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독일 관념론 스터디 발제
슐체, 마이몬, 베크의 칸트 이해와 라인홀트 비판
목차
1. 서론 – 칸트 비판 철학의 수용사 : 라인홀트와 그 비판자들
2. 본론
가. 라인홀트와 칸트의 근본적 차이 - 체계적 명료함과 엄격한 주저함
나. 슐체 - 근대의 아이네시데무스
다. 마이몬의 회의주의와 인과론
라. 베크의 관점론
1. 칸트 비판 철학의 수용사 : 라인홀트와 그 비판자들
칸트(Immanuel Kant)의 비판 철학의 서두를 장식하는 『순수이성비판 Kritik der reinen Vernunft』은 그 저작이 철학사에 남긴 탁월한 업적과 달리, 1781년 출판된 후 몇 년 동안 무관심과 오해를 받았다. 대표적으로 1782년 1월 <괴팅엔 학술지>에 발표된 크리스티안 가르베(Christian Garve)의 논평은 칸트의 선험론적 관념론을 버클리식 관념론의 변형에 불과하다고 이해한 바 있다. 1 이러한 오해들은 칸트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순수이성비판』 자체의 난해성에서 기인한 바, 이 작품이 “무미건조하고 난해하며, 모든 익숙한 개념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광범위하기 때문” 2이었다. 3
칸트는 이러한 몰이해에 맞서『학문으로 등장할 수 있는 미래의 모든 형이상학을 위한 서설』을 1783년 쓰게 되지만, 그의 저작이 보다 명료하고 광범위하게 이해되기까지는 몇 년의 세월이 더 필요하였다. 이 비판 철학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것을 대중에 널리 전파시킨 사람은 라인홀트(Karl Leonard Reinhold)였는데, 그가 1786년 <독일의 메르쿠어Teutsche Merkur>라는 잡지에 칸트 철학을 체계적이면서도 충실하게 해설함으로써 칸트는 단숨에 독일 철학 담론의 중심에 서게 된다. 라인홀트의 이러한 공로에 대해 칸트 역시 화답함으로써, 둘의 공조는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후 슐체와 마이몬 등의 철학자들이 라인홀트를 통해 이해한 칸트 철학을 다시 회의론의 입장에서 공격하면서, 라인홀트의 칸트 이해에 심각한 난점이 있음이 드러나게 된다. 사태는, 칸트가 그의 철학을 전개함에 있어 “학문적 정확성이라는 가장 엄격한 규칙” 4을 신봉하여 그 엄격함을 넘어서는 모든 사태에 대해 주저했던 반면, 라인홀트는 이성과 신앙 사이의 대립을 극복하고자하는 체계를 세우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라인홀트가 칸트 철학을 정리하여 명료화와 단순화를 수행한 배후에는 하나의 단일한 체계를 세우려는 의지가 자리하고 있다. 5
칸트의 경우 물자체(Ding an sich)로부터 발생하는 체계의 통일성 문제, 즉 비판이 이론적 부분에서는 경험에서 도출되고, 실천적 부분에서는 도덕 법칙이라는 어떤 원칙에서 도출되기 때문에 “하나의 포괄적 원리가 결여해 있다”는 사실은 그의 선험론적 방법론에 비추어볼 때 불가피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칸트의 기획은 “외재적인 형식에 의존하지 않은 채 ‘이성’의 전반적인 한계 영역을 그 내부에서부터 보여 주는 방식으로 구획하는 것” 6이었기 때문이다. 7
칸트의 이러한 의도와 달리, 라인홀트는 “칸트 이론을 엄격한 체계 형식에 의해서 통일”시킴으로써 비록 비판 철학을 이해하기 쉽게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또한 위험스러운 단순화를 초래하였다. 8 결국 칸트가 고민했던 심오한 문제들은 요소 철학 아래에서 “천박한 공론적 체계의 희생물이 되고 말았다.” 9 그리고 칸트와 라인홀트의 이러한 근본적 차이로부터 발생하는 난점들에 대해 슐체(Gottlob Ernst Schulze)와 같은 사상가들은 예리한 비판의 칼날을 들이댔던 것이다. 이에 따라 본고는 먼저 칸트와 라인홀트 철학의 근본적 차이를 드러낸 후, 후자에 대한 세 명의 철학자들-슐체, 마이몬, 베크의 비판을 다룸으로써 칸트 수용사의 풍경을 명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10
2. 라인홀트와 칸트의 근본적 차이 - 체계적 명료함과 엄격한 주저함
칸트의 근본 기획인 ‘Transzendental-Philosophie’는 선험론적 철학, 혹은 선험 철학이나 초월 철학으로 번역된다. 이 단어, ‘Transzendental’의 수용사에는 복잡한 내막이 있는데, 이 내막은 칸트의 태도를 보다 명료히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근대인들이 ‘transcendentalia’라고 표기했던 것을 중세 스콜라 철학자들은 ‘transcendentia’라고 표기하였다. 이 전자의 표기, 즉 트란스첸덴탈리스(transcendentalis)라는 형용사는 스페인의 철학자 프란치스코 수아레즈가 1600년에 독일 마인츠에서 <형이상학 토론> 제2판을 출판한 뒤부터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수아레즈는 트란스첸덴탈리스(transcendentalis)를 스콜라 철학자들의 트란스첸덴스(transcendens)와 거의 동의어로 사용하였다. 11
칸트에게 큰 영향을 끼친 테텐스(J. N. Tetens)는 트란스첸덴탈리스(transcendentalis)라는 형용사가 트란스첸덴스(transcendens)와 딱히 의미가 다르지도 않으면서 새로운 뜻이라도 있는 것처럼 사용되는 것에 불만을 품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원래의 중세 스콜라 철학의 용어로 돌아가되 그것을 다만 독일어로 바꾸어 자신의 철학을 ‘트란스첸덴테 필로조피’(Transcendente Philosophie)라고 표현했다. 12
한편 1756년 <물리적 단자론>(Monadologia Physica)에서 ‘필로소피아 트란스첸덴탈리스’(philosophia transcendentalis)라는 기존의 용어를 사용했던 칸트는, 테텐스에게 영향을 받아서인지 1781년 『순수이성비판』에서는 테텐스의 초월 철학과 구별하여 처음으로 ‘트란스첸덴탈-필로조피’(Transzcendental-Philosophie)라는 독일어 표현을 쓰기 시작한다. 13
이제 다음의 수용사로부터 스콜라 철학자들이나 수아레즈, 테텐스와 같은 철학자들이 전개했던 초월적 형이상학과 대비되는 칸트 철학의 혁명적 면모가 드러난다. 그것은 기존 철학자들의 관심사였던 대상들 자체인 “존재자로서의 존재자”(ens qua ens)를 다루는 것도 아니고, 대상들에 대한 경험적인 개념을 다루는 것도 아닌, 대상들에 대한 선험적인 개념을 다룬다는 것이다. 14
“나는 대상들이 아니라 대상들 일반에 대한 우리의 선험적(a priori) 개념들을 탐구하는 모든 인식을 선험론적(transzendental)이라고 부른다. 이런 개념들의 체계를 선험론-철학(Transzendental-Philosophie)이라 부를 수 있겠다.”(<순수이성비판>, A 11 아래)
이 선험적 개념들은 칸트에 따르면, 12개의 범주 같은 개념들이나 비록 개념은 아니지만 시간과 공간 같은 표상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들의 총합이 곧 이러한 개념들의 체계인 선험론적 철학인 것은 아니다. 15
“그런데 여기서 나는 앞으로의 모든 고찰에 대하여 그 효력이 미치고 또 사람들이 염두에 잘 새겨두어야만 할 주의사항을 제시하거니와 그것은 다음과 같다: 모든 낱낱의 선험적 인식을 가리켜 선험론적이라고 부르면 안 되고, 오로지 우리로 하여금 특정한 (개념이나 직관) 표상이 순전히 선험적으로 적용되거나 또는 선험적으로 가능하다는 사실과 어떻게 해서 그러한지를 인식하게 해주는 그런 인식만을 선험론적이라고 (…) 불러야 한다. 그러므로 공간 <자체>도, 그리고 공간의 어떤 기하학적인 선험적 규정도 하나의 선험론적 표상이라 부르면 안 된다. 도리어 이런 <선험적> 표상들이 경험적 기원을 갖지 않는다는 인식, 또한 그러면서도 그런 표상들이 경험의 대상들과 어떻게 선험적으로 관계 맺을 수 있는지, 그 가능성만을 선험론적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다.” (<순수이성비판>, A56=B80 아래.)
