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인 (2004). 『현상학과 해석학』.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1. 후썰과 현상학의 이념
1.1 현대의 위기와 현상학의 이념
Husserl 현상학의 출현 배경: 제1차 세계대전, 바이마르 공화국의 몰락, 전세계적인 경제공황, 나치주의의 대두 등
Husserl 의 진단
① [이는] 현대과학이 병들어서 그 본래적인 기능을 상실하고 위기상황에 빠져 있다는 데 있다. [...] 현대과학이 위기에 처해 있다 함은 현대에 들어서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 과학이 역설적으로 인류의 삶과 고양을 위해 그것이 지녀 왔던 본래적인 의미를 점차 상실하게 되었음을, 다시 말해 과학이 과학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22-23]
② 그러나 [...] 이러한 과학의 위기의 최종적인 원천은 바로 철학의 위기에 있다. 모든 것의 뿌리, 모든 것의 원리를 탐구하고자 하는 철학은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자신의 고유한 기능을 상실하고 병들게 됨으로서 일대 위기에 처하게 되었으며, 그 필연적인 결과로 과학의 위기를 초래하게 되었다. [23]
19세기 중후반: 실증적 경험에 기초한 개별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 헤겔 류의 관념론의 붕괴 및 철학의 정체성 위기가 도래함
실증주의(Positivismus): 실증적인 개별과학을 철학적 토대로 삼는 입장들 | |
자연주의 (Naturalismus), 물리주의 (Physikalismus), 객관주의 (Objektivismus) |
물리학적 방법이 모든 학문의 참된 유일한 방법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입장 콩트 (Comte): 사회 물리학의 정초 |
역사주의 (Historismus) | 모든 현상은 역사성을 지니며 따라서 역사적 제약을 벗어날 수 있는 현상은 존재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는 입장. 드로이젠(Droysen), 딜타이(Dilthey) |
문헌학적 실증주의 | 철학의 고유한 임무는 더 이상 철학적인 사태의 해명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엄밀한 문헌학적 방법을 사용하여 과거의 위대한 철학자들의 사상을 정리하는 데 있다. 신칸트주의, 신아리스토텔레스주의, 신토마스주의, 신헤겔주의 |
③ [넓은 의미의] 실증주의의 한계
자연, 역사, 정신, 예술, 종교, 본질, 의식 등 그 존재 및 의식구조에서 서로 구별되는 다양한 사태 영역이 있음을 망각한 채 자연 (자연주의) 혹은 역사 (역사주의) 등 특정한 사태 영역에만 타당한 존재 및 인식원리를 일반화시켜 모든 사태영역에 무차별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고 봄.
자연주의와 역사주의의 근본적인 오류는 그것들이 특정한 사태영역에서만 자신의 고유한 권리를 지니는 이성, 다시 말해 제한된 영역에서만 타당한 이성-자연과학적 이성이나 역사적 이성-이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벗어나 다른 영역까지도 부당하게 침범하면서 월권을 행하고, 더 나아가 전 영역에서 독재 행위를 자행하도록 한 데 있다. [25] 1
사태 자체를 총체적이며 올바로 파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차단되었다는 점에서는 문헌학적 실증주의도 예외는 아니다. 문헌학적 실증주의의 입장을 견지할 경우 특정한 철학자의 철학이 철학의 이념을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는 철학으로 등장하게 되고, 따라서 그 누구든 그 철학을 낳게 한 근본적인 전제 속에 함몰되어 또 다른 전제에서 출발해 사태를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이 차단되고 말기 때문이다. [25-26]
사태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근원적으로 막혀 있는 이러한 세 가지 유형의 실증주의 철학이 철학은 모든 것의 원리에 대한 인식, 다시 말해 존재자 전체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의 획득을 목표로 한다는 철학의 근원적인 이념과 상반되는-후썰의 표현을 빌자면-일종의 사이비철학(Unphilosophie)임을 알 수 있다. [26] 2
Husserl 철학의 실천철학적 함의
이제 후썰에게 주어진 과제는 철학은 모든 것의 원리, 모든 것의 뿌리에 관한 학이다라는 전통적인 철학의 이념을 근원적으로 새롭게 부활시켜 참다운 철학을 수립함으로써 현대과학 일반이 처한 위기, 더 나아가 현대인이 처한 실존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데 있다. [26]
이처럼 후썰의 현상학은 본래 실천적 함축을 지니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엄연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많은 연구자들은 후썰의 현상학을 실천적 함축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순수하게 이론적이기만 한 철학으로 간주한다. [26-27]
① 호르크하이머, Traditionelle und kritische Theorie:
현상학은 플라톤과 데카르트의 철학의 연장선상에서 나타난 전통이론의 전형적인 예.
