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inental/Nietzsche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3부, Vom Geist der Schwere 번역

Soyo_Kim 2023. 12. 4. 08:51

2023-1 문화철학연구

무거움의 정령[각주:1]에 대하여

Vom Geist der Schwere.

 

1. 나의 말재간 - 그것은 민중의 말재간이다: 비단 같은 앙고라 토끼들[각주:2]에게 나는 너무 거칠고 진심으로 말한다. 그리고 나의 말은 모든 먹물-오징어와 펜대 놀리는-여우[각주:3]에게 더욱더 낯설게 들린다.

Mein Mundwerk — ist des Volks: zu grob und herzlich rede ich für die Seidenhasen. Und noch fremder klingt mein Wort allen Tinten-Fischen und Feder-Füchsen.

 

나의 손 – 그것은 몰상식한 손[각주:4]이다: 모든 탁자와 벽, 그리고 또한 몰상식한-치장을, 몰상식한-휘갈김을 위한 곳에 재난이 있으리![각주:5]

Meine Hand — ist eine Narrenhand: wehe allen Tischen und Wänden, und was noch Platz hat für Narren-Zierath, Narren-Schmierath!

 

나의 발 – 그것은 말의 발이다; 나는 그것과 함께 온갖 역경을 헤쳐[각주:6] 다각다각 발소리를 내며 반달음질하고, 들판을 종횡무진으로 가로지르며, 빠르게 달릴 때마다 환희로 인해 신들린다.[각주:7] 

Mein Fuss — ist ein Pferdefuss; damit trapple und trabe ich über Stock und Stein, kreuz- und querfeld-ein und bin des Teufels vor Lust bei allem schnellen Laufen.

 

나의 위 – 그것은 실로 독수리의 위가 아닐까? 왜냐하면 독수리는 새끼양의 고기를 가장 좋아하기 때문이다.[각주:8] 참으로 확실하게도 나의 위는 독수리의 위이다.

Mein Magen — ist wohl eines Adlers Magen? Denn er liebt am liebsten Lammfleisch. Gewisslich aber ist er eines Vogels Magen.

 

죄 없는 것들을 먹고 사는, 또 소량만을 먹고 사는, 날기 위해, 저쪽으로 날아가 버리기 위해 준비하고 안달 난 – 그것이 지금 나의 본성이니: 어찌 거기에 새의 본성과 같은 것이 없을 수 있으리!

Von unschuldigen Dingen genährt und von Wenigem, bereit und ungeduldig zu fliegen, davonzufliegen — das ist nun meine Art: wie sollte nicht Etwas daran von Vogel-Art sein!

 

그리고 특히, 내가 무거움의 정령을 몹시 싫어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새의-본성이다: 또한 참으로, 불구대천의 원수이자, 최대의 원수이며, 가장 근원적인 원수지간인![각주:9] 오, 나의 적개심이 이미 날아 가지 않았던 곳과 날아 헤매지 않았던 곳이 어디 있던가!

Und zumal, dass ich dem Geist der Schwere feind bin, das ist Vogel-Art: und wahrlich, todfeind, erzfeind, urfeind! Oh wohin flog und verflog sich nicht schon meine Feindschaft!

 

그에 관해 나는 이미 하나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으며 또한 그것을 부르고자 한다: 비록 텅 빈 집 안에 홀로 있어도, 그리고 자기의 귀에다 노래를 불러야만 해도 말이다.

Davon könnte ich schon ein Lied singen und will es singen: ob ich gleich allein in leerem Hause bin und es meinen eignen Ohren singen muss.

 

말할 나위 없이 다른 가수들도 있는데, 가득 들어찬 집에 와서야 겨우 그들의 목은 부드럽게, 손 은 수다스럽게, 눈은 명확하게, 심장은 깨어나게 된다: -나는 그런 작자들 같지 않다-.

Andre Sänger giebt es freilich, denen macht das volle Haus erst ihre Kehle weich, ihre Hand gesprächig, ihr Auge ausdrücklich, ihr Herz wach: — Denen gleiche ich nicht —.

