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inental/Kant & German Idealism

낭만주의의 시작과 헤르더의 출항

Soyo_Kim 2019. 10. 29. 23:59

2019 미학반 발제문

 

낭만주의의 시작과 헤르더의 출항

 

 

1장 낭만주의(Romantik)을 읽기 위한 예비 작업

1절 예술과 철학 사이의 공명은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

우리가 뤼디거 자프란스키(Rüdiger Safranski)의 《낭만주의 : 어떤 독일적 분쟁(Romantik : Eine deutsche Affäre)》을 읽기에 앞서 숙고해볼만한 문제는 이 책이 다루고자 하는 질풍노도Strum und Drang의 시기에 관한 사실Tatsache 너머에 있다. 그것은 “낭만주의 운동은 철학에 있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우리가 어떤 사상가들의 특정한 면모를 드러내고자 할 때에는, 그 면모가 사상가의 사상Gedanken에 있어 어떠한 방식으로 그 핵심을 담지하고 있는가를 먼저 고려해보는 것이 옳다. 우리가 다루려는 주제가 단순한 흥미에서 비롯된 지엽적이고 부차적인 것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선 말이다. 적어도 이 점에서 “판타지의 뿌리”가 낭만주의와 멀리 떨어져 있음은 자명한 일이며, 이로써 위의 물음은 보다 투명하게 다루어질 필요가 있음이 밝혀진다.

《낭만주의》를 읽기 위해 우리가 했었던 예비적 작업들, 그리고 앞으로 읽을《낭만주의》가 들려줄 이야기들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이 물음은 다시 말해 우리가 공부했던 플라톤Plato의 시인 추방론, 그리고 예술Kunst에 관한 칸트Kant의 이론이 누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냐는 질문이다. 플라톤의 시인 추방론은 거칠게 말해, 인간들의 본성physis에 대응하는 것들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aides 순수 형상인 이데아idea를 지성nous을 통해 인식하는 것[각주:1]이 모든 인간(특히 철학자들)과 사회의 목표가 되어야함[각주:2]을 함축하고 있다. 이러한 전제로부터 예술은 그 자신의 존재 의미를, 보다 정확히 말해 플라톤이 세운 의미 체계 내에서 특정한 위치를 부여받는다. 모방하는 자mimetes인 예술가는 실재to on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현상to phainonmenon을 모방하기 때문에 진리aletheia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있는 자이다.[각주:3]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만 “신에 대한 찬가들과 훌륭한 사람들에 대한 찬양”[각주:4]과 같이 올바름dikaiosyne에 봉사하지 않는 시인들은 추방되어야 마땅하다. 플라톤은 이를 보다 노골적으로 “철학과 시 사이에는 오래된 일종의 불화diaphora가 있다”[각주:5]고 말한다. 이 불화는 진리aletheia의 소유권에 있어서 예술과 철학 사이의 대립을 첨예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제 플라톤의 다음과 같은 주장에 기겁할만한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한 부류는 물론 예술가들인데, 플라톤이 실로 국가를 운영하게 된다면 국가정책은 곧장 예술가의 밥줄을 끊어버림으로써 대응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달리 말해 예술가들에게 있어 철학자가 그들에 대해 세우는 이론은 아무래도 좋은 것임을 함축한다. 왜냐하면 예술가들이 예술을 행하는 이유는 철학자들이 철학을 하는 이유와 마찬가지로 순전히 그들의 밥벌이 때문이 아니며, 플라톤이 이들에 대해 고작 추방 내지 실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그가 예술가들의 내적 충동에 대해 조금도 손상을 입히지 못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미학에 관한 완벽한 이론을 구축하여 예술이라는 것이 온전히 해로운, 혹은 온전히 훌륭한 행위임을 밝혀낸다 할지라도, 이는 예술가들에게 다소의 낙담이나 희망을 불러일으킬 뿐, 예술 자체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일은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철학자들이 행하는 존재의 가치에 대한 정당화는 언제나 존재 자체의 정당성을 앞지르지 못한다. 그렇기에 모든 존재자의 존재는 그것이 존재한다는 바로 그 이유에서 그 자체로 정당하다. 니체Nietzsche는 이미 철학자들이 예술에 행하는 훈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조롱한 바 있다.

