나에게 오류를 범하는 어떠한 능력도 주지 않았다면, 내가 언제고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연, 내가 신에 대해서만 사유하고 신에 완전히 몰입해 있는 동안, 나는 오류나 거짓의 어떠한 원인도 간파하지 못한다. 그러나 잠시 후 나에게 돌아오면, 나는 내가 무수한 오류에 노출되어 있음을 경험한다. 내가 그 원인을 탐구하면서 깨닫는 것은, 신 즉 최고 완전한 존재자에 대한 실재적이고 적극적 관념뿐만 아니라, 또한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무 즉 모든 완전성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에 대한 일종의 소극적 관념도 나에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또 나는 신과 무 사이의, 즉 최고 존재자와 비존재자 사이의 중간자 상태로 있으므로, 내가 최고 존재자에 의해 창조된 것인 한, 나를 속이거나 오류로 이끄는 것은 내 안에 아무것도 없기는 하지만, 그러나 또한 어떤 식으로 무 즉 비존재자에 참여하는 한, 다시 말해 나 자신이 최고 존재자가 아니고 거의 모든 것이 나에게 빠져 있는 한, 내가 속는다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류란, 그것이 오류인 한에서, 신에 의존하는 실재적인 어떤 것이 아니라 단지 결함임을 확실히 이해한다. 그러므로 오류를 범하기 위해 이 목적으로 신에 의해 부여된 어떤 능력이 나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신으로부터 얻는 참을 판단하는 능력이 내 안에서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로부터 내가 오류를 범하는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But this is still not entirely satisfactory. For error is not a pure negation,' but rather a privation or lack of some knowledge which somehow should be in me. And when I concentrate on the nature of God, it seems impossible that he should have placed in me a faculty which is not perfect of its kind, or which lacks some perfection which it ought to have. The more skilled the craftsman the more perfect the work produced by him; if this is so, how can anything produced by the supreme creator of all things not be complete and perfect in all respects? There is, moreover, no doubt that God could have given me a nature such that I was never mistaken; again, there is no doubt that he always wills what is best. Is it then better that I should make mistakes than that I should not do so?
그렇기는 하지만 이것도 아직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은데, 왜냐하면 오류는 순수한 부정이 아니라 결여, 즉 어떤 식으로 내 안에 있어야만 했을 어떤 인식의 부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내가 신의 본성에 주목한다면, 신이 그 유에서 완전하지 않은 어떤 능력, 즉 그것에 있어야 할 어떤 완전성이 결여된 어떤 능력을 내 안에 놓아두었다는 것은 가능한 일로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만일 장인이 능숙하면 할수록 그에게서 비롯되는 작품들이 그만큼 더 완전하다면, 이 만물의 최고 창설자가 모든 점에서 완성되지 않은 어떤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인가? 그리고 신은 내가 결코 속지 않게끔 나를 창조할 수 있었을 것임이 의심스럽지 않으며, 신은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을 원한다는 것 또한 의심스럽지 않다. 그러면 내가 속는 것이 속지 않는 것보다 더 낫다는 것인가?
As I reflect on these matters more attentively, it occurs to me first of all that it is no cause for surprise if I do not understand the reasons for some of God's actions; and there is no call to doubt his existence if I happen to find that there are other instances where I do not grasp why or how certain things were made by him. For since I now know that my own nature is very weak and limited, whereas the nature of God is immense, incomprehensible and infinite, I also know without more ado that he is capable of countless things whose causes are beyond my knowledge. And for this reason alone I consider the customary search for final causes to be totally useless in physics; there is considerable rashness in thinking myself capable of investigating the purposes of God.
내가 더욱 주의 깊게 이것들을 곰곰이 재어보는 동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신이 내가 그 근거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것들을 만들었다고 해도 놀라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신이 왜, 또,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내가 파악하지 못하는 다른 어떤 것들이 있음을 경험한다고 해서, 신의 현존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나의 본성은 매우 나약하고 제한되어 있는 반면, 신의 본성은 광대하고 파악 불가하고 무한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고, 그러므로 신은 내가 그 원인을 모르는 무수한 것들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충분히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근거 하나만으로, 흔히들 목적에서 끌어내는 모든 종류의 원인들은 자연학적 사물들에서 전혀 소용없다고 여기기에 충분하다.239 왜냐하면 내가 신의 목적을 탐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무모하기 때문이다.
