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lytic/Social & Political Phil

류연미, 손명아 (2018) 「동포사랑」에 나타난 북한이탈주민의 시민성 실천과 에토스

Soyo_Kim 2024. 11. 24. 11:49

류연미 and 손명아. (2018). 「동포사랑」에 나타난 북한이탈주민의 시민성 실천과 에토스. 사회과학연구, 44(3), 247-270.

Ryu, Yeun Mee and Son, Myung Ah. (2018). Citizenship practice and ethos of North Korean refugees in dongposarang, Journal of Social Science, 44(3), 247-270.

 

1. 들어가며

본 연구의 목적은 남한 사회에서 북한이탈주민에게 요구되는 시민성의 양상을 실천과 에토스의 차원에서 분석하는 것이다. 북한이탈주민은 법률상 정치적 소속(political belonging)으로는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정치경제적․사회문화적으로 공유된 경험이나 지 식의 부재로 인해 남한 사회 정착과 적응에서 여러 어려움을 경험하는 집단으로 알려져 있다(이희영, 2010). 동시에 이들은 한민족으로서 종족적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 서 국내의 외국인 노동자나 결혼이주여성과 같은 다른 이주민 집단과도 구별되는 특수한 위치에 놓여있다.

이를 위해 북한이탈주민 전문 소식지 「동포사랑」 사랑」 이 생산하는 담론을 분석한다. 「동포 은 국가기관에서 발행하는 유일한 북한이탈주민 기관지로 남한정부의 북한이탈주민 정착정책 기조 및 가치지향을 파악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이다. 이 잡지에 수록된 남한 적응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와 성공적인 정착사례를 통해 국가의 제도를 통한 시민 만들 기와 북한이탈주민의 시민성 형성 과정의 한 단면을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남한 사회에서 어떤 이주민 주체가 시민으로 포섭되고 배제되는지 그 원리를 규명하는 하나의 사례연구 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48]

 

2. 북한이탈주민과 이주민의 시민성

한국의 국가 형성은 냉전체제와 북한과의 이데올로기적 적대 과정에서 진행되었으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정착되었기 때문에, ‘국 민 되기’와 시민권의 특징은 국민을 기본권을 갖는 주체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의심스러운 국민 혹은 비국민을 배제하는 부정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김동춘, 2006). 그래서 북한이탈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제반의 정치, 경제, 복지의 권리를 갖는 동시에 남북한의 오랜 적대관계와 발전주의 체제에서 위계화 된 시민권으로 인한 차별과 배제를 경험한다(박경숙, 2012) [249]

북한이탈주민은 정치사상교육을 최우선으로 하는 북한의 교육체제 속에서 성장하여 지도자와 당 중심의 정치문화를 내면화한 상태에서 남한으로 이주한 이후 재사 회화를 거치게 된다. 기존연구에서는 선거 투표와 같은 정치참여는 북한이탈주민이 사회 에 대한 소속감과 정체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정치적 역량과 효능감을 강화 할 수 있는 시민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송샘․이재욱, 2018). 또 남한에서의 커뮤니케이션 활동은 사회적 관습이나 규범을 학습하고 내면화하는 데 영향을 미쳐 자유민 주주의적 시민성을 습득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본다(곽정래, 2011). 이러한 기존 연구들의 한계는 시민성을 남한 사회에서의 성공적 사회화를 위해 북한이탈주민이 달성 해야 하는 정치적 의무이자 측정 가능한 특성으로 전제한 후, 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분석하고 시민성을 함양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250]

문제점: 시민성은 담론적(discursive)이고 수행적(performative)인 측면을 지닌다. 이를 도달점으로 전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음.