전통이론: 특정사태의 발생과정 및 그 사태를 파악하는 개념체계의 실천적 적용, 그리고 실천에 있어서의 이론의 역할 등을 이론에 대해 우연적이며 외적인 요소로 간주하는 이론
비판이론: 이론을 역사적이며 사회적 실천의 산물로 간주하고 이론이 지닌 실천적, 사회변혁적 함축을 강조
후썰은 논리학에서 이론을 학문 일반의 자기 완결적인 명제체계로 규정하였기에 전통이론에 속하며, 실천철학이 될 수 없다.
② 아도르노: 순수의식과 지향성을 주제로 삼는 현상학은 전통적인 의미의 인식론, 의식철학, 데카르트주의 철학, 관념론에 불과하며, 따라서 현상학은 초역사적이며 초사회적인 순수자아나 유아론적 자아를 탐구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 사회의 실재적인 삶의 과정을 탐구할 수는 없다.
③ 이남인의 반론: 이러한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견해는 정당하지 못하다. 앞서 지적되었듯이 후썰의 현상학은 참다운 의미의 철학을 수립함으로써 학문 일반이 처한 위기를 극복하고 궁극적으로는 현대인이 처한 실존적인 위기를 극복함을 목표로 하며, 그러한 점에서 그것은 철두철미 실천철학적 함축을 지니고 있다.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 플라톤과 철학과 데카르트의 철학은 근원적으로 실천적인 함축을 지니고 있는 철학이다. 3
Husserl에게 있어 참다운 철학
철학의 목표가 모든 것의 뿌리를 탐구하는 데 있다는 전통적인 철학의 이념에 의하면 참다운 철학은 한편으로는 보편성을 지녀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태적합성, 즉 엄밀성을 지녀야 한다.
앞서 살펴본 실증주의가 참다운 철학이 될 수 없었던 이유는 그것이 바로 이러한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실증주의는 그것이 특정한 존재자 영역에만 시선을 집중시킨 채 거기서만 타당한 존재 및 인식원리를 다른 영역에까지 확대시켜 적용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존재자를 총체적 혹은 보편적 관점에서, 사태 자체의 본성에 적합하게, 다시 말해 엄밀하게 파악할 수 없었던 것이다. [31]
참다운 철학 | |
보편학 | 참다운 철학의 주제적 측면 |
엄밀학 | 참다운 철학의 방법적 측면 |
1.2 보편학으로서의 현상학
보편학의 정의: 모든 가능한 이론을 자체 내에 포함하고 있는 학문
Husserl: 보편적인 철학은 [...] 모든 이론들에 대한 이론, 즉 절대적인 형식적 인식론과 과학론일 뿐 아니라 보편적이며 절대적인 학으로서 모든 개별적인 이론들을 그 안에서 내용적이며 체계적으로 발전시킨 이론이다.
