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lytic/Epistemology

Sosa (1964) The Analysis of ‘Knowledge that P’

Soyo_Kim 2021. 5. 12. 23:19

Sosa, Ernest, “The Analysis of ‘Knowledge that P’”, in : Analysis. vol. 25. 1964. pp. 1-8.

 

에드먼드 게티어의 해석에서, 앎의 개념에 관한 에이어와 치솜의 분석은 아래에 제시된 분석 A와 충분히 유사하며 같은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분석 A: 

S가 P에 대한 앎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IFF

(i) P가 참이고,

(ii) S가 P를 믿으며,

(iii) P에 대한 S의 믿음은 정당화되었다.

 

게티어는 이러한 관점에 대한 두 가지 반례를 제시한다. 나는 이제 이러한 반례들 중 두번째 사례의 원리를 개괄적으로 제시하려 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첫 번째 사례보다 단순하며 A에 대한 반례로서의 첫 번째 사례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S가 P에 대한 그의 믿음에 대한 좋은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그는 P V Q를 차례로 연역해낸다고 가정하자. 그러나 S는 모르고 있었지만, ~P ^ Q였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의 검토 아래에서 구체화된 앎의 세 가지 조건은 모두 만족된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S가 P V Q를 알고 있지 않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2. 마이클 클락은, "지식과 근거들 : 게티어씨의 논문에 관하여"에서 연역적 근거들만큼이나 비연역적인 근거들이 존재하며 따라서 게티어의 사례는 그것이 필요로 했던 것보다 강하다고 지적한다. 

 

각각의 게티어 사례에서, 실제로 참이며 좋은 근거들을 기반으로 S가 참이라고 믿는 명제는 여전히 S에게 지식을 제공하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S가 믿고 있는 근거들이 거짓이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정당화된 참인 믿음'에 '참된 근거에 기반해야 한다'라는 조건을 추가하는 것은 여전히 앎에 대한 만족스러운 정의로 귀결되지 않는데, 클락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반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P에 대한 S의 믿음이 P를 믿을만한 좋은 근거들의 참에 대한 그의 친구의 보고에 근거한다고 가정하자(혹은 우리는 P에 대한 친구의 보고 자체를 근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더해, 그의 친구가 일반적으로 신뢰와 정직의 표본인 반면에, 이 사례에서는 그가 거친 추측을 하였을 뿐이며 P가 실제 사례인지, 혹은 P를 믿을만한 참된 근거가 있는 지 여부에 대한 아무런 생각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가정해 보자. 당연하게도 우리는 친구의 거친 추측이 S에게 앎을 부여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참된 근거들에 기반한 정당하된 참인 믿음이 앎의 분석으로 충분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클락은 그 자신의 분석을 발전시킨다. 그는 먼저 우리가 근거들의 문제를 충분히 길게 추구한다면, 우리는 최종적으로 근거에 부딪칠 것이라고, 즉, 더 이상 근거를 요구하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 지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요점을 보여주기 위하여 그는 다시 한번 그의 친구의 보고 사례를 선택하는데, 이 사례는 내가 아래와 같이 축약한 것이다.

 

S : (1) P

Q : (2) P를 주장하는 것에 대한 너의 근거는 무엇이니?

S : (3) T가 나에게 P를 믿을만한 좋은 근거인 e를 말해주었어.

Q : (4) T가 e를 안다는 주장에 대한 너의 근거는 무엇이니?

S : (5) 그는 일반적으로 믿을만하고 정직해.

Q : (6) 그렇다면 (5)를 주장하는 너의 근거는 무엇이니?

S : (7) 나는 항상 그의 곁에 있으면서 그가 부정직하거나 믿지 못할 행동을 하는 것을 본 기억이 없어.