 

 

예술가들은 그들의 가치 평가나 그 가치 평가의 변화 자체가 관심을 끌 만큼 세계 속에서나 세계에 대항하여 오랫동안 충분히 독립적이지 못했다! 그들은 어느 시대든 도덕이나 철학 또는 종교의 시종이었다. (...) 내가 오로지 강조하려는 것은 모든 철학자와 마찬가지로 칸트도 예술가(창작자)의 체험으로부터 미학적 문제를 바라보는 대신에, 단지 ‘구경꾼’의 관점에서 예술과 미에 대해 심사숙고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구경꾼’ 자신도 미의 개념에 끌어들였다는 점이다.[각주:6]

 

칸트는 “미란 무심하게 마음에 드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무심하다니! 이 정의를 진정한 ‘구경꾼’이자 예술가로서 미를 일찍이 행복의 약속이라 부른 스탕달이 내린 저 다른 정의와 비교해보자 (...) 만약 우리 미학자들이 칸트의 편을 들어, 미의 마법으로 심지어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인의 조각상마저 무심하게 줄곧 바라볼 수 있다면 물론 우리는 그들의 그런 쓸데없는 노력을 약간 비웃어도 좋을 것이다.[각주:7]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들은 너무 앞서간 것이다. 구경꾼들의 가치 체계를 통째로 뒤집으려 했던 니체와 달리, 낭만주의자들은 구경꾼들이 불어준 바람을 타고 그렇기에 일말의 의심 없이 예술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러Friderich Schiler와 같은 사람들은 칸트가 불어준 바람을 타고 철학과 예술 사이에 다시 없을법한 공조를, 예술로의 고공비행을 감행한다.

이제 앞서 말한 플라톤의 시인 추방론을 듣고 기겁했을, 두 번째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이다. 이들은 다름 아닌 철학자들이다. 왜냐하면 플라톤은 철학과 예술 사이의 분쟁에서 단순히 진리의 소유권을 철학으로 돌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진리의 표현이 철학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리가 철학의 소유라면, 당연히 진리는 철학적으로 표현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표현이 일종의 형식이며, 철학이 말하고자 하는 진리는 내용이라는 이분법에 매몰되어 있다는 점에서 아직은 적절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적어도 철학이 진리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참인 전제로 가정한다면, 위의 질문엔 아무런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우리가 “철학적”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관점으로 조망할 수 있는 문제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철학적”이라는 말을 “철학을 하는데 적합한 방식들”로 정의내릴 수 있지만, 여기에서 이 “적합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철학적인 문체가 철학의 본질에 적합한 문체이다.”라고 아직은 말할 수 없음을 함축하고 있다. 오히려 문제는 우리가 철학적 글쓰기의 전형으로 여겨온, 철학에 적합한 문체야말로 철학의 본질과 동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대해 사유해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문체를 ‘철학적인’ 문체로 여기는가? 우리가 ‘문학적인’ 의미에서와 대립되는 의미로 ‘철학적’인 문체에 대해 정의 내린다면, 그것은 헤겔Hegel이나 칸트가 주지했다시피, 엄밀한 학문으로서 체계를 갖출 수 있는 문체, 논리적이면서도 명료한 문체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하나의 과학으로서 철학이라는 학문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그 내용과 논리상에서 엄밀하면서도 동시에 문학적인 비유나 수사들은 그저 이해를 돕기 위한 방편으로, 즉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져야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와 대립되는 의미에서 우리는 문학적인 문체의 의미를 감정이나 의지의 표현 내지는 비유나 수사 자체의 미(美)를 추구하는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철학에 있어서 문학적인 문체란 이를테면 이해를 돕는 예시 정도의 한갓 제한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것 이상은 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모든 사고는 논리적으로 명료하게 표현될 수 있다.”는 전제가 미리 깔려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를테면 논리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사고, 언어의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 사고가 존재한다면, 이제 문학적인 문체란 단순한 표현의 이해를 돕기 위한 방편을 넘어서 논리적 사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즉, 철학적인 문체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수단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이로써 노발리스Novalis, 횔덜린Friedrich Hölderlin, 실러와 같은 예술가들이 철학사 속에서 당당한 위치를 부여받는, 철학과 예술 사이의 다시없을 공조가 이루어진다. 이들의 공조는 낭만주의 시기라는 짧은 시간동안만 유지된 후 헤겔과 이후 철학의 폭풍에 자리를 내주었으나, 우리는 여전히 횔덜린의 시를 철학으로서 진지하게 다루는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와 “인간은 이 땅위에서 시적으로 거주한다.”[각주:8]이라는 그의 언명 속에서 살고 있다.

