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inental/Kant & German Idealism

헤겔의 역사철학과 근대적 자유의 문제 -계보학적 사유의 철학사적 맥락-

Soyo_Kim 2020. 12. 23. 21:13

2020-2 정치철학연구

 

헤겔의 역사철학과 근대적 자유의 문제

-계보학적 사유의 철학사적 맥락-

 

진보는 대개 그것의 실제보다 훨씬 더 위대하게 보이는 법이다.
-네스트로이[각주:1] 

 

1. 헤겔 사후 지성사에 대한 짧은 스케치 자연적 필연성과 사회적 필연성 -

독일 지성사는 1820-30년대를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아직 날아다니고[각주:2] 있던 시대로 기억한다. 이 기간 동안 헤겔이 철학이라는 학문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그가 시대를 사유에 담아 놓은 것이 철학이라고 말함으로써 역사를 철학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각주:3]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철학자는 이제 더 이상 진공 속에서 사색할 수 없으며, 당면한 문제는 과거의 종합으로, 유한한 정신들에 체현한 우주적 정신의 자기 전개 과정으로 파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각주:4]유한한 정신처럼 절대적 주체는 통일로 복귀하기 위해 분리를 겪어야 하는 원환 과정, 그런 드라마를 통과해야 한다.”[각주:5] 그리고 인간은 이러한 우주적 정신의 담지자로서, 이성적 사유를 통해 그 정신을 보다 명료하게 표현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절대자는 유한한 사물들 안의 모순을 통해 살아간다.”[각주:6]

이러한 방식으로 철학은 헤겔에 의해 두 가지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게 되었다. 한편으로 철학은 정신의 역사 속에서 자신의 시대를 넘어설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 철학은 시대가 늙어가기 시작할 때, 그 시대의 현실적인 내용을 사유 속에서 생산해내는 역할을 맡아야할 뿐이다.[각주:7]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철학은 그저 존재하는 데 불과한 것을 이성과 합치시킴으로써 진정한 현실을 만드는 데 기여해야만 한다.[각주:8] 실제로 맑스와 같은 사상가가 헤겔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도 그의 문제의식을 계승했을 때, 그가 이해했던 헤겔의 철학은 바로 이런 목표를 정당화하기 위한 교두보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역사와 철학 사이의 본질적 관계에 대한 헤겔의 생각은 그의 사후부터 급속도로 거부되기 시작하였다. 19세기 중반부터 대두되기 시작한 심리주의와 20세기 초에 태동한 분석철학은 헤겔의 철학에 명시적으로 반대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일이 전혀 일어난 적 없었다는 듯의 무시로 일관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리고 이들이 헤겔의 이상과는 전혀 무관하게 구축한 독자적인 영역은 비실증주의적인 어리석음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깨끗하고 기능적인 철학이었다.”[각주:9] 예컨대 논리실증주의자인 카르납은 헤겔이 사용하는 절대정신(absoluter Geist), 이념(Idee) 등의 개념들이 의미를 결여한(ohne Bedeutung)’ 사이비 개념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각주:10] 쿠쉬는 이러한 새로운 철학 조류의 전개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1831년 헤겔의 사후부터 독일의 관념론은 급속도로 악평을 받게 되었으며 철학은 자연과학에 의해 지성계에서의 지배적 위치를 상실하였다. 철학은 그 스스로를 새롭게 구축함으로써 변화된 조건에 적응해야만 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수많은 철학자들이 “‘자연주의적이거나 실증주의적(‘naturalistic’ or ‘positivistic’)” 태도, 즉 지식의 이상과 경험과학의 정당화에 대한 관점이 철학에도 마찬가지로 유지될 수 있다는 태도를 채택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다른 한편으로 포이에르바하로부터 맑스와 엥겔스로 이어지는 조류는 발전된 유물론적 철학으로 한걸음 더 나아갔다).[각주:11

물론 헤겔은 이러한 소박한 실증주의를 일상적인 의식의 독단론[각주:12]에 빠진, 반성이 결여된 사유에 불과한 것이라고 공박할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헤겔의 철학은 그를 계승한 철학자들에게서조차 있는 그대로 수용되기보다는 비판과 극복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비판들에 대해서는 크게 다음의 두 가지 방향을 고려해볼 수 있다.

