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cellaneous/Poetry

우선 이 책이 그저 비에 관한 책이 되기를*

Soyo_Kim 2024. 10. 14. 09:09

나는 우산 쓰는 일을 싫어했다 사람을 품고 살 줄 모르니 비라도 품고 살아야겠다 생각했다 덕분에 물기 들어찬 신발 끌 듯 질척거리며 글을 쓰고 걸레짝이 된 양말을 말리며 하루를 누이기도 한다 비에 젖어 담배를 피우다 보면 소리도 물기를 머금고 있어 갈증이 나지 않았다 담뱃불은 묵혀 둔 빗방울 소리에 맞춰 요리조리 에둘러가며 제 살을 태운다 생이 언제 빗방울처럼 스러질 진 몰라도 어쩜 이 버릇으로 과로사는 면해온 걸 수도 있겠다

 

*루이 알튀세르, <마주침의 유물론이라는 은밀한 흐름>의 한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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