 

 

시 지음은 아주 다른 또 하나의 탁월한 방식으로 언어를 위해 헌신하고 있기 때문에, 철학을 깊이 숙고해 보는 우리의 대화는 반드시 사유함Denken과 시 지음Dichten의 관계를 논구하는 자리에 이르지 않을 수 없다.[각주:9]

 

 

2장 낭만주의의 시작과 헤르더의 출항

2절 철학과 예술 사이의 공조 - 탈마법화된 세계에 대한 저항 운동

그렇다면 “어찌하여 이러한 공조가 특정 시기, 특정 지역에서 일어났던 것일까?”라는 합당한 질문을 우리는 물을 수 있다. 이는 인간학, 특히 막스 베버Max Weber가 탈마법화Entzauberung된 세계관이라고 불렀던 일련의 인간학적 경향에 대한 전쟁으로 일어났다.

17세기와 18세기 영국과 프랑스에서 발전했던 급진적 계몽사상들(베이컨Francis Bacon, 홉스Thomas Hobbes, 로크John Locke, 데카르트Rene Descartes가 발전시킨)은 17세기의 과학혁명(갈릴레이Galileo Galilei와 뉴턴Isaac Newton)과 공조했던 인식론적 혁명과 더불어 18세기까지 이어진다.[각주:10] 이러한 사유의 종합인 “근대인”들이 일차적으로 적대했던 세계관은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쳐 중세와 초기 르네상스까지 이어졌던 “해석적 세계관”이었다.[각주:11] 베이컨이 “인간 정신의 우상”이라고 불렀던 해석적 세계관은 이제 청소되어야 마땅한 사고로 전락했던 것이다.[각주:12]

“해석적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인telos에 기초한 세계관, 우주를 “의미 있는 질서들의 체계”로 보는 세계관이다.[각주:13] 흔히 말하는 비유로, "세계를 텍스트로, 우주를 책으로"[각주:14] 파악하여, 신이 쓴 책을 인간이 읽는다고 표현하는 것이 이러한 세계관의 대표적인 생각이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저술한 글에서 이러한 경향을 확인해볼 수 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DK11A1)

 

아리스토텔레스와 히피아스는 그[탈레스]가 혼이 없는 것[무생물]들에게도 혼을 부여했는데, 마그네시아 돌[자석]과 호박한테서 그 증거를 얻었다고 말한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Ⅰ. 24[각주:15]

 

 

사물에도 혼이 깃든 것처럼, 모든 사물에 제 나름의 가치와 의지가 있는 것처럼 파악하는 신성화된 세계관, 신이 자신의 의지를 세계 속에 드러냄으로써, 모든 사물에 신이 부여한 의미가 있다고 여기는 세계관.[각주:16] 근대인들은 이러한 생각들을 마음속에 내재한 의미들을 자의적으로 사실에 투영하는-어린아이 같은 사고라 비판한다.[각주:17]

데카르트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러한 세계관을 벗어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하나는 res cogitans, 즉 생각하는 사물을 통한 주체Subjekt의 확립이며, 다른 하나는 res extensa, 연장하는 사물을 통한 양화(量化) 가능한 세계의 확립이다. 데카르트에게 있어 두 가지 사물은 모두 실체substantia인데, 이 단어는 고대 그리스어 hypokeimenon에서 유래했으며 본디 ‘밑에’ 라는 뜻의 hypo와 ‘놓여 있다’라는 뜻의 keisthai의 합성어이다.[각주:18] 고로 이것은 ‘어떤 것의 밑에 놓여 있는 것’, 즉 ‘바탕이 되는 것’을 뜻한다. 데카르트는 양자를 res(사물), 앞에 세워진 것(Vorgestellltes)이라는 의미의 현전(Anwesenheit)하는 것으로 이해한다.[각주:19] 이러한 앞에 놓여 있는 것(Ob-jekt)라는 의미의 대상Objekt이 주어지는 곳은 인간이 주체Subjekt가 되는 곳이다.[각주:20] 이로써 주체는 ego cogito, ‘생각하는 나’로 확립된다. 《방법서설》에서 데카르트는 논리적으로 확실한 지식이라도 그것이 방법적 회의의 사고 실험 거친 후에야 비로소 더 큰 가치를 지니게 된다고 여긴다. 이러한 까닭에 cogito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것, “이미 자신 앞에-그리고 자신 쪽으로-세워진 것(das schon Vor-und Her-gestellte)”[각주:21]이다. cogito는 이렇게 모든 것을 자신sich에게로, 그리고 다른 것에 대한 맞은 편gegen에로 세운다.