(1) 그의 역사철학이 품고 있던 화해에 대한 비전은 20세기에 들어 두 번의 세계대전과 전체주의에 의한 중대한 도전을 받게 되었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그들의 영향력 있는 저서 계몽의 변증법에서, 헤겔이 탈마법화로서의 계몽이 품고 있는 위험을 통찰하고 계몽의 실증주의적 타락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변증법이라는 사유형식을 고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종국엔 역사의 총체성을 절대화함으로써 신화에 빠지게 되었다고 비판한다.[각주:13] 이것은 계몽과 역사적 진보의 타당성(Gültigkeit)에 대한 본질적 의심이라 말할 수 있다

(2) 이러한 의심을 품지 않았던, 진보의 이념을 확고하게 고수했던 이들에게도 헤겔의 철학은 저항과 변혁이라는 목적에 부적합한 것으로 여겨졌다. 테일러가 올바르게 지적하듯이, 헤겔에게 있어 주체는 정신이므로 화해는 인식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 반면, 유적 인간을 주체로 삼았던 맑스는 이러한 헤겔의 견해를 그저 실천의 결여에 불과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각주:14]

헤겔은 도덕 철학자들이 그저 어떤 제언도 할 수 없을 것이라 주장했다. 말하자면 그들은 언제나 가장 늦게 전면에 등장한다. [...] 반면 맑스는, 세계를 변화시킬 수 없다는 주장이나 사상가들이 언제나 가장 늦게 전면에 등장한다는 생각을 거부한다. 사실 이것은 철학자들이 세계를 해석할 수 있을 뿐이며 [세계를] 변혁시킬 수는 없다는 관점, 즉 그가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11가지 테제에서 비판했던 바로 그 관점을 뜻한다. 반면에, 칸트, J.S. , 그리고 다른 도덕철학자들이 제기했던 전통적인 도덕 이론의 질문들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것에 대한 맑스의 거부는 부분적으로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기인한다: 그는 각각의 개별적인 질문은 사회 체계(social system)와 그에 대한 질문들을 고려하는 것에 비하면 2차적인 것이라 간주했다. 오직 우리가 사회 체계의 본성(the nature of social system)에 대해-그것이 어떻게 도덕적으로 변화될 수 있고 변화되어야만 하는지를- 이해할 때만 우리는 인간과 개별자에 대한 구체적인 도덕적 질문들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각주:15

따라서 헤겔 이후의 도덕 이론은 그의 통찰에 따르는 일련의 사회적 필연성들을 요구한다. 말하자면 자유의 쟁취는 삶의 구체적인 도덕적 물음들이 아닌 사회적 필연성에 대한 물음을 해결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각주:16] 맑스는 이어서 헤겔의 방식이 이러한 쟁취에 있어 부적절한 까닭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자기의식을 가진 인간은, 예를 들어 말하자면, 종교를 지양하고 종교를 자기외화의 산물로서 인식한 다음에도 종교로서의 종교 안에서 자기가 확인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헤겔의 거짓된 실증주의 혹은 겉보기만의 비판주의의 뿌리가 놓여 있다. 이것을 포이에르바하는 종교 혹은 신학의 정립 · 부정 · 회복이라고 표현한 바 있는데, 포이에르바하의 이러한 표현은 보다 보편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성은 비이성으로서의 비이성 안에 안주한다. [...] 헤겔이 철학으로 지양한 현존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인 종교 · 국가 · 자연이 아니라, 오히려 지의 대상으로서의 종교 자체 곧 교의학이며, 법학, 국가학, 자연과학이다. [...] 무신론과 공산주의는 일차적으로 현실적 생성이요, 인간에게 현실화된 인간본질의 실현 곧 인간본질을 하나의 현실적 본질로서 이룩하는 실현이다. [...] [반면 헤겔의 변증법적] 운동은 하나의 추상물이요, 인간적 삶의 소외이기 때문에, 그 삶은 신적인 과정으로서, 인간의 신적인 과정으로서 간주된다.[각주:17]

 

2. 헤겔 이후의 근대적 자유 개념

따라서 우리는 이제 헤겔 사후에 정립된 두 가지 필연성과 근대적 자유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자유가 필연성에 귀속될 때만 진실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 근대성의 두 축은 각각 자연적 필연성과 사회적 필연성을 그 계기로 갖는다.

