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영 (2012). 탈북-결혼이주-이주노동의 교차적 경험과 정체성의 변위 : 북한 여성의 생애사 분석을 중심으로. 현대사회와 다문화, 2(1), 1-45.
Hee-Young Yi (2012). Intersectional Experiences of Border Crossing - Marriage Migration-Migrant Work and the Transposition of Identity: Focusing on the Analysis of a North Korean Woman’s Life Histories. Contemparary Society and Multiculture, 2(1), 1-45.
1. 매매혼의 경험과 가난하고 불쌍한 한족 남자들
“그저 무작정하고 강을 건너서 갔으니까 그 어떤 집이라고 들어갔는데 뭐 그 집에서 결국은 삼촌 집을 보내준다 하고- 그때 생각해 보면 삼촌 집을 보 내준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며칠을 그러구 있으니까 옷도 갈아 입히고 무슨 뭐 하더니 어떤 집에 데려다 준다고 우리 삼촌 집에 데려다 준 다고 하며 길을 떠나가지고는 그냥 결국은 팔렸죠, 그때부터는- 팔려가지고 뭐 지금 생각해보면 장춘이라는 거 같애요. 장춘이라는 곳으로 팔려가서 제 가 그쪽에서 하도 북한에서 공부를 열심히 한 덕에 북한은 한문을 많이 배워 줘요(…)‘어, 내가 어떤 데 왔구나.’ 하는 걸 내가 알아가지고 이렇게 오던 길 을 기억해가지고 다행히 또 거기에서도 하룻밤 만에 또 도망을 쳤어요. 그래 가지고 도망을 쳐가지고 올랐다가는 또 뭐 잡혀가지고 아무튼 한 서너 번은 잡혔다 또 살리고 이랬던 거 같애요.”(김정순 구술녹취록, 2010/13) [18]
사례 분석에 의하면 1998년 구술자는 브로커의 도움 없이 주변 사람들로 부터 들은 정보를 가지고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국경 건 너편에 도착하여 무작정 들어갔던 중국 사람의 집에 기숙하다가 결국은 많 은 북한 여성들의 사례와 같이 매매혼을 당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미 두만 강을 불법으로 건너오는 북한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국경 근처에는 도착하 는 북한 사람들을 연계하는 브로커 조직이 형성되었고, 여성들의 경우 대부분 인근 한족 남성들에게 팔려가거나, 혹은 노인집안의 노동력으로 팔려가 기도 하였다. [18-19]
“나는 중국에 살면서 솔직히 중국에 그 있던 사람들한테는 솔직히 미안할 정도예요. 내 때문에 돈을 팔아서 데려갔다가 내가 또 달아나고 그래가지고 돈만 팔고- 솔직히 그 갔던 사람들은 잘사는 사람 없었거든요. 다 시골이고 농촌에- 농사짓고 사는 사람들인데 알아보면 그 팔린 사람들 나를 얼마나 샀나 하고 이렇게 자기네 돈을 이렇게 얼마에 샀다하고 말 하거든요. 이렇게 샀다고 하면 8천원이나 됐겠죠. 8천원이나 될지 만원이나 이렇게 샀다고 하 거든요. 그 사람들 생각해보면 지금 불쌍하죠. 지금 내가 그 사람들한테 한 번이래도 당했으면 괘씸하겠는데 너무 자기네한테 진짜 자기 사람처럼 받아 들여가지고 키워가지고 솔직히 내 마음을 마음을 열어 열자고 많이 노력을 했는데 결국은 달아났으니까 미안하죠. 내 마음이 많이 미안하고 그래요. 중 국에서 살던 일은 내가 당하는 게 없어가지고 솔직히 그 사람들한테는 미안 하죠. 미안한 마음뿐이에요.”(김정순 구술녹취록, 2010/29) [19-20]
위의 텍스트에서 구술자는 1998년 도강하여 중국의 이곳저곳으로 팔려 다 니던 상황을 사후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사례분석의 과정에서 특징적인 것 은 구술자가 돈을 지불하고 자신을 샀던 중국인들을 ‘불쌍한 사람들’로 바라 보고 있는 점이다. 즉 구술자는 신체의 자유가 구속된 채 팔리는 육체가 되 었던 자신이 아니라, 오히려 중국 변방의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가난한 사람 들이 모처럼 ‘여성’을 소유하기 위해 돈을 지불했으나 결국 돈과 여성을 모 두 잃어야 했던 상황에 감정이입을 하고 있다. 나아가 비록 돈을 주고 자신 을 샀으나 거칠게 대하지 않고 자신이 마음을 열기를 기다려주었던 그들에 대한 미안함을 표함으로써, 돈 없고 힘없는 절대 다수의 농민들에 대한 연민 을 드러내고 있다. [20]