 

2.

언젠가 인간에게 날아 감을 가르치는 자, 그가 모든 경곗돌을 옮겨 놓았을 것이다. 그에게 모든 경곗돌은 알아서 대기 중으로 날아가 버리게 되고, 대지는 그로부터 새로운 세례명을 받을 것이 다 – “가벼움“이라는.

Wer die Menschen einst fliegen lehrt, der hat alle Grenzsteine verrückt; alle Grenzsteine selber werden ihm in die Luft fliegen, die Erde wird er neu taufen — als „die Leichte."

 

타조라는 새는 가장 빠른 말보다도 빠르게 달리는데, 그러나 이 타조마저 아직 무거운 대지에 머 리를 버겁게 처박는다: 말하자면, 아직 날지 못하는 인간 말이다.

Der Vogel Strauss läuft schneller als das schnellste Pferd, aber auch er steckt noch den Kopf schwer in schwere Erde: also der Mensch, der noch nicht fliegen kann.

 

그에게 무거움은 대지와 삶을 뜻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무거움의 정령이 그토록 바라는 것이 다! 그러나 가벼이 되기를 바라고 새가 되기를 바라는 자는 스스로를 사랑해야만 한다: – 이렇게 나는 가르친다.

Schwer heisst ihm Erde und Leben; und so will es der Geist der Schwere! Wer aber leicht werden will und ein Vogel, der muss sich selber lieben: — also lehre ich.

 

말할 나위 없이, 병든 자와 중독된 자의 사랑으로는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서는 자기애(自己 愛)조차도 악취가 나기 때문이다!

Nicht freilich mit der Liebe der Siechen und Süchtigen: denn bei denen stinkt auch die Eigenliebe!

 

사람은 자신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 이렇게 나는 가르친다 – 치유되고 회복된 사랑으로써: 사람은 스스로를 견뎌내며, 유랑하지 않는다는 것.

Man muss sich selber lieben lernen — also lehre ich — mit einer heilen und gesunden Liebe: dass man es bei sich selber aushalte und nicht umherschweife.

 

이러한 유랑은 "이웃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세례를 베푼다: 이러한 말들과 함께 지금까지 최상의 거짓부렁과 위선이 이루어졌으며, 무엇보다 온 세상의 고되었던 자들에 의해 그리 되었다.

Solches Umherschweifen tauft sich „Nächstenliebe": mit diesem Worte ist bisher am besten gelogen und geheuchelt worden, und sonderlich von Solchen, die aller Welt schwer fielen.

 

또한 참으로, 자신을 사랑함을 배우는 것은 현재와 미래를 위한 계율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모 든 기예 중 가장 정교하고, 가장 요사하며, 가장 나중의, 가장 기다릴 줄 아는[각주:10] 기예이다.

Und wahrlich, das ist kein Gebot für Heute und Morgen, sich lieben lernen . Vielmehr ist von allen Künsten diese die feinste, listigste, letzte und geduldsamste.

 

요컨대, 모든 자기 소유물은 그것의 소유자에게 잘 숨겨져 있다; 또한 보물 구덩이 가운데 자기 소유물이 가장 늦게 캐어진다. – 무거움의 정령이 이와 같이 만든 것이다.

Für seinen Eigener ist nämlich alles Eigene gut versteckt; und von allen Schatzgruben wird die eigne am spätesten ausgegraben, — also schafft es der Geist der Schwere.

 

대략 요람 속에 있을 즈음 사람들은 이미 우리에게 무거운 말들과 가치를 부여했다: "선"과 "악" – 이 지참금은 그렇게 자칭한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우리를, 우리가 산다는 것을 용서한다.

Fast in der Wiege giebt man uns schon schwere Worte und Werthe mit: „gut" und „böse" — so heisst sich diese Mitgift. Um derentwillen vergiebt man uns, dass wir leben.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 스스로 사랑함을 제때에 막기 위하여 어린아이들을 그들 쪽으로 불러온다: 무거움의 정령이 이렇게 만든 것이다.