자연적 필연성에 기초한 자유 개념은 근대 철학의 시조로 평가 받는 베이컨(Bacon)에게서 발견된다. 그에 따르면, 인식은 삶의 개선에 봉사하는 수단이요, 우리는 이를 통해 자연으로 하여금 말을 시키[각주:18]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19세기의 실증주의자들은 베이컨과 흄의 가르침을 충실히 계승하였다. 이들이 믿는 자연적 필연성은 자연과학의 끝없는 진보라는 이상과 함께 형이상학이 오래전부터 해온 구원의 약속을 세속화[각주:19]시킨다. 인간은 무익함과 오류만을 품고 있는 사변 형이상학을 거부하고 세계에 대한 경험적 관찰을 토대로 한 자연과학을 경유함으로써 자연을 통제해야만 한다. 이러한 통제는 인류와 사회의 진보와 더 나은 생활을 약속하기 때문에 기술 시대의 인간은 자연을 계산해낼 수 있는 힘의 연관으로 추적해 닦아 세운다.”[각주:20] 따라서 유물론자들에게 있어 형이상학 자체는 비록 거부될지언정 형이상학이 맡았던 역할은 자연 과학 속으로 무리 없이 이식된다.

다른 한편으로 사회적 필연성은 헤겔 이전의 개별자와 전체의 관계에 대한 세계관(Weltanschauung)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다. 전체는 이제 더 이상 개별자의 총합으로 이해되지 않으며 개별자에 대한 언술은 무의미해져 대상을 잃어버린다. 개별자가 항상 사회적 역사적으로 제한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각주:21]

따라서 근대적 자유 개념은 이제 더 이상 개별자를 중심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자유는 이제 개별자의 입장에서 이런 식으로, 또 이런 대가를 치르면서 통지받지 않으려는 기술[각주:22]로는 이해되지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어떠한 필연성이 자유의 쟁취에 있어서 더 중요한 우위를 차지하는가를 통찰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일이다. 고로 개별자의 실존은 역사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적 필연성과 자연법칙을 기반으로 하는 자연적 필연성 사이에서 빠져 나올 길이 없다.[각주:23] 자프란스키는 두 가지 종류의 필연성이 개별자의 실존을 압도해버린 이러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이 두 필연성 중 어떤 것이 압도적인가를 두고 싸움이 벌어진다. 헤겔과 마르크스는 사회적 필연성이 자연의 필연성을 이길 것이라고 믿는다. 헤겔은 정신이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온다고 말하며 마르크스는 자연 그대로의 성질을 지양하자고 이야기한다. 둘 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자유로 가는 길이라고 여긴다. 양자 모두 자유를 역사의 사회적 산물이라고 이해한다. [...] 기계의 시대가 시작될 무렵 철학은 존재와 자연과 사회의 남아있는 차원들을 일종의 기계장치로 바꾸어서 사유하기 시작한다. [...] 역사의 합법칙성이라는 기계가 방해받지 않고 일하도록 둔다면 승리는 불가피해질 것이다. 방해 요소들은 배제되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런 선언을 민중에게 전달하는 하나의 정당만이 존재해야 한다. [...] 그러나 기이하게도 앞에서는 자유를 관철하려는 의식이 뒤에서는 자유를 대규모로 박탈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의식은 자유를 원하지만 자유롭고 즉흥적이라고 여겨지던 행동이 사회적 혹은 자연적으로 규정된 원인에 의하여 포위되어 있다는 것을 이전과는 달리 아주 정확히 알고 있는 듯하다. 자유를 요구하는 동시에 존재가 필연적임을 학문을 통해 알고 있다는 것, 이것이 근대성이다. 순진한 자발성과 환상이 없는 냉소주의가 희한하게 섞인 것이 근대성이다.[각주:24]

