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cellaneous/Poetry

기억이 자리 없이 떠돌 땐

Soyo_Kim 2024. 10. 14. 09:08

사북읍 안경다리 오른편으로 외제차들이 햇살에 잠긴 채 신호를 기다린다 누구도 비난할 일은 아니지만 다리 밑 늘어진 시간 속으로 굳이 들어가보고 싶은 사람도 없다 투석전(投石戰)이니 최루탄이니 곡괭이니 각목이니 물속에 던져 넣은 말들은 수압에 찌그러져 비로소 제 소리에 맞는 빛깔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 말들의 부글거리는 숨소리귀 기울여 봐도 들려오지 않는다 에어컨 아래에서 박제된 광부 헬멧 물끄러미 바라보다 쾌적한 바람에 문득 섬찟해져 밖으로 나왔다 기찻길 따라 걷다 보면 아스팔트 바닥 흥건한 버찌 자국

 

지우개똥 같은 기억들은 다리 난간에 묻어 있었다

 

*이성복,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에서 얻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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