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stern Philosophy

동양사상과 현실문제 기말고사

Soyo_Kim 2023. 12. 5. 12:35

2020-1 동양사상과 현실문제 기말고사

 

1) 순자의 화성기위(化性起僞)의 의미를 그의 -관계에 대한 이해와 결부시켜 서술하시오.

 

순자는 그 자체로 걸출한 유가 사상가이지만, 흔히 공자-맹자-주자로 이어지는 유가의 주류 흐름에서 동떨어진 인물로 여겨진다. 그 이유는 맹자의 性善說로 대표되는 유가의 자연주의 윤리학을 그가 거부하기 때문이다. 맹자는 도덕성을 不忍人之心에서 도출하며(孟子曰人皆有不忍人之心), 인간의 도덕성을 회복의 대상으로 본다.

 

누가 만약 好惡의 성향이 남과 비슷한 데가 거의 없을 정도로 변해버렸다면, 그것은 바로 그의 낮 동안의 (이기적인) 행위가 평단지기를 어지럽혀 망쳐버렸기 때문이다. 이렇듯 어지럽히는 일이 반복되면 夜氣가 보존될 수 없고, 야기가 보존될 수 없으면 금수와 다름없게 된다.”[각주:1]

 

주자는 이를 토대로 인간의 마음을 두 종류로 구분한다. , 인간의 마음은 본래적 마음이자 회복의 대상이 되는 天理, 파생적 마음이자 제거의 대상이 되는 人欲으로 나누어 진다. 이 양자를 다스리는 것이 곧 유가 윤리학의 핵심이며, 이를 간명하게 存天理去人欲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주자는 왜 본래적 마음을 天理로 여기는가? 그 이유는 유가 철학이 고대로부터 개념을 인간의 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유학자들은 대개 하늘의 운행원리인 천명을 인간의 도덕 근거로[각주:2] 여겼다. 그 대강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1) 맹자는 인간의 마음이 본디 선한 까닭을 하늘에서 찾는다. 이 내게 부여한 것이며, 따라서 역시 필연적으로 선할 수밖에 없다. 2) 맹자의 이론에 따라 장재는 天地之性氣質之性으로 구분하며, 이를 받아들인 정이와 주희는 天地之性形而上學적인 本然之性으로 여긴다.[각주:3]

 

자신의 마음을 다 발휘한 사람은 자신(인간)의 본성을 알게 되고, 본성을 알면 하늘을 알게 된다. 자신의 마음을 보존하고 본성을 배양하는 것이 곧 하늘을 섬기는 방법이다.” [각주:4]

 

다른 유학자들이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순자 역시 을 하늘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인다.(性者 天之就也, 正名)[각주:5] 그러나 순자에게 있어 인간의 본성은 회복해야할 것도 아니며, 한 것도 아니다. 그는 오히려 인간의 본성이 하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물론 사람이 태생적으로 을 좋아하며 행한다는 뜻은 아니다. 순자의 性惡說은 홉스가 말하는 심리적 이기주의로 인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와 유사하다. , 욕망의 추구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야말로 인간 본성의 결과이자 맨 얼굴이라는 것이 현실주의자인 순자의 주장이다.

이로 인해 순자의 하늘관 역시 필연적으로 다른 유학자들과 차별화된다. 공자와 맹자가 主宰之天, 運命之天, 義理之天을 말한다면, 순자의 하늘은 自然之天이라 부를 수 있다.[각주:6] 순자는 하늘을 도덕법칙의 근원으로서 존중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자연 그 자체이자 이용의 대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늘(자연)을 존숭하여 사모하느니 차라리 물건으로 간주하여 관장하고 제재할 일이다.”[각주:7] 따라서 그는 자연주의 윤리학을 지지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연주의와 윤리학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연계에 운행은 그 자체의 법칙이 있은즉, 결코 사회에 선인이 있어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사회에 악인이 있어서 소멸하는 것도 아니다. [...] 따라서 하늘과 인간 간의 직분(분별)을 명확히 인식한다면 가히 진인이라 할 수 있다.”[각주:8] 

 

따라서 순자 윤리학의 핵심은 자연과의 합일이 아닌 의 일으킴이다. 도덕은 化性起僞에서 나오는 것으로, 본래적인 성품을 변화시킨다는 뜻의 化性, 교육을 통해 사회적 예의와 법도를 깨친다는 뜻의 起僞를 근간으로 한다.[각주:9] 성인은 본성을 교화시키고 인위(人僞)를 일으켰다.”[각주:10]  인간은 본성이 아닌 지식을 통해 도덕을 깨우치고 사회 혼란을 극복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다. “선왕은 이런 무질서(혼란)을 우려하여 예절과 의리를 제정하여 분별을 두어 [...] 이것이 바로 예의 기원이 되었다.” 는 사회 규범이자 한정된 재화를 합리적으로 분배하는 근거이다.