이렇게 마주-서있는 것(Gegen-stand) 즉 대상/사물을 앞에-세움(Vor-stellen)으로써 “대상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로 철학의 물음은 전환된다. 다시 말해, 철학은 이제 존재론Ontology으로부터 인식론Epstemology으로 전환된다.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에 따르면, 이러한 자아 개념은 해석적 세계관에서는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다.[각주:22] 왜냐하면 데카르트에게 있어 방법적 회의를 통해 얻어낸 자아의 의미는 확실성,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명석하고 판명한 것clara et distincta[각주:23]에 있는 반면에, 고대에서의 자아의 의미는 우주의 질서에 순응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머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각주:24]

그렇기에 근대 이전의 인간은 zoon logon exon, 로고스를 지닌 존재이며, 로고스는 신적 이성과 인간 사이의 연결고리, 자연의 빛lumen naturale로 규정되었던 것이다.[각주:25] 데카르트가 주체와 대상 사이의 분리를 이루어낸 이후, 이러한 이성 개념은 점차 희미해진다. 인식론이 지배적이었던 근대 철학의 담론 아래에서 이성은 인간의 이성ratio humana으로, 인식하고 계산하는 이성으로 변모한다.[각주:26] 데카르트에게 있어 의심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 확실성을 통해 가능한 반면, 해석적 세계관에서 의심으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사물의 질서를 봄을 의미한다.[각주:27]

근대의 주체 개념, 그리고 이로부터 마주-세워진Gegen-stand 객체 개념은 더 이상 목적인telos에 의존하지 않고 작용인에만 의존한다는 점에서 기계적이다.[각주:28] 근대 과학은 이렇게 질적 요소를 양적 요소로 환원시킴으로써, 우연적이고 양화된 세계관을 구축한다.

독일적 사유, 특히 우리가 지금부터 고찰할 낭만주의Romantik의 사유는 이러한 탈마법화Entzauberung에 대한 저항으로 시작했다. 괴테Goethe처럼 《색채론Farbenlehre》을 통해 뉴턴의 자연과학과 노골적으로 대립한 경우도 있었지만, 헤르더Johann Gottfried Herder의 경우 이는 표현주의 인간학을 통해 이루어진다.

 

3절 헤르더의 표현주의 인간학

헤르더는 근대의 인간학, 즉 영국과 프랑스에서 주류였던 계몽의 인간학에 반대하였다.[각주:29] 즉 그는 인간을 객체로 다루는 데에 반대했고, 데카르트처럼 인간을 육체와 영혼으로 분리하여 다루는 데에도 반대하였으며, 감정과 의지로부터 빠져나온 계산적 이성에도 반대했다.[각주:30] 헤르더의 이러한 인간학을 표현주의expressivism라 부른다.[각주:31]

헤르더는 기본적으로 양화된 세계관, 즉 자연과학의 세계관에 반대했다. 그는 오히려 인간의 삶이나 활동이 “표현”으로 간주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앞서 서술한 것처럼, 근대는 의미나 표현을 자연을 탐구하는 데에 있어 합당한 용어로 여기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에서 의미는 정신에만 귀속되는 것이며, 이는 홉스로부터 콩디야크에 이르는 의미론에 지속적으로 나타난다.[각주:32]

이를테면 콩디야크에게 있어 언어의 의미는 어떤 것을 대신하거나 지시하는 데에 있다.[각주:33] 즉 단어들은 기호의 집합이며, 그 의미는 사물들에 대한 지시 관계 속에 놓여 있다.[각주:34] 반면 헤르더는 《언어의 기원에 대하여Abhandlung über den Ursprung der Sprache, 1772》에서 이러한 생각과는 정반대되는 사유를 전개한다. 콩디야크는 사막에 있는 두 아이가 특정한 기호들을 사물들에 연결시키는 과정을 묘사함으로써 언어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헤르더는 이러한 콩디야크의 설명에 중요한 점이 결여되어 있음을 지적한다.[각주:35] “이 아이들은 사물들을 기호들로 대신할 수 있다는 생각을 어떻게 얻게 되었는가? 왜 동물들은 얻지 못했던 생각을 아이들은 가질 수 있었는가?”