따라서 선험론적 철학이란 우리의 지각(경험)을 기술하는(darstellen) 선험적 구성의 가능성의 체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독일어 동사 darstellen은 기술(記述)하다, 묘사하다 등의 의미를 지니며, 이로부터 파생된 명사 Darstellung은 공적 표상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이를테면 직업을 나타내는 명사 Darsteller는 연기자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칸트의 형이상학은 이러한 의미에서 내재적 형이상학 또는 내면적 형이상학이다. 이러한 생각의 기반에는 흄의 경험론 철학을 수용하면서도 수학에 관한 독자적인 철학을 전개했던 칸트의 통찰이 깔려 있다. 16
칸트는 『서설』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흄의 경험론 철학의 이의제기를 받아들임으로써 “독단의 선잠”에서 깨어나고자 한다. 흄은 인간 정신의 모든 지각을 서로 다른 두 종류의 것으로 환원시킨다. 그것은 인상(impression)과 관념(idea)이다. 17 그런데 흄에 따르면 인상은 “최고의 힘과 생동성을 가지고 들어오는 지각” 18이요, 관념은 그 기원을 따져보았을 때, “내가 느낀 인상의 정확한 재현(representation)” 19에 불과한 것이다. 고로 모든 종류의 관념은 경험에서부터 유래한 것이다. 또한 그는 “형이상학의 유일하지만 중요한 하나의 개념” 20인 인과성 개념 역시, 그 개념에 포함되어 있는 필연성이 습관으로부터 유래한 “상상력의 사생아” 21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22
칸트는 이러한 흄의 생각이 수학적 명제에 대한 그의 간과에서 비롯된 실책이라고 주장한다. 흄은 관념을 단지 인상이 지닌 생동성과 힘이 약화된 것에 불과하다고 여겼으니, 이는 실제로 감관의 수용성만을 인정한 것이다. 칸트는 흄의 주장처럼 우리의 모든 직관(Anschauung)이 감관(Sinn)에서 오지만, 또한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기능인 사유(Denken)를 통해 개념(Begriff)을 형성하고 그 대상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고 주장한다. 독일어 Begriff는 동사 begreifen에서 나온 단어로, '붙잡다', '포함하다', '이해하다', '깨닫다' 등을 의미한다.
고로 칸트는 필연성에 대한 흄의 요구에 대해 선험 종합 명제를 제시한다. 순수 수학은 분석적이지 않다. 그것은 선험적이고 종합적이다. 왜냐하면 순수 수학은 선험적 표상인 시간과 공간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23
칸트는 수학의 명제가 시간과 공간에 대한 기술이라는 견해를 좀 더 발전시켰다. 칸트는 수동적인 관조만으로 시간과 공간의 구조를 완전히 기술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그것은 구성활동을 전제한다. "개념을 구성한다."는 것은 정의를 제시하고 기록하는 것을 넘어선다. 그것은 그것에 선험적인 대상을 제공하는 것이다. 24
그러나 개념을 구성한다는 것은 개념에 맞는 대상을 상정한다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칸트는 경험이 수용되는 지각 공간이 실제로 그러하기에 우리가 3차원 공간 내에서 구나 원을 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수학적 개념에 대한 사고-내적 일관성-와 이것의 구성-이를 위해서는 지각 공간이 일정한 구조를 지녀야 한다-을 칸트가 구분”했기 때문에, 칸트는 유클리드 기하학 이외에 다른 기하학(이를테면 리만 기하학)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기하학은 단지 논리적으로 상정될 수 있을 뿐, 경험의 영역인 지각 공간을 실제로 구성할 수 없기 때문에, 그의 실재론적 관념론의 현상계 내에서 차지할 자리가 없는 것이다. 상정할 수밖에 없고 구성할 수 없는 15차원의 구와 같은 개념들은 경험의 영역을 완전히 벗어나있기 때문에 가능할지언정 인식할 수 없다. 그것은 오히려 형이상학의 혼동이 발생하는 주된 원인이다. 25 이는 가무한(The Potential Infinite)과 실무한(The Actual Infinite)에 관한 칸트의 논의에서 특히 잘 드러나고 있다. 26
이를테면 자연수 수열을 전개함에 있어 이 수열이 무한히 전개될 수 있다는 사실은 “그것이 완성될 수 있다거나 완성된 수열이 이런 의미에서 주어진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을 함축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우리가 구성할 수 있는 것은 잠재 무한, 혹은 생성으로서의 무한인 가무한 뿐이며, 실무한은 논리적으로 일관된 이성의 이념일 뿐이다. 27 칸트는 이러한 점에서 구성될 수 없으나 ‘필요한’ 실무한과 구성될 수 있는 가무한의 대조를 자주 강조한다. 28 29
이제 우리는 물자체(Ding an sich)에 대한 칸트의 유보적 태도의 이유를 알 수 있다. 물자체는 지각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구성될 수조차 없기에, 사변 이성의 경험적 영역을 완전히 벗어나있다. 즉, 이 개념은 인식될 수 없을뿐더러, 『순수이성비판』의 기획의도-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에 비추어볼 때 “그것에 대해 전연 알 수 없다.”는 답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 자체로 그리고 우리 감성의 일체의 이 수용성과는 별도로 대상들이 어떤 사정에 놓여 있는가는 우리에게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는 그것들을 지각하는 우리의 방식, 즉 우리에게 고유한, 비록 모든 사람에게 속하기는 하지만 모든 존재자에게 필연적으로 속하는 것은 아닌 방식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30