이렇게 보면, 순자는 -관계를 재정립함으로써 유가의 윤리학을 합리적, 이성적으로 쇄신하려고 시도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한편으로 그의 化性起僞는 맹자 윤리학의 약점인 자연주의의 오류를 피해가며, 다른 한편으로 의 신비적, 종교적 의미를 제거함으로써 인간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성적 윤리학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2) 불교의 삼법인(三法印)’을 아트만(Atman) 부정과 현실 세계의 고()에 초점을 맞춰 설명하시오.

 

불교의 三法印諸行無常, 諸法無我, 涅槃寂靜의 세 가지 교의를 뜻하며, 이에 더해 一切皆苦를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涅槃寂靜一切皆苦는 밀접한 연관 아래에 있으므로, 여기서는 涅槃寂靜를 설명함에 있어 一切皆苦도 함께 살펴본다.

인도 철학은 대개 아트만(Atman) 개념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과, 해탈(Moksha)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두 가지 주요 한 공통점을 지닌다. 목샤(Moksha)는 산스크리스트어로 해방, 혹은 해탈을 의미하며, 여기에서 해방과 해탈의 대상은 윤회 혹은 무지이다. 불교에서 역시 이러한 해탈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대다수의 다른 인도 철학과 같은 목표를 공유하지만, 아트만 개념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차이를 지닌다.

불교는 우파니샤드의 자아 이론, 곧 아트만을 비판하며 등장했으며 그 대안으로 無我 개념을 내놓는다. 우파니샤드를 주요 경전으로 삼는 브라만교에서는 우주를 창조한 절대자 브라만(Brahman)을 중심으로 하여 그 브라만이 인간에게 개체화된 아트만(atman)의 존재[각주:11]를 강조한다. 이에 따르면, 아트만은 순수 자아이자 브라만의 자기 전개이며,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윤회함으로 인해 고통받는다. 따라서 브라만교의 목적은 순수 자아인 아트만이 자신의 본질을 깨달음으로써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 곧 해탈이 된다.

그러나 석가모니는 브라만교에서 전제하는 라고 부를 수 있는 아트만이 실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석가모니의 견해가 집약되어 있는 단어가 三法印인 중 하나인 諸法無我이다. 아트만을 받아들이는 대다수의 인도 철학 학파들은 그것의 특징을 영원불멸성으로 제시하는 반면, 불교는 自我五蘊의 결합으로 본다(五蘊假和合). 이는 자아를 포함하여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을 법(, dharma)”[각주:12]으로 보는 것이다. 석가모니는 이를 바탕으로 無我를 다음과 같이 논증한다.

 

1) 우리 존재를 이루는 요소들은 , , , , 의 다섯 가지이다.

2) 無相하다.(일정한 형상이 없다.)

3) 無相한 것은 모두 변하며, 괴로운 것이다.

4) 같은 방식으로, , , , 無相하다.

5) 그런데 아트만은 영원불변한다.

6) 따라서 , , , , 의 다섯 가지는 아트만이 될 수 없다.

7) 6)에 따라, 우리 존재를 이루는 요소들은 아트만이 될 수 없다.

8) 7)에 따라, 아트만은 존재하지 않는다.