2. 조선족 양딸로 한국남성과 결혼하다
생애사적 자료에 대한 분석에 의하면 구술자는 도강 후 1년 정도가 지날 무렵 조선족 남성에게 매매되었다. 그런데 한동안 잘 먹여주고 대우하던 조 선족 남성은 구술자에게 흔치 않은 제안을 하였다고 한다. [20]
구술자료에 의하면 조선족은 아들 둘을 둔 50대 중반의 남성으로 매매혼 이나 노동인력을 소유할 목적으로 돈을 지불한 것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 다. 그 남성은 20대 초반의 난민이었던 구술자를 집으로 데려와 한동안 잘 대우한 후 양녀로 입양하였다. 즉 구술자는 조선족 가족의 양딸이 되어 합법 적인 호구를 갖게 된 것이다. 아사의 위험에서 벗어나 조선족의 양딸이 된 구술자에게 조선족 남성이 제안한 것은 ‘한국으로 가는 것’이었다. 처음 구 술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위해 많은 돈을 지불하고 양딸로 삼은 후 남한으 로 보내려고 하는 양아버지의 의도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적대 국인 남한으로 가서 역적이 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 다시 조선족 가족으로부터 탈출하여 이곳저곳을 유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사회에서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갈 곳이 없었던 구술자는 조선족 가족에게 돌아가 결국 남한으로 가는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21-22]
일제 점령 시기 중국으로 이주하여 중국 동북 3성(길림성, 흑룡강성, 요령 성)에 정착했던 조선인들은 대략 190만 명에 이른다. 이들은 중국과 한반도 의 정치적 변화 속에서 북한, 한국, 일본, 미국, 중국연해, 내륙의 대도시 등 으로 이주를 거듭하였다. 이들이 한국사회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이다. 1980년 중국의 개혁개방과 1992년 한·중수교, 국제결혼의 급증을 통해 현재 약 50만 명의 조선족이 한국사회에서 살고 있 다(한겨레, 2011.11.04). 특히 88올림픽을 통해 경제적으로 성장한 한국사회 를 알게 된 조선족들은 일자리를 찾아 한국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중국 에 비해 임금이 몇 배 혹은 몇 십 배가 높은 한국의 시장이 큰 경제적 유인 조건이 되었으나 한국으로 진출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결혼은 국제 시장의 일반적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국으로 진출할 수 있는 ‘좋은 열쇠’가 되었다(벡-게른스하임, 2010: 149; 전신자, 2007: 60). 즉 조선족 여성이 한 국 남성과 국제결혼을 할 경우 다른 비용을 들이지 않고 중국에 거주하는 부 모와 친척을 초청할 수 있다는 점이 한중 결혼 기획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던 것이다. [22]
