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21 - [Research/Publications] -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나타난 바이닝거적 세계관의 극복-자살에 관한 윤리적 성찰을 중심으로-
2장 및 3장 일부 (pp. 179-191)
1. 왜 바이닝거인가? 세기말 빈의 풍경 스케치
여러 학자가 주목했듯이, 비트겐슈타인은 바이닝거에 대해 의아할 정도로 높은 평가를 남겼다. 비록 이러한 평가들이 소수의 편지와 단상, 그리고 대화에 국한되어 있어 앞선 의아함을 한층 더 증폭시키긴 하지만 말이다. 이 중 우리가 살펴볼 철학적 중요성을 지닌 문헌은 크게 두 가지로, 모두 『논고』의 출판 이후인 1931년에 작성된 것이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이 바이닝거의 사상을 최초로 접했던 시기는 『논고』를 완성하기 훨씬 이전임이 분명하다. 재닉에 따르면, 『성과 성격』의 프랑스어 판본 표지는 1903년 14살이었던 비트겐슈타인이 바이닝거의 장례식에 참석했다고 쓰고 있는데, 그는 한편으로 이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그것이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라 말한다. 왜냐하면, “어떤 경우든 세기 전환기의 빈에서 자랐던 사람이 『성과 성격』과 그 저자를 모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Janik (2004), p.63) 유사하게, 몽크는 비트겐슈타인이 어린 시절부터 지녔던 천재성에 대한 강박과 자살 충동의 원천을 바이닝거의 사유로부터 발견한다 (몽크 (2012), 42-51쪽 참조). 따라서 두 단상 모두 청년 시절의 비트겐슈타인이 바이닝거에 대해 가졌던 인상에 관한 서술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먼저, 그는 1931년 8월 23일 무어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저는 당신이 바이닝거를 그다지 호평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 끔찍한 번역과 함께, 그가 당신에게 분명 매우 낯설게 느껴진다는 사실 때문에 말입니다. 그가 굉장히 공상적인 사람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가 위대하면서 공상적이라는 것 역시 사실입니다. 그의 사상에 동의하는 것은 필요한 일도 아니며 오히려 불가능한 것이지만, 위대함은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지점에 있습니다. 바로 그의 거대한 실수(his enormous mistake)야말로 위대한 것입니다. 즉, 거칠게 말해, 당신이 그 책 전체에 그저 ‘~’ 기호를 덧붙인다면 그것은 한 가지 중요한 진리(an important truth)를 말해줍니다. (Wittgenstein (2008), p. 193)
인용문에서 비트겐슈타인은 (1) 바이닝거가 거대한 실수를 저질렀으며, (2) 그러나 그 실수야말로 위대한 것이고, (3) 바이닝거의 책 전체에 대한 부정은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진리를 말해준다고 주장한다. 이에 더해, 그는 자신에게 영향을 주었던 사상가들의 목록을 작성하면서 바이닝거의 이름을 포함한다.
나는 내가 단 하나의 사유 운동(Gedankenbewegung)도 고안해낸 적이 없으며 오히려 그것은 언제나 다른 이로부터 나에게 주어졌다고 믿는다. 나는 이내 그것을 열정적으로 나의 명료화 작업(Klärungswerk)의 대상으로 다루었을 뿐이다. 그리하여 볼츠만, 헤르츠, 쇼펜하우어, 프레게, 러셀, 크라우스, 로스, 바이닝거, 슈펭글러, 스라파는 나에게 영향을 주었다. (VB, S. 476) 2
비트겐슈타인이 『논고』에서 철학의 목적을 ‘사유의 논리적 명료화(die logische Klärung der Gendanken)’로 간주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TLP, 4.112), 우리는 바이닝거의 사유가 그에게 있어 아직 명료화되지 않은 하나의 철학적 물음으로 여겨졌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논고』의 완성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 프레게와 러셀의 철학과 달리 (cf. Hacker (1996), pp. 22-25), 바이닝거가 비트겐슈타인의 사유에 미친 영향이 매우 불분명하다는 점에 있다 (Schulte (2004), p. 112, 127-129 참조). 왜냐하면, 우리는 바이닝거가 제시했던 원리나 개념, 그리고 논증들을 『일기』와 『논고』를 통틀어 단 하나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닉은 바이닝거의 영향의 구체적 내용을 일별하는 작업의 어려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함의 핵심은 바이닝거의 그것과 모든 면에서 급진적으로 다르다. […] 비트겐슈타인에 관한 바이닝거의 영향을 탐구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하는 것은 그의 철학 개념에 관한 중심적인 생각들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그것들이 어떻게 바이닝거적인 배경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를 보기 위한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Janik (1995), pp. 61-62)