이제 라인홀트의 요소 철학의 논의로 넘어가자면, “라인홀트는 칸트를 접하기 이전에 어떤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는가?”에 답해야 한다. 라인홀트는 1787년 10월 12일 칸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무엇보다도 칸트에 의해서 개진된 종교의 근본진리에 대한 윤리적 인식근거에 입각해서 미신과 불신의 양자택일을 극복하는 방책을 얻게 되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라인홀트는 당대 형이상학이 제기한 “신의 현존에 대한 문제”에 대해 칸트 이전의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이 취한 견해를 비판한다. 이에 따르면 “모든 문제를 이성이 해결할 수 있다는 관점의 철학자들은 이성의 능력을 과대평가한 반면에 그 문제에 대해서 이성은 어떠한 역할도 할 수 없다는 신학자들은 이성을 과소평가했다.” 31 고로 이러한 대립은 “이성을 통해서 무엇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 32
라인홀트는 칸트가 이에 대한 탁월한 해답을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고로 라인홀트는 “‘이성을 통해서 무엇이 가능한가?’라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칸트의 착안점과는 달리 ‘이 문제를 칸트가 어떻게 해결해서 당대의 욕구를 만족시키는가?’에 초점을 맞추고자한다.” 칸트 이전의 신학자들이, 인간의 상식에 근거하여 신의 현존을 증명하여 미신에 빠지고, 철학자들이 보편타당성에 근거하여 신의 현존을 증명하여 불신에 빠지게 된 반면에. 칸트는 “사변이성의 본질로부터 신의 현존에 대한 윤리적 신앙의 필연성을 보여줌으로써” 33 양자를 극복해냈다는 것이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을 통해 사변이성의 영역에서 신의 현존 여부에 관한 자명한 증명의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실천이성의 영역에서 신의 현존에 대한 윤리적 신앙의 필연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34 35
따라서 라인홀트는 야코비(Friedrich Heinrich Jacobi)가 주장하는 “이성과 신앙 사이의 모순이 결정적이다.”라는 주장을 배격하고, 종교를 윤리 위에 근거지음으로써 36 이성과 종교 사이의 조화를 추구한다. 고로 종교와 윤리를 실천이성의 영역에서 필연적으로 통일시키고, 이를 다시 사변 이성의 근거로 삼는 조화로운 체계에 대한 욕구는 그에게 있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칸트와 라인홀트 사이의 결정적 차이가 드러난다 하겠다. 칸트가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라는 목표에 맞추어 엄격한 주저함을 추구했던 반면, 라인홀트는 “신앙과 이성 사이의 조화를 어떻게 이루어낼 수 있는가?”라는 명료한 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것이다. 따라서 라인홀트는 칸트가 주저할 수밖에 없었던 지점들을 체계의 요소로 단순화시켜 배치함으로써 비판의 정신으로부터 멀어지는 실책을 저지른다. 37
라인홀트의 첫 번째 문제점은, 칸트가 미정의 상태로 남겨 두었던 물자체(Ding an sich)를 촉발자로서 설정하는 뜻밖의 일의성에 있다. 칸트에게 있어 물자체의 개념은 실무한과 마찬가지로 논리적으로 상정될 수 있으나 구성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사변 이성의 영역에서 전혀 알 수 없는 대상이다. “실재적 물자체가 촉발자인가?”라는 질문은 사변 이성의 한계 너머에 있기에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반면에 라인홀트는 물자체를 그의 체계 내에서 분명하게 위치시킴으로써 슐체 등의 비판을 자초하게 된다. 38
라인홀트가 칸트 철학을 체계화하면서, 일체를 형식과 질료의 이원론으로 구분한 것 역시 또 하나의 실책이라 할 수 있다. 그 까닭은 위에서 본 것처럼, 칸트의 선험론적 철학의 핵심이 공간이나 시간 표상 같은 형식의 해명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선험적 표상들이 경험적 표상들과 어떻게 선험적으로 관계 맺을 수 있는지에 관한 그 39가능성의 해명에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라인홀트를 통해 칸트를 수용했던 일군의 회의론자들-슐체와 마이몬은 흄의 관점에 서서 칸트 철학을 다시 독단론적 철학으로 규정하기에 이른다. 이들의 비판은 대체로 라인홀트에게는 적중하였으나, 칸트에게는 적중하지 못하였다. 이는 다음에 살펴볼 슐체의 비판을 해명하면서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3. 슐체 - 근대의 아이네시데무스
슐체는 1792년 익명으로 『아이네시데무스 혹은 예나에서 라인홀트 교수가 제시한 요소 철학의 근본에 관하여: 이성 비판의 월권에 대항하여 회의주의를 변호하면서』라는 작품을 발표한다. 이 글은 헤르미아스와 아이네시데무스라는 두 인물이 주고받는 다섯 통의 편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슐체는 여기서 퓌론주의자인 아이네시데무스의 입을 빌려 자신의 입장을 말하고 있다. 40 41
슐체는 칸트의 비판 철학이 흄의 회의주의를 극복하기는커녕 오히려 독단론의 또 다른 형태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슐체는 여기서 크게 두 명의 철학자의 입장에 서서 논의를 전개하고 있는 셈이다. 이 둘은 각각 고대의 회의주의자인 아이네시데무스와 근대의 회의주의자인 흄이다.