It also occurs to me that whenever we are inquiring whether the works of God are perfect, we ought to look at the whole universe, not just at one created thing on its own. For what would perhaps rightly appear very imperfect if it existed on its own is quite perfect when its function as 56 a part of the universe is considered. It is true that, since my decision to doubt everything, it is so far only myself and God whose existence I have been able to know with certainty; but after considering the immense power of God, I cannot deny that many other things have been made by him, or at least could have been made, and hence that I may have a place in the universal scheme of things.
또한 떠오르는 것은, 우리가 신의 작품이 완전한지를 물을 때마다, 어떤 하나의 피조물을 따로 분리해서 고찰해서는 안 되고, 우주 만물 전체를 고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홀로 있다면 매우 불완전하게 보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도, 그것이 세계 안에서 부분의 지위를 가지는 한에서는 매우 완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모든 것에 대해 의심하려고 한 이래 지금까지 확실히 인식한 것은 나는 현존한다는것과 신은 현존한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그렇지만 나는 신의 광대한 힘을 깨달은 이래 신이 다른 많은 것을 만들었거나 아니면 적어도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내가 우주 만물 안에서 부분의 지위를 점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Next, when I look more closely at myself and inquire into the nature of my errors (for these are the only evidence of some imperfection in me), I notice that they depend on two concurrent causes, namely on the faculty of knowledge which is in me, and on the faculty of choice or freedom of the will; that is, they depend on both the intellect and the will simultaneously. Now all that the intellect does is to enable me to perceive' the ideas which are subjects for possible judgements; and when regarded strictly in this light, it turns out to contain no error in the proper sense of that term. For although countless things may exist without there being any corresponding ideas in me, it should not, strictly speaking, be said that I am deprived of these ideas, 2 but merely that I lack them, in a negative sense. This is because I cannot produce any reason to prove that God ought to have given me a greater faculty of knowledge than he did; and no matter how skilled I understand a craftsman to be, this does not make me think he ought to have put into every one of his works all the perfections which he is able to put into some of them. Besides, I cannot complain that the will or freedom of choice which I received from God is not sufficiently extensive or perfect, since I know by experience that it is not restricted in any way. Indeed, I think it is very noteworthy that there 57 is nothing else in me which is so perfect and so great that the possibility of a further increase in its perfection or greatness is beyond my under standing. If, for example, I consider the faculty of understanding, I immediately recognize that in my case it is extremely slight and very finite, and I at once form the idea of an understanding which is much greater — indeed supremely great and infinite; and from the very fact that I can form an idea of it, I perceive that it belongs to the nature of God. Similarly, if I examine the faculties of memory or imagination, or any others, I discover that in my case each one of these faculties is weak and limited, while in the case of God it is immeasurable. It is only the will, or freedom of choice, which I experience within me to be so great that the idea of any greater faculty is beyond my grasp; so much so that it is above all in virtue of the will that I understand myself to bear in some way the image and likeness of God. For although God's will is incompa rably greater than mine, both in virtue of the knowledge and power that accompany it and make it more firm and efficacious, and also in virtue of its object, in that it ranges over a greater number of items, nevertheless it does not seem any greater than mine when considered as will in the essential and strict sense. This is because the will simply consists in our ability to do or not do something (that is, to affirm or deny, to pursue or avoid); or rather, it consists simply in the fact that when the intellect puts something forward for affirmation or denial or for pursuit or avoidance, our inclinations are such that we do not feel we are determined by any external force. In order to be free, there is no need for me to be inclined both ways; on the contrary, the more I incline in one 58 direction — either because I clearly understand that reasons of truth and goodness point that way, or because of a divinely produced disposition of my inmost thoughts — the freer is my choice. Neither divine grace nor natural knowledge ever diminishes freedom; on the contrary, they increase and strengthen it. But the indifference I feel when there is no reason pushing me in one direction rather than another is the lowest grade of freedom; it is evidence not of any perfection of freedom, but rather of a defect in knowledge or a kind of negation. For if I always saw clearly what was true and good, I should never have to deliberate about the right judgement or choice; in that case, although I should be wholly free, it would be impossible for me ever to be in a state of indifference.