 

이후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 사슬의 어떤 근거들 간에, 즉 (3)이나 (5)나 (7) 중 어떤 것이든 간에 거짓이라면, 우리는 적절하게도 스미스가 '존스는 포드 차를 가지고 있다'라는 명제를 안다는 것을 거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슬의 모든 근거들이 참이라면, 나는 이 믿음이 완전한 근거들을 가지고 있다/완전한 기반을 가지고 있다(fully grounded)고 말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4)를 변경함으로써 고려 중인 정의를 변경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참된 근거에 기반한 정당화된 참인 믿음이 앎이라는 주장 대신에, 완전한 기반을 갖추고 있는 정당화된 참인 믿음이 앎이라는 주장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클락이 제시한 반례 한 가지는 우리가 그의 정의를 거부하도록 만든다는 것에 주목하자. 왜냐하면 (3), (5), (7)은 모두 참일 수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T는 이 기회에 거친 추측을 한 것일 수 있다. 아래에 제시된 앎의 분석에서 나는 이와 같은 반례에 대한 설명을 제시하려 시도할 것이다.

 

클락은 그의 정의에서 '정당화된'이란 단어를 심지어 "완전한 기반을 갖춘"이라는 단서를 더한 이후에도 포기하지 않기로 결정하는데, 그 까닭은 믿음이 완전한 기반을 갖추고 참이면서도, 믿는 사람이 그 근거들이 좋은 근거들임을 모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여전히 앎을 구성하지 못하는 사례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말 옳다. 이에 더해, 이것이 정당화된 믿음의 [정당성을] 박탈시키는 유일한 경우도 아니다. 이를테면, P에 대한 좋은 근거들이 무엇인가의 참에 관해 믿는 것에 더하여, ~P를 믿는 것이 좋은 근거들의 참과 이러한 근거들의 좋은 점을 알고 있다면, S는 분명하게도 P를 믿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갖지 않는다. 이제 이러한 다른 자격을 박탈하는 상황이 앎의 완전한 분석에서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은 명백하다. 앎의 완전한 분석은 이러한 상황을 막는 근거들을 포함해야만 한다. 결과적으로, 만약 클락이 (그의 언어가 알려주는 것처럼) 좋은 근거들로서의 근거들에 대한 인식이 현재의 맥락에서 정당화된 것의 내용을 소모시키는 것을 유지한다면, 그는 틀렸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다른 자격을 박탈하는 상황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이러한 견해를 유지하지 않는다면, 그의 분석은 아직 완전하지 않다.

 

클락의 논문에 대한 우리의 논의를 끝내기 전에, 나는 그의 정의가 [함축하는] 기이한 결론을 고찰해야만 한다. 우리는 기초적인 명제들을 알 수 없는데, 그 까닭은 그 명제들이 완전한 기초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이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주로 P를 안다는 것은 P를 발견했다는 것을 함축하는 반면, 우리가 기초적 명제들을 발견할 수는 없다라는 논증에 의존한다. 이 마지막 논변은 그러나, 심지어 이 논변이 더 약한 관념으로, 즉 P를 안다는 것이 P를 발견했다고 말하는 것이 멍청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함축함을 의미한다 할지라도, 다음의 반례에 마주할 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만,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내가 발견했다고 말하는 것은 멍청한 소리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결혼했다는 것을 알고, 내 이름과 사는 곳을 알며, 내가 한번도 발견했던 적이 없었던 다른 사물들의 무리를 안다. 

 

따라서 내가 보기에, 클락은 정당성과 함께 발견과 정당성을 혼동하는 방식으로 치다랐다.(지식 그리고 근거들과 함께 발견하는 것) 연결은, 만약 그러한 것이 있다면, 그가 보여 준 것보다는 더 복잡할 것이 확실하다.

 

3. 이제 게티어와 클락의 반례들은 당연하게도 참된 반례들이다. 이에 따라, 나는 새로운 정당성 요건들의 집합을, 내가 바라기에, 지식에 대한 올바른 분석을 제공하는 집합을 제공하고자 한다.