아이네시데무스는 최초의 퓌론학파 회의주의자로, 그의 방법론은 다음과 같다. 먼저 현상들과 사유들을 대립 가운데 둔다. 이는 여러 현상 또는 사유 사이에서 등치(isostheneia)를 일으킨다. 회의주의자는 여기에 대해 판단 유보함으로써 평정을 찾고 현상에 맞추어 자신의 삶을 꾸릴 수 있다. 42 슐체는 이러한 아이네시데무스의 회의주의 논변을 가져와 흄의 회의주의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성공적으로 논박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43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역시 1820년 발표한 「회의주의와 철학과의 관계. 회의주의의 다양한 변종들에 대한 서술 및 고대 회의주의와 최근의 회의주의와의 비교」라는 논문에서 슐체의 회의주의를 ‘가장 조악한 독단주의의 하나’라고 공격하고 있다는 점이다. 44 결국 회의주의자인 슐체와 반회의주의자인 헤겔은 모두 아이네시데무스의 이해에 있어 발생한 차이를 통해 서로의 입장을 공격하고 있는데, 이는 철학적 회의주의에 대한 이해가 이 논쟁의 핵심이 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45
칸트는 실제로, 『순수이성비판』에서 회의주의와 회의적 방법(die skeptische Methode)을 구분한다. 회의주의는 “확실한 지식을 확보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완전히 제거하고, ‘모든 인식의 토대를 전복시키는 기술적이면서 학문적인 무지의 원리이다.’” 46그러나 이런 무지가 과도할 경우 그것은 지성의 불신에 머물러 지성과 월권적 이성 사이의 차이를 무시해버리고 만다. 반면에, “회의적 방법은 근거들과 이에 대립하는 반대 근거들 모두 동등한 힘을 갖게 만드는 것이다.” 47 이는 신이나 영혼의 불멸 같은 형이상학의 세계와 관련한 독단적 주장에 대해, 그와 동등한 힘을 갖고 있는 반대 명제를 내세움으로써 판단을 유보하도록 만든다. 48 칸트는 특히 이율배반에 관한 논의에서 이를 활용하며, 회의적 방법이야말로 비판철학에 유용하며 합목적적이라고 주장하는데 49, 이는 실제로 아이네시데무스가 사용했던 등치(isostheneia)의 원리와 동일한 것이다. 고로 이제 칸트와 슐체에게 있어서, “누가 더 아이네시데무스를 적법하게 사용하고 있느냐?”라는 문제가 해명되어야 한다. 50
슐체는 “직접적으로 의식 자체 안에 나타나고 의식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회의주의자는 의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자신을 아이네시데무스의 계승자라 자처한다. 이는 또한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인상(impression)을 모든 인식의 첫 번째 토대로 삼는 흄의 방법론과도 닮아있다. 고로 슐체는 현상 자체를 의심하지는 않되, 현상에 대해 주어지는 일체의 설명을 의심한다. 51 이제 슐체는 칸트의 비판 철학을 흄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논의한다. 슐체는 칸트의 필연적이면서 종합적인 판단이 있다는 주장, 또 이 판단이 선험적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인다. 52 그러나 슐체는 이 능력의 유래가 칸트가 주장하는 것처럼 마음의 능력이라는 주장에 대해서 부정한다. 왜냐하면 슐체는 칸트가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필연적이고 종합적인 판단을 도출하지 않고서는 어떻게 이런 판단들이 가능한가를 우리 자신이 표상하거나 사유할 수 없다는 사실로부터 그것들이 실제로 마음에서 기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추론하고 입증하였다” 53고 여기기 때문이다. 54
비판은 우리가 단지 표상능력을 이런 판단들의 근거로서 사유할 수 있을 뿐이라는 사실로부터 마음은 현실적으로도 이런 판단들의 근거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추론함으로써 [마음이 필연적이고 종합적인 판단들의 원천이라는] 주장을 감행한다. 55
그러나 슐체에 따르면 이는 오도적인 추론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대상이 우리의 수동적 표상 능력을 촉발하면, 이것이 곧 우리로 하여금 변화될 수 없는 특정한 관계로 파악하게 한다고 생각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흄은 이미 우리가 외부의 대상들을 지각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연관된 지각들의 다발에 관한 어떤 관계를 획득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 바 있다. 56 고로 “지각을 제외한 그 어떤 존재도 마음에 현존하지” 57 않는다. 58
이제 우리는 표상들 이외에 더 이상 어떤 것도 직접적으로 지니지 않으며, 한갓 그것들을 의식할 뿐이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사유하는 등의 사물들은 그 자체 우리 마음 안에 직접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그 사물들에 대한 표상일 뿐이다. 59
모든 의식은 단순히 우리 자체 안에서 일어나는 사실만을 포함한다. (...) 우리는 의식 밖에 그리고 우리 밖에 존재하고 있다고 하는 것에 관해 어떤 낌새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60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는 현존하는 표상들로부터 표상 외부의 객관적이고 실재적인 것의 추론을 감행한다. 그러나 표상과 표상 외부의 것 사이의 일치를 결정할 수 있는 어떤 이론도 회의주의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에 칸트의 비판 철학은 다시 독단론으로 떨어지고 만다는 것이 슐체의 비판이다. 슐체는 칸트가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petito principii)에 빠져있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61 62
그러나 슐체의 아이네시데무스는 고대의 아이네시데무스의 회의를 정말 적법하게 계승하고 있는가? 슐체의 아이네시데무스를 이용한 회의론은 “직접적으로 의식 자체 안에 나타나고 의식에 의해 주어지는 것의 확실성”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아이네시데무스의 텍스트를 면밀히 살펴볼 경우, 슐체의 아이네시데무스에 대한 어떤 오해가 드러난다. 63
아이네시데무스는 그의 유명한 10가지 논변 형식(Ten Modes), 즉 트로포이(Tropes)를 발전시켰는데, 이는 대략 다음과 같다. 64
10-1:
동물 종 사이의 차이를 기반으로 하는 대립에 관한 논변
대립을 상충하는 현상에 의한 것으로 보는 해석
Confliciting Appearances Interpretation
X는 A라는 동물종(이를테면 인간)에게 F로 현상하며, B라는 동물종에게 F*로 현상한다(여기서 F와 F*는 대립하거나 양립 불가능한 속성을 말한다.)우리는 X가 정말로 어떠한지를 판단할 수 없다. 우리 자신이 논쟁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65
제10의 트로푸스는 가령 가벼움과 무거움, 강함과 약함, 크고 작음, 위와 아래 간에 맺고 있는 상호 관계에 의존한다. (...) 이와 유사하게 아버지와 형제도 상대적인 항이다. 66