9) 8)에 따라, 아트만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착각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제 불교의 三法印인 중 하나인 諸法無我이 아트만의 부정을 통해 얻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해명되었다. 또한 우리는 이 논증에서 자연스럽게 諸行無常의 원리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남은 한 가지인 涅槃寂靜은 무엇인가? 우리는 3)에서 無相한 것은 모두 변하며, 괴로운 것이라는 석가모니의 주장을 확인할 수 있으며, 우리 존재를 이루는 요소들은 모두 無相하기 때문에 이로부터 우리 존재를 이루는 요소들은 모두 괴로운 것임을 추론해낼 수 있다. 이것이 一切皆苦의 원리이다. 그렇다면 왜 無相한 것은 괴로운 것인가? “범어로 고의 원어인 duḥkhaa(Pāli로는 dukkha)[...] 형용사로는 불편한, 불쾌한, 곤란한 등을 의미하며, 중성 명사로는 불편, 아픔, 고통, 비통, 곤란 등을 의미한다[각주:13] 이로부터 유추할 수있듯 는 불교에서 굉장히 다양한 의미로 쓰인다. 그것은 때로는 생리적, 심리적 고통을 뜻하기도, ‘뜻대로 되지 않는이라는 의미를 지니기도 하며, 압도된 상태, 즉 종속도 로 간주된다.[각주:14] 그렇기에 는 기본적으로 착각을 유지하려는 마음에서, 즉 집착에서 생겨난다. 아트만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존재함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뜻대로 되지 않으며 집착에 종속된다. 숫타니파타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들은 내 것이라고 집착하기 때문에 근심한다. 소유한 것은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것은 오직 변멸해 가고 있을 뿐이다.”[각주:15]

 

결국 인생이 인 까닭은 불교의 두 가지 진리, 諸行無常諸法無我를 깨닫지 못하고 확실한 존재에 집착하기 때문이며, 석가모니는 이러한 까닭에 그 집착에서 벗어날 때에만 涅槃寂靜에 이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참고문헌

풍우란, 『중국철학사 上』, 박성규 옮김, 까치, 2008.

이철승, 유가철학에 나타난 氣質之性의 문제-王夫之朱熹의 관점을 중심으로, 儒敎思想硏究34, 한국유교학회, 2008.

김광민, 순자의 : 욕망()과의 관련, 도덕교육연구, 한국도덕교육학회, 2019.

지준호, 순자(荀子)의 도덕교육론 - 화성기위(化性起僞) 개념을 중심으로, 한국철학논집, 한국철학사연구회, 2015.

김광민, 불교 무아론의 교육학적 함의, 『道德敎育硏究』  29卷 第4, 한국도덕교육학회, 2017.

정승석, 불교적 고관(苦觀)의 추이와 의의,인도철학32, 인도철학회, 2011.

  1. 풍우란, 『중국철학사 上』, 박성규 옮김, 까치, 2008, 203쪽 재인용. [본문으로]
  2. 이철승, 유가철학에 나타난 氣質之性의 문제-王夫之朱熹의 관점을 중심으로, 儒敎思想硏究34, 한국유교학회, 2008, 83. [본문으로]
  3. 철승, 유가철학에 나타난 氣質之性의 문제-王夫之朱熹의 관점을 중심으로, 81쪽 참조. [본문으로]
  4. 풍우란, 『중국철학사 上』,  210쪽 재인용. [본문으로]
  5. 김광민, 순자의 : 욕망()과의 관련, 도덕교육연구, 한국도덕교육학회, 2019, 26-27쪽 참조. [본문으로]
  6. 풍우란, 『중국철학사 上』, 457쪽 참조. [본문으로]
  7. 풍우란, 중국철학사 上』, 460쪽 재인용. [본문으로]
  8. 풍우란, 중국철학사 上』, 458쪽 재인용. [본문으로]
  9. 지준호, 순자(荀子)의 도덕교육론 - 화성기위(化性起僞) 개념을 중심으로, 한국철학논집, 한국철학사연구회, 2015, 70쪽 참조. [본문으로]
  10. 지준호, 순자(荀子)의 도덕교육론 - 화성기위(化性起僞) 개념을 중심으로, 69쪽 재인용.[footnote] 한편으로 이다. “인류는 더불어 살면서 추구하는 대상은 똑같지만 각자 방법을 달리하며, 욕망은 똑같지만 지혜는 서로 다르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 그러므로 知者[이를 염려하여] 분별을 정했다.”[footnote]풍우란, 중국철학사 上』, 473쪽 재인용. [본문으로]
  11. 김광민, 불교 무아론의 교육학적 함의, 『道德敎育硏究』 29卷 第4, 한국도덕교육학회, 2017, 5. [본문으로]
  12. 김광민, 「불교 무아론의 교육학적 함의」, 『道德敎育硏究』 第29卷 第4號, 한국도덕교육학회, 2017, 8쪽. [본문으로]
  13. 정승석, 불교적 고관(苦觀)의 추이와 의의,인도철학32, 인도철학회, 2011, 99. [본문으로]
  14. 정승석, 불교적 고관(苦觀)의 추이와 의의, 102쪽 참조. [본문으로]
  15. 정승석, 불교적 고관(苦觀)의 추이와 의의, 105쪽 재인용.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