Und dazu lässt man die Kindlein zu sich kommen, dass man ihnen bei Zeiten wehre, sich selber zu lieben: also schafft es der Geist der Schwere.

 

그리고 우리 – 우리는 충실하게도, 사람들이 우리에게 주어 보낸 것을 굳은 어깨에 짊어지고 험 준한 산맥을 넘어 힘들게 끌고 가는구나! 그리고 우리가 땀을 흘리면, 사람들은 우리에게 그렇게 말한다: "그래, 삶을 견디는 것은 버거운 일이지!" Und wir — wir schleppen treulich, was man uns mitgiebt, auf harten Schultern und über rauhe Berge! Und schwitzen wir, so sagt man uns: „Ja, das Leben ist schwer zu tragen!"

 

그러나 인간은 그저 그 자신을 견디기에 버거운 것이다! 그가 너무나 많은 낯선 것을 그의 어깨에 짊어지고 힘들게 끌고가기 때문이다. 낙타와 꼭 같게, 그는 무릎을 아래로 꿇고 짐을 쉬이 실 을 수 있게 한다.

Aber der Mensch nur ist sich schwer zu tragen! Das macht, er schleppt zu vieles Fremde auf seinen Schultern. Dem Kameele gleich kniet er nieder und lässt sich gut aufladen.

 

특히나 외경(畏敬)을 내재한, 힘세고 나를 줄 아는 인간: 너무나 낯설고 무거운 말들과 가치들을 그는 지고, - 이에 따라 삶은 그에게 황무지로 여겨지는구나!

Sonderlich der starke, tragsame Mensch, dem Ehrfurcht innewohnt: zu viele fremde schwere Worte und Werthe lädt er auf sich, — nun dünkt das Leben ihm eine Wüste!

 

또한 참으로! 그 많은 자기 소유물 역시 지고 나르기에 무거울 것이다! 그리고 사람 내부에 있는 많은 것은 굴과 같은데, 매스껍고 미끄러우며 붙잡기에 버겁기 때문이다-,

Und wahrlich! Auch manches Eigene ist schwer zu tragen! Und viel Inwendiges am Menschen ist der Auster gleich, nämlich ekel und schlüpfrig und schwer erfasslich —,

 

-그러므로 고귀한 껍질이 고귀한 장식물을 지니고 서원(誓願)해야만 한다는 것.[각주:11] 사람은 이러한 기예 역시 배워야만 한다: 껍질과 아름다운 외관, 그리고 총명한 맹목을 갖는 것!

— also dass eine edle Schale mit edler Zierath fürbitten muss. Aber auch diese Kunst muss man lernen: Schale haben und schönen Schein und kluge Blindheit!

 

재차 많은 껍질이 보잘 것 없이 애처로우며 지나칠 정도로 껍질답다는 것은 사람 안의 많은 것에 대하여 거짓말한다. 숨겨져 있는 여러 좋음과 힘은 전혀 적중되지 못한다; 훌륭한 진미가 미식가를 찾지 못하듯이!

Abermals trügt über Manches am Menschen, dass manche Schale gering und traurig und zu sehr Schale ist. Viel verborgene Güte und Kraft wird nie errathen; die köstlichsten Leckerbissen finden keine Schmecker!

 

여성들, 가장 훌륭한 여성들은 이것을 안다: 약간 더 뚱뚱한 것과 약간 더 마른 것 – 오, 약간 속 에는 얼마나 많은 운명이 들어 있는가!

Die Frauen wissen das, die köstlichsten: ein Wenig fetter, ein Wenig magerer — oh wie viel Schicksal liegt in so Wenigem!

 

인간이란 드러내기 어려우며 자신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은 가장 어렵다; 종종 정신은 영혼에 대 해 거짓말을 한다. 무거움의 정령이 이렇게 만든 것이다.

Der Mensch ist schwer zu entdecken und sich selber noch am schwersten; oft lügt der Geist über die Seele. Also schafft es der Geist der Schwere.

 

그러나 다음과 같이 말하는 자는 자신 스스로를 발견했다: 이것이 나의 선이며 악이다: 그것으로 그는 "모든 이의 선, 모든 이의 악"을 말하는 두더지와 난쟁이를 벙어리로 만들었다.