이에 따르면, “판단되는 대상은 그것과 함께 관찰되는 것들과 관계를 맺을 뿐 아니라 (그것을 판단하는) 판단 주체와도 관계를 맺기 때문에, 모든 사태란 상대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아이네시데무스는 사태에 대한 진리를 찾으려는 작업을 독단론으로 규정하고, 판단을 유보한 뒤 현상에 대한 관찰에 만족한다. 따라서 슐체가 이해한 것처럼 아이네시데무스가 현상을, 즉 의식에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표상의 확실성을 회의의 근거로 삼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이네시데무스는 직접적인 현상을 부인하지는 않으나, 그것에 대한 참된 본질을 주장하는 모든 논의를 독단론으로 치부한다. 따라서 이 논변은 우리가 67현상들을 넘어설 수 없음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고로 우리는 “‘어떻게 사물들이 나타나는가’에 관해서는 말할 수 있지만, ‘그것들이 정말로 어떻게 존재하는가’에 관해서는 결코 말할 수 없다.” 68
이렇게 하여, 아이네시데무스의 회의주의 논변은 슐체의 것 보다는 오히려 칸트의 철학과 유사하다는 것이 밝혀진다. 슐체가 우리의 의식에 직접적으로 현존하는 표상을 확실성의 토대로 삼아 칸트를 공격하는 반면, 아이네시데무스에게 있어 감각은 어디까지나 가상으로서 불가피하게 받아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겔은 “[고대] 회의주의자들은 모든 지각이 부정할 수 없는 확실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한낱 가상으로 선언하였다.”고 서술한다. 69 다음의 글에서 헤겔은 결정적으로 슐체와 아이네시데무스 간의 차이를 드러낸다. 70
그러나 본래의 회의주의라는 것은 지성이 붙잡은 모든 고정된 것에 대한 절망을 의미한다. (...) 이것이 말하자면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에게서 서술되었던 고차원적인 고대의 회의주의이다. (...) 이 높은 고대의 회의주의를 앞에서 기술한 비판 철학 이전이나 비판 철학 이후에 나온 근대의 회의주의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근대의 회의주의는 단지 초감성적인 것의 진리성과 확실성을 부인하는 데 반해 거꾸로 감성적인 것과 직접적인 감각에 현존하는 것을 우리가 견지해야 하는 것으로서 기술하기 때문이다.[각주:71]
따라서 아이네시데무스에게 있어 슐체의 회의론은 다시금 독단론으로 떨어지고 만다. 왜냐하면 “슐체의 회의주의는 철학적 체계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철저히 의심하지만 일상적 지식에는 회의를 적용하지 않는 데 반해, 고대의 아이네시데무스는 철학적 체계뿐만 아니라 (...) 일상적인 삶의 영역인 현상에 대해서도 무제한적으로 의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부정할 수 없는 의식의 사실이 있다는 믿음을 기초로 하여 회의하는 슐체의 근대적 회의론은 그가 아이네시데무스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결국 퓌론주의에 대한 흄의 극복이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오히려 아이네시데무스를 적법하게 계승하고 있는 사람은 칸트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칸트는 “회의적 방법을 통해 사물 자체의 본성에 대해서는 참된 지식을 획득할 수 없다는 퓌론주의의 충실한 계승자” 72이기 때문이다. 물자체에 대한 칸트의 판단유보는 그가 “불분명한 어떤 사태에 대해 긍정도 하지 않고 부정도 하지 않음으로써 판단을 중지” 73하는 회의주의자들의 태도를 계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74
칸트는 (슐체가 이해한 것처럼) 지각의 확실성을 기초로 하여, (라인홀트가 이해한 것처럼) 지각 밖에 있는 형식이나 촉발자로서의 실재적 물자체에 대해 증명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슐체의 비판은 라인홀트에게 있어 타당할지언정 칸트에게 있어서는 실패하고 있다. “칸트는 분명히 자기의 인식의 ‘가능성의 조건’을 인식의 ‘원인’으로서도 그리고 물자체와 ‘주관 일반’을 경험의 실재 근거로서도 이해된 것으로 인식하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관점에 대해 타당한 지식을 이들 대상에 관하여 가질 수 있다는 칸트의 전략은 오히려 회의주의자들의 회의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미 경험 개념이 가정되어야 하고, 이 경험 개념에는 회의주의자가 의심하려는 바가 전제되어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75 이렇게 칸트는 회의주의에 대해 경험적 반박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회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토대를 공격함으로써 76물음의 성립 가능성을 공박한다.
4. 마이몬의 회의주의와 인과론
마이몬은 슐체의 회의론이 몰고 온 파장 이후의 회의론을 이어 받은 철학자이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슐체가 칸트를 비판했던 명백한 이유는 칸트가 흄의 전제, 즉 인식주체가 사물을 직관할 때, 단지 주관적 상태만을 지각할 수 있다는 관념론적 전제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슐체 그 자신은 헤겔이 비판한 바와 같이 또 다른 독단론에 빠져들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따라서 “마이몬은 의식에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것을 회의주의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슐체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77 78
마이몬의 회의주의의 핵심은 경험에 있어 선험론적 종합에 의한 지식이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사실문제(quid facti)를 비판철학에 적용함으로써, 칸트가 제시한 선험론적 종합의 원리가 감각적 직관에 적용되는 증거가 될 수 있는 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79 칸트는 선험론적 연역(die transzendentale Deduktion)에서, 철학자의 과제를 피고를 기소하려는 (로마법 체계의) 검사가 맞닥뜨릴 법한 과제에 비견한다. 검사는 두 개의 다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80 81
1. 권리 문제quaestio quid iuris
피고가 법을 위배했음을 어떤 권리로 주장하는지에 관한 문제이다. 이는 피고에 대한 기소가 타당한 법적 근거를 갖추었음을 보이는 것과 같다. 이를 보이려면 법규에서 다음과 같은 형식의 명제를 도출해야 한다. '피고가 X를 했다면, 그는 Y라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예를 들어 그가 자신의 것이 아닌 재산을 처분했다면, 그는 절도죄를 저지른 것이다.)