다음으로, 나 자신에게 더 가까이 가면서, 그리고 나의 오류들(이것들만이 내 안의 어떤 불완전성을 폭로하는)이 도대체 어떠한 것인지를 탐구하면서, 나는 그것들이 동시에 협력하는 두 원인에, 곧 내 안에 있는 인식능력과 선택능력 즉 의지의 자유에, 다시 말해 지성과 의지에 의존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왜냐하면 나는 지성만으로는 단지 내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관념들을 지각하고, 지성이 이렇게 정확히 고찰될 경우 본래 의미에서 어떠한 오류도 지성에서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로, 아마도 내 안에 그 관념들이 없는 사물들이 무수히 현존하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본래 그 관념들을 결여하고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되며, 부정적으로만 내가 그 관념들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실 나는 신이 나에게 준 것보다 더 큰 인식능력을 주었어야 했다는 것을 입증해줄 어떠한 근거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고, 또 내가 장인이 능숙하다는 것을 이해한다고 해도,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자기 작품 몇몇에 넣어둘 수 있는 모든 완전성을 작품 각각에 넣어두었어야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신이 나에게 충분히 넓고 완전한 의지, 즉 의지의 자유를 주지 않았다고 불평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실제로 의지가 어떠한 한계에도 갇혀 있지 않음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우 주목할 만한 것으로 보이는 것은, 여전히 더 완전할 수 있다는 것, 즉 여전히 더 클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이해하지 못할 만큼 완전하거나 큰 것은 의지 외에 다른 아무것도 내 안에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내가, 예를 들어, 이해능력을 고찰한다면, 나는 즉시 그것이 내 안에서 아주 작고 매우 유한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동시에 그것보다 훨씬 더 큰, 아니 가장 크고 무한한 다른 어떤 이해능력의 관념을 형성하며, 또 내가 그것의 관념을 형성할 수 있다는 바로 이 사실로부터 나는 이 이해능력이 신의 본성에 속한다는 것을 지각하기 때문이다. 같은 방식으로, 만일 내가 기억능력이나 상상능력이나 임의의 다른 능력을 조사한다면, 나는 내 안에서는 빈약하고 국한되는 것으로, 신 안에서는 광대한 것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을 전혀 발견하지 못한다. 내가 내 안에서 더 큰 어떤 것에 대한 관념을 포착하지 못할 만큼 큰 것으로 경험하는 것은 의지, 즉 의지의 자유뿐이다. 그래서 내가 신의 어떤 형상과 모습을 닮았다고 이해하는 근거도 주로 의지이다. 왜냐하면, 물론 의지는 신 안에 있는 것이 내 안에 있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데, 이는 한편으로 이 의지와 연결되고 이것을 더욱 확고하고 더욱 유효하게 만드는 인식과 힘의 관점에서 크고, 다른 한편으로 이 의지가 더욱 많은 것으로 확장되므로 그 대상의 관점에서도 크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 형상적으로 그리고 정확히 고찰될 경우, 신 안에 있는 의지가 더 크게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의지는 오직 우리가 동일한 것을 행하거나 행하지 않을 (다시 말해, 긍정하거나 부정할, 추구하거나 기피할) 수 있다는 것에만, 더 정확히 말해 지성에 의해 우리에게 제시되는것을 우리가 긍정하거나 부정할 때, 즉 추구하거나 기피할 때, 우리가 어떠한 외적 힘에 의해서도 그렇게 하도록 결정되지 않는다고 느끼면서 이끌린다는 것에만 존립하기 때문이다. 실로, 내가 양쪽 모두로 이끌릴 수 있는 것이 내가 자유롭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질수록, 나는 그만큼 더 자유롭게 그쪽을 선택한다. 내가 그쪽에서 참과 선의 근거를 명증하게 이해하기 때문이든, 혹은 신이 내 사유의 심부를 그렇게 배치하기 때문이든 말이다. 그리고 분명, 신의 은총도 자연적 인식도 자유를 결코 감소시키지 않으며, 오히려 자유를 증대하고 강화한다. 반면 이쪽보다는 저쪽으로 나를 더 몰아가는 근거가 아무것도 없을 때 내가 경험하는 미결정성은 자유의 가장 낮은 등급이고, 그것은 자유 안에 어떠한 완전성도 증시하지 않으며, 오히려 단지 인식 안에 결함, 즉 어떤 부정을 증시한다. 