Der aber hat sich selber entdeckt, welcher spricht: Das ist mein Gutes und Böses: damit hat er den Maulwurf und Zwerg stumm gemacht, welcher spricht „Allen gut, Allen bös."

 

참으로, 나는 또한 어떠한 사물이든 좋다고 칭하고 심지어는 이 세계가 최고라고 칭하는 사람 역 시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그와 같은 사람을 모든 것에 만족하는 자들이라 부른다.

Wahrlich, ich mag auch Solche nicht, denen jegliches Ding gut und diese Welt gar die beste heisst. Solche nenne ich die Allgenügsamen.

 

모든 것을 맛볼 줄 아는, 모든 것에 만족함: 그것이 최고의 취향은 아닐 것이다! 나는 "나", "그렇 다",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배웠던, 반항적이고 까다로운 혀와 위를 존경한다.

Allgenügsamkeit, die Alles zu schmecken weiss: das ist nicht der beste Geschmack! Ich ehre die widerspänstigen wählerischen Zungen und Mägen, welche „Ich" und „Ja" und „Nein" sagen lernten.

 

그리고 모든 것을 씹고 소화시키는 것- 그것은 돼지의 본성에나 걸맞은 것이다! 이-아라고 언제나 말하는 것 – 오직 당나귀나 당나귀의 정신을 가진 자만이 그러한 것을 배웠다!

- Alles aber kauen und verdauen — das ist eine rechte Sehweine-Art! Immer I-a sagen — das lernte allein der Esel, und wer seines Geistes ist!

 

— 깊은 노랑과 강렬한 빨강: 나의 취향이 바라는 것이다, - 나의 취향은 모든 색에 피를 섞는다. 그 러나 그의 집을 하얗게 칠하는 자, 그는 내게 하얗게 칠해진 영혼을 드러낼 뿐이다.[각주:12]

Das tiefe Gelb und das heisse Roth: so will es mein Geschmack, — der mischt Blut zu allen Farben. Wer aber sein Haus weiss tüncht, der verräth mir eine weissgetünchte Seele.

 

한 사람은 미라에게 사랑에 빠지고 다른 사람은 허깨비에게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양자 모두 똑 같이 모든 살과 피를 몹시 싫어한다. – 오, 둘 다 얼마나 취향을 거스르는가! 왜냐하면 나는 피를 사랑하므로.

In Mumien verliebt die Einen, die Andern in Gespenster; und Beide gleich feind allem Fleisch und Blute — oh wie gehen Beide mir wider den Geschmack! Denn ich liebe Blut.

 

그리고 모두 다 침을 뱉고 구토하는 곳, 나는 그런 곳에 살면서 머무르고자 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의 취향인 이상, - 나는 도둑놈과 위증하는 놈 아래에서 사는 것을 더 선호한다. 그 누구도 입에 황금을 물고 나르지 않으니.[각주:13]

Und dort will ich nicht wohnen und weilen, wo Jedermann spuckt und speit: das ist nun mein Geschmack, — lieber noch lebte ich unter Dieben und Meineidigen. Niemand trägt Gold im Munde.

 

그러나 나에게 있어 더욱 거슬리는 것은 역시 모든 아첨꾼들이다; 그리고 내가 발견했던, 가장 거 슬리는 인간 중의 짐승, 나는 그에게 기생충이라는 세례명을 주었다: 사랑하기를 의욕하지 않으면 서도 또한 사랑을 통해 살기를 의욕하는 자.

Widriger aber sind mir noch alle Speichellecker; und das widrigste Thier von Mensch, das ich fand, das taufte ich Schmarotzer: das wollte nicht lieben und doch von Liebe leben.

 

나는 다음과 같은 선택지만을 갖는 모든 것을 불행하다고 칭한다: 악한 짐승이 되든지 또는 악한 조련사가 되든지: 그러한 것 곁에서 나는 어떤 오두막도 세우고 싶지 않다.