이와 같은 맥락에서 구술자를 양딸로 삼은 조선족 아버지는 구술자에게 한국으로 갈 것을 제안했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한중 국제결혼 중개업체를 통해 한국 남자와 선을 보고 결혼을 하여 한국에 간 후 자신들을 초청하도 록 요청한 것이다. 구술자는 돈을 받아서 북한으로 돌아가기 위해 조선족 양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또한 위의 텍스트에서 구술자는 양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인 다른 이유가 “어디 뭐 팔려 다니기도 싫어”서 라고 언급하 고 있다. 즉 자신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더 이상 그곳에 머물지 못 하고 다른 곳으로 팔리게 되어 어떤 삶의 처지에 놓이게 될지 알 수 없는 불 법체류 난민의 위치가 결국 적대국인 남한으로 가는 ‘위험’을 받아들이게 한 것이다. 이러한 선택에는 만일 성공할 경우 큰 돈을 벌어서 북한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구술자는 남 한으로의 중개 결혼을 ‘팔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가족에게 돌아가 기 위한 자신의 ‘선택’으로 해석하고 있다. [22-23]
예. 한국 사람을 만났어요, 제가- 중국에 있으면서 부모님들 어데서 소개 로 뭐 데리고 오셨더라구요. 그래서 한국 분을 만나가지고 그 사람도 뭐 위 장결혼이니까 아마 부모님들한테 돈두 받고 아마 그런 식이었던 거 같애요. 와가지고 뭐 서류를 수속을 하고 하는 걸 다 아버지가 했으니까- 나는 뭐 진 짜 그저 형태만 있으면 됐죠. 딸이다 하고 형태만 있으면 아버지가 다하고 그랬었으니까-(…) 그런데 그 후에는 그 사람하고는 내가 일단 한국에 오고 부모들이 한국에 온 다음에는 아마 계약이 끝나는 거 같애요. 나는 내가 부모들이 얘기하는 게 부모들은 여기에서 여기에 일단 한국에 왔으니까 여기 에서 우리가 하는 일을 이제 너는 신경 쓰지 말고 니가 여기 있다가 돈은 이 미 받았으니까 가고 싶으면 아무 때나 너 마음대로 하라고 이제는 부모들도 나를 버렸고, 그 사람도 이제는 부모들하고 계약이 어떻게 돼있는지 몰라도 그분도 뭐 나를 안 찾더라구요 [23-24]
위의 텍스트 분석에 의하면 이주 목적의 위장결혼과 관련된 세 가지의 계 약관계가 등장한다. 먼저 구술자와 양아버지 사이의 계약이다. 불법체류 식 량난민의 처지인 북한 여성 김정순 씨를 돈을 주고 사서 양딸로 삼은 조선족 양아버지는 중국의 조선족 자치주라고 하는 공간에서 절대적으로 우위의 위 치를 점하고 있다. 양자 사이의 사회, 정치적 위치는 비국민과 국민, 성애화 된 몸으로서의 상품과 상품을 구매한 사람, 양녀와 양아버지라고 하는 위계 속에 놓여있다. 양아버지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다른 대안이 없었 던 구술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남한으로의 위장 결혼을 받아들이는 대신 이 후 중국 돈 2만원이라는 거금을 받기로 하였다. 다음으로 조선족 양아버지 와 한국 남성은 중국과 한국 사이의 초국적 이주의 네트워크 속에서 위장 결 혼의 계약 당사자들이다. 한국 남성의 경우 자신이 속한 한국이라는 출신국 이 갖는 경제적 위치에 의해 조선족 남성보다 유리한 위치를 갖는다. 따라 서 잠깐 결혼에 동의해 주는 대가로 ‘임시 아내’와 일정한 금액의 돈을 받기 로 약속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구술자와 한국 남성 사이의 계약이다. 북한과 남한 사이의 적대관계를 잘 아는 조선족 양아버지가 한국 남성에게 북한 출 신인 구술자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조선족 여성의 신분이 된 구술자와 남한 남성사이의 관계는 한정된 계약 기간 내에서의 부부이다. [24]