우리는 재닉의 제안에 따라 바이닝거의 철학을 청년 비트겐슈타인이 지녔던 철학적 문제의식의 내용을 구체화하는 초석으로 삼고자 한다. 즉, 바이닝거는 ‘주체의 위기(crisis of the subject)’라는 세기말 빈의 지적 조류에 대응함으로써 (Achinger (2013), p. 122; Peters (2019), p. 983 참조) 비트겐슈타인에게 두 가지 철학적 물음을 남겼다. 하나는 윤리적 주체의 구성 가능성이라는 형이상학적 물음이고, 다른 하나는 자살의 허용 가능성이라는 규범 윤리학의 물음이다. 바이닝거는 ‘가치에의 의지(Wille zum Wert)’와 유아론(Solipsismus)의 개념을 토대로 실증주의 아래에서 ‘용해하던 자아(dissolving self)’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사상가였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방식으로 유아론의 진리에 접근했던 청년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체계는 바이닝거의 철학 체계에 조응한다 (cf. TLP, 5.62). 우리는 두 사상가가 추구했던 서로 다른 자기 극복의 시도를 병치함으로써 양자의 대화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물론, 우리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비트겐슈타인이 바이닝거의 개념들을 자신의 철학에 차용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단지, (1) 두 사상가의 철학 체계는 다른 방식으로 구축되었고,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의지’와 ‘유아론’을 윤리의 토대를 이루는 핵심 개념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3) 이러한 개념들을 통해 완성된 두 체계는 종국에 이르러 ‘자살을 허용해도 되는가’라는 하나의 물음에 대한 정반대의 대답으로 귀결되었다는 가설이다. 다시 말해, 비트겐슈타인이 자신의 철학 체계를 완성하면서 자연스럽게 바이닝거의 철학에 내재한 거대한 실수를 인식했다면, 그는 이 실수의 부정이 함축하는 중요한 진리가 바로 자신의 사유에 들어 있다고 여길 수 있었을 것이다. 아래에서는 주체의 위기라는 세기말 빈의 지적 조류를 소개하고 바이닝거의 철학이 그 위에서 어떻게 완성되었는가를 확인할 것이다. 3
2. 마흐-아베나리우스 프로그램(Mach-Avenarius Program)과 자아의 해체
바이닝거는 자신의 철학을 완성하는 데 있어 아베나리우스의 생물학적 방법론과 칸트, 니체의 실천철학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Sengoopta (2000), p. 14 참조). 그는 1898년 가을 빈 대학에 진학한 후 철학적 협회(Philosophical Society)에서 학문적 교류를 지속하였는데, 1899-1900년 겨울 학기의 주요 논제는 유아론과 생기론(Vitalismus)이었다 (Rodlauer(1995), pp. 38, 40). 이 시기의 바이닝거는 『순수경험비판』 (Kritik der reinen Erfarhrung)에서 심신이원론을 비판하며 사유를 생물학의 법칙에 종속되는 것으로 보았던 아베나리우스의 입장과 함께, 유아론과 생기론에 대한 단호한 거부를 표했던 마흐의 입장에 동조하였다 (Rodlauer(1995), pp. 40-41; Sengoopta (2000), p. 14 참조). 마흐와 아베나리우스는 실험 심리학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경험적으로 검증될 수 없는 형이상학적 개념들을 제거하려 시도했는데, 이는 일관되고 통합된 자아를 감각들의 복합체로 환원하는 작업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Sengoopta (2000), p. 24 참조.).
20세기 초반 빈 학파(Wiener Kreis)의 성립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마흐의 철학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자아 개념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였다. 첫째, 그는 학문의 본질이 “사유 속에서 사실들을 재구성(Nachbildung)하거나 미리 구성해봄(Vorbildung)으로써 [직접 해봐야만 하는] 경험을 대신하거나 절약하는 기능” (마흐 (2014), 671쪽)을 한다고 주장하였다. 둘째, 그는 철저한 현상론의 관점에서 세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사물들이 아닌 감각들이라고 주장하였다 (재닉, 툴민(2013), 229쪽; 마흐 (2014), 674쪽 참조). 요컨대 그에게 있어 “과학의 임무란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감각 자료를 기술하는 일” (재닉, 툴민(2013), 233쪽)이며 그것을 넘어서는 모든 요소는 형이상학적인 것이다. 후자는 학문에 내재한 신화적 요소로서 학문이 진보하면서 자취를 감춘다 (마흐(2014), 672쪽 참조). 셋째, 그는 아베나리우스와 마찬가지로 정신과 신체의 형이상학적 이원론을 거부하였다 (Kusch (1995), p. 144 참조). 마흐는 심신이원론을 수용하는 내성 심리학(introspective psychology)이 형이상학의 잔재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보았다 (Rodlauer (1995), p. 41 참조). 그리하여 마흐와 아베나리우스는 모든 심리학적 설명들이 생리학의 원리에 근거해야 하며 직접적인 경험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은 자아 개념을 심리학으로부터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Kusch (1995), p. 144 참조). 마흐에게 있어 생리학과 심리학의 근본적인 차이는 오직 그것들이 다루는 감각의 측정 가능성 유무에 있을 뿐이다 (Sengoopta (2000), p. 24 참조). 이렇게 자아를 감각의 일원론 안에 복속시키는 마흐의 철학은 자기규정을 통해 도덕적 자유를 확립하는 칸트의 선험적 자아를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실제로, 마흐는 칸트의 물자체(Ding an sich) 개념을 수용하는 관념론자가 유아론에 빠지기에 십상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하였다 (Rodlauer (1995), p. 41 참조). 그러나 1902년 생기론으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바이닝거는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유아론으로 거침없이 나아가게 되었다 (Rodlauer (1995), p. 53 참조).