왜냐하면 만일 내가 항상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선인지를 명석하게 본다면, 나는 판단해야 하는 것에 대해 그리고 선택해야 하는 것에 대해 결코 주저하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내가 전적으로 자유롭다고 해도, 나는 결코 미결정의 상태에 있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From these considerations I perceive that the power of willing which I received from God is not, when considered in itself, the cause of my mistakes; for it is both extremely ample and also perfect of its kind. Nor is my power of understanding to blame; for since my understanding comes from God, everything that I understand I undoubtedly understand correctly, and any error here is impossible. So what then is the source of my mistakes? It must be simply this: the scope of the will is wider than that of the intellect; but instead of restricting it within the same limits, I extend its use to matters which I do not understand. Since the will is indifferent in such cases, it easily turns aside from what is true and good, and this is the source of my error and sin.
이로부터 나는 내가 신으로부터 갖고 있는 의지의 힘은, 그 자체로 고찰될 경우, 내 오류의 원인이 아님을 깨닫는데, 이는 그것이 극히 넓고 그 유에서 완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해의 힘 또한 그 원인이 아님을 깨닫는데, 이는 그 힘은 내가 이해하기 위해 신으로부터 갖고 있을 것이므로, 내가 이해하는 것이 무엇이든, 의심의 여지 없이 나는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며, 내가 그것에서 속는 일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 오류들은 어디에서 생기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한 가지 사실에서, 즉 의지는 지성보다 훨씬 넓은 범위에 이르므로, 내가 의지를 지성과 같은 한계 내에 가두지 않고,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까지 이른다는 사실에서 생긴다. 이러한 것에 대해 의지는 미결정의 상태에 있으므로, 참과 선에서 쉽게 벗어나고, 그래서 나는 속고 과오를 범하는 것이다.
For example, during these past few days I have been asking whether anything in the world. exists, and I have realized that from the very fact of my raising this question it follows quite evidently that I exist. I could not but judge that something which I understood so clearly was true; but this was not because I was compelled so to judge by any external force, but 59 because a great light in the intellect was followed by a great inclination in the will, and thus the spontaneity and freedom of my belief was all the greater in proportion to my lack of indifference. But now, besides the knowledge that I exist, in so far as I am a thinking thing, an idea of corporeal nature comes into my mind; and I happen to be in doubt as to whether the thinking nature which is in me, or rather which I am, is distinct from this corporeal nature or identical with it. I am making the further supposition that my intellect has not yet come upon any persuasive reason in favour of one alternative rather than the other. This obviously implies that I am indifferent as to whether I should assert or deny either alternative, or indeed refrain from making any judgement on the matter.