 따라서 개별자의 실존의 자유를 제약하는 근대적 자유 개념은 본질적으로,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의심스럽다. 첫째, 자유가 (역사적이든 자연적이든) 필연적으로 얻어지는 것이라면, 개별자가 어떤 특정한 행위를 의욕하고 선택하는 일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둘째, 진보를 통해 보장된 미래와 개별자가 행위하고 선택하는 현재 사이의 간극은 어떻게 메꾸어질 수 있는가? 개별자가 사회적 혹은 자연적 필연성에 의해 받는 통치의 정당성은 순전히 미래의 약속을 통해 얻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내세의 구원을 약속한 신학의 변형된 형태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이러한 연유로, 자프란스키는 자유를 설명 가능성 안에 위치 지으려는 근대적 이상이 신앙의 세속화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각주:25] 보다 노골적으로 말해,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필연성은 현재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누리는 동시에, 그러한 쟁취가 실패할 때는 손쉽게 미래의 어떤 한 장소로 그것이 져야 할 마땅한 책임을 떠넘긴다는 것이다. “철학적 품격을 새로이 갖춘 사회와 역사의 중간 세계는 한편으로는 진실이 펼쳐지는 장소이며 자유의 성장을 관건으로 삼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유로 인한 파국이 닥칠 경우 이 중간 세계는 부담을 덜어주며 변명을 가능하게 한다.”[각주:26]

 우리는 지금까지 자연적 혹은 역사적 필연성의 진위 여부는 따지지 않고, 그저 이러한 필연성들이 어떤 사고 연관 속에서 그 정당성을 얻게 되었는지를 고찰하였다. 담론이 스스로를 과학이라고 부름으로써 벌이는 각축장은 그러한 담론을 통해 사회가 진보한다는 사고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음으로써 형성된다. 양자는 동일한 수준의 객관적 필연성을 주장하기에, 개별자들은 그것에 규범적으로 지배당할지언정 규범으로부터의 자유를 누리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이제 인간과 개별자에 대한 구체적인 도덕적 질문들이 과연 그 가치에 있어 사회 체계의 본성(the nature of social system)에 대한 탐구에 비해 뒤로 미루어져야 하는 것인지를 숙고해봐야 하지 않을까? “진보적 사유라는 가장 포괄적인 의미에서 계몽은 예로부터 인간에게서 공포를 몰아내고 인간을 주인으로 세운다는 목표를 추구해왔다.”[각주:27] 그러나 이 각축장의 끝에서 우리는 계몽적 사유들의 진리를 향한 투쟁을 넘어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권력효과를 인식한다. “베이컨의 유토피아가 전()지구적 차원에서 실현된 오늘날, 그가 정복되지 못한 자연의 탓으로 돌린 강압의 본질이 명백해졌다. 그것은 지배 자체였다.[각주:28]

 이러한 까닭에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지식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 지식은 자유를 요구하는 동시에 존재가 필연적임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를 경직시키는 사회의 현혹에 맞서 싸워야 한다.[각주:29] 역사에서 특수와 개별성의 범주를 지워버리는 헤겔의 역사철학은 개체와 행위주체의 자유를 소멸시킴으로써 개별자를 경직된 사회의 폭력 속에 노출시키는 위험을 품고 있다.[각주:30] 아도르노는 유사한 방식으로 맑스의 역사철학 역시 비판하는데, 이에 따르면 맑스는 무신론적 헤겔주의자이다.”[각주:31] 맑스는 헤겔의 역사철학을 비판함에도 불구하고, 필연성을 통해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는 근본 기획을 결코 포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아도르노가 보기에 맑스의 역사철학은 헤겔의 세계정신과 마찬가지로 주체를 초월해 보편을 실체화[각주:32]한다는 점에서 개별자의 자유를 제약한다.

