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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민 (2014) 탈북 여성은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텔레비전 토크쇼 <이제 만나러 갑니다>(채널 A)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중심으로

Soyo_Kim 2024. 12. 1. 14:48
 

이선민. (2014). 탈북 여성은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 텔레비전 토크쇼 <이제 만나러 갑니다>(채널 A)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중심으로. 미디어, 젠더 & 문화, 29(2), 75-115.

Sun-Min Lee (2014). How Can North Korean Women Defectors Speak? : A critical analysis of television talk show <Now, Going To Meet>(Channel A). Media, Gender & Culture, 29(2), 75-115.

 

1. 들어가며

탈북자들은 노인, 장애인, 동성애자, 이주 노동자 등과 같이 우리 사회 주류로부터 배제되고 정상성의 기준에서 벗어나 있는 소수자이자 타자이 다. 이들은 그동안 텔레비전 미디어에서 나오는 일이 흔치 않았는데, 종 합편성채널의 출현은 그러한 현실을 변화시켜 놓았다. 종편채널은 이전까 지 지상파채널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범주의 사회집단, 즉 탈북자, 퇴역 군인, 은퇴 정치인 등을 이른바 ‘정치평론가’들과 더불어 중요한 정치적 발화자로서 다양한 시사와 토크 프로그램 안에 편입시켰다. 일종의 ‘반북 세력’, ‘극우성향의 보수세력’을 대변하는 집단이 그렇게 미디어 공론장의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이다. 탈북자들은 이러한 맥락에서 일정한 공적 가시 성과 발언권을 확보한 것처럼 보인다. ‘채널A’의 토크쇼 <이제 만나러 갑 니다>는 이와 같은 현재 방송계 흐름의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나름대로 내용과 형식상의 차별성을 띠는 프로그램이다. ‘남북 소통 버라이어티’를 표방한 이 프로그램에서는 탈북 여성들이 개인적인 경험을 매개로 북한 사회 전반의 현실과 문제점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 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탈북자 집단을 ‘대표해’ 북한 사회에 관해 말하는 주체가 다름 아닌 젊은 여성들이라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타자이자 이중 적인 차원에서 소수자라 할 수 있는 탈북 여성들이 이처럼 텔레비전에서 공식적인 발언의 기회를 얻고 적극적으로 재현되는 현상은 신중하고도 정교한 해석을 필요로 한다. [76-77]

그들에 대한 남한 내에서의 법적⋅사회적 호칭 또한 1980년대의 ‘귀순영웅’에서부터 ‘탈북자’, ‘새터민’, ‘북한 이주민’, ‘북한 이탈주민’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변화를 겪어왔다(오원환, 2011). 이러한 용어들에서도 어느 정도 드러나듯, 분단의 정치상황에서 탈북자들의 정체성은 일반적인 이주민들과 달리 강력한 정치성을 부여받는다. 즉 북한으로부터의 ‘귀순’, ‘이탈’은 분명한 이데올로기적 함의를 지니는 정치적 행위로 해석되는 것이다. 이는 냉전의 대립구도 속에서 남한이 북한 주민들의 이주라는 사건 을 체제 경쟁에서의 승리와 성공의 상징으로 간주했던 사실과 관련된다. 미국과 일본 또한 그것을 이용해 서방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과시하 고자 했다. (물론 북한과 구공산권에서도 남한 주민들의 이주를 마찬가지 방식으로 활용했다.) 특히 탈북은 남한 내 지배적인 반공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면서 그 자체 반북으로, 또 반북은 곧장 남한 체제에 대한 승인이나 강한 지지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한의 탈북자들은 자신 의 정체성을 때로는 모순적으로 규정짓는 복합적 권력관계 속에 놓인다. 그들은 북한에서의 체험을 자원 삼아 반공 강연이나 증언을 하면서 정치 적 망명자로 환대받는 한편, 현실에서는 가난한 이주민으로서 식량난과 인권 탄압을 피해온 불쌍한 사람들로 여겨진다. 더욱이 탈북자들은 결혼 이주여성들처럼 주류 문화의 수용을 요구받는다. 그들은 남한 중심주의에 근거한 동화(assimilation) 과정에서 ‘바람직한’ 남한 시민이 되기 위해 자신 에게 남아있는 북한의 정치적, 문화적 흔적을 지워야만 한다. 탈북자들은 ‘단일민족’ 담론 내에서 같은 역사와 종족성의 담지자로 표상되지만, 동시 에 ‘열등한 체제’에서 살아온 과거를 지녔다는 점에서 다시 사회화되어야 하는 존재로 간주되는 것이다(Choo, 2006; Chung, 2008). 이와 같은 대상화는 나와 다른 집단의 구성원들은 동일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과잉일반화로 이어지고(Tajfel, 1970), 탈북자 전체를 기아와 폭압적 정치체제의 피해자나 희생자로만 단순화하는 경향과 연결된다. 단일한 이미지화는 탈북 자들의 다양한 행위 주체성의 맥락을 지워버리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79-80]

 