2. 사실 문제quaestio quid facti
피고가 X를 했다는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그가 자신의 것이 아닌 재산을 처분했다는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피고에 대한 소송을 성립시키려면 위의 두 가지가 입증되어야 한다. 피고가 X를 했다는 점이 입증될 수 없다면, 피고가 X를 했다고 추정됨으로써 성립하는 모든 범죄에 대해 그는 무죄이다. 그리고 X를 하는 행위가 Y라는 범죄의 성립 요건이 된다는 점이 법규에서 도출될 수 없다면, 사실 관계가 어떻든, 심지어 피고가 X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아무런 범죄도 저지르지 않은 셈이다. 82
로마법에서 권리문제에 대한 답을 내놓는 논변을 지칭하는 전문적인 법률 용어가 연역(Deduktion)이다. 고로 칸트는 선험론적 연역에서 범주의 사용을 정당화하는 과제를 범주의 선험론적 연역(die transzendentale Deduktion der Kategorien)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범주와 관련한 칸트의 목표는 범주가 경험의 대상에 정당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확립하는 것이다. 83 이는 권리문제에 대한 칸트의 답변임을 뜻한다. 84
이성의 권리문제는, 인간 이성(Vernunft)이 지닌 두 종류의 선험적 형식, 즉 감성(Sinnlichkeit)과 지성(Verstand)을 사용하여 외부 대상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권리 혹은 자격에 대한 물음을 의미한다. 85
그러나 마이몬은 이러한 칸트의 선험론적 연역이 지닌 사실 문제에 대해서 공격을 가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감각에 의해서 나타난 증거들이란 별개의 사건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지속적인 연합들일 것이므로, 이 사건들은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결합들이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마이몬에 의하면 칸트의 선험론적 연역은 여기서 다시 흄이 제기하였던 문제를 부주의하게 전제하는 선결 문제 요구의 오류(petitio principii)를 범하고 있다. 86
칸트적 의미의 경험이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결합”을 뜻하므로, 이 연역에서 가능한 경험은 범주의 적용을 필요로 한다. 칸트에 따르면, 우리가 경험에 관한 인식 능력을 갖는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를테면 “불이 물을 뜨겁게 한다.”는 명제는 필연성으로 주장될 적에, 그것이 언제나 그렇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함축한다. 87 “인과성의 범주 아래에서 시간의 직관 형식들(Anschauungsformen)이 도식론(Schematismus)을 매개하는 유일한 감성적 느낌(einzige sinnliche Empfindung)을 필연성의 목적에 종속시킴으로써 칸트는 인과성을 통해 범주의 실재성(die Realität)을 입증한다.” 88 따라서 범주들은 경험을 가능하게 하므로 실재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가능한 경험은, 흄의 통찰을 따른다면 우연적으로 지속하는 관념들의 연합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범주들은 경험을 통해 실재성을 획득하고, 반대로 경험 명제는 범주들의 기능을 통해 답변되기 때문에, 이는 순환추론에 빠져버리고 만다. 89 90
칸트는 우리가 객관적 경험의 명제들을 갖는다는 사실을 추론함으로써 권리문제에 답변하고자 한다. 그러나 사실문제는 권리문제에 선행하여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과연 객관적인 명제들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의 범주들이 실제로 사용 가능한 것인지에 관한 문제제기 역시 가능해진다. 91
칸트는 실제로 사실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답변을 하고자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개념을 경험과 경험에 관한 반성을 통해 얻어진 방식’은 경험적 ‘사실과 만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칸트는 사실문제의 경험적 연역이 불필요하다고 판단한다. “불이 물을 뜨겁게 한다.”는 명제는 흄에게 있어서 종종 내가 지각했던 경험으로부터 추론된 하나의 결과일 뿐임을 제시한다. 92 다시 말해, 우리가 이 명제를 추론의 필연성 때문에 그렇게 지각한 것은 아니다. 마이몬에 따르면, 이것은 한낱 지각의 연합일 뿐, 지성 판단이 아니다. 93 그러므로 흄은 이 연역의 사실 문제에 대해, 즉 우리가 객관적 경험 명제를 갖지 않으며, 원인-결과의 범주에 의한 실재성을 설명할 수 없었다고 다시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게 된다. 94 95
마이몬은 이러한 이유에서, 판단 형식의 사용이 그 실재성에 있어 의심스럽다고 주장한다. 판단 형식의 사용은 자연의 사태와 관계에서만 효력이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칸트는 이에 대해 우리가 가설적 판단 형식을 실제로 사용할 수는 있으나 명료하게 할 수는 없다고 본다. 우리가 경험 판단을 가진다는 사실의 가능성은 이런 점에서 근본적으로 답변될 수 없다. 왜냐하면 종합명제는 유한한 지성에서 제시된 것이기 때문이다. 96 97
칸트 체계에 있어 직관과 지성은 두 개의 상이한 인식 원천이기 때문에 양자의 종합은 결코 완전히 이루어질 수는 없다. 시간과 공간의 상이한 규정들은 우리 안에서 선험적인 표상들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시간 속에서 규정된 추론에 또한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필연성의 개념을 덧붙일 수 있다. 그러나 직관들이 오성 개념과는 이질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양자의 종합을 실제로 만족스럽게 규명할 수는 없다. 마이몬에 따르면 칸트의 주장은 결국 양자가 선험적이기 때문에 양자가 일치한다는 것이므로, 우리가 규칙에 의한 추론의 필연성이 지각할 수 있을 경우에만, 이 종합은 칸트적 단초를 수행할 수 있다. 98
시간, 공간은 개념뿐만 아니라 또한 직관이기도 하다. 개념들로서 시간․ 공간은 모든 선험론적 인식의 형식이다. 시간, 공간은 대상들 그 자체의 지각에 관한 조건들뿐만 아니라, 그 변화의 지각에 관한 조건들이기도 하다. 이 경우에, 추론은 상호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동종성(die Einerleiheit)에 의한 최대치(das Maxium)의 법칙과 비시간적 단일성의 관계를 통해 나타난 객관적 법칙이 시간적 추론의 근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객관적 법칙은 기본요소들(die Elemente) 혹은 객체들에 의한 미분들(die Differentiale)의 관계를 규정한다. 99