학문에 대한 후설의 분류
경험과학 (물리학,화학, 생물학, 심리학, 사회학, 역사학) | 경험 과학 | 넓은 의미의 철학: 다양한 유형의 경험과학, 다양한 유형의 형식적 존재론과 영역적 존재론 그리고 초월론적 현상학은 [...] 나름대로의 고유한 정초연관 속에서 존재한다. |
존재론 (형식적 존재론과 내용적 존재론) | 좁은 의미의 철학 | |
초월론적 현상학 |
후썰의 현상학은 초월론적 현상학을 토대로 형식적 존재론과 내용적 존재론을 정초하고, 이러한 존재론을 토대로 다양한 유형의 경험과학을 정초함을 목표로 하는데, 이처럼 나름대로의 고유한 정초연관 속에서 존재하는 초월론적 현상학과 존재론뿐 아니라 다양한 유형의 경험과학까지 포함하는 것이 바로 후썰의 현상학이 추구하는 보편학이다. [33-34]
다양한 경험과학, 형식적 존재론과 내용적 존재론, 초월론적 현상학 전체를 포괄하는 보편학으로서의 현상학 전체를 하나의 나무에 비유한다면 초월론적 현상학은 나무의 뿌리에 해당할 것이요, 형식적 존재론과 내용적 존재론은 나무의 둥치에 해당할 것이며, 마지막으로 다양한 경험과학은 둥치로부터 뻗어나가는 가지에 해당할 것이다. [34]
초월론적 현상학과 존재론, 경험과학 등이 서로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고유한 정초연관 속에서 존재하며, 그러한 한에서 이들은 유기적인 전체를 이루고 있다. [34-35]
현상학에 대한 방법론적 일원주의라는 혐의
보편학을 이념으로 하는 현상학이 하나의 보편적인 방법적 원리에 기초하여 모든 학문을 구축하려 시도하는 철학이라는 혐의 <2번 각주 참고>
① 데카르트는 보편수학(Mathesis Universalis)의 이념을 추구하면서, 바로 보편수학의 방법이 모든 학문의 방법적 원리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데카르트는 [...] 모든 진리들은 그 본성상 동일한 하나의 진리라는 견해를 피력한다. 그런데 보편수학의 이념을 추구하는 데카르트에 의하면 그 본성상 동일한 하나의 진리를 발견할 수 있는 수단은 다름 아닌 수학적 이성이다. [35-36]
② 이와 유사한 방법론적 일원주의는 그 후 콩트 및 콩트의 뒤를 이어 20세기 초에 등장한 논리실증주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논리실증주의는 수리물리학적 방법을 통해 모든 학문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통일과학의 이념을 실현시키고자 시도하였다.
벨쉬(Welsch): 후썰의 현상학은 현상의 다원성 및 이러한 다원성에 뿌리박고 있는 방법의 다원성을 무시한 채 모든 현상을 단 하나의 방법을 동원해서 파악하고자 하는 방법론적 일원주의 철학. [36-37]
후썰의 현상학의 가장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는 대상영역이 달라짐에 따라 존재원리 및 인식원리가 달라질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방법론적 일원주의를 추구하는 모든 철학이 애초부터 신기루를 찾아 헤매는 그릇된 철학임을 밝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현상학은 그 어떤 철학보다도 더 철저하게 현상과 방법의 다원성을 인정하면서 방법론적 일원주의가 행할 수 있는 독재를 비판하는 철학이다.
후썰의 현상학은 그것이 엄밀학으로 전개될 때만 이처럼 현상의 다원성을 인정하는 철학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이처럼 후썰의 현상학이 엄밀학으로 전개될 수 있도록 해 주는 방법론적 토대가 다름 아닌 다양한 유형의 현상학적 환원이다.
1.3 엄밀학으로서의 현상학
엄밀성의 의미
참다운 철학을 지향하는 현상학의 또 다른 측면은 엄밀학(strenge Wissenschaft)이다.
엄밀성이란 개념은 개념사적으로 볼 때 데카르트의 명석하고 판명한 관념에 관한 이론과 연결되어 있다.
데카르트의 경우 | |
명석성(Klarheit) | 어떤 사태와 연관된 어떤 관념이 주의하는 정신에 현전하고 분명할 경우 |
판명성(Deutlichkeit) | 어떤 관념이 명석하면서 동시에 모든 다른 관념들로부터 분명하게 구별되어 있어서 명석한 것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자신 안에 포함하고 있지 않을 경우 |
명석성과 판명성은 어떤 관념을 판별하는 서로 다른 두 가지 기준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사태와의 일치 여부라고 하는 동일한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어떤 관념이 보일 수 있는 서로 구별되는 두 가지의 완성도, 즉 사태 자체에 부합하는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어떤 관념은 명석하거나 판명한 것이 아니라, 오직 명석한 관념만이 판명한 관념이 될 수 있다. [39] |
Husserl의 명석성과 판명성
① 후썰의 경우 명석성과 판명성을 지닌 개념은 다름 아닌 사태 자체와 부합하는 개념 혹은 사태 자체로의 귀환을 통해 획득된 개념을 의미한다. 이처럼 사태 자체로의 귀환을 통해 획득된 명석하고 판명한 개념은 다양한 완성도를 지니며, 그 중에서 가장 완성된 형태는 충전적인 직관에 기초한 명증적인 개념이며, 따라서 명석하고 판명한 개념은 사태에 대한 직관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사태에서 획득된 모호한 개념, 혼란스러운 개념, 어두운 개념과 대비되는 개념을 의미한다.
