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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국 (2019)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강독 (1)

Soyo_Kim 2025. 2. 14. 06:41

박찬국 (2019).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 강독 」 . 그린비.

 

1장  존재물음의 필요성, 구조 및 우위

§ 1. 존재에 대한 물음을 분명하게 다시 제기해야 할 필요성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의 의미를 현상 자체에 입각하여 획득하였으나, 그 후 그 현상 자체는 망각된 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명제들만이 계승되었다. 이에 따라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최고도의 긴장된 사유 속에서 비록 단편적이고 초보적일망정 현상 자체로부터 쟁취했던 것이 진부한 것이 되고 현상 자체에 기반을 두지 않은 빈말이 되고 말았다.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은 불필요할 뿐 아니라 그것을 제기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선입견이 형성

① ‘존재는 가장 보편적이고 가장 공허한 개념이므로 정의될 수 없다’

‘존재는 또한 정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자명한 개념’

 

1. ‘존재는 가장 보편적 개념이다’

존재의 이러한 보편성은 어떤 유(類)가 갖는 보편성과는 전적으로 구별된다. 존재자들은 유와 종(種)에 따라 개념적으로 분류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간과 원숭이는 모두 동물이라는 유에 속하는 서로 다른 종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분류에 따라서 사람들은 존재를 모든 존재자들을 포괄하는 최고의 유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존재는 모든 존재자들을 포괄하는 최고의 유, 즉 가장 보편적인 유가 아니다. 오히려 존재의 보편성은 모든 종류의 유적 보편성을 넘어선다.

동물: 인간, 원숭이, 개, 새 등의 것들이 갖는 종적인 차이를 사상하고 그것들 사이의 공통점만을 추상함으로써 형성한다. 인간, 원숭이, 개, 새는 모두는 스스로 움직일 수 있고 감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우리는 그것들 사이의 종적인 차이를 무시하고 이러한 공통점에만 주목하면서 ‘동물’이라는 유 개념을 형성한다.

그런데 존재라는 개념은 우리가 모든 존재자들의 종적인 차이를 사상함으로써 갖게 되는 유 개념이 아니다. ‘동물’이라는 유 개념에는 동물에 속하는 다양한 종들이 갖는 차이는 제거되어 있으며 따라서 이러한 종들이 갖는 차이는 ‘동물’이라는 개념으로 표현될 수 없다. 이에 반해 ‘존재’라는 개념은 유 개념처럼 그것에 속하는 모든 존재자들의 차이를 사상함으로써 획득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존재’에 속하는 모든 존재자들이 갖는 차이도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무슨 상관인건지]. 따라서 ‘동물’과 같은 유 개념에 속하는 다양한 종들의 차이는 ‘동물’이라는 개념으로 표현될 수 없는 반면에, 존재라는 개념에 속하는 모든 것의 차이는 그것들도 존재하는 것인 한 존재라는 개념에 의해서 표현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최고의 유 개념에 해당하는 것은 존재가 아니라 범주들이라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우리는 특정한 종이나 유를 규정하는 모든 차별적 징표들을 사상해 감으로써 보다 더 일반적인 개념에 이르게 되고 마침내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가장 보편적인 유 개념인 범주에 이르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가장 보편적인 유 개념으로 실체, 양, 성질, 관계, 장소, 시간, 소유, 능동, 수동이라는 10개의 범주들을 들고 있다. 이러한 범주들은 존재자들의 차이를 사상함으로써 획득된 것이지만, ‘존재’라는 개념은 존재자들 사이의 차이를 사상함으로써 획득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하나의 범주로 간주될 수 없다.

범주가 그것에 속하는 다양한 존재자들의 차이를 사상한 개념인 반면에, 존재라는 개념은 그것에 속하는 다양한 존재자들의 차이까지도— 이러한 차이들도 모두 존재하는 것인 한 — 포괄하는 개념이다. 우리는 어떤 것이 갖는 성질을 실체라고 부를 수는 없는 반면에, 존재라는 개념은 그러한 성질과 실체가 존재하는 것인 한 성질과 실체까지도 다 포괄한다. 어떠한 범주도 다른 범주들을 포괄하지는 못하고 그것들은 서로를 배제하지만 존재는 그것들 모두를 포괄하며 그것들 사이의 차이마저도 모두 포괄한다. 이런 의미에서 존재는 가장 포괄적인 것이지만 이러한 존재의 포괄성은 범주의 포괄성처럼 그것에 속하는 것들의 차이를 다 사상해 버린 추상적인 포괄성이 아니라 그것에 속하는 차이들까지도 모두 포함하고 있는 구체적인 포괄성이다.

존재가 이렇게 초범주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중세 존재론은 존재를 초월자(transcendens)라고 불렸다. 그리고 최고의 유 개념들인 범주가 갖는 다양성에 대해서 존재라는 초월적인 보편자가 갖는 통일성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유비의 통일(Einheit der Analogie)로서 파악하려고 시도했다. 즉 존재라는 개념은 일의적이지도 않고 다의적이지도 않은 유비적인 개념이라는 것이다. 동물이라는 개념은 일의적이지만, ‘배’라는 개념은 우리가 먹는 배일 수도 있고 타고 다니는 배일 수 있는 점에서 다의적이다. 이에 대해서 우리가 인간의 ‘존재’, 신의 ‘존재’, 기하학적인 도형과 숫자의 ‘존재’에 대해서 말할 경우 ‘존재’라는 개념은 일의적이지도 다의적이지도 않고 유비적이다.

사람들은 존재는 가장 보편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가장 공허한 개념이고 그것에 대해서 더 이상 물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자명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반해서 하이데거는 존재 개념의 보편성은 그것에 속하는 다양한 차이들을 포함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가장 큰 수수께끼를 담고 있으며 따라서 존재 개념은 가장 불명료한 개념이라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