헤르더는 언어적 의식의 실존을 인간의 고유성으로 격상시킨다. 동물들은 “꿈과 같은 경험의 선율적 흐름에 머물러”[각주:36] 있지만, 인간은 언어를 통해 “사물들에 대한 분명한 인식, 집중된 인식을”[각주:37] 갖는다. 헤르더는 이 점에서 바로 표현에 주목한다. 우리는 표현을 어떤 대상에 대한 지시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 내부에 있는 의지나 감정의 분출로 이해할 수도 있다.[각주:38] 이를테면 벽을 차고 욕을 하는 것은 모두 분노의 표현이지만, 이러한 표현은 외부 대상을 지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삶을 드러내고 있다.

헤르더가 이러한 결론으로부터 이끌어내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다. 먼저 인간의 삶을 표현으로 보는 것은, 그러한 표현의 완결, 즉 목적을 전제한다. 이로써 근대에서 추방되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인telos 개념이 복원된다. 다만 헤르더의 표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인 개념을 넘어서서 세계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주체의 삶은 온전히 자기의 것으로, 아직 내부에서부터 전개되지 않은 것이다.[각주:39] 각각의 개별적인 인간, 그리고 각각의 개별적인 민족은 자기만의 인간성을 갖는다. 따라서 헤르더는 표현을 “주변 세계가 부과한 힘들에 대항하여 자기 자신의 형태를 실현하고 유지하려는 내적 힘들Kräfte의 선언”[각주:40]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이상적인 실현은 이념Idee의 실현일 뿐 아니라 내부로부터의 실현이다.[각주:41]

둘째로 언어가 인간의 삶과 사유의 필연적인 조건이라면, 이는 또한 예술과 연속선상에 있게 된다.[각주:42] 고로 헤르더는 언어의 기원은 시와 노래와 분리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가장 적절한 언어는 세계의 기술과 느낌의 표현을 통일한 것”[각주:43]이라고 주장한다.

 

 

울부짖음은 느낌을 표출한다는 의미에서, (...) 느낌의 자연적 ‘표현’, 느낌의 자연적 배출인데, 생각은 바로 이런 울부짖음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느낌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강한 의미에서의 표현이라는 이념은 새로운 인간론과 함께 생겨난다. 언어는 세계를 기술하지만 또한 그것은 인간을 실현해야 하고, 또 이를 통해 인간이 무엇인지를 명료화해야 한다.[각주:44]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 예술이 외부의 대상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표현이라는 사실은 매우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예술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실로 낭만주의의 유산인데, 왜냐하면 18세기 까지만 해도 이러한 예술 이해가 정착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각주:45] 이 당시 예술의 주된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메시스memisis, 즉 실재의 모사 내지 모방이었다. 헤르더는 표현주의를 통하여 인간의 삶을 표현으로, 나아가 예술로 보는 관점을 확립하였다. “인간이 표현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언어와 예술이다.”[각주:46]

이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것이지만, 표현주의는 서구의 전통적 사유에 대한 급진적인 도전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언어는 logos, 즉 이성으로써 인간이 zoon logon exon으로 규정된 이후, 진리와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유일한 수단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헤르더가 언어를 자아의 표현으로 보면서, 예술Kunst은 이제 언어만큼이나 중요한, 오히려 언어를 넘어서게 된다. “인간의 중심은 로고스logos(언어, 철학)에서 포에시스poesis(시, 예술)로 이동한다.”

낭만주의자들은 표현주의를 통해 예술과 철학의 성공적인 공조를 이루어낸다. 말하자면, 더 이상 철학적 사유를 이성과 논리의 언어로 수행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철학의 진리 탐구 역시 일종의 표현이라면, 그것은 또한 예술로써 표현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예술은 이제 그의 존재론적 지위인 모방과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설정해놓은 지위인 교훈 및 만족을 넘어서 심층적 느낌의 표현 및 실존의 완성으로 여겨지게 되었다.[각주:47] 괴테는 이를 정화Läuterung라는 개념으로 표현하는데, 이는 표현이 단순한 느낌의 표현을 넘어서 보다 높은 형식으로 나아감을 의미한다.[각주:48] 예술은 더 이상 주관적이지 않으며, 진리를 요청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예술의 최고 형태는 그것이 자연의 본성에 충실하기 때문에 최고의 표현이자 진리의 구현이다.[각주:49] 예술가는 이렇게 하여 모방자에서 창조자로 승격하였고, 천재의 테마는 18세기에 새로운 추동력을 부여했다. 천재에게는 어떤 공식도 없으며 단지 전개되어가는 과정에서 드러날 수 있는 힘이 주어져 있다.[각주:50]

