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lytic/Social & Political Phil

이미경 (2004) 경제난 이후 북한여성의 삶과 의식의 변화

Soyo_Kim 2024. 11. 21. 11:50

이미경. (2004). 경제난 이후 북한여성의 삶과 의식의 변화: 탈북 여성과의 심층면접을 중심으로. 아세아연구, 47(2), 183-212.

Mi-Kyung, Lee (2004). The Limited Change of North Korea Women's Life & Consciousness in the Situation of Economic Difficulties, The Journal of Asiatic Studies, 47(2), 183-212.



1. 북한여성의 역할 변화

① 경제난 이전의 북한 여성:

국가발전전략: "사회 한쪽의 수레바퀴를 떠밀고 나가는 역군,"

양성평등의 원칙과 여성해방의 명분 아래 정권 차원에서 사회경제활동을 장려함.

북한체제에서 여성들의 사회경제활동 참여는 거의 필수사항 [184]

그러나 남편의 수입이 여전히 가계생계유지의 주요 수단. 여성의 수입은 전업이든 부업이든 보조적.

 

② 경제난 이후

"공식공급체계가 마비된 상황에서도 작업장에 출근해야 하는 남편에 비해 비교적 이동이 자유로운 여성이 생계 유지 전선에 나서게 된다." [185]

"북한여성은 사회경제활동 여부와 사회적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가정에서는 가부장제하의 전통적인 성역할을 수행해 왔으나, 생계를 책임지면서 남편에게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거나 가사와 육아가 전적으로 자신들의 책임이라는 인식을 재고하게 되었다. 한편 남편들도 장기간 집을 비운 아내를 대신해 가사와 양육 등에 참여하는 한편 아내의 장사를 도와주는 등 가정생활에서 역할의 변화가 일어났다." [185]

경제난 이후에도 여성들이 생계 유지를 위해 장사 등에 나서게 된 것은 유교전통의 잔존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북한에서는 남자들이 장사하는 것을 제일 수치로 여긴다. 남자는 장마당에 나가서 장사하는 것을 질색해 하지만 밀수, 밤에 밀수하는 것은 자신 있어 함 [185]

 

③ 탈북여성들과의 면담

"북한여성들은 그들의 삶이 남편의 사회적 지위와 직업에 의해 좌우되며, 이런 현상은 경제난 이후 여성이 생계 전선에 나서면서도 크게 변화되지 않았다고 한다." [186-187]

안전부, 보위부, 군인, 당일군: 공식공급체계가 마비되어도 식량배급이 주어짐.

행정 일군, 각 기업소의 지배인: 유리한 여건에서 장사를 할 수 있음.

일반 노동자: 생계를 적극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 내몰림

남편의 직업과 지위에 따라 삶의 양태가 달라짐.

상층 간부직-보위부, 안전부, 군인, 당일군
중층 행정 일군, 각 기업소 지배인
하층 일반 노동자

[188]

1980 후반~1994 (김일성 사망) 1994-1998 1998~
경제문화의 심화, 자력 구제에 나서기 시작. 총체적 위기 직면의 시기, 공급체계와 중앙 통제 체제의 마비 고난의 행군 이후, 변화된 사회구조에 적응

[188]

전문직을 가진 일부 여성을 제외한 대부분의 결혼한 여성들은 부양으로 남게 되었으나, 각종 형태의 부업을 통해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고자 함. [188]

사회보장제도가 비정상적으로 운영됨에 따라 북한 정권 차원에서 자력갱생의 원칙을 내세움 [189]

배급이 중단되고 자력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여성의 경제활동은 전업화되고, 가정 내 생계 주 책임자로 부상함 [189]

그러나 가부장제적 권위주의라는 북한 체제의 특성상 북한 여성의 삶은 남편의 사회적 지위와 직업에 의해 크게 좌우되었고 이런 현상이 경제난 이후에도 크게 변화되지 않았다. [189]

 

2. 세 가지 생계유지 방식

① 장사 (되거리, 장마당 장사)

② 가내작업반 활용

③ 외화벌이 (중국상인과 접촉) [189-190]

 

3. 시기별 변화

① 1980 후반~1994 (김일성 사망): 생계유지 방안 모색

"당시 북한여성들의 부업은 주로 장사였으나 처음부터 장사를 한 것이 아니라 수예, 공예품, 양복가공 등의 가내작업반을 통해 해오던 부업을 장사로 전환한 것이다" [190]

"장사라 해도 종류뿐만 아니라 규모에 있어서 계층별 차이가 심했다." [191]

② 1995-1998: 적극적인 대응

③ 1990 이후: 변화 속의 적응

"1999년도 이후에는 고위 간부급을 제외한 북한인민들 모두는 장사 같은 것을 하면서 생활을 유지했다." [198]

"1999년에는 장마당에서 장사하는 남자들이 눈에 많이 띠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남자들이 없었는데, 점차 늘어나서 밥 파는 남자들까지 있었지만 대개 잡화, 재생품, 기계류, 자전거 부속 등을 파는 것은 남자가, 외지로 차를 타고 장사하러 나가는 사람들은 여자가 많았다고 한다." [198]

