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 서양고중세철학
<중세철학 사상가 및 기독교 관련 인물들>
예수 그리스도(Iesüs Christus) (B.C.4-29)
베드로(Petrus/Πέτρος) (1-66)
사도 바울(Παυλος) (5? -64,68)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
보에티우스(Boethius) (485-526)
위-디오니시우스(Psendo-Dionysius Areopagita) (6c)
캔터베리의 성 안셀무스(Anselm Cantabury) (1033-1109)
페테르 아벨라르(Petrus Abaelardus) (1079-1142)
알베르트 마그누스(Albertus Magnus) (1206-1280)
토마스 아퀴나스(Aqunos) (von Aquin) (1225-1274)
요한네스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1266-1308)
마이스터 에크하르트(Meister Eckhart) (1260-1328)
오캄의 윌리엄(William of Ockham) (1288-1347)
쿠에스의 니콜라스(Nikolaus von Kues), 쿠자누스(Nicolaus Cusanus , 1401-1464)
<아랍 철학(헬라어-> 아라비아어-> 라틴어)>
알파라비(Al- Farabi) (-950)
아비센나(Auicenna) (Ibn sina, 980-1039)
아베로에스(Averoes) (Ibn Ruslid, 1126-1198)
<유대 철학>
모에스 마이모니데스(Moses Maimonides) (-1204)
<중세 철학 연구자들>
Kunt Flash
Richard Heinzmann(이상 독일)
Etienn Gilson(이상 프랑스)
<역사적 사건들>
로마서(56-57?)
고린도전서(55-56?)
고린도후서(56?)
갈라디아서(53-56?)
마태복음/마가복음(70?)
요한복음(90?)
누가복음(80-85?), 사도행전(100?) (동저자로 추정됨)
밀라노 칙령(313) -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공인(관용령)
제 1차 니케아 공의회 (325) - 아리우스파가 이단으로 규정, 삼위일체론 확립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
테오도시우스 1세의 국교 선포(392)
서로마 제국 멸망(476)
성상 파괴령(726)
1. 신과 존재 사이의 긴장
2. 이성과 지성, intellectus ratio 의 의미
3. 신적 지성과 인간의 이성 사이의 관계
이러한 물음들이 중세 초기를 지배했던 문제들이다. 이들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신플라톤주의의 사유 틀 안에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했다. 플로티노스(Plotin), 프로클로스(Proklus)는 중세에 고대철학을 전파하였으며, “Enneades”를 통해 중세에 고대철학을 전파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저작들은 곧바로 중세 사회에 전파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아랍 철학계로 전파되었다가 재번역되어 역수입된 것이다. 고로 “Liber de causis”같은 저작들은 아라비아 텍스트로 쓰였다가 라틴어로 번역되었으며, 이슬람 세계의 철학에서는 이 시기에 이미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이 아라비아어로 완역되어 있었다. 고로 이들이 책을 번역하면서 남긴 해제 및 주석 역시 중세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 성모 마리아에 대하여, 하느님의 어머니란 뜻의 테오토코스(Theotokos)를 주장한 알렉산드리아 학파와, 단순히 인간 예수를 낳은 안트로포토코스(Anthropotokos) 혹은 그리스도의 어머니란 뜻의 크리스토토코스(Christotokos)를 주장한 안티오키아 학파의 대립을 해결하기 위해 테오도시우스 2세가 개최한 공의회. 알렉산드리아의 총주교 키릴루스와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대주교 네스토리우스의 논쟁은 안티오키아 학파의 패배와 네스토리우스의 파문으로 결말을 맺는다. 네스토리우스의 사상은 후에 네스토리우스파로 이어진다. [본문으로]
-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분리되지 않는다.”는 칼케돈 신조를 선포하고, 테오토코스(Theotokos)를 정통 교리로 재확인함으로써, 단성론과 네스토리우스파를 이단으로 단죄하였다. [본문으로]
- 단성론(Monophysitism)이란,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이 겸재(兼在)할 수 없으며 신성 아니면 인성, 둘 중 하나만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자 에우티케스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이 융합되었으며, 포도주가 바다에 빠지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 인성 역시 신성 안에서 사라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본문으로]
- 동로마제국의 황제 레오 3세가 신학상의 이유와 정치적 목적에서 교회 내 성상 파괴를 명한 사건. 그리스도를 형상으로 묘사할 수 없다는 주장은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으로 강림했다는 것을 의문시하는 불경스런 생각이라고 여긴 교황청과 당시 교황 그레고리우스 2세(715~731)는 우상파괴령에 불복하면서 로마와 비잔티움 사이를 결정적으로 갈라놓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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