예를 들어, 내가 요 며칠 어떤 것이 세계 안에 현존하는지를 조사하면서, 그리고 내가 이것을 조사한다는 바로 이 사실로부터 나는 현존한다는 것이 명증하게 따라 나온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는 분명 내가 그렇게 명석하게 이해한 것은 참이라고 판단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이는 내가 어떤 외적인 힘에 의해 그렇게 하도록 강제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성 안의 커다란 빛에 의해서 의지 안에 커다란 경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내가 그것에 대해 미결정의 상태에 덜 있었을수록, 나는 그만큼 더 자발적으로 그리고 더 자유롭게 그것을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내가 사유하는 어떤 것인 한, 현존한다는 것을 아는 것만 아니라, 그 외에도 또한 물체적 본성에 대한 어떤 관념이 나에게 나타나며, 내 안에 있는, 더 정확히 말해 나 자신인 사유하는 본성이 이 물체적 본성과 다른 것인지, 아니면 그 둘이 동일한 것인지를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하나를 다른 하나보다 나에게 더 설득하는 어떠한 근거도 아직 내 지성에 떠오르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바로 이 사실로부터 확실히, 나는 둘 중 어느 하나를 긍정하거나 부정하는 것에 대해, 혹은 심지어 이 사안에 관해 아예 판단을 내리지 않는 것에 대해 미결정의 상태에 있다...
What is more, this indifference does not merely apply to cases where the intellect is wholly ignorant, but extends in general to every case where the intellect does not have sufficiently clear knowledge at the time when the will deliberates. For although probable conjectures may pull me in one direction, the mere knowledge that they are simply conjectures, and not certain and indubitable reasons, is itself quite enough to push my assent the other way. My experience in the last few days confirms this: the mere fact that I found that all my previous beliefs were in some sense open to doubt was enough to turn my absolutely confident belief in their truth into the supposition that they were wholly false.
게다가 이 미결정성은, 지성이 아무런 인식도 갖지 못하는 것만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의지가 주저하는 그 시점에 지성이 충분히 명료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모든 것에까지 확장된다. 왜냐하면 개연적 추측들이 아무리 나를 어느 한쪽으로 끌어당긴다고 해도, 그것은 그저 추측들일 뿐 확실하고 의심할 수 없는 근거들이 아니라고 아는 것만으로도 내 동의를 반대쪽으로 몰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257 이것은 내가 요 며칠 충분히 경험했던 것이다. 내가 예전에 극히 참되다고 믿었던 모든 것이, 어떤 식으로 의심될 수 있음을 포착했다는 이 한 가지 이유만으로, 전적으로 거짓이라고 가정했을 때 말이다.
If, however, I simply refrain from making a judgement in cases where I do not perceive the truth with sufficient clarity and distinctness, then it is clear that I am behaving correctly and avoiding error. But if in such cases I either affirm or deny, then I am not using my free will correctly. If I go for the alternative which is false, then obviously I shall be in error; if I take the other side, then it is by pure chance that I arrive at the truth, and I shall still be at fault since it is clear by the natural light that the perception of the intellect should always precede the determination of the will. In this incorrect use of free will may be found the privation which constitutes the essence of error. The privation, I say, lies in the operation of the will in so far as it proceeds from me, but not in the faculty of will which I received from God, nor even in its operation, in so far as it depends on him.
그런데, 내가 무엇이 참인지를 충분히 명석판명하게 지각하지 않을 때, 내가 판단 내리기를 삼간다면, 올바로 행위하고 속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내가 긍정하거나 부정한다면, 그때 나는 의지의 자유를 올바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만일 내가 거짓 쪽으로 향한다면, 나는 오로지 속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내가 다른 쪽을 붙잡는다면, 나는 진리와 우연히 마주치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오를 면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지성의 지각은 언제나 의지의 결정보다 앞서야 한다는 것이 자연의 빛에 의해 명백하기 때문이다.258 그리고 의지의 자유259의 이 올바르지 않은 사용에 오류의 형상을 구성하는 결여가 내재한다. 말하건대, 그 결여는 작용 자체에, 이것이 나로부터 유래하는 한, 내재하고, 내가 신으로부터 받은 능력 안에도 신에 의존하는 한에서의 작용에도 내재하지 않는다.
And I have no cause for complaint on the grounds that the power of understanding or the natural light which God gave me is no greater than it is; for it is in the nature of a finite intellect to lack understanding of many things, and it is in the nature of a created intellect to be finite. Indeed, I have reason to give thanks to him who has never owed me anything for the great bounty that he has shown me, rather than thinking myself deprived or robbed of any gifts he did not bestow.