 아도르노는 역사와 이성의 신격화에 대한 비판이 여전히, 그것을 잘못된 길로 이끌었던 지식과 반성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는 비판 이론의 주요 기획 중 하나를 푸코에 앞서 선취하고 있다. 권력의 합리화와 개인의 자아 형성의 합리화가 서로 결합되어[각주:33] 있으며, 권력이 개인을 합리화하는 방식은 비판적 사유를 통해 드러날 수 있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아도르노는 이러한 방식의 탐구가 객관적인 절망을 확인하는 데 불과한 것이라 할지라도 허상에 빠져 사는 것보다는 낫다고 주장한다.

겔렌이 아도르노에게 물었다. “우리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겪어야 했던 많은 것들 즉, 원칙적인 문제들과 수많은 반성적 논의들, 그리고 거기에 동반되는 시행착오들을 정말로 모든 사람들이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도르노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답은 간단합니다. , 그렇습니다! 저는 객관적인 행복과 객관적인 절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그들에게 책임과 자기규정을 요구하지 않는 한, 그들이 이 세상에서 누리는 안락함과 행복은 허상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젠가는 드러나게 될 허상이며, 그렇게 될 때는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각주:34]

 

 

3. 계보학적 사유의 가능성

 따라서 계보학은 이제 푸코 그 자신도 지적하듯이 일종의 비판 이론으로 이해될 수 있다. (1) 계보학은 역사를 목적에 따라 움직이는 진보의 장으로 파악하지 않으며, 진흙탕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려는 고통스러운 현실주의를 함축한다. (2) 계보학은 이성과 지식, 반성 등을 권력으로부터 무관한 것으로 파악하지 않고, 오히려 권력과 착종되어 있으며 자아 형성의 합리화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한다고 진단한다.[각주:35] 계보학과 계몽의 변증법은 각각 권력이 과학을 통해 합리화될 뿐만 아니라, 개인이 바로 이러한 척도에 따라 합리화되는 방식을[각주:36] 보여 준다. (3) 계보학은 사회적 진위 구별이 과연 우리 자신을 자유의 주체로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필요치 않은 것인가 하는 점[각주:37]을 고려하며, 이를 통해 주체의 해방을 모색한. 이는 보편성의 우위 아래에서 개별자를 제약하는 헤겔의 역사 철학에 대한 아도르노의 비판과도 상통한다. 푸코는 75-76년도의 강연에서 계보학의 비판적 성격을 보다 명시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계보학은 바로 과학적이라고 간주된 담론에 고유한 권력 효과에 맞서 싸워야만 합니다. [] 당신이 과학이다라고 말한 바로 그 순간에, 당신은 어떤 유형의 앎을 자격 박탈하려 하는가? 당신이 이 담론을 말하는 나는 바로 과학적 담론을 말하는 것이며, 따라서 나는 학자이다.’라고 말하는 바로 그 순간에, 당신은 어떤 말하는 주체, 어떤 담론의 주체, 경험과 앎의 어떤 주체를 소수자화하고 싶은가?[각주:38

그러나 푸코의 계보학은 아도르노의 부정 변증법과 차별화되는 나름의 고유성을 지니고 있다. 계보학은 지식의 진위 여부를 도외시하고 그것이 산출하는 권력의 효과를 다룬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지식의 진위 이전에 그것의 의미의 성립 가능성에 천착했던 초기 분석철학의 문제의식 및 방법론과 닮아 있다. 다른 한편으로 계보학은 권력 효과와 결부된 주체화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와 관점주의 인식론을 주장했던 니체의 영향 아래 있다. 실제로 계보학이라는 용어의 직접적인 근거가 니체의 저서 도덕의 계보학(zur Genealogie der Moral)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볼 때, 사회적 규범(Norm)과 도덕(Moral)으로부터 실존의 미학(Ästhetik der Existenz)과 윤리(Ethik)로 나아가는 푸코의 사유 여정은 주인도덕(Herrenmoral)과 노예도덕(Sklavenmoral)을 구분한 니체 사유의 연속선상에서 고찰될 수 있다.