  1. 플라톤,『국가』, 번역 박종현, 서광사, 1997, p.28-29 [본문으로]
  2. Ibid. p.34 [본문으로]
  3. Ibid. p.618 [본문으로]
  4. Ibid. p.637 [본문으로]
  5. Ibid. [본문으로]
  6.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학』, 번역 홍성광, 연암서가, 2011, p.141-144 [본문으로]
  7. Ibid. p.144 [본문으로]
  8. 마르틴 하이데거,『강연과 논문』, 번역 이기상, 신상희, 박찬국, 이학사, 2008, p.47 [본문으로]
  9. 마르틴 하이데거,『동일성과 차이』, 번역 신상희, 믿음사, 2000, p.100 [본문으로]
  10. 찰스 테일러,『헤겔』, 번역 정대성, 그린비, 2014, p.15 [본문으로]
  11. Ibid. p.16 [본문으로]
  12. Ibid. p.17 [본문으로]
  13. Ibid. p.16 [본문으로]
  14. Ibid. p.18 [본문으로]
  15. 『Die Fragmente der Vor-Sokratiker』, 탈레스 단편 35 (DK11A1) [본문으로]
  16. 찰스 테일러,『헤겔』, 번역 정대성, 그린비, 2014, p.18 [본문으로]
  17. Ibid. [본문으로]
  18.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번역 김진성, 이제이북스, 2007, p.43 [본문으로]
  19. 마르틴 하이데거,『강연과 논문』, 사물, 번역 이기상, 신상희, 박찬국, 이학사, 2008, p.227 [본문으로]
  20. 마르틴 하이데거,『강연과 논문』, 형이상학의 극복, 번역 이기상, 신상희, 박찬국, 이학사, 2008, p.107 [본문으로]
  21. Ibid. p.93 [본문으로]
  22. 찰스 테일러,『헤겔』, 번역 정대성, 그린비, 2014, p.21 [본문으로]
  23. 명석한 지각이란 “집중하고 있는 정신에 현존하며 드러난 지각”을 의미하며, 판명한 지각이란 "명석하기 때문에 모든 다른 지각과 잘 구별되어 단지 명석한 것만을 담고 있는 지각"을 의미한다. [본문으로]
  24. Ibid. p.20 [본문으로]
  25. 신승환. 이성 개념의 현대적 이해. 철학논집, [s. l.], n. 37, p. 31, 2014. [본문으로]
  26. op. cit. [본문으로]
  27. 찰스 테일러,『헤겔』, 번역 정대성, 그린비, 2014, p.21 [본문으로]
  28. Ibid. p.27 [본문으로]
  29. Ibid. p.33 [본문으로]
  30. Ibid. [본문으로]
  31. expressivism은 찰스 테일러의 용어로 원 의미는 표출주의이다. 테일러는 헤르더의 인간학을 표현주의expressionism으로 규정했던 벌린Isaiah Berlin의 단어가 20세기의 표현주의 운동과 혼동될 가능성이 있어 일부로 표출주의라는 용어를 택한다. 우리의 논의에서는 적어도 그러한 혼동이 없으므로 표현주의라 지칭한다. 자세한 내용은 찰스 테일러,『헤겔』, 번역 정대성, 그린비, 2014, p.34 주석 14) 참조. [본문으로]
  32. Ibid. [본문으로]
  33. Ibid. p.44 [본문으로]
  34. Ibid. [본문으로]
  35. Ibid. p.43 [본문으로]
  36. Ibid. p.44 [본문으로]
  37. Ibid. [본문으로]
  38. Ibid. p.35 [본문으로]
  39. Ibid. p.36 [본문으로]
  40. Ibid. p.37 [본문으로]
  41. Ibid. [본문으로]
  42. Ibid. p.45 [본문으로]
  43. Ibid. [본문으로]
  44. Ibid. p.46 [본문으로]
  45. Ibid. p.42 [본문으로]
  46. Ibid. [본문으로]
  47. Ibid. p.46 [본문으로]
  48. Ibid. p.46-47 [본문으로]
  49. Ibid. p.47 [본문으로]
  50. Ibid.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