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lytic/Social & Political Phil

김성경 (2022) 글로벌 대중문화와 생존자의 이야기: 해외출판 탈북 여성 수기의 식민적 시선과 젠더화된 서사

Soyo_Kim 2024. 11. 29. 09:45

김성경. (2022). 글로벌 대중문화와 생존자의 이야기: 해외출판 탈북 여성 수기의 식민적 시선과 젠더화된 서사. 한국여성학, 38(2), 1-32.

Kim, Sung Kyung. (2022). Global Popular Culture and Stories of Survivors : Colonial Gaze and Gendered Narrative in Memoirs of North Korean Women. Journal of Korean Women's Studies, 38(2), 1-32.

Ⅰ. 들어가며

서구 출판 시장에서 탈북민의 수기는 한동안 커다란 인기를 누렸다. 북한에 대한 호기심과 비례해 그곳을 떠나온 탈북민의 증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북한 체제의 인권 유린 및 열악한 상황을 ‘증 언’하는 탈북민의 수기는 대중 출판 시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북한 체제  야만성을 드러내는 주요한 증거로 활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탈 북민 수기를 분석해보면 ‘증언’적 성격보다는 피해자의 경험과 고통을 전면화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탈북 여성의 수기는 북한을 고발하는 것이 아닌 독자의 카타르시스 충족을 목적으로 하는 대중문화의 일부로 그 성격이 재편되고 있다. [2]

2002년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명명하면서, 북한은 미국 및 서방 세계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존재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또한 2005년 북한인권결의안이 유엔에서 채택되고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탈북민의 증언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기도 한 다. 즉, 국제정치적 상황 및 국제인권 레짐과 긴밀하게 연동되어 탈북민 수기 출판이 본격화되었다. [2]

2015년부터 본격화된 탈북 여성들의 수기는 ‘증언’의 성격이 짙은 탈북 남성의 수기와는 조금은 다른 결을 지닌다. 젊고 아름다운 여 성의 얼굴을 표지 전면에 내세우면서, ‘무고한’ 여성의 고난을 집중적으 로 서사화하고 그녀들의 역경에 맞선 용기를 가시화하는 것이 그러하 다. 북한 체제의 폭력을 강조하면서도 성폭력이나 인신매매 등 이주 과 정에서의 선정적 폭력이 수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만큼 젠더화 된 서사가 탈북 여성의 수기에 내재화되어 있으며, 이것의 이면에는 북 을 향한 서구 사회의 식민지적 시각이 깊게 배태되어 있다 [2-3]

상업적 목적에 의해 대필 작가의 힘을 빌려 ‘기획’된 탈북 여성의 수기는 고통과 극복의 서사에 열광하는 현대 대중문화의 특성에 적극적으로 조응한 문화상품임을 주장하고자 한다. [3]

이는 서구의 출판 시장이 지속적으로 독재 국가 혹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억압받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유주의 의 우월성을 확산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서구 의 문화식민주의가 ‘고통의 문화산업(culture industry of suffering)’을 통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만큼 탈북 여 성의 해외 출판 수기는 그것이 지닌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식민주의적 시선과 젠더적 재현이 교차하며 의미를 둘러싼 권력의 각축이 일어나는 장이다. [4]

 

Ⅳ. 글로벌 영상 미디어와 탈북 여성의 수기

탈북 여성 수기 중 가장 높은 판매고와 반향을 일으킨 책은 단연 『The Girl With Seven Names: Escape from North Korea』(Lee, 2015) 와 『In Order to Live: A North Korean Girl’s Journey to Freedom』 (Park, 2016)이다. 이현서의 책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이며 전 세계 40여 개 국가에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박연미의 책도 미국, 영국, 독 일, 프랑스, 이탈리아에서 동시 출간되었으며, 상당한 판매고를 올린 것 으로 알려져 있다. [10]

마침내 2013년 이현서는 TED3)에서 라는 강연을 하게 되면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고, 박연미는 2014년에 열린 One Young World 연례 회의에서 한 강연이 유튜브에서 인기를 끌면 서 해외 출판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2022년 2월 현재까지 이현서의 강 연은 총 2,080만 회, 박연미의 강연은 440만 회 시청될 정도로 인기가 있다. [11]

이들의 강연이 인기를 끌자 출판사는 빠르게 움직였다. 이현서에 따 르면 TED 강연 이후에 전 세계 많은 출판사 및 강연 에이전시에서 연락 이 왔다고 한다. 이들은 이현서의 수기 출판을 계약하고자 했으며 대필 작가까지도 출판사에서 책임질 것을 제안했다.4) 박연미는 상당한 규모 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펭귄 출판사에서 출판하였고, 대필 작가도 힐 러리 클린턴의 자서전을 썼던 메리안 볼러(Maryanne Vollers)가 진행했 다. 이현서는 두 명의 대필 작가가 작업을 했는데, 첫 번째 작가는 한반 도 문제 전문가이자 저널리스트로 알려진 마이클 브린(Michael Breen) 이었다. 출판사는 상당한 고액을 지불하고 그를 고용하였지만 그만큼 빠른 작업을 요청했다. TED 강연 이후 이현서의 인지도가 상당할 때 바로 책이 나와야 했기 때문에 대필 작가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3개월 에 불과했다. [15]