니체는 도덕의 계보학에서, 노예도덕의 핵심을 "너는 ~을 해야 한다."는 형식에 내재한 절대적 당위성으로 파악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도덕이라 간주되는 것들의 속성을 초월성과 당위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도덕은 기독교의 십계명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그 정당성을 신과 같은 초월자로부터 부여받는다. 십계명은 신의 명령에 의해 보증되고 그러기에 절대적으로 선한 것이다. 둘째, 이러한 명령은 절대적으로 선하기 때문에 모든 도덕적 명제는 당위의 형식을 지닌다. “~을 해야 한다.”, “~을 하지 말아야 한다.”의 명제는 모든 보편적 상황에 적용되는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체가 어떤 도덕을 받아들일 경우 주체는 도덕이 요구하는 바를 거부하거나 선택할 권리를 전연 갖지 못한다. 우리는 도덕이 주체에게 있어 초월적이기 때문에 주체의 외부에 존재하며, 심지어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여전히 의미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니체는 이러한 도덕의 핵심 개념인 선과 악이, 그리스도교의 성립 이후에 등장한 하나의 발명품에 불과한 것이라 주장한다. 고대 그리스에는 (Gut)’(Böse)’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고, ‘좋음(gut)’나쁨(schlecht)’이라는 개념만이 있었다. 다시 말해 고대 그리스에서는 어떤 사람의 긍정적인 가치를 표현하기 위한 개념으로 좋음을 사용하였고, 그것에 대한 결여 내지 부족으로써 나쁨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이다.[각주:39] 이렇게 정도의 차이로 표현되던 가치(Wert) 개념은 그리스도교에 이르러 근본적으로 변화를 맞게 된다

니체는 노예도덕을 가치를 지니지 못한 약자가 강자에게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낸 수단으로 이해한다. 약자는 자신의 힘을 강자만큼 고양시킬 능력이 부족하기에 강자를 으로 정의하고 그와 대비되는 자신을 으로 놓는다.[각주:40] 따라서 니체가 보기에 그리스도교의 도덕은 노예의 도덕에 불과하다.[각주:41] 첫째, 신이라는 초월을 가져옴으로써 현실의 삶을 부정하고 자신의 능력 부족을 면피하기에 저열하며, 둘째, 당위를 통해 강자를 자신의 수준으로 끌어내리기에 삶에 유해하며, 셋째, 강자와의 대립을 조건으로 원한 감정에 의해 성립되기에 자립적이지 못하고 노예적이다.

반면 니체가 제시한 주인도덕의 경우, 이 개념은 푸코가 자기배려를 주제로 행한 일련의 강의에서 문제시한 윤리(Ethik)의 문제와 연속성을 지닌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 그것은 자기 자신을 돌보는 기술이며, 주체가 존재 변형을 위해 내적으로 부과하는 특정한 가치와 규범을 의미한다. 윤리는 일차적으로 자기 자신의 삶을 개선하는데 그 의의가 있으며 규범이나 진리 역시 이러한 정의 아래에서 의미를 가질 뿐이다. 다시 말해 윤리는 주체와 무관하거나 분리될 수 없으며, 그렇기에 일차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주체에게만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당위는 주체가 더 나은 존재로 변화하기 위한 실천을 전제로 할 때에만 정당할 수 있고, 그렇기에 존재 변형을 이룬 주체에겐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해보자면, 도덕과 윤리에는 다음과 같은 대립적 요소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체인 내가 없어도 도덕은 존재하며 이 경우 주체가 어떻게 삶을 잘 살 것인가?” 보다는 진리 그 자체에 방점이 찍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 윤리는 진리보다도 그 진리를 받아들이는 주체의 삶에 방점이 찍혀 있다. 도덕의 정당성이 초월로부터 부여된다면, 윤리의 정당성은 삶으로부터 부여된다. 결론적으로, 계보학은 초월로부터 그 정당성을 얻게 된 진리의 기원을 탐구함으로써 현재의 역사를 서술하며, 진리의 가치를 문제 삼음으로써 삶을 옹호하고자 하는 일련의 기술로 여겨진다.