일반적으로 시민성은 한 국가 안에서 개인이 가지는 법적 지위를 공식적으로 정의하는 권리와 의무의 집합으로 개념화된다. 그러나 일련의 제도적 절차를 통해 국가에서 부여되는 법적 지위가 자연스럽게 시민을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이주민이 이주국에서 갖는 법제도적 권리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인구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실질적 시민성을 획득하는 범위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정치․노동․복지체계․문화적 관계를 포함한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의 동등을 의미(Castles & Davidson, 2000: 84)하기도 하며, 가장 기본적으로 ‘사회에서 산다는 것’(Stack, 2012: 871), 즉 ‘사회적 성원권’(김현경, 2015: 64)으로서의 의미 역시 가지고 있다. [250]

이와 같이 시민성은 법적 지위, 자원에 대한 접근권, 공동체적 성원권과 정체성이 모두 혼재된 개념이다. [...] 시민성은 시간과 문화적 조건과 맥락에 따라 상이한 사회적 행동의 규범으로 이해될 수 있다. [250]

본 연구는 남한 사회에서 이주민으로서 북한이탈주민이 진정한 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체화해야 하는 사회적 행위(실천)와 문화적 태도(에토스)의 요소들을 분석한다. 외부로부터 주어진 고정된 지위가 아니라 ‘실천으로서의 시민성’(citizenship-as-practice)과 이를 추동하는 일종의 윤리적 습속인 ‘에토스로서의 시민성’(citizenship-as-ethos)에 주목하는 작업은, 문화와 정체성의 문제들을 논의에 포함시킴으로써 시민이 된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 인가를 둘러싼 풍부한 해석틀을 제공할 수 있다(Lawy & Biesta, 2006: 37). [251]

 

3. 「동포사랑」에 대한 담론분석

「동포사랑」 은 현재 통일부 산하 공공기관인 남북 하나재단(이하 ‘재단’) 대외협력부에서 간행하는 북한이탈주민 전문 소식지이다. 1999년 북한이탈주민후원회에서 「북한이탈주민소식지」 포사랑」 라는 이름으로 창간하였고, 2003년에 「동 으로 제호를 변경하였다. 2010년 재단 설립이후 33호부터 격월간지로 발간하고 있 다. 주요 구독자는 북한이탈주민이지만 공공기관 및 도서관, 유관기관뿐 아니라 구독을 신청한 일반 독자도 받아볼 수 있으며, 2018년 기준 약 2만 7천부가 인쇄되어 약 2만 5천 부가 무료로 배포되고 있다. 「동포사랑」은 거주지를 배정받은 북한이탈주민 전수를 대상으로 잡지가 배송되기 때 문에, 정착 초기에 필요한 정보를 취득하는 데 주요한 참고자료가 된다. 잡지의 구성은 크 게 남한 사회 적응과 정착을 위한 법률, 사회문화, 건강, 교육 등 정착정보를 포함하고 있으며, 북한이탈주민의 정착사례를 수기형식으로 재구성하거나 인터뷰를 통해 소개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재단소식이나 북한이탈주민 관련 정부, 민간 행사 소개가 비정기적으로 게재된다. 잡지의 편집 및 발행은 기관의 편집위원 뿐 아니라 2015년 3월 56호부터 북한이 탈주민으로 구성된 ‘착한제작단’이 기사 취재 및 촬영에 참여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251-252]

특히 「동포사랑」 은 국가기관이 마련한 ‘담론의 장’에서 직접적으로 생산되었기 때문 에, 이 매체에 나타난 담론은 정책적 영향력 하에서 구성․전개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담론을 사회적 실천이자 관계적 맥락 속에서 파악하려는 시각을 도입하 는 것이다(신진욱, 2011). 담론과정은 의미생산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형성과 정이며, 담론 내에서 어떤 특정한 언어적 요소들을 선택하거나 배제하는 것은 주체의 고유한 특성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253-254]

이러한 맥락에서 담론분석은 정체성 분석과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현대의 정체성 이 론에서 정체성이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이며, 개인에게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과정이다(Jenkins, 2008[1996]: 5). 나는 누구인가의 문제는 언어를 중심으로 하는 문화적인 구성물이며 담론적으로 수행되는 것(Butler, 1999)이다. 즉 정체성이란 우리를 특 정한 담론의 사회적 주체로서 불러들임으로써 ‘호명’(interpellation)을 시도하는 담론적 실 천과, 우리를 ‘말해질 수 있는’ 주체로 구성하는 주체성 생산 과정 사이의 접합 지점이다 (Hall, 1996: 5-6). 따라서 「동포사랑」 이 생산하는 시민성 담론을 분석하는 작업은 곧 국가 제도가 상정하는 이상적인 시민주체로서 북한이탈주민이 누구인지 이해할 수 있는 방법 이 된다. [254]