한국사회의 모든 권리와 규범에 정통한 한국 남성에 비해 구술자는 조선족 으로 신분을 위장한 채 남한 사회에 이주한 북한여성이라는 이중, 삼중의 위 험 속에서 계약을 성공시켜 돌아가기 위해서는 양아버지와 한국남성의 요구 를 최대한 수용해야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여기서 특히 중요한 점은 이 세 가지의 계약이 작동하는 배경에 북한과 중국 남한이라고 하는 동아시아 3국 사이의 정치적, 경제적 역관계와 함께 젠더권력이 작동한다는 점이다. 식량 난에 처한 북한과 개혁개방의 경제체제로 전환한 중국, 그리고 본격적인 자 본주의 체제를 가동 중인 남한이라고 하는 경제적 위계가 초국적 이주의 네 트워크에서 밀고 당기는(push & pull) 중요한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동시에 생존을 위해 중국으로 월경한 구술자의 경우 ‘젊은 여성’이라고 하는 젠더적 위치에 의해 ‘성애화된 몸’으로 중국을 거쳐 남한 사회로 거래되고 있다. 즉 중국에서 남한으로 이주하기를 원하는 남성노동자들이 남한사회로 입국하 기 위한 중요한 열쇠로 ‘여성거래’라고 하는 고전적인 결혼제도(레비-스트 로스)가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북한 출신의 식량난민인 구술자는 북 한-중국-남한사이의 초국적 이주의 네트워크에서 가장 하위에 위치하고 있다. [25]
3. 북한에서 온 결혼이주여성 혹은 이주노동자
사례 분석에 의하면 구술자는 다수의 중국여성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한국 에 들어와 일을 하면 중국 임금 서너배 이상의 돈을 번다는 사실을 알게 되 었고, 조선족 가족들과 계약 관계를 정리한 후 조선족 여성의 신분으로 한 국 식당에서 열 달 정도 일을 한 것이다. 이 시기 구술자는 형식상 ‘결혼이주 여성’이었으나, 실제 조선족 ‘여성이주노동자’로 생활한 것이다 [26]
구술자의 국제결혼이 조선족 가족에게 노동이주의 열쇠가 되었던 것처럼 구술자 또 한 한국 남성의 부인이라는 ‘안정된 신분’으로 한국 식당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여성들의 경우 결혼이주와 노동이주를 명확히 구 분할 수 없는 경우가 많으며, 생애사적 체험 속에서도 혼재되어 있다. [26]
구술자는 번 돈의 거의 전부와 양아버지로부터 받은 계약금을 가지고 2002년 2월 “그냥” 중국으로 돌아갔다. 즉 조선족 여권을 가진 구술 자가 비행기를 타고 중국과 한국의 국경을 오가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 은 것이다. 그리고 탈북한지 4년 만에 거액의 돈을 가지고 두만강을 건너 고 향의 가족들에게로 돌아갔다. [26]
2012년 2차 인터뷰에서 구술자는 북한 정부가 2004년, 고난의 행군시기 ‘행방불명’ 상태로 있었던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사면하였으나, 결국 자신이 원했던 중앙부서에서 출세하는 데는 제한이 있었다고 토로하였다. [27]
구술자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을 오가며 장사를 하였다. 중국의 도매시장에서 중국산 혹은 한국산 의복, 신발, 학용품 등 각종 생필품을 가 져다가 북한의 소매상들에게 중개하는 것이다. “그거 뭐 간단하다니까요. 물건을 상품을 가져다가 내가 저는 연길에도 많 이 다녔거든요. 연길에서 시장에 가서 물건을 다 이자처럼 일단은 우리 시장 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장사꾼들하고 해가지고 어떤 항목으로 학용품이면 학 용품, 뭐 애기들 옷이면 애기들 옷, 그리고 뭐 애들이 필요한 애들들 옷, 신 발, 무슨 이런 자동차 부속품 이런 것들은 딱 종목별로 필요한 걸 다 적어가 지고 일단 그 사람들한테서 돈을- 돈을 주거든요. 이제는 뭐 10년을 넘어 거 래를 했으니까- 돈을 받아가지고 중국에 가서 물건을 사- 서시장에 가서 다 샀거든요, 그때- 서시장에는 종합 음: 그런 도매 시장이죠. 도매 시장에 가 서 다 사가지고 물건을 그때는 장백: 최소한 장백조를 버스로 하나 했는데 거기 사람들은 내가 너무 자주 다니니까 북한 사람이라는 건 상상도 안하거 든요.”(김정순 구술녹취록, 2012/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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