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lytic/Social & Political Phil

성정현 (2014) 탈북여성들의 남한사회에서의 차별 경험과 트라우마 경험의 재현에 관한 탐색적 연구

Soyo_Kim 2024. 11. 29. 13:41

성정현. (2014). 탈북여성들의 남한사회에서의 차별 경험과 트라우마 경험의 재현에 관한 탐색적 연구. 한국콘텐츠학회 논문지, 14(5), 117-131.

Jung-Hyun Sung. (2014). North-Korean-Refugee Women's Experience of Discrimination in South Korea and Reemergence of Trauma Experience. The Journal of the Korea Contents Association, 14(5), 117-131.

Ⅱ. 선행 연구

그 실태를 보면, 2001년도에 남한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 200명을 대상으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조사한 홍창영(2004)의 연구 결과, partial PTSD가 31.8%, 그리고 full PTSD가 27.2%로 나타났다. 즉, 응답자의 약 1/4~1/3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1990년도 이후 남한으로 입국하여 정부의 보호 관리 과정이 끝난 18세 이상의 북한이탈주민 1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서주연(2006)의 연구에서는 약 45.1%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위험군으로 나타났다. **국경없는의사회(2005)**의 연간 보고서에서는 지역사회에 정착한 이후 37.6%가 심리적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으며, 그중 18.2%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18.8%는 불안 장애를, 그리고 22.2%는 우울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5]. 마지막으로, 김연희 등(2010)이 2007년도 입국자 584명을 전화 면접한 결과, 약 5.2%(26명)가 PTSD로 진단되었으며, 약 6.6%(33명)가 partial PTSD로 진단되었고, 약 48.4%(242명)는 불안과 우울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모든 PTSD에서 여성의 유병률이 높았고, 연령이 높아질수록 우울과 불안 정도가 높았다. [120]

PTSD를 겪고 있는 북한이탈주민은 악몽이나 끔찍한 사건에 대한 회상, 또는 혼란스러운 기억을 통해 그 사건을 다시 경험하거나 과각성, 회피 등의 증상 때문에 남한에서도 부적응적인 양상을 보인다 [120-121]. 이 중,

① 재경험(reexperience)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현저한 특징으로서, 외상 당시의 장면이나 두려움을 반복적으로 다시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재경험은 사소한 자극이나 단서를 통해 당시의 상황으로 현실을 치환하거나, 외상과 관련된 침투 사고와 부정적 감정 및 생각을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경험하는 것이다. 이는 대인관계적 외상 경험이 있을 때 더욱 심각한 경향을 보이지만[7], 분명한 원인이 없는 상태에서도 나타나기도 한다.

② 과각성(physiological hyperarousal)은 재난 당시를 연상할 만한 단서에 민감해지고 주변의 모든 감각적 자료에 지나치게 경계하는 생리적 현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수면 장애나 과민 반응, 외상적 사건을 상기시키는 것에 대한 지나친 경계나 각성 등의 특징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③ 회피(avoidance)는 이러한 단서와 세상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려는 심리적 기전으로 발동하여 모든 위험한 자극을 피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외상적 사건을 생각나게 하는 것의 회피, 중요한 활동에 대한 흥미 상실, 사회적 고립, 위축, 정서적 반응의 둔화 등과 같은 특징을 보인다[19][20]. 이러한 회피는 주로 대인관계적 외상 경험이 있거나 여성이 경우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 또한, 회피는 용서와 함께 PTSD 증상을 예측하는 강력한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 외에, 우울증과 그로 인한 비관적인 전망, 폭력, 자살 행동의 가능성 또한 외상 경험의 흔한 반응 중 하나로 들 수 있다. [121]

 

Ⅳ. 연구 결과

본 연구 참여자는 총 5명의 여성이며, 연령은 30대 2명, 40대 2명, 50대 1명이다. 이 중 3명은 자매 관계이나, 탈북과 입국 시기, 그리고 제3국 체류 경험은 모두 달랐다. 현재 A를 제외하고는 모두 자녀와 함께 살고 있으며, B는 중국에서 함께 살았던 남편을 초청하여 함께 살고 있다.