만약 P가 기초적이라면, P에 대한 믿음은 정당성을 요구하지 않고, 주관적이거나 객관적이다. 만약 P가 비기초적이라면, S는 다음의 경우에 P를 믿는 것에 대한 주관적 정당성을 지닌다 IFF

 

sj1 : e1부터 en까지의 진술들의 집합이 있으며, 각각은 S가 참이라고 믿는 것이다. 

sj2 : e1이 참이라는 S의 믿음은 e1이 아무런 정당성도 요구하지 않는 기초적 명제가 아니라면 언제든지 그 자체로 주관적으로 정당화된다.

sj3 : S는 e1s의 참이 P에 대한 충분히 강한 근거를 제공한다는 것을 믿으며, 이러한 믿음을 갖는 것 혹은 이 믿음이 (기초적) "규범"이거나 "공리"라는 것을 갖는 것 모두 주관적으로 정당화된다.

sj4 : S가 ~P와 그것이 참이라는 것에 대한 충분히 강한 증거를 주도록 믿는 f1....fn 진술이 존재하지 않는다.

sj5 : S는 참인 원소를 가지고 있는 fis의 어떤 집합도 존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지닌다. 이것은 참인 eis가 P에 대한 충분히 강한 증거를 공급하는 맥락에서 P를 거짓이라 믿도록 만드는 P에 대한 충분한 의심을 드리운다.

sj6 : S는 다른 것들이 P에 대한 긍정적인 증거들을 준다는 맥락 아래에서, 그의 믿음이 정당성을 필요로 한다면, eis의 각각을 믿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갖는다.

sj7 :  S는 그가  합리적으로 가질 것이라 기대되는 확인하지 않은 증거들의 맥락에서, P에 관한 eis의 집합보다 약한 증거로서의 어떤 집합을  충분히 강한 것으로 간주하지 않을 수 있다.

 

(마지막 두 요건은 객관적 정당성에 관한 분석 안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 증거들을 포함하도록 만든다)

주관적 정당성의 개념을 만들면서 누군가는 또한 객관적 정당성의 정의를 형식화할 수 있다.

만약 P가 비기초적이라면, S는 P를 믿는 것에 대한 객관적 정당성을 갖는다. IFF

oj1 : S가 P를 믿는 것에 대한 주관적인 정당성을 갖게 하는 eis의 집합이 존재하며, 그러한 eis의 원소 각각은 실제로 참이다.

oj2 : 이러한 eis의 집합은 충분한 설득력과 함께 P를 믿는 것을 지지하며, 과잉된 ei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P와 증거로서 연결되는 모든 것들을 결여시키는 다른 것들의 맥락 안에 그러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것들과의 맥락 아래에서, ~P를 지지하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더해, S는 다른 것들과의 맥락 아래에서, 그의 믿음이 정당성을 요구하는 한, P에 대한 긍정적인 증거를 갖는 eis의 각각을 믿는 것에 대한 객관적 정당성을 지닌다.

oj3 : eis의 맥락 아래에서라도, P에 대한 믿음을 저하시키는 fis의 집합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각각의 원소들은 참이며, 그러함으로써 S는 그것들의 참을 알거나 발견했기를 합리적으로 예상할 수 있다.

oj4 : S가 믿고 있는 ~P를 지지하는 증거가 있다면, eis의 반대항인 증거들은 그것을 극복한다. 즉, P에 대한 믿음을 정당화하기 위한 여전히 충분히 강한 정당성을 이러한 맥락 아래에서도 지니고 있다.

oj5 : P에 대한 보고에 본질적으로 근거하여 P에 대한 S의 믿음이 참이거나, eis 하나 혹은 다수가 참이라면, 보고자는 P가 참이라고 믿는 것에 대한 객관적 정당성을 지니거나, 물음 속의 eis는 상대적으로 참이다.

증거 oj5를 포함시키는 이유는 물론 클락과 같은 반례 때문이다.

증거 sj5와 oj3를 포함시키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반례들 때문이다.

 