Unselig heisse ich Alle, die nur Eine Wahl haben: böse Thiere zu werden oder böse Thierbändiger: bei Solchen würde ich mir keine Hütten bauen.

 

나는 또한 언제나 기다려야만 하는 것 역시 불행하다고 칭한다, - 그것은 나의 취향에 거슬린다: 모든 세리와 소상인과 왕들 그리고 다른 땅 지킴이와 가게 지킴이들.

Unselig heisse ich auch Die, welche immer warten müssen, — die gehen mir wider den Geschmack: alle die Zöllner und Krämer und Könige und andren Länder- und Ladenhüter.

 

참으로, 나 또한 기다림을 배우긴 했다. 그것도 아주 철저하게, - 그러나 그저, 나를 기다리는 것을 배웠을 뿐이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나는 서있는 것과 걷는 것, 뛰는 것, 뛰어오르는 것, 기어 오르는 것, 그리고 춤추는 것을 배웠다.

Wahrlich, ich lernte das Warten auch und von Grund aus, — aber nur das Warten auf mich. Und über Allem lernte ich stehn und gehn und laufen und springen und klettern und tanzen.

 

그리고 이것이 나의 가르침이다: 언젠가 나는 법을 배우고자 하는 자, 그는 우선 서고 걷고 뛰고 기어오르고 춤추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사람은 비행에 곧장 도달할 수 없다!

Das ist aber meine Lehre: wer einst fliegen lernen will, der muss erst stehn und gehn und laufen und klettern und tanzen lernen: — man erfliegt das Fliegen nicht!

 

나는 줄사다리로 많은 창을 기어오르는 법을 배웠으며, 민첩한 다리로 높은 돛대에 기어올라갔다: 높은 인식의 돛대에 앉는 것이 내게는 보잘것없는 행복으로 여겨지지 않았었다,

- Mit Strickleitern lernte ich manches Fenster erklettern, mit hurtigen Beinen klomm ich auf hohe Masten: auf hohen Masten der Erkenntniss sitzen dünkte mich keine geringe Seligkeit,

 

— 높은 돛대 위에서 작은 불꽃처럼 깜빡이는 것: 비록 작은 빛이긴 하지만, 길 잃은 선주와 조난자 에게는 보다 커다란 위로인 것을! -

— gleich kleinen Flammen flackern auf hohen Masten: ein kleines Licht zwar, aber doch ein grosser Trost für verschlagene Schiffer und Schiffbrüchige! —

 

갖가지 길과 방식으로 나는 나의 진리에 이르렀다; 단지 하나의 사다리를 통해 저 멀리를 훑어보 는 이 높이에까지 올라온 것은 아니다.

Auf vielerlei Weg und Weise kam ich zu meiner Wahrheit; nicht auf Einer Leiter stieg ich zur Höhe, wo mein Auge in meine Ferne schweift.

 

그리고 나는 그저 마지못해 끊임없이 길을 물어왔을 뿐이다, - 그것은 언제나 취향에 거슬렸다! 나 는 길 스스로에게 묻고 시도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Und ungern nur fragte ich stets nach Wegen, — das gieng mir immer wider den Geschmack! Lieber fragte und versuchte ich die Wege selber.

 

하나의 시도와 물음이 나의 모든 걸음이었다: - 그리고 참으로, 사람은 그러한 물음에 대답하는 것 을 또한 배워야만 한다! 그러나 이것은 – 나의 취향이다.

Ein Versuchen und Fragen war all mein Gehen: — und wahrlich, auch antworten muss man lernen auf solches Fragen! Das aber — ist mein Geschmack: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러나 부끄러워하지도 숨기지도 않는 나의 취향.