이들의 주된 탈북 동기는 ‘굶주림과 자유의 갈망’, ‘신분 불안과 인신매매로부터의 탈출’이었으며, 남한으로 입국한 이유는 남한이 ‘자유를 찾고 신분을 보장할 수 있는 대상국’으로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일부 가족이 남한에 정착했기에 함께 모여 ‘가족으로 살기 위함’이었다. [122]

(1) 투옥

A와 C는 탈북하였다가 중국 공안 당원에게 붙잡혀 다시 북송된 적이 있다. 이들은 북한에서 감옥 생활을 했고, 구타를 당했으며, 인간으로서 겪기 힘든 모욕을 받았다. 그 고통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다시 탈북하였고, 중국에 있다가 붙잡힐 때는 그동안 모아놨던 돈으로 벌금을 내며 북송되지 않는 것만도 다행으로 여기며 살았다.

"감옥 가서 3~4년에 한 번씩 벌금 물다가 아오지 잡혀가지. 3번 벌금 내고 4번째부터는 북송해가지. 마음이 저려 죽겠지. 4년 됐는데. 속이 타들어가고." (A) [123]


(2) 도망과 체포

참여자들은 탈북 후 중국 생활 중에도 끊임없이 도망을 다녔다. 일노동을 하다가 북한 여성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임금도 받지 못하고 도망을 나와 한데서 잠을 자거나 날밤을 새는 일이 허다했다. A는 중국에서 10년 넘게 살면서 내내 가슴을 졸이며 살았고, C는 도망치다가 시골 농촌의 볏짚 사이, 화장실 밑, 옥수수밭, 산속에서 밤을 보냈다. 시골의 칠흑같이 어두운 밤, 짐승들이 오가는 가운데 신경이 곤두선 채 뜬눈으로 새우며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도망 다니던 끔찍한 경험은 이제 이들의 몸에 병과 질환으로 남아 다시금 그때를 회상하게 하는 상처로 작용하고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중국에서 10년 4개월 살았는데 안 붙잡히려고 얼마나 힘들게 살았겠어요. 천막에서 이삼일이고 낮밤이고 자요. 거기서 류마티스 관절염 오고 치질 오고 했지. 겨울 같으면 거기서 자질 못하지. 겨울엔 볏짚 창고 논담에 움을 파놓고 이불 같은 거 허술한 거 펴놓고 그 안에서 숨어서 자지. 숨어서... 근데 다 헤친단 말이야. 그러면 잡히지. 소 여물처럼 거기서 숨지. 다들 추적하는데 거기다 이불 펴놓고 거기서 자고." (A) [123]

 

(3) 인신매매와 (성)폭력

C는 일을 하면 돈을 벌 수 있을 줄 알고 간 집에서 장애인과 강제 결혼을 하였다. 어린 나이에 결혼에 대한 기대나 가족에 대한 환상이 무참히 깨졌고, 가족도 아니고 집안 노동자도 아니며, 낮에는 일꾼이고 밤에는 성 노예와 같은 가정생활을 이어갔다. 그 생활이 끔찍해 도망을 나왔다가 붙잡혀 무자비하게 매를 맞곤 했다.

이런 경험 때문에 참여자들은 한국에 입국해 살면서도 결혼과 가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낮은 기대를 갖고 있으며, 결국은 혼자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결론은 외로움을 더욱 깊게 했다.