 

4. 북한여성들의 삶과 의식 변화

1990년대 이전까지 북한의 가정생활은 전통적인 가부장제적인 원칙 아래 운영되어 왔고, 부양이든 직장여성이든 가사와 육아 등은 여성이 전담했다. 그러나 경제난 이후 식량을 구하기 위해 아내가 장기간 집을 비우게 되면서 남편들이 가사와 아이들을 돌보는 경우가 늘어났다. [199-200]

① 가정의 해체: 아내 혼자 식량을 구하기 위해 오랜 기간 외유를 하면서 발생. 실제 이 과정에서 다른 남자를 만나 집을 떠나는 경우, 기차연착, 도둑 등으로 장기간 집을 비워 그 사이에 남편과 아이들이 뿔뿔이 흩어진 경우, 남편이 아내의 장기간 외유에 불만을 품은 경우, 여자들 또한 이전처럼 순종하지 않고 이혼에 이르는 경우 [201]

② 가족간 유대강화: 가족끼리 생계문제를 해결하게 되면서 분업과 협업의 필요성에 의해 촉진. 통제이완에 따른 치안유지 해이 등으로 신변보호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족의 협력이 요구됨. [200-201]

공식적인 이혼은 이전처럼 어려우나 사실이혼이 성행 [201]

생계형 매춘여성, 꽃제비 [201]

결론: 가부장제의 해체 (성별분업구조의 해체 및 의식의 변화) "경제난 이후 북한인민들의 생계유지의 주요 수단인 장사를 주로 여성들이 담당하면서 북한의 많은 여성들은 가장으로서 남편이 생계를 돌보던 때와 달리 남자들 말에 순종하지 않는다고 한다." [202]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실제로 남자들은 할일이 없어 멍멍이처럼 집을 지키며 노는 경우가 많았다. 여자들이 아침에 장사하러 나가면 데려다 주고, 저녁에는 거둬서 같이 들어온다. [...] 또한 때로는 남자들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집안 일을 하고, 여자를 많이 도와주는 현상이 나타났다." [202]

"이런 현상은 북한사회 전체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간부급 등 경제난 이후의 삶이 크게 변화되지 않는 중산층 이상 계층의 가정은 가부장제적인 성역할 분업구조가 지속되어 이전의 가정생활에 어떤 변화도 감지되지 않고 있다." [203] 

중하층에서조차 가정생활의 변화가 가부장제의 붕괴 내지 부정을 함축하지는 않음.

"경제난 이후 여성이 생계유지에 전선에 나선 세대의 경우 누가 가사와 육아문제를 담당했는지의 질문에 남편이 전담했다는 경우보다 공동으로 했다는 대답이 절대 다수를 차지했으며 심지어 비록 소수지만 여성이 담당한 경우도 있었다. [...] 따라서 경제난 이후 여성들의 가정생활에서의 역할과 의식 변화는 이전의 엄격한 성별분업현상은 깨졌지만 가부장제 질서의 와해를 의미할 정도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남편이 가사에 참여하고 있지만 여성을 대신해서 전적으로 전담하는 경우는 없고 보조적인 차원에서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여성들의 의식 변화도 가부장제의 부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탈북여성들의 대답은 이전처럼 성별 분업 자체에 대해 고정관념을 버렸지만 가정의 일은 여전히 여성의 책임이 크다는 인식과 함께, 남편이 섬김과 복종의 대상이 아니지만 가부장으로서의 존재와 권위 자체를 부정하지 않고 있다." [203-204]

"김일성 사후 미공급이 시작되고 장사 등 사경제가 공공연해지면서 조직생활에 변화가 가속화되었다. 98년도 이후에는 사회동원을 나가지 못할 때 돈으로 대신 내는 경우가 생겼다. [...] 이같은 변화는 북한인민들의 조직생활에 대한 인식 자체의 변화가 동반되는 것이었다. 우선 인민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장사 등에 나서야 했기 때문에 절대적인 시간의 부족으로 조직생활에 참여하기가 힘들었고 또한 이전처럼 국가로부터 받는 것이 없으므로 조직으로부터 생계를 위해 어떤 도움도 얻을 수 없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이전과 달리 조직생활의 나태 혹은 이탈에 따른 제재 등이 약해진 것도 북한 인민들의 조직생활에 대한 중요성과 참여도를 떨어뜨린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식량난을 겪으면서 모두가 사회주의라는 것이 필요없고, 오직 우리 가족을 위해 먹고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힘껏 해야 되겠다는 개인주의로 되었다. 국가 일은 다 제쳐놓고 직장에서 암만 나와라 외쳐도 우리가 먹고 힘이 나야 사회주의도 지키지. 당증을 빵하고 바꿔 먹고 이런 정도다."라는 탈북자의 증언처럼 이전에 비해 조직생활에서 개인주의가 강화되고 사회적 유대감이 약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206-207]

물론 획기적이진 않았음 (집단주의에서 개인주의로 완전히 전환된 것은 아님, 조직생활과 사회동원의 참여를 완전히 부정하지도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