 

4. 「동포사랑」에 나타난 시민성의 실천과 에토스

「동포사랑」에서는 북한이탈주민을 “‘도착할 착(着)’과 ‘대한민국 한(韓)’을 써서 ‘착한 (着韓) 우리 이웃’으로 명명”(50호, 2014: 47)하고, “성공적으로 남한 사회에 정착해 새 삶 을 꽃피우고 있는”(48) 북한이탈주민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북한이탈주민은 입국 이후 성 공적인 적응을 위해 자신의 총체적인 삶의 양식을 전환할 것을 요구받는다(Sung, 2010: 132). [254]

북한이탈주민의 초기 정착을 위한 지원제도는 생계․의료비 지급, 주거알선, 교육지 원, 신변보호담당관 제도 운영 등이 있지만 가장 핵심적인 정책은 취업지원제도이다. 취업알선과 직업훈련을 위한 비용 및 수당을 지원하고, 북한이탈주민이 취업한 이후 3년간 근속하면 장려금을 지급한다(통일부, 2017). 이처럼 남한 정부는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지원함으로써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것을 정착지원의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 「동포사랑」 에서 소개하는 직업 분야는 서비스직 과 사회적 기업 창업, 기술직, 농업직과 같은 직종이다. [255]

취업을 “‘자활’과 ‘자립’의 핵심”(50호, 2014: 30)으로 보는 것이다. 북한이탈주민이 일자리 를 갖는다는 것은 사회에 “꼭 필요한 구성원”(29호, 2010: 32)으로서 자기 몫을 해내며 “스스로 자기 삶을 책임지겠다는 의지”(31호, 2010: 12)의 표명이다 [256]

둘째, 진로 선택과 자아실현의 결과로서 직업인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정착사례 섹션에서 소개되는 북한이탈주민들은 자신의 직업을 “천직”(58호, 2015: 29; 64호, 2016: 26) 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취업의 실제 과정은 여러 시행착오 끝에 이웃이나 기관의 소개를 통해 우연한 기회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현재 직업은 “인생 목표”(64호, 2016: 23)이고 “꿈꾸던 자리”(61호, 2016: 45) 라고 서술된다. 특히 본인이 배우고 노력하면 누구나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선택의 기회가 열려있고, 이를 남한 사회가 제도적 차원에서 보장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256]

자신이 전문성을 가지고 기술을 보유해야만 비로소 북한 출신이라는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61호, 2016: 33) 이처럼 경제적으로 자립하여 직업인이 된다는 것 은 북한이탈주민이 자신의 자리를 찾는 행위이며 “한국 사회에 필요한 사람”(42호, 2012: 58)으로서 인정받기 위한 가장 필수적인 조건으로 나타난다. [257]

그러나 「동포사랑」 에서 나타나는 북한이탈주민의 사회참여 범위는 그들을 둘러싼 생활세계 주변으로 한정되어 있다. 이들은 불우한 이웃을 돕고 지역 축제를 기획하며 마을 환경 개선 및 치안을 담당하는 일상 속의 사회참여 모습만이 부각된다. 북한이탈주민은 일상생활에서 사회적 관습과 예절, 책임감과 의무를 이행함으로써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극복하고 자신이 안전한 타자임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봉사를 통 한 사회참여는 지역사회의 주민으로서, 남한 사회의 시민으로서 성원권을 획득하기 위해 이들이 수행해야 하는 일종의 의례로 나타난다. [259]