② 후썰은 데카르트와 달리 명석성과 판명성을 정확하게 구별하면서 사용하지 않고 양자를 서로 교환 가능한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데카르트의 경우에도 명석성과 판명성이 질적으로 서로 다른 두 가지 기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완성도를 의미하는 것이며, 따라서 양자를 구별하는 일이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후썰의 경우 사태 자체에 토대를 두고 있는 개념은 명석하고 판명한 개념, 즉 엄밀한 개념을 의미하며, 따라서 그 어떤 개념이 엄밀한 개념이라 함은 그것이 사태 자체와 무관한 개념이 아니라 사태 자체와 맞아떨어지는 개념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처럼 엄밀한 개념들을 토대로 이루어진 학문이 바로 엄밀학인 것이다. [40]
엄밀학과 다원성
엄밀학으로서 정립된 역사학은 엄밀학으로서 정립된 물리학과 똑같은 모습을 보일 수 없다. 그 이유는 바로 이 두 경우 그것들이 사용하는 개념이 비록 표현상으로는 동일하다고 할지라도 그 개념이 지칭하는 사태는 전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리학의 시간: 일의적으로 계략 가능한 수학적 시간
역사학의 시간: 삶의 시간 혹은 역사적 시간
개념의 엄밀성 | 개념의 정밀성 |
사태 자체와 맞아떨어지는, 사태 자체로의 귀환을 통해 획득된 개념 | 수학적 수단을 통해 일의적이며 정밀하게 계량 가능한 사태를 지시하는 개념, 다시 말해 일종의 수학적 개념 |
물리학적 시간 개념은 정밀하면서 엄밀하지만 역사적 시간은 사태의 본성상 정밀한 개념일 수 없음 | |
정밀한 개념이 모든 대상영역을 파악하기 위해 사용될 경우 그것은 엄밀하지 않은 개념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다. [...] 아무리 정밀한 수학적 개념 혹은 물리학적 개념을 동원하여 역사학적 대상을 수학적으로 측정하고 계산한다고 해도 역사학적 대상의 본래적인 의미가 밝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41] |
현상학적 환원 (phänomenologische Reduktion)
엄밀학으로서의 철학, 즉 엄밀학으로서의 현상학을 수립하기 위해서 일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작업은 사태 자체로! (zu den Sachen selbst!)라는 현상학의 구호가 말해주듯이 철학이라는 학문의 정체에 대한 일체의 선입견에 대해 일단 판단중지한 후 그러한 선입견에서 벗어나 철학이 다루고자 하는 다양한 유형의 사태 자체로 귀환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처럼 사태 자체로 귀환하는 작업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 바로 현상학적 환원이다. [41-42]
① 현상학적 환원의 필요성: 철학이 탐구해야 할 주제, 즉 사태가 확인되었다고 해서 그 사태가 그 사태의 본성에 합당하게 파악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러한 사정은 무엇보다도 의식활동의 지향적 구조를 파악하고자 시도하는 현상학적 심리학이나 초월론적 현상학을 수립하고자 시도할 경우에 분명히 드러난다. [...] 의식현상의 지향적 구조를 올바로 파악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② 의식현상의 지향적 구조 파악의 어려움: 우리가 일상적 삶을 살아나가는 자연적 태도에서 우리의 관심은 주로 물질적인 외계대상을 향해 있으며, 따라서 자연적 태도에서 이러한 대상을 향한 의식활동의 지향적 구조는 거의 은폐된 채로 있거나,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때에도 외계대상의 구조에 의해 부분적으로 왜곡되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고통의 크기 표현: 큰 고통 혹은 작은 고통이라는 표현은 고통이라는 의식현상이 마치 물리적인 대상과 유사하게 그 키를 잴 수 있는 대상인 듯한 생각을 갖게 한다. [...] 자연적 태도 속에 들어 있는, 의식을 왜곡하려는 이러한 성향 때문에 의식현상을 마치 물리적인 현상처럼 다룰 수 있으리라는 유혹이 자연스럽게 생기며, [...] 이처럼 물리학적 실증주의가 나타나면서 자연적 태도 속에 들어 있던 은폐성향 내지 왜곡성향은 더욱더 극단화되었고, 그에 비례하여 의식현상이라는 사태 자체를 그 현상의 본질에 합당하게 파악할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더 줄어들고 말았다. [43]
③ 현상학적 환원의 목표: 이러한 은폐성향 및 왜곡성향이 나타나게 된 전제들을 검토하고, 더 이상 이러한 전제들에 입각하여 의식현상을 고찰하지 말아야겠다는 의지적인 결단을 통해서만 [지향적 구조의 파악이] 가능하다. 이러한 결단행위를 통하여 은폐성향 및 왜곡성향을 가능하게 한 일체의 전제들이 판단중지되어야 비로소 사태 자체로의 귀환이 가능한데, 판단중지를 통해 이처럼 사태 자체에 이르는 방법적 절차가 현상학적 환원이다.