 

Ⅴ. 식민지적 시선과 젠더화된 서사

그녀들의 자전적 이야기는 대필 작가를 거쳐 ‘서구의 시선’ 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일찍이 사이드는 서구와 동양이 어떠한 지식과 권력 체계를 관통하여 관계를 정립해 가는지를 분석한 바 있다. 그의 개 념으로 ‘오리엔탈리즘’은 서구 식민자가 새롭게 발견한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기 위해 구성한 지식-권력의 체계를 의미한다. 오리엔탈리즘은 서구의 경험과 인식을 통해서 동양이 정의된다는 것을 뜻하는데 이는 동양이 서구의 시선을 아래서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서양의 정체성이라는 것도 타자를 정의하는 지식의 체 계 속에서 구성됨으로써 반 타자의 의미체계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 바로 오리엔탈리즘의 가장 중요한 논점이다(사이드, 2015). [19]


수기에서는 경제난과 국가 폭력이 두 소녀의 가족을 붕괴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서술한다. 국경 도시에 살던 이들은 결국 국경을 넘는 일을 감행하게 되고, 중국으로 넘어간 이후의 삶은 상시적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호모사케르와 다르지 않다. 그녀들이 경험하는 폭력은 젠더화되어 있으며, 성애화된 시선 아래 재현된다. 특히 박연미 의 수기에서 그려진 중국의 모습은 성폭력, 인신매매, 성매매 등이 난무 하는 곳이며, 그녀는 이곳에서 어머니가 강간당하는 것을 지켜보고, 자 신도 13살에 중국인 브로커의 정부로 전락하게 된다. 어머니를 구해내 기 위해서 중국인 브로커의 요구를 들어주다가 그가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지게 되자 그를 떠나 어머니와 성인채팅방에서 일을 하기도 한다. 그 러다가 우연히 그녀는 남한으로 가는 방법을 알게 되고, 채팅방에서 만 났던 남한 남성의 조력으로 남한으로 이주하게 된다. [21]

이현서는 초국적 주체로 적극적인 행위주체성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녀 삶의 중요한 결정에는 언제나 남성들의 조력이 있거나 결혼이나 사랑과 같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결정적 역할을 한다. 남한 남성 김 과 결혼하기 위해서 남한으로 이주를 결심하는 것도 그러하고, 한국 사 회의 실체를 알게 된 것이 남자 친구와의 갈등 때문인 것도 그렇고, 이후 가족을 찾기 위해서 라오스에 갔을 때 또 다른 호주 남성 딕이 그녀 에게 절대적 환대를 베푸는 것도 그렇다. 이현서가 한국에서의 편견과 부당함을 이겨내기 위해서 선택한 미국행에서도 미국인 남자 친구와의 미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현서 수기 곳곳에는 로맨틱 소설과 같 은 사랑의 감정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녀의 삶에서 만난 남성들 과의 사랑이 그녀가 북한-중국-남한-라오스-미국까지의 이동의 주요 행 위 동력이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플롯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다. [22-23]

더욱 문제적인 것은 이현서와 박연미가 삶의 의미를 찾게 되는 북한 인권활동가라는 역할이 지닌 한계이다. 두 수기 모두 최종 종착지로 미 국이라는 공간을 의미화하고, 북한인권활동가를 미래로 그려낸다. 그들 이 미국을 동경하고, 세계무대에서 북한인권활동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해외 출판 탈북 여성 수기가 기획될 때부터 정해놓은 결말이기 도 하다. 미국은 북한이나 중국과 대비되는 자유의 세계이며, 한국처럼 ‘가짜’ 환대를 베푸는 곳도 아니다. 이들이 그토록 ‘탈출(escape)’하여 다다르고자 하는 최종의 안전하고 완결한 곳이 바로 미국인 것이다. 한 국 사회의 불평등과 편견을 극복하는 방법은 미국에 진출하여 성공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유’세계에서도 서열이 존재하는 것을 징후적으로 강조한다. [24]

죽음과 성폭력이 난무하는 북한과 중국은 서구 독자의 관음증적 시선 을 통해 야만의 공간으로 해석되며, 동시에 미국을 비롯한 서구는 온정 적이면서도 자유와 인권 등의 가치가 통용되는 곳으로 상징화된다. 두 공간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만들어내는 효과는 결국 얼마나 자유주의적 식민자의 공간과 권력이 정당하며, 이성적이고, 문명화된 것인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다시 한번 ‘열등한 동양’을 정의하는 지식과 재현이 ‘우월 한 서양’이라는 지식권력의 쌍생아임을 확인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