그리고 사실 신이 나에게 준 것보다 더 큰 이해의 힘, 혹은 더 큰 자연의 빛을 주지 않았다고 불평할 이유도 전혀 없다. 왜냐하면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유한한 지성의 본질에 속하고, 유한하다는 것은 창조된 지성의 본질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에게 그 무엇도 빚진 적이 없는 신이 베푼 것에 감사할 것이지, 그가 주지 않은 것들이 신에 의해 결여되어 있다고, 혹은 그가 그것들을 내게서 빼앗아갔다고 생각할 것은 아니다.
Nor do I have any cause for complaint on the grounds that God gave me a will which extends more widely than my intellect. For since the will consists simply of one thing which is, as it were, indivisible, it seems that its nature rules out the possibility of anything being taken away from it. And surely, the more widely my will extends, then the greater thanks I owe to him who gave it to me.
또한 신이 지성의 범위보다 범위가 더 넓은 의지를 주었다고 불평할 이유도 없다. 왜냐하면 의지는 단지 하나의 것, 이를테면 불가분의 것이므로, 그 본성은 자신에게서 어떤 것이 제거될 수 있음을 허용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고, 또 의지가 광대할수록 그 증여자에게 그만큼 더 크게 감사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Finally, I must not complain that the forming of those acts of will or judgements in which I go wrong happens with God's concurrence. For in so far as these acts depend on God, they are wholly true and good; and my ability to perform them means that there is in a sense more perfection in me than would be the case if I lacked this ability. As for the privation 61 involved — which is all that the essential definition of falsity and wrong consists in — this does not in any way require the concurrence of God, since it is not a thing; indeed, when it is referred to God as its cause, it should be called not a privation but simply a negation.' For it is surely no imperfection in God that he has given me the freedom to assent or not to assent in those cases where he did not endow my intellect with a clear and distinct perception; but it is undoubtedly an imperfection in me to misuse that freedom and make judgements about matters which I do not fully understand. I can see, however, that God could easily have brought it about that without losing my freedom, and despite the limitations in my knowledge, I should nonetheless never make a mistake. He could, for example, have endowed my intellect with a clear and distinct perception of everything about which I was ever likely to deliberate; or he could simply have impressed it unforgettably on my memory that I should never make a judgement about anything which I did not clearly and distinctly understand. Had God made me this way, then I can easily understand that, considered as a totality,' I would have been more perfect than I am now. But I cannot therefore deny that there may in some way be more perfection in the universe as a whole because some of its parts are not immune from error, while others are immune, than there would be if all the parts were exactly alike. And I have no right to complain that the role God wished me to undertake in the world is not the principal one or the most perfect of all.
마지막으로 내가 속임을 당하는 의지의 활동들, 다시 말해 판단들을 일으키는 일에 신이 나와 협력한다고 한탄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이 활동들은, 신에 의존하는 한, 전적으로 참되고 선하며, 내가 그것들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일으킬 수 없는 경우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내 안에서 더 큰 완전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여─오직 이것에만 거짓과 과오의 형상적 근거가 존립하는─는 신의 협력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데, 이는 결여는 사물이 아니기 때문이고, 또 만일 신을 그 원인으로 관련짓는다면, 그것은 결여가 아니라 그저 부정으로 불러야 하기 때문이다. 실로, 신이 나에게 내 지성 안에 명석판명한 지각을 놓아두지 않은 것에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는 자유를 주었다는 것은 분명 신 안에서 불완전성이 전혀 아니며, 오히려 내가 이 자유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것, 그리고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것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내 안에서 불완전성이니 말이다. 그렇지만 내가 자유롭고 유한한 인식에 머물러 있을지라도, 내가 결코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하는 일은신에게는 쉬웠을 것으로 보인다. 즉, 만일 신이 내가 언젠가 숙고하게 될 모든 것에 대한 명석판명한 지각을 내 지성 안에 놓아두었거나, 혹은 내가 명석판명하게 이해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결코 잊을 수 없을 만큼 기억에 확고히 각인해두기만 했어도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신이 나를 그러한 것으로 만들었다면, 내가 어떤 전체의 지위를 가지는 한, 나는 지금의 나보다 더 완전했을 것임을 쉽게 이해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나는, 우주의 어떤 부분들은 오류를 면하지 못하는 반면 다른 부분들은 면하는 경우가, 그 모든 부분이 전적으로 유사한 경우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주 전체 안에서 더 큰 완전성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신은 내가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주요하고 가장 완전한 역할이 아닌 것을 세계에서 맡기를 원했다고 불평할 권리가 나에게는 전혀 없다.