— kein guter, kein schlechter, aber mein Geschmack, dessen ich weder Scham noch Hehl mehr habe

 

"이것이- 지금 나의 길이다, - 당신들의 길은 어디 있나?" 나는 내게 "길을" 물었던 이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왜냐하면 그 길은 –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

»Das — ist nun mein Weg, — wo ist der eure?" so antwortete ich Denen, welche mich „nach dem Wege" fragten. Den Weg nämlich — den giebt es nicht!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Also sprach Zarathustra

 

 

 

 

  1. 책세상 판본은 „der Geist der Schwere“를 중력의 악령으로 옮기고 있으나(p. 317), 본디 이 단어에는 선하거나 악하다는 가치판단이 들어있지 않으므로 악령 대신 정령으로 옮긴다. 실제로 독일어권에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악령』의 제목을 „Die Dämonen“, „Die Teufel“, „Böse Geister“로 옮기고 있다. 또한, 본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die Schwere“는 „die Leichte“와 대비되고 있으므로, "가벼움"과의 대조를 위해 "무거움" 이라는 번역어를 채택했다. [본문으로]
  2. Seidenhasen“은 터키의 앙카라(Ankara) 지방에 서식하던 앙고라 토끼(Angora Rabbit)를 지칭한다. 1720년 경 유럽 선원들에 의해 수입된 이 토끼는 주로 프랑스에서 가축과 애완동물로 길러졌으며, 18세기 유럽 귀 족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참조: https://longreads.com/2018/12/05/the-ugly-history-of-beautiful-thingsangora). 니체는 앙고라 토끼의 이러한 귀족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그 이름의 조어 방식(„seiden(비단같이 부 드러운)“+„ Hasen(토끼들)“)에 착안하여 민중의 거친 말을 앙고라 토끼와 대비시키고 있다. [본문으로]
  3. „Feder-Füchsen“은 „Feder(펜대)“와 „Füchsen(여우들; Fuchs의 3격 복수형)“의 합성어로 „Federfuchser(좀생 이, 현학자, 매문업자(賣文業者; 돈을 벌기 위하여 실속 없는 글을 써서 파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를 연상시키는 단어이다. [본문으로]
  4. 독일어 „Narrenhände“는 대개 „Narrenhände beschmieren Tisch und Wände(바보 천치나 책상과 벽을 낙서 해 더럽히는 법이다.)“라는 관용어구로 쓰인다. 이는 „es ist dumm und ungehörig, Dinge zu bemalen, die dafür nicht gedacht sind(목적에 맞지 않은 물건들에 낙서하는 것은 바보 같고 무례한 일이다)“라는 뜻이다 (참조: https://www.duden.de/rechtschreibung/Narrenhaende). 이러한 관용어구의 원의를 살린다면, „Narrenhände“를 "몰상식한", "양식 없는" 정도로 옮기는 것이 적당해 보인다. [본문으로]
  5. „Wehe“는 감탄사로 영어표현 "woe to", "don’t you dare"에 해당한다. "~에게 재난이 있으리!", "~에게 화가 있으리!" 정도로 번역이 가능하다. 일례로 오스트리아의 극작가 그릴파르처(Grillparzer)의 희곡 „Weh dem, der lügt!“는 『거짓말 하는 자에게 화가 있으리!』로 번역이 가능하다. [본문으로]
  6. 책세상 판본은 „damit trapple und trabe ich über Stock und Stein“을 “이 발로 나는 (...) 나무 등걸과 돌멩이를 밟아가며 달린다."로 번역하고 있는데(p. 317), „Über Stock und Stein“은 본디 “온갖 역경을 헤치고“, “저돌적으로“, “어떤 장애에도 굴하지 않고“를 뜻하는 숙어이므로 여기에서는 “나는 그것과 함께 온갖 역경을 헤 쳐 다각다각 발소리를 내며 반달음질하고“로 번역한다. [본문으로]