실패에도 불구하고 끈기 있게 노력을 이어나간다는 것은 남한 사회가 이러한 노력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지급한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한다. “남한에선 내가 노력하면 그만큼 성과가 돌아옵니다. 누구 눈치 볼 필요가 없어요. (…) 다른 탈북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직장을 구할 때 탈북자라고 하면 사람을 깔보고 월급도 적게 준다며 억울해야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전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탈북자가 일을 쉽게 그만둔다는 이미지가 있으니 고용주 입장에서 불안할 수 있죠. 처음에 좀 억울하더라도 내가 성실하고 인정받으면 결국 다 대우를 해줍니다.”(48호, 2013: 45) [261]

“북한 같은 신뢰가 전혀 없는 사회를 제외한 정상적인 나라에서는 신뢰와 근면함만 갖추면 그 어떤 어려운 정착도 해낼 수 있다. 이런 기본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된 정착은 사실 불가능하다. 정착에 실패하고 어려워지는 것은 사회의 잘못이 아니라 그 자신에게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 얼마나 신뢰 있는 사람인지, 그리고 이 사회에서 얼마나 근면 하게 일을 했는지 스스로 반성해보면 살 길은 얼마든지 열릴 수 있다는 것이다.”(59호, 2015: 24) 「동포사랑」에서 남한 사회는 북한과는 달리 노력이 그만큼의 보상으로 돌아오는 정당하고 합리적인 자본주의 사회로 강조된다. 이는 정착가이드, 정착수기 등 정착과 관련된 담론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이다. 남한 사회가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는 시스템 을 갖추었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성공하지 못했다면 노력이 부족한 것’이라는 책임화로 이어진다. 따라서 정착의 실패는 국가나 사회제도가 아닌 북한이탈주민 개개인의 문제로 치환된다. [261-262]

끈기와 성실의 강조가 남한 사회의 합리적인 보상 시스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한 다면, 적극성과 도전의 강조는 남한 사회의 개방성과 기회의 평등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 진다. 대부분의 북한이탈주민은 경제자본․사회자본․문화자본의 부족과 남한 사람들의 편견 등 불평등한 조건 속에서 사회의 낮은 곳으로 진입하지만, 「동포사랑」 에서는 자신의 태도에 따라 얼마든지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질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성공신 화는 매우 특수한 것이며, 재단의 도움과 가족의 희생, 북한에서 이미 습득한 지식 및 경 험이 있었던 최창섭 씨의 경우처럼 ‘도전의식’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점은 완벽한 성공서사를 완성시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소거된다. “꿈을 이루기에 북 한은 너무도 제약이 많은 나라”(29호, 2010: 35)인 것과 달리, “대한민국에는 무엇이든 누 릴 수 있는 자유가 있고, 꿈이 있”(30호, 2010: 3)기 때문이다 [263]

 

5. 북한이탈주민은 어떻게 남한 시민이 되는가

역사적으로 남한 사회에서 북한이탈주민은 정치적․사회적 불안 요소로서 간주되기도 했고, ‘먼저 온 통일’로서 환대받기도 했으며, 일반 이주민 집단으로 통합되어 관리되기도 했다. 탈북 이후 이들에게 부여되는 남한의 국민/시민이라는 지위는 자명한 것으로 상정 되었으나, 정착의 과정에서 이들이 끊임없이 ‘착한 시민’, ‘좋은 시민’으로 호명되고 소환 된다는 사실은 오히려 그 지위의 불안정한 토대를 나타낸다. [264]

위와 같은 실천과 에토스를 통해 형성되는 이상적인 시민 주체란 묵묵히 사회의 빈곳 을 채우는 성실한 노동자이자, 나아가 타인을 돕는 안전하고 모범적인 이웃이다. 이들은 계층상승의 희망을 품지만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한 물적 토대를 사회에 요구해서는 안 된 다. 탈북으로 남한에서의 삶을 선택한 이상 북한이탈주민은 자본주의 핵심 원리를 철저하 게 학습한 주체여야하기 때문이다. 남한 사회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 고 있다는 전제와 어떠한 경우에도 남한에서의 삶이 과거보다 나을 것이라는 믿음의 결 합은, 이들이 불평등을 내면화하고 순응적 시민성을 갖도록 한다. 이는 결국 남한 사회에 서 어떤 이주민이 좋은 시민으로 포섭되거나 배제되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이다. [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