④ 환원Reduktion의 어원: Reduktion은 라틴어 reductio라는 명사에서 유래하며, reductio는 reducere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다. reducere는 [진격하고 있는 군대를] 퇴각시키다, 후퇴시키다라는 의미를 지니며, 또한 추방된 사람을 다시 불러들이다. [...]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을 올바른 길로 들어서게 하다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reducere는 대부분의 경우 이미 저질러진 어떤 일을 원래 상태로 복원하는 과정을 의미하며 여기에서 "이미 저질러진 어떤 일"은 부정적이고 옳지 않은 것이라는 함축을, "원래 상태"는 긍정적이고 옳은 것이라는 함축을 지닌다. 요컨대 환원이란 이미 저질러진 부정적이며 옳지 않은 상태를 긍정적이며 옳은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는 과정을 의미한다.
⑤ 이러한 엄밀학과 그 방법적 토대인 현상학적 환원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후썰이 모든 원리 중의 원리라 부르는, 모든 학문의 방법론적 근본원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방법론적 근본원리에 의하면 사태를 근원적으로 드러내 주는 직관이 모든 인식의 권리원천이다. 이러한 직관주의에 의하면 모든 인식의 최종적인 원천은 사태에 대한 근원적인 직관인데, 이 점에 있어서는 철학적 인식도 마찬가지이다. [44-45]
철학적 이성
각각의 의식활동이 나름대로의 고유한 본질구조를 지니며, 그러한 한에서 자기에게 고유한 권리를 지닌다는 점에서는 철학적 이성도 예외는 아니다. 이는 일차적으로 철학적 이성이 지닌 고유한 권리가 그 어떤 다른 유형의 의식활동에 의해서도 부당하게 침해되어서는 안 됨을 의미하는 동시에 철학적 이성이 다른 여타의 이성이 지닌 기능을 대신할 수 없음을, 다시 말해 [...] 다른 영역을 침범하려고 해서는 안 됨을 의미한다. [46]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적 이성은 방법론적 관점애서 볼 때 여타의 다른 의식활동에 비해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한다. 그 이유는 바로철학적 이성만이 다양한 유형의 의식활동의 본질 구조가 서로 다르며 따라서 그들 각각이 그 어떤 다른 의식활동에 의해서도 침해될 수 없는 고유한 권리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고, [...] 다양한 의식활동 사이의 바람직한 조화관계를 고려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46-47]
철학적 이성이 지닌 이러한 방법상의 절대적 우위와 관련하여 우리는 특정한 존재자영역에만 한정되어 있는 여타의 의식활동을 특수한 의식이라 부를 수 있으며, 이와는 달리 보편학으로서의 철학을 가능하게 하는 철학적 이성을 존재자 전체와 관계하는 보편적 의식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48]
- 그러나 자연주의와 역사주의는 애초에 특정한 사태 영역에 타당한 존재 및 인식원리가 정당하게 일반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반론은 [모든 사태영역을 아우르는 이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가 먼저 입증되어야만 타당하다. [본문으로]
- 이성이 제한된 영역에서만 타당하다면 존재자 전체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의 획득(철학의 근원적 이념)이 어떻게 가능한지 의문스럽다. [본문으로]
- 그러나 후썰의 이론철학적 내용이 실천적 목표를 지닌다는 이남인의 주장이 어떻게 반론으로 기능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호르크하이머의 견해는 후썰의 이론철학적 체계가 실천적 함축을 전연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이론의 생산과 적용 (실천)이라는 전통이론의 도식을 후썰 철학 역시 마찬가지로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호르크하이머는 실천과 이론이 맺는 관계가 이와 같이 우연적이며 외적인 경우 진정으로 실천적인 철학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후썰에게 있어서도 그 관계는 우연적이고 외적이라는 점을 문제삼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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