"나가 스무 살인데 육십 넘은 할아버지한테 팔리고, 안 그러면 장애인한테 팔리거든요. 장애인한테 가서도 팔린지 몰랐어. 일 시키려고 데려온 줄 알았지. 팔려 온 줄까진 몰랐지. 그러고 팔려 온 줄 알고는 그 안사람 매가지러 가고, 때리고, 감시가 붙고. 그런 생활 하다가 도망치려면 매를 맞고. 또 개처럼 천대받다가 도망치다 잡히면 그 집 형제들한테 맞고, 또 도망치다 잡히면 맞고... 우리는 그냥 성 노예지요. 성 노예. 잡혀서도... 우리는 중국 공안에서 잡혀서도 임산부인데도 그 사람들은 성추행을 하는 거야. 감옥 안에서도 간수들이 성추행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북한 사람이라는 걸 표현을 못하는 거야. 우리가 정신병 안 걸린 거, 이렇게 된 것까지만 해도 다행이라고." (C)


탈북 여성들은 중국에 도착한 이후 살길이 막막해지면서 유흥업소에서 일하거나 혹은 성매매 업소에 인신매매되기도 한다. 돈을 벌어 굶주림과 헐벗음을 벗어나 한국으로 입국하려고 시작한 일이지만, 불안정한 신분 때문에 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일하는 중에도 성폭행을 경험했다. [123]

B는 중국에서 배우자로부터 많은 폭력을 당했고, 무자비한 폭력으로 인해 추운 겨울 맨발로 뛰쳐나와 숨었으며, 추운 줄도 모르고 공포에 떨었던 기억을 갖고 있다. 가정 안에서도 아내가 아니라 "돈을 주고 사온 여자"라는 인식 하에 낮은 대우를 받거나 폭력에 시달리기 일쑤였다. 이러한 폭력과 성폭력은 분노와 두려움, 악몽 등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원인이 되었다. [124]

"북한 여자들이 불쌍한 게, 성매매 업소나 유흥업소에서 일해도 돈을 못 받고, 성노예나 성폭행당해도 어디 가서 말할 데가 없었고. 팔려가도 ‘우리 너 돈 주고 사왔어’ 해도 말 못하고. 브로커들한테 성폭행, 성추행당한 게 얼마나 많아." (C)


(4) 차별과 배신

참여자들은 탈북 후 강제 결혼을 했지만, 자식을 낳고 살았기에 북한의 가정에서처럼 자신은 아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부부 간 갈등이 생기면 배우자와 그의 가족들은 언제든지 신고를 했으며, 간혹 다시 인신매매를 해버리기도 했다.

이들은 가장 친밀해야 할 대상인 배우자나 가족으로부터 지위나 존재를 인정받지 못했다. 타인 앞에서 모욕을 당해도 배우자나 가족이 보호해주지 않았으며, 또 다른 남성에게 팔려갈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서 항상 배우자에 대한 배신감과 탈출 의도를 품고 있었다.

"사람 취급도 안 하고, 북한에서 왔다고 조금 어떻게 하면 신고한다고 하고. 같이 자는데도 조금만 그래도 신고하거든요. 막 전화하는 것 같고. 연변에서도 막 전화해요, 칼 들고." (B) [124]


(5) 죽음의 목격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탈북 여성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경험은 죽음의 목격과 본인의 죽음에 대한 공포심이었다. 중국에서 자녀를 잃고, 북한에서 탈출했다가 붙잡힌 사람들과 가족들이 죽음을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 본인도 총살당할 수 있다는 공포심과 두려움을 겪었다. 탈북 과정에서 천길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며 어린 자녀들과 함께 사선을 넘어야 했던 경험은, 살아남은 자로서의 희열과 기쁨보다는 고통과 공포로 기억되어 이들의 삶에 불안으로 남아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난 그때 와가지고 23살에 임신했는데... 북한에서 왔다고 해서 유산을 했거든요. 내가 혼자 앉아서 했는데, 애가 손발 다 달렸고, 눈이고 남자애 고추도 다 달려 있더라고요. 근데 내가 혼자 앉아서 긁었다니까요. 북한서 왔다고 애 낳지 말라 해서 남자애를 긁었어요." (B)

연구 참여자들이 경험한 외상 사건은 크게 신체적 혹은 물리적 외상, 대인관계에서의 외상, 그리고 공포와 두려움을 조장하는 심리적·정신적 외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외상은 다차원적이며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해, 그 후유증 또한 상당할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