권력의 관계들이 정지되어 있는 경우에만 지식이 존재할 수 있다든가, 지식은 권력의 금지 명령이나 요청, 이해관계를 떠나서만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모든 전통을 버려야 할지 모른다. 어쩌면 권력이 광인을 만든다거나 거꾸로 권력을 버리는 것이 지식인이 될 수 있는 여러 조건의 하나라는 그러한 생각을 버려야 할지 모른다. [...] 요컨대, 권력에 유익한 지식이든 불복종하는 지식이든 간에 하나의 지식을 창출하는 것은 인식 주체의 활동이 아니라 권력-지식의 상관관계이고, 그것을 가로지르고, 그것이 조성되고, 본래의 인식형태와 가능한 인식영역을 규정하는 그 과정과 싸움이다.[각주:42

근대의 형벌제도는 더 이상 감히 죄를 벌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범죄자를 사회에 재적응시킨다고 말할 뿐이다. 형벌제도가 인간과학과 이웃하게 된 지도 벌써 2백년이 되어 간다. 인간과학은 형벌제도의 자부심이며, 형벌제도가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기 위한 방법이다. ‘나는 물론 완벽하게 정의롭지는 않다. 그러나 조금만 참고 기다려, 내가 학자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라이런 식이다. 그러나 심리학 · 정신의학 · 범죄학 등이 오늘날의 사법제도를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 우리는 인체의 정치학의 역사로부터 근대 도덕의 계보를 만들 수 있을까?[각주:43]

지금까지의 논의를 종합해볼 때, 계보학이 추구하는 현재의 역사란 이중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으로, 계보학은 종합으로 파악된 과거의 역사가 다르게 쓰일 수 있으며, 이렇게 다르게 배치된 사실들은 기존에 인정받던 종합의 가치를 전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별다른 의심 없이 도덕이라는 이름 아래 칭송받던 동정이라는 가치가 힘에의 의지의 역학 속에서 원한의 가치와 동일한 것으로 드러날 수 있음을 보여 준 니체의 시도가 대표적이다.