2. 공적 영역에서 탈북자와 탈북 여성의 말하기

공적 영역에서 말하기의 경험은 사회의 공적 주체가 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탈북자 자신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대개 탈북자들은 경험을 말하는 과정에서 때로는 희생자가 때로는 정치적 투사가 된다. 보 통 탈북자들이 북한 정권을 강도 높은 비난하는 것은 ‘생존자’로서 북한 주민들의 어려움을 알리기 위해 말을 하거나 정체성에 대한 의심을 피하 기 위한 목적에서다(이새롭, 2002b; 조영주, 2004a 재인용). [83]

그렇기 때문에 탈북자의 증언을 객 관적으로 받아들이려면 증언이 누구에 의해 사용되는지, 어떤 맥락에 놓 여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정치적 대립 상황에서 개인의 발언은 개인 차원에서 머무르지 않는다(조영주, 2004b). 이를 감안할 때 공적 공 간에서 북한에서의 경험과 체제를 일관되게 부정⋅비판하는 것은 남한 국민의 일원이 되기 위한 노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 탈북자들은 북한 주 민으로 존재하기를 그만두는 조건에서 국민, 그 사회의 정식 일원으로 받 아들여질 수 있다. ‘탈북’을 ‘반북, 친남한’으로 해석하는 한국의 상황에서, 비교적 손쉽게 일원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남한의 주류 규범 과 가치를 적극적으로 따르는 것일 것이다 [84]

 

3. 말하기를 통한 탈북 여성의 위치 짓기

프로그램 초기에는 생활, 문화, 교육 등 일상적 주제가 다뤄졌으나 후반 부로 가면서 ‘이만갑에서 단독 입수한 김정은 정권 출범 2주년 성적표’, ‘탈북 미녀들이 밝히는 북한의 아킬레스건’(109회), ‘김부자의 장수비결’(110 회), ‘2014 탈북의 변화’(111회), ‘북한의 벼랑 끝 외교’(113회), ‘북한의 납치 와 암살 3대 미스터리’(115회) 등의 체제 비판적인 주제가 전면에 등장한 다. 또한, 정치와 무관한 일상적 경험들이나 주제도 대체로 부정적으로 다 뤄진다. 프로그램 내용의 상당 부분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등 북한 지도 자와 체제에 대한 비판이다. 정치적 비판은 ‘무법천지’, ‘돈이면 다 되는 사회’ 등과 같은 북한 사회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사치품과 여자를 밝히 는’ 김정일-김정은 부자에 대한 원색적 비난 그리고 북한 지도자의 저격 상황을 ‘거사’라 말하는 체제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까지 포함한다. [98]

탈북자들이 북한을 떠나 중국이나 한국에 머무는 이유는 다양하다. 체 제 문제로 탈북하는 경우도 있지만 ‘외상값을 받으러’, ‘장사하러’, ‘돈을 벌기 위해’, ‘친구 따라서’, ‘아는 사람에게 팔려서’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오는 경우도 상당하다. 그러나 체제 비판적인 프로그램 분위기 속에서 여 성들의 탈북은 실제 목적과 관계없이 “지긋지긋하고 숨 막히는 감시를 뚫 고 자유와 인권을 찾아서 이곳에 정착하신 여러분들은 행복해질 권리가 있습니다. 지금 어디선가 자유를 찾아서 헤매는 많은 분들에게 인권과 자 유가 허락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67회, 사회자)라는 표현처럼 ‘인권과 자유’를 추구하는 적극적인 정치적 행위로만 해석된다. [100-101] 정치적 목적 없이 북한을 나오는 ‘탈북’도 반북으로 해석하고, 반북은 ‘친남(親南)’으로 해석 된다. ‘친남’은 북한을 모든 것을 부정하는 주류 이데올로기의 다른 이름 이다. 이를 통해 탈북자들은 소극적으로는 체제의 희생자, 적극적으로는 정치적 망명자로 해석된다. 이런 해석 속에서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전 혀 다른 경험들을 공유하고 있는 탈북 여성들은 북한에서 모든 것을 빼 앗긴 체제의 희생자, 정치적 망명자로서 동질화된다 [101].

북한에 대한 비판적 발언은 의미있게 다뤄지고, 여성들은 공적 체제와 권력에 대해 비판함으로써 정치적 주체로 부상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 제 또는 개방된 남한 사회에서 여성들은 미숙하고 열등하고 일탈적인 존 재로 나타난다. 사회⋅경제⋅문화적으로 다른 경험을 한 여성들은 법적 ‘국민’이 되었지만, 이것만으로 한국 사회의 편입이 충분하지 않다. 여성 들은 진정한 한국 국민이 되기 위해 자본주의와 서구식 생활에 익숙한 문화 시민이 되어야 한다(Chung, 2008). [102]

여성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규범과 질서에서 벗어난 이등 시민의 자리에 놓인다 [103]

남한은 무조건 오기 잘한 곳이고, 고마움의 대상이다. 남한 에서의 차별 등의 부정적 경험이나 구조적 문제도 적응이나 극복해야 할 대상이 된다 [106]

탈북 여성의 말하기는 여성이 사적 영역을 통해 정착할 수 있는 남성 중심의 사회와 반공을 지향하는 미디어 기업의 전략 등에 의해 구조화된 다. 이들의 말하기는 기존 소수자의 재현에서 진일보한 듯 하지만 미디어 가 전하려는 반북 이데올로기, 체제 우월주의, 가부장적 분위기를 강화하 는 맥락에서 의미를 지닐 뿐이다 [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