라인홀트가 생각하는 의미에서의 실재적인 물자체는 인식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사유할 수도 없다. 우리가 사물 그 자체에게 덧붙이는 모든 징표는 의식 속에 정립되어 있고,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물자체가 아닐 것이다. 엄격하게 말해 물자체는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물이 아닌 것”일 것이다. 마이몬은 이것을 수학의 허수에 비유한다. 이에 반해 비판철학으로부터 도출된 물자체는 유리수와 똑같이 실재하는 무리수에 비유한다. 이 무리수가 근사치의 무한 계열의 한계치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 한계 개념으로서의 물자체와 인식 불가능한 비개념 사이의 관계는 √a와 √-a의 관계와 같다. 100
의식에게 주어지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의식과 함께 생산된 것일 수 없다. 그것이 의식과 함께 생산된 것이라면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어진 것은 의식의 요소로 설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주어짐의 조건들은 주관 속에서 일지라도, 자각된 인식의 요소들 속에는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이 조건들은 불완전한 의식 속에서만 놓여 있을 수 있다. 101
이 때, 주어진 것은 주관 속에서 그것의 발생 방식이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은 어떤 것이다. 그러나 의식은 이 불완전성으로부터 아래로 내려가서 절대적으로 주어진 것들, 즉 이 계열의 한계 개념까지 나아갈 수 있다. 따라서 질료는 형식과 똑같이 주관에 속한다. 다만 주관 속에서 그것의 발생을 깨닫지 못할 뿐이다. 102
한편 모든 경험이란 주어짐의 계기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모든 경험은 유한한 지성으로 인해 늘 불완전한 인식에 머물러 있다. 이렇게 하여 마이몬의 회의론은 경험이 결코 보편성과 필연성에 이르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이 명제는 사실 동어 반복적인 명제이다. 왜냐하면 경험은 무한 계열의 성격을 지니며, 따라서 경험이 보편성과 필연성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은 무한 계열이 완전성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 무한 계열의 한계치가 비로소 완전한 또는 합리적인 인식일 것이다. 103
마이몬은 이 점에 있어서 라이프니츠의 철학을 의식하고 있다.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의식은 외부로부터 어떠한 것도 수용하지 않고, 일체의 내용을 표상 그 자체의 무한한 등급으로 산출한다. 고로 마이몬은 주어진 것이 의식을 미분한 것에 불과한 것이라 본다. 미분은 알고 보면 별 것이 아니다. 접선을 구하자는 것이 바로 미분이기 때문이다. 104
대상은 의식 속에서 오로지 의식의 규칙을 쫓아 발생한다. 직관(Anschuung)은 이 규칙을 따르지만 이해하고 있지는 못하다. 반면 사유(Denken)는 이 규칙을 이해하며 완전한 의식은 자기의 규칙에 대한 완벽한 투시가 된다. 이에 따라 대상의 다양성은 그 발생의 특유한 규칙에 의해 일어난다. 이것이 대상이 미분되는 방식이다. 직관은 이것을 완성된 형성물로 파악하지만, 사유하는 의식은 이 형성물을 그것의 발생 방식으로 미분시킨다. 이를테면 직선을 직관은 하나의 그어진 선으로 파악하지만, 개념은 점의 운동으로 파악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개념에 대해 언제나 직관은 이차적인 것이다. 105
마이몬은 공간과 시간에 관한 칸트의 이론이 진리이긴 하지만, 절반의 진리라고 주장한다. 공간과 시간은 직관의 형식이고 직관 그 자체이긴 하다. 그러나 이것이 공간과 시간의 본질의 전부는 아니다. 사유가 이 양자의 고유한 발생법칙을 꿰뚫어 볼 때, 이것은 개념으로 사고될 수 있다. 공간과 시간은 이미 “실재적 사유”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차이성과 다양성의 형식인 것이다. 실재적 사유는 관찰하고 지각하는 사유가 아니라 의식의 모든 불완전성을 감싸고 있는 사유이다. 실재적 사유는 다양함의 종합이자 규정 가능한 것의 규정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실재적 사유 속에는 규정 가능성의 원칙이 존재한다. 106
이리하여, 공간과 시간은 규정 가능한 것의 규정으로서가 아니라, 다만 규정할 수 있는 존재로서 의식된다. 따라서 우리의 의식은 공간과 시간을 더 이상 해체할 수 없다. 공간과 시간에게는 다른 모든 의식의 형식에 앞서서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성격이 부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칸트는 이로부터 공간과 시간의 객관적 타당성에 관한 선험적 연역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이몬은 사유와 직관의 이원성을 다시 원칙적으로 지양한다. 107
그러나 이 지양은 원칙적인 것일 뿐이다. 이 지양은 근본적이고 실재적인 사유에 대해서만 타당하고, 불완전한 의식의 경험적 사유에 대해서는 타당하지 않다. 경험적 사유에는 주어진 것의 가상이 늘 문제시되기 때문에, 이러한 관점에서는 칸트의 이원론이 유지될 수 있다. 따라서 순수한 선험 종합 판단은 오직 수학에서만 가능하다. 수학만이 완전한 인식이다. 108
마이몬은 이로써 흄과 칸트로부터 모두 벗어나게 된다. 먼저 그는 흄의 주장을 따라 인과 추리를 경험적 사실에 대해 적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서 그는 칸트와 함께 경험의 사실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학문적 판단에서의 보편성과 필연성을 보장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있어 선험 종합판단은 순수 수학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입장을 경험적 회의주의라고 부르게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는 슐체처럼 칸트의 전 작업을 독단론으로 비판하지도 않는다. 칸트는 슐체의 주장처럼 마음을 선험 종합 판단의 원인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뉴턴에게 있어 인력은 사물과 사물 사이의 끌어당김의 원인이 아니고, 다만 법칙을 통해서 규정된 보편적인 작동 방식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칸트에게 있어서도 인식의 보편적 작용 방식과 원칙은 그 자체로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순수 이성 비판은 어떠한 존재도 인식의 주관 및 원인으로서 규정하지 않고, 단지 인식 자체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탐구할 뿐이다." 109
이로써 마이몬의 회의주의는 슐체 식의 독단적 경험론으로부터 벗어나, 선험적 회의론으로 넘어가게 된다. 마이몬은 경험적 사실 인식의 객관적 실재성에 대해서만 회의하며, 이것이 완전한 의식이 아니기 때문에,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고 주장할 뿐이다. 무한 지성에게 있어서는 사실을 산출해 낸 선험적 형식들에 대한 완전한 인식이 속하게 될 것이다.