What is more, even if I have no power to avoid error in the first way just mentioned, which requires a clear perception of everything I have to deliberate on, I can avoid error in the second way, which depends merely 6z on my remembering to withhold judgement on any occasion when the truth of the matter is not clear. Admittedly, I am aware of a certain weakness in me, in that I am unable to keep my attention fixed on one and the same item of knowledge at all times; but by attentive and repeated meditation I am nevertheless able to make myself remember it as often as the need arises, and thus get into the habit of avoiding error.
그리고 그 외에도, 내가 비록 숙고해야 하는 모든 것에 대한 명증적 지각에 달려 있는 첫 번째 방식으로 오류를 피할 수 없다고 해도, 그렇지만 나는 두 번째 방식으로, 즉 사물의 진리가 투명치 않을 때마다 264 판단 내리기를 삼가야 함을 기억한다는 것, 오직 이 사실에만 달려 있는 방식으로 오류를 피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줄곧 하나의 동일한 인식에 박혀 붙어 있을 수 없는 나약함을 내 안에서 경험한다고 해도, 그렇지만 나는 아주 주의 깊고 거듭 반복되는 성찰을 통해 필요할 때마다 저 사실 265을 상기하게끔 할 수 있고, 그리하여 오류를 범하지 않는 어떤 습관을 획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It is here that man's greatest and most important perfection is to be found, and I therefore think that today's meditation, involving an investigation into the cause of error and falsity, has been very profit able. The cause of error must surely be the one I have explained; for if, whenever I have to make a judgement, I restrain my will so that it extends to what the intellect clearly and distinctly reveals, and no further, then it is quite impossible for me to go wrong. This is because every clear and distinct perception is undoubtedly something,' and hence cannot come from nothing, but must necessarily have God for its author. Its author, I say, is God, who is supremely perfect, and who cannot be a deceiver on pain of contradiction; hence the perception is undoubtedly true. So today I have learned not only what precautions to take to avoid ever going wrong, but also what to do to arrive at the truth. For I shall unquestionably reach the truth, if only I give sufficient attention to all the things which I perfectly understand, and separate these from all the other cases where my apprehension is more confused and obscure. And this is just what I shall take good care to do from now on.
바로 이것에 인간의 가장 크고 주요한 완전성이 있으므로, 나는 오늘의 성찰에, 내가 오류와 거짓의 원인을 찾아낸 만큼, 적지 않은 이득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설명한 것과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없음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내가 판단을 내리면서 의지를 지성이 명석판명하게 현시하는 것에만 이르도록 가둘 때마다 오류를 범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데, 이는 모든 명석판명한 지각은 의심의 여지 없이 어떤 것이고, 따라서 무로부터 나올 수 없기 때문이며, 오히려 반드시 신, 말하건대, 기만자와 상충되는 저 최고 완전한 신을 작자로 가지고, 따라서 그 지각은 의심의 여지 없이 참이기 때문이다.267 그리고 나는 오늘 내가 결코 속지 않기 위해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를 배웠을 뿐 아니라, 동시에 또한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배웠다. 왜냐하면 내가 완전하게 이해하는 모든 것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기만 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혼동되고 모호하게 포착하는 나머지 것에서 분리하기만 한다면, 나는 틀림없이 진리에 도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부터 바로 이것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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