A와 B가 R이라는 방 밖에 있고, 사람 P1-7이 그 방에서 나왔다고 가정하자. A는 P1-4와 함께 그의 사무실로 들어가고 B는 나머지 P5-7과 함께 그의 사무실로 들어간다. 7명의 주체 각각은 같은 질문을 받는다. R에 의자가 있는가? P1-4는 그렇다고 대답하고, P5-7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P1-4가 A의 방에서 나올 때 그들은 B로부터 물음을 듣는다. A는 그러나 P5-7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가 물음에 대한 증거들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이어지는 불합리는 우리의 분석에 의해 지지될 것이다. A는 그가 들은 증언들을 기반으로 하여 R에 의자가 있다는 것을 아는 반면, B는 그가 들은 증언에 기반할 수 없다. 그러나 B는 A와 마찬가지로 그 방에 의자가 있다는 명제에 대한 증거들을 가지고 있으며, 즉, 네 개의 확고한 대답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에 더해, 그는 이 문제에 대한 더 광범위한 증거들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A에게 앎을 부여하면서 B에게 앎을 부여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불합리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그저 우리의 조건이 가능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분석의 이 부분에 의해 두드러진 사실이 드러난다: '~이라는 것을 믿고 있는 것' 또는 '~이 아니라는 것을 믿고 있는 것'에 대한 정당성 외에도, '~을 믿지 않는 것'에 대한 정당성 또한 지식의 개념에 관여한다. 우리의 예에서 우리는 A가 자신의 신념에 반증하는 증거가 있다고 믿지 않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판단을 많이 한다. P5—P7의 증언은 쉽게 이용할 수 있다(물론 P5—P7은 정직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A는 그러한 증언을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방 R은 매우 크고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두꺼운 기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와 같은 조건을 추가함으로써 그 반례를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들 수 있다.

 

예시는 내가 sj5와 oj3를 충분히 강한 것으로 간주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만들 것이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것을 믿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지니고 있는 역사가는 sj5나 oj3안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fis의 집합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반드시 믿을 필요가 없다. 방법론적으로 의식적인 역사가는 그러한 믿음을 가질 수 있지만, 그는 카이사르와 연관된 판단을 정당하도록 만들 필요는 없다. 다른 한편으로, 그가 위의 사실을 믿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는 fis의 집합 혹은 정당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을 믿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는 정당성의 이러한 형태를 의도적으로 분석하지 않았다. (하지만 sj5와 oj3를 포함하는 것을 통해 나는 "무언가를 믿지 않아야 한다"의 정당성의 주관적이고 객관적인 형태가 있을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나는 그러나 다음을 분명히하고 싶은데, ~를 믿는 것에 대한 정당성과 ~을 믿지 않는 것에 대한 정당성은 직접적인 개념적 연관이 없다. 

 

다음에 이어지는 반대항의 사각형이 배열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볼 수 있다(Where: " ~ Jcbp" means "(in context C) there is no justification for believing that p" ; etc.).

 

결론적으로 나는 p라는 지식에 대한 올바른(재귀적인) 정의를 발전시킨다. S가 P를 안다는 것은 IFF

(1) P는 참이고,

(2) S는 P를 믿으며 (만약 P가 C라는 맥락 아래에서 기초적이라면, 또 S가 그것을 C라는 맥락 아래에서 정당하게 생각한다면, (1)과 (2)는 P에 대한 S의 앎의 필요충분조건이다. 만약 P가 비기초적이라면, (3)역시 요구된다)

(3) S는 P를 믿는 것에 대한 객관적인 정당성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3-1) Sei가 존재하는데, 이것은 : S는 Sei의 집합들이 참이라는 것을 알며, Sei는 P에 대한 충분히 강한 증거들을 제공한다. 다른 맥락 안에서, eis 중 어느 것도 ~p를 지지하거나 과잉되어 있지 않으며

In conclusion, I advance as the correct (recursive) definition of knowledge that p: S knows that p IFF (i) p is true; (ii) S believes that p; (If p is "basic in context C", and S justifiedly thinks of it as in context C, (i) and (ii) are both necessary and sufficient for S's knowing that p. If p is "non-basic", (iii) too is needed:) (iii) S is objectively justified in believing that p; that is, (1) there is an Sei} such that: S knows that the members of Sq are true, and that Sq >• p1 ; where none of the qs is superfluous or supports ~p in the context of the others, and S does not believe otherwise, being in fact justified in believing each q to have positive evidential force for p, in the context of the others, unless his belief requires no justification; and S would regard any weaker Se, as not strong enough in the context of the disconfirming evidence he might reasonably be expected to have; (2) there is no Sfj (a) which is true and discredits p to such an extent that 'Sq * p \ while true in a neutral context, is not true in the context of Sfj; and (b) the truth of which S could reasonably have been expected to have found out, or otherwise know, together with the truth of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