5. 베크의 관점론
칸트 학도였던 베크의 관점론은 위의 두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라인홀트를 비판하면서 시작한다. 칸트 철학에서의 물자체 개념은 체계적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은 반면, 라인홀트는 가상 자체로부터 이론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라인홀트는 표상된 것과 표상 사이의 구별을 주장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의 상호연관을 주장한다. 그러나 의식 바깥과 의식 사이의 이러한 미지의 관계는 그 자체로 라인홀트의 철학이 독단적 실재론으로 빠져버렸음을 의미한다. 110
고로 베크에게 있어 라인홀트의 관점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그는 표상과 대상의 관계를 물자체를 지양시키고 개관을 표상 속으로 합병시킴으로써 이루어내고자 한다. 이에 따라 표상은 근원적이어야 하고, 대상은 산출된 것이어야 한다. 111
따라서 베크는 산출을 자발적 작용으로 파악한다. 의식은 완성된 사실이 아니라, 작용하는 활동성을 가지고 있다. 철학의 최상의 원칙은 이 활동성을 논하는 데 있다. 따라서 유일하게 가능한 선험적 관점은 근원적 표상 작용의 관점이다. 베크는 칸트가 논한 통각의 종합적 통일이 바로 이 관점을 의미한다고 본다. 112
베크는 이를 출발점으로 하여 표상작용의 근원성을 파악하고자 한다. 이곳에 다양한 것들의 근원적 합성이 뿌리박고 있으며, 동시에 개념을 통한 대상의 다양성의 확실성 역시 뿌리박고 있다. 그러므로 직관과 사유는 이곳에서 공통의 원천을 갖는다. 113
베크는 이 주관적 원천으로부터 어떻게 객관이 발생하는가에 대해서는 이론을 제공하지 않는다. 그것은 주관의 산출적 활동의 요청으로밖에 설명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그는 주관이 자기의 대상을 산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에는 주어진 것으로 간주하는 것에 대한 설명 역시 포기하고 있다. 선험적인 것에 대한 그의 개념은 주관주의적으로 기초 지어져 있다. 베크의 의의는 질료와 형상에 대해서 충분한, 그리고 순수한 자발성으로서의 선험적 주관의 해명에 바쳐져 있다. 그의 이론은 이 이상의 어떤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는 않는다. 그는 다만 일체의 내용을 주관의 생산적 기능으로 환원하고자 한다. 114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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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런 우드, 『칸트 입문1: 생애와 선험적 종합 인식』, 번역 김동욱, 김은정, 박준호, 신우승, 차하늘, 전기가오리, 2018, p.36 [본문으로]
- 이 논평은 로크주의 계몽 철학자이자 학술지의 편집자였던 J.G 페더(J.G. Feder)가 과하게 수정한 원고였다. 이에 관한 내용은 앨런 우드, 『칸트 입문1: 생애와 선험적 종합 인식』, p.36 참고. [본문으로]
- 임마누엘 칸트, 『학문으로 등장할 수 있는 미래의 모든 형이상학을 위한 서설』, 번역 김재호, 한길사, 2018, p.29 [본문으로]
- 앨런 우드. Ibid. p.4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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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비드 흄,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1 오성에 관하여』, 번역 이준호, 서광사, 1977, p.25 [본문으로]
- Ibid. [본문으로]
- Ibid. p.26 [본문으로]
- 임마누엘 칸트, Ibid. p.24 [본문으로]
- 임마누엘 칸트, Ibid. [본문으로]
- 스테판 쾨르너, 『수학철학』, 번역 최원배, (주) 나남, 2015, p.41 [본문으로]
- Ibid. [본문으로]
- Ibid. p.42 [본문으로]
- Ibid. p.45 [본문으로]
- Ibid. [본문으로]
- Ibid. p.44 [본문으로]
- Ibid. p.45 이에 대한 칸트의 논의는 『판단력비판』, 번역 백종현, 아카넷, 2009, p.261-262 참고. [본문으로]
- 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비판, A42= B59-60, 번역 백종현, 아카넷, 2006, p. 262 [본문으로]
- 김윤구; KIM, Y. K. 라인홀트 철학의 출발점에서 칸트의 영향. 대동철학, [s. l.], Vol. 21, p. 95-116, 2003. Disponível em: p.96 [본문으로]
- op. cit. p.103 [본문으로]
- op. cit. p.104 [본문으로]
- op. cit. p.106 [본문으로]
- op. cit. p.112-113 [본문으로]
- op. cit. [본문으로]
- op. cit p.111 [본문으로]
- 니콜라이 하르트만, Ibid. p.42 [본문으로]
- Ibid. [본문으로]
- 황설중. 슐쩨의 회의주의와 퓌론주의 : 근대의 아에네시데무스 대(對) 고대의 아에네시데무스 / Schulze’ Scepticism and Pyrrhonism: Modern Aenesidemus versus Ancient Aenesidemus. 철학 / Korean Journal of Philosophy, [s. l.], 83: p.115-142, [s.d.]. [본문으로]
- op. cit. p.117 [본문으로]
- Vogt, Katja, 『고대 회의주의』, 스탠퍼드 철학백과, 번역 김은정, 박승권, 신우승, 윤영경, 정해민, 한창욱, 전기가오리, 2018, p.59 [본문으로]
- Ibid. [본문으로]
- op. cit. p.120 [본문으로]
- op. cit. [본문으로]
- op. cit. p.121 [본문으로]
- op. cit. [본문으로]
- op. cit. p.122 [본문으로]
- op. cit. [본문으로]
- op. cit. [본문으로]
- op. cit. p.123 [본문으로]
- op. cit. p.124 [본문으로]
- op. cit. p.127 [본문으로]
- op. cit. p.128 [본문으로]
- op. cit. p.127-128 [본문으로]
- 김미영, 칸트의 선험적 관념론에 대한 슐쩨의 비판, 철학연구 제41집, 1997.12, 45-67 (23 pages) p.55 [본문으로]
- 황설중, op. cit. p.128 [본문으로]
- op. cit. [본문으로]
- op. cit. [본문으로]
- op. cit. p.129 [본문으로]
- op. cit. [본문으로]
- op. cit. [본문으로]
- op. cit. [본문으로]
- Vogt, Katja, Ibid. [본문으로]
- Ibid. p.60 [본문으로]
- op. cit. p.130 [본문으로]
- op. cit. p.131 [본문으로]
- op. cit. p.132 [본문으로]
- op. cit. [본문으로]
- op. cit. p.130 [본문으로]
- op. cit. p.134-135 [본문으로]
- op. cit. p.135-136 [본문으로]
- op. cit. p.138 [본문으로]
- op. cit. p.139 [본문으로]
- 니콜라이 하르트만, Ibid. p.46 [본문으로]
- 앨런 우드, Ibid. p.84-85 [본문으로]
- 권기환 ( Ki Whan Kwon ). 2013. 마이몬에 있어서 회의주의와 인과성 -『선험론철학의 시도』에서 인과론에 관한 논의를 중심으로-. 칸트연구, 31(0) : 1-40 p.3 [본문으로]
- op. cit. p.5 [본문으로]
- op. cit. p.6 [본문으로]
- op. cit. [본문으로]
- 앨런 우드, p.106-107 [본문으로]
- Ibid. [본문으로]
- Ibid. p.108 [본문으로]
- Ibid. [본문으로]
- 진은영,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 그린비, 2004, p.106 [본문으로]
- op. cit. [본문으로]
- op. cit. [본문으로]
- op. cit. p.7 [본문으로]
- op. cit. [본문으로]
- op. cit. [본문으로]
- op. cit. [본문으로]
- op. cit. [본문으로]
- op. cit. p.8 [본문으로]
- op. cit. [본문으로]
- op. cit. [본문으로]
- op. cit. [본문으로]
- op. cit. p.9 [본문으로]
- op. cit. [본문으로]
- op. cit. [본문으로]
- 니콜라이 하르트만, Ibid. p.50 [본문으로]
- Ibid. [본문으로]
- Ibid. [본문으로]
- Ibid. [본문으로]
- Ibid. p.50-51 [본문으로]
- Ibid. p.51 [본문으로]
- Ibid. [본문으로]
- Ibid. p.52 [본문으로]
- Ibid. [본문으로]
- Ibid. p.53 [본문으로]
- Ibid. p.57 [본문으로]
- Ibid. [본문으로]
- Ibid. [본문으로]
- Ibid. p.58 [본문으로]
- Ibid.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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