  7. 독일어 „des Taufels sein“은 „verrückt(제정신이 아닌, 미친)“, „dämonisch(신들린)“, „teuflisch(악마같은)“의 의 미를 지니며 „Bist du des Teufels?(도대체 너 정신이 있는거니?)“와 같이 쓰인다. 책세상 판본과 카우프만 영 역본은 „und bin des Teufels vor Lust bei allem schnellen Laufen.“을 각각 “그렇게 요란하게 질주하면서 나는 미친 듯한 기쁨을 맛본다.“(p. 317)와 “and I am happy as the devil while running so fast.“(p. 192)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 경우 동사가 달라지므로 부정확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1) 동사 „bin des Taufels“는 “신들리다 “로, (2) „vor Lust“는 „vor + 무관사 명사“이므로 원인 또는 이유를 나타내는 “환희로 인해“로, (3) „bei allem schnellen Laufen“는 일차적으로 “빠르게 달릴 때“를 뜻하지만 allem이 있으므로 “빠르게 달릴 때마다“로 번역하였다. [본문으로]
  8. Adler(독수리) 또는 Raubvögeln(맹금)과 Lamm(새끼양) 사이의 대조에 관해서는 『도덕의 계보학』(Zur Genealogie der Moral) 제1논문 13절의 다음을 보라: „– Doch kommen wir zurück: das Problem vom andren Ursprung des »Guten«, vom Guten, wie ihn der Mensch des Ressentiment sich ausgedacht hat, verlangt nach seinem Abschluss. – Dass die Lämmer den grossen Raubvögeln gram sind, das befremdet nicht: nur liegt darin kein Grund, es den grossen Raubvögeln zu verargen, dass sie sich kleine Lämmer holen. Und wenn die Lämmer unter sich sagen »diese Raubvögel sind böse; und wer so wenig als möglich ein Raubvogel ist, vielmehr deren Gegenstück, ein Lamm, – sollte der nicht gut sein?« so ist an dieser Aufrichtung eines Ideals Nichts auszusetzen, sei es auch, dass die Raubvögel dazu ein wenig spöttisch blicken werden und vielleicht sich sagen: »wir sind ihnen gar nicht gram, diesen guten Lämmern, wir lieben sie sogar: nichts ist schmackhafter als ein zartes Lamm.«“ [본문으로]
  9. „Jm. {Et. 3격} feind sein“은 "누군가를 몹시 싫어하다"를 뜻하는데, 니체는 여기에 tod(죽음) + feind, erz(최 고, 최대, 극악, 최악 등을 뜻하는 전철)+feind, ur(근원적인)+feind 등을 부언하여 무거움의 정령에 대한 적대심을 강조하고 있다. [본문으로]
  10. Gedulsam: (1) Nicht die Geduld während des Wartens verlieren; bereit zu warten wenn nötig; sich nicht davon stören lassen warten zu müssen; nicht unwillens zu warten. (2) Nicht die Geduld während des Wartens verlierend (참조: https://de.glosbe.com/de/de/geduldsam). [본문으로]
  11. 독일어의 원의((1) Fürbitten: für jemanden, etwas Fürbitte leisten (참조: https://www.duden.de/rechtschreibung/fuerbitten) (2) Fürbitte: Bitte oder Gebet für jemand anderes (참조: https://www.duden.de/rechtschreibung/Fuerbitte))를 살린다면 "청원하다", "기도하다", "중재하다" 정도를 번역 어로 생각할 수 있는데, 실상 이 구절에서 니체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에서는 "신불(神佛)이나 자기 마음속에 맹세하여 소원을 세우다"라는 뜻의 "서원하다"로 옮긴다. (참조: https://ko.dict.naver.com/#/entry/koko/7ea484a732dc4f9f95ee42e92be98fcc) [본문으로]
  12. „Von den drei Bösen“에서 언급되었던 „übertünchter Gräber(회칠한 무덤)“을 연상시키는 구절이다. 예수님 은 바리새인들을 회칠한 무덤같다고 하셨는데(마: 23:27), 이는 하얗게 회칠한 무덤이 겉으로는 빛을 받아 아 름다우나 속으로는 썩어가는 시체를 품은 부패한 곳인 것처럼 겉으로는 옳게 보이나 속으로는 외식과 불법 이 가득한 바리새인들의 행태를 비유를 통해 지적한 것이다(참조: https://m.kmib.co.kr/view.asp?arcid=0921174260) [본문으로]
  13. „Gold im Munde“는 „Morgenstund hat Gold im Mund(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와 같이 "천금 의 값어치를 지닌다."로 해석될 수도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