 다른 한편으로, 계보학은 미래에 대한 약속을 담보로 하여 현재에 행사되고 있는 권력 효과가 부당한 것일 수 있음을 폭로하며, 그럼으로써 근대적 자유 개념을 지탱하는 두 가지 필연성, 즉 사회적 필연성과 자연적 필연성의 통제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이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에서 이미 전개된 바 있으며, “복종과 동일시된 주체화 양식에 대한 비판과 저항[각주:44]을 추구하는 푸코의 직접적인 목표라 말할 수 있다. 계보학자는 그렇기에 언제나, 개별자의 실존을 말할 수 없는 것의 영역에 남겨둔 채로, “권력의 중심에 있거나 중앙권력 지향적인 사람들 틈에서, 으르렁거리며 싸우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각주:45]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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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udwig Wittgenstein, Philosophische Untersuchungen, in: Werkausgabe Bd. 1. 23. Aufl. J. Schulte (Hrsg.). Frankfurt am Main: Suhrkamp, 2019, 229쪽 재인용. [본문으로]
  2. 뤼디거 자프란스키, 『쇼펜하우어 전기. 쇼펜하우어와 철학의 격동시대』, 정상원 옮김, 꿈결, 2018, 557쪽. [본문으로]
  3. 같은 책, 581쪽. [본문으로]
  4. 찰스 테일러, 『헤겔』, 정대성 옮김, 그린비, 2014, 171쪽 참조. [본문으로]
  5. 같은 책, 195쪽. [본문으로]
  6. 같은 책, 203쪽. [본문으로]
  7. 같은 책, 946쪽 참조. [본문으로]
  8. 뤼디거 자프란스키, 『쇼펜하우어 전기. 쇼펜하우어와 철학의 격동시대』, 581쪽 참조. [본문으로]
  9. 앨런 재닉, 스티브 툴민, 󰡔비트겐슈타인과 세기말 빈󰡕, 석기용 옮김, 필로소픽, 2013, 358쪽. [본문으로]
  10. Rudolf Carnap, “Überwindung der Metaphysik durch logische Analyse der Sprache (1932).”, in: Scheinprobleme in der Philosophie und andere metaphysikkritische Schriften. T. Mormann (Hrsg.). Hamburg: Felix Meiner, 2004, 90쪽 참조. [본문으로]
  11. Martin Kusch, Psychologism : The Sociology of Philosophical Knowledge, London: Routledge, 1995, 2쪽. [본문으로]
  12. 헤겔, 『변증법과 회의주의』, 황설중 옮김, 철학과현실사, 2003, 75쪽. [본문으로]
  13. 테오도어 아도르노, 막스 호르크하이머, 『계몽의 변증법. 철학적 단상』, 김유동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1, 53쪽 참조. [본문으로]
  14. 찰스 테일러, 『헤겔』, 1014쪽 참조. [본문으로]
  15. George G. Brenkert, Marx’s ethics of freedom, London : Routledge & Kegan Paul, 1983. 13쪽. [본문으로]
  16. 다른 한편으로 자연적 필연성을 토대로 윤리학을 구축한 논리 실증주의의 도덕 이론에 관해서는 : A. J. Ayer, Language, Truth and Logic, London : Penguin Books, 2001, 104-126쪽 참조. [본문으로]
  17. 칼 마르크스, 『경제학-철학 수고』, 김태경 옮김, 이론과실천, 1987, 134-138쪽. [본문으로]
  18. 스털링 P. 램프레히트, 김태길, 윤명로, 최명관 옮김, 을유문화사, 1992, 368쪽. [본문으로]
  19. 뤼디거 자프란스키, 『쇼펜하우어 전기. 쇼펜하우어와 철학의 격동시대』, 583쪽. [본문으로]
  20. 마르틴 하이데거, “기술에 대한 물음”, 『강연과 논문』, 이기상, 신상희, 박찬국 옮김, 이학사, 2008, 29쪽. [본문으로]
  21. 뤼디거 자프란스키, 『쇼펜하우어 전기. 쇼펜하우어와 철학의 격동시대』, 582쪽. [본문으로]
  22. 미셸 푸코, 『비판이란 무엇인가?/자기수양』, 오트르망 심세광 · 전혜리 옮김, 동녘, 2016, 45쪽. [본문으로]
  23. 뤼디거 자프란스키, 『쇼펜하우어 전기. 쇼펜하우어와 철학의 격동시대』, 582쪽 참조. [본문으로]
  24. 같은 책, 582-584쪽. 강조는 필자의 것. [본문으로]
  25. 같은 책, 586쪽. [본문으로]
  26. 같은 책, 585쪽. [본문으로]
  27. 테오도어 아도르노, 막스 호르크하이머, 『계몽의 변증법. 철학적 단상』, 21쪽. [본문으로]
  28. 같은 책, 79쪽. [본문으로]
  29. 같은 책, 78쪽. [본문으로]
  30. 이종하, 「아도르노의 부정적 역사철학」, 『동서철학연구』 제61호, 2011, 195-196쪽 참조. [본문으로]
  31. 같은 책, 197쪽. [본문으로]
  32. 같은 곳 [본문으로]
  33. 문성훈, 『미셸 푸코의 비판적 존재론. 그 미완의 기획』, 길, 2010, 40쪽. [본문으로]
  34. 뤼디거 자프란스키, 『낭만주의. 판타지의 뿌리』, 임우영 외 옮김,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2012, 415쪽. [본문으로]
  35. 문성훈, 『미셸 푸코의 비판적 존재론. 그 미완의 기획』, 40쪽 참조. [본문으로]
  36. 같은 책, 41쪽. [본문으로]
  37. 같은 책, 28쪽. [본문으로]
  38. 미셸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5년~76년』, 김상운 옮김, 난장, 2015, 26-27쪽. [본문으로]
  39.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학』, 홍성광 옮김, 연암서가, 2011, 30-31쪽 참조. [본문으로]
  40. 같은 책, 47쪽 참조. [본문으로]
  41. 같은 책, 42쪽 참조. [본문으로]
  42.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 오생근 옮김, 나남, 2016, 58-59쪽. [본문으로]
  43. 디디에 에리봉, 『미셸 푸코, 1926~1984』, 박정자 옮김, 그린비, 2012, 390-391쪽 재인용. 강조는 필자의 것. [본문으로]
  44. 문성훈, 『미셸 푸코의 비판적 존재론. 그 미완의 기획』, 31쪽. [본문으로]
  45. 미셸 푸코,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 465쪽.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