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inental/Kant & German Idealism

Kritik der Urteilskraft §44

Soyo_Kim 2019. 12. 18. 19:08

44절 미적 기예[예술]에 관하여(Von der schönen Kunst)

 

미적인 것의 학문은 없고, 단지 비판이 있을 뿐이며, 미적 학문[미학]은 없고 단지 미적 기예[예술]이 있을 뿐이다.(Es gibt weder eine Wissenschaft des Schönen, sondern nur Kritik, noch schöne Wissenschaft, sondern nur schöne Kunst.) 전자에 관해서 말할 것 같으면, 그러한 학문에서 어떤 것이 아름답다고 간주되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것은 학문적으로, 다시 말해 증명근거들(Beweisgründe)에 의해 결정되어야 할 것이고, 그러므로 미에 대한 판단(das Urteil über Schönheit)은, 만약 그것이 학문에 속하는 것이라면, 취미판단(Geschmacksurteil)일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후자를 두고 말하자면, 그 자체가 미적이어야만 한다는 학문이란 무물(ein Unding)이다. 만약 사람들이 학문이라는 그것에서 근거와 증명을 묻는다면, 세련된 취미의 언사(재치 있는 말)로 처리될 것이니 말이다(Denn wenn man in ihr als Wissenschaft nach Gründen und Beweisen fragte, so würde man durch geschmackvolle Aussprüche (Bonmots) abgefertigt.)-미적 학문들이라는 통상적인 표현을 야기했던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다름 아니라 다음과 같은 사정이다. 즉 사람들은 완전무결한 미적 기예에는, 예컨대 고대 언어들에 대한 지식, 고전작가로 여겨지는 작가들에 대한 박학, 역사, 고대유물에 대한 지식 등과 같은 많은 학문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주 올바르게 깨닫게 되었고, 그때문에 이러한 역사적 학문들을, 그것들이 미적 기예를 위한 필수적인 준비와 토대를 이루고 있으니까, 부분적으로는 또한 이런 역사적 학문들 안에 미적 기예의 산물들(즉 웅변술과 시예술)에 대한 지식까지도 포함됨으로 해서, 용어의 혼동이 일어나 미적 학문이라고까지 불렸던 것이다.

 

만약 기예가 어떤 가능한 대상의 인식에 알맞게 순전히 그 대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그에 필요한 행위들만을 수행한다면, 그러한 기예는 기계적 기예이다.(Wenn die Kunst, dem Erkenntnisse eines möglichen Gegenstandes angemessen, bloß ihn wirklich zu machen die dazu erforderlichen Handlungen verrichtet, so ist sie mechanische;) 그러나 기예가 쾌의 감정을 직접적인 의도로 삼는다면, 그것은 미감적 기예라고 일컫는다.(hat sie aber das Gefühl der Lust zur unmittelbaren Absicht, so heißt sie ästhetische Kunst.) 이 미감적 기예는 쾌적한 기예이거나 미적 기예이다.(Diese ist entweder angenehme[각주:1] oder schöne[각주:2] Kunst.) 전자는 쾌가 순전한 감각으로서의 표상들에 수반하는 것이 그것의 목적일 때의 기예이고, 후자는 인식방식으로서의 표상들에 수반하는 것이 목적일 때의 기예이다.(Das erste ist sie, wenn der Zweck derselben ist, daß die Lust die Vorstellungen als bloße Empfindungen, das zweite, daß sie dieselben als Erkenntnisarten begleite.)

 

쾌적한 기예들(Angenehme Künste)은 한낱 향수[향략]만(Genusse)을 목적으로 하는 기예이다. 식탁에 둘러앉은 동료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모든 매력들, 즉 흥겹게 이야기를 한다든가, 해학과 웃음으로 동료들을 어떤 흥겨운 기분에 젖게 한다든가 하는 것이 그러한 것들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흔히 그렇게들 말하듯이, 많은 것들을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수가 있고, 누구도 자기가 말하는 것에 책임지려 하지 않는데, 그것은 그것이 노리는 바가 단지 순간적인 흥겨움에 있을 뿐이고, 뒤에 되풀이하여 생각하고 얘기하기 위한 지속적인 소재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향수[향략]를 위해 식탁을 장식하는 방식이나, 심지어는 대연회에서의 식사 중의 음악도 무릇 이런 것에 속한다. 이런 음악은 묘한 것으로서, 일종의 쾌적한 소음으로서만 사람들의 마음의 기분을 유쾌하게 유지하게 하는 것이어야 하고, 또한 누구도 그 악곡에 조금의 주의도 기울이지 않는 것이어서, 이웃 간의 자유로운 대화를 도와줄 뿐이다.) 이런 것들로는 그밖에도 눈에 띄지 않게 시간을 보내도록 하는 것 외에 다른 아무런 이해 관심도 갖지 않는 모든 유희들이 있다.

 

그에 반해 미적 기예는 그 자체로 합목적적이고, 비록 목적이 없지만 그럼에도 사교적 전달을 위해 마음의 힘들의 배양을 촉진하는 표상방식이다.(Schöne Kunst dagegen ist eine Vorstellungsart, die für sich selbst zweckmäßig[각주:3] ist, und obgleich ohne Zweck[각주:4], dennoch die Kultur[각주:5] der Gemütskräfte zur geselligen Mitteilung befördert.)     

 

쾌의 보편적 전달가능성(Die allgemeine Mitteilbarkeit einer Lust)[각주:6]은 이미 그 개념 안에, 이 쾌는 순전히 감각으로서의 향수의 쾌(eine Lust des Genusses, aus bloßer Empfindung)가 아니라, 반성의 쾌(der Reflexion sein)여야 함을 지니고 있다. 그리하여 미적 기예로서 미감적 기예는 감관감각이 아니라 반성적 판단력을 표준으로 갖고 있는 그러한 기예이다.(und so ist ästhetische Kunst, als schöne Kunst, eine solche, die die reflektierende Urteilskraft und nicht die Sinnenempfindung zum Richtmaße hat.)  

 

  1. 쾌적한, 편안한, 호감이 가는 [본문으로]
  2. 아름다운, 멋진 [본문으로]
  3. 목적에 맞는, 실용적인, 유용한, 형편에 걸맞는 [본문으로]
  4. 목적, 목표, 의미 [본문으로]
  5. 경작, 재배, 배양, 문화, (정신적) 교양, 수양 [본문으로]
  6. 욕구의 보편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특성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