3. 바이닝거의 자아 개념 : 생동하는 소우주(der lebendige Mikrokosmus)
앞서 살펴본 것처럼, 경험을 넘어서는 모든 개념을 신화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제거하려 하는 마흐의 철학은 칸트의 초월철학과 대립한다 (재닉, 툴민 (2013), 237쪽 참조). 왜냐하면, 칸트는 일찍이 자아를 현상의 집합으로 다루었던 흄을 논박하면서, 모든 가능한 경험의 조건이 되는 주체의 존재를 초월적 연역을 통해 논증하였기 때문이다 (테일러 (2014), 64쪽 참조). 칸트에게 있어 주체란 “내적인 성찰에 소여된 것으로서가 아니라 객체들에 대한 우리의 경험이 가능하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 (테일러 (2014), 64쪽)이다. 바이닝거는 칸트의 이러한 생각에 동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직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들만이, 지성적 자아에 대한 경험적 자아의 의무들만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의무들은 심리주의를 언제나 무력화할 두 가지 명령의 형식 안에서, 논리적 법칙과 도덕적 법칙의 형식 안에서 나타난다. […] 경험주의는 자신의 참된 반대항을 비판적-초월적(kritisch-transzendentalen) 방법론에서 찾을 뿐, 형이상학적-초재적(metaphysisch-transzendenten) 방법론에서 찾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형이상학은 그저 [추상적 개념을] 실체화한 심리학일 뿐이지만, 초월철학은 가치평가의 논리학(Logik der Wertungen)이기 때문이다. (GC, S. 198/p. 139)
칸트가 초월철학을 대상들에 관한 우리의 선험적 개념들의 체계로 정의하였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KrV A 12), 이 체계를 가치평가의 논리학으로 이해하는 바이닝거의 칸트 해석은 매우 독특한 것이다. 이러한 인상은 그가 내성(introspection) 개념을 그의 철학에서 핵심적인 성격학(Charakterologie)의 유일한 방법론으로 격상시킬 때 한층 더 강해진다 (Sengoopta (2000), p. 26 참조). 그러나 바이닝거 역시 초월적 통각(die transzendentale Apperzeption)이 연역을 통해서만 도출될 수 있다는 칸트의 주장에 동의한다. 그는 다만 이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선험적 자아가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내재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판단을 가치평가로 규정하고 이를 심리적 사건과 엄격하게 구분함으로써 자아의 존재를 천재성의 지표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바이닝거는 개별자의 고독을 존재론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인간 존재를 하나의 소우주로 보았다 (Haller (2014), pp. 94-95 참조). 인간은 가치를 의지하고 평가할 수 있는 주체로서 자신의 지성적 자아(das intelligible Ich)를 온전히 인식할 때 세계 전체와 합치한다. 따라서 자아는 개인의 관점에서 유아론적이며 사회의 관점에서 단자론적이다. “초월론은 오직 하나의 영혼만이 존재하며 개체화는 가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함축한다. 이 지점에서 칸트적 윤리의 단자론적인 성격은 단호하게 『순수이성비판』을 부정한다.” (Weininger (2001), p. 62).
바이닝거는 칸트의 초월적 통각을 가치에의 의지를 통해 인식되어야 할 것으로 이해함으로써 자아의 역동적인 성격을 부각했다. 자아란 단순히 모든 판단에 덧붙여질 수 있는 ‘생각하는 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호하고 원초적인 지각으로부터 명료한 것으로 분화된 가치 평가하는 의식이다 (Sengoopta (2000), p. 52 참조). 즉, 자아란 이상적 유형을 추구하는 가치에의 의지의 자기 인식이다. 따라서 그는 지성적 자아의 존재를 윤리적 의무(Pflicht)의 실천을 통한 항구적 투쟁의 산물로 간주하였다 (Weininger (2001), p. 98 참조). “의지는 비-존재와 존재 사이에 있는 무언가이다. 그것의 길은 비-존재로부터 존재로 이어진다.” (Weininger (2001), p. 89) 한 개체에 있어 윤리적 삶이란 단순히 존재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을 넘어선다. 윤리적 삶은 그 개체가 지닌 자아의 존재와 동일하다.
범죄자는 가치에의 의지를 지니고 있지 않거나, 혹은 같은 것이지만 의지를 지니고 있지 않다. 그는 밤과 무력함 속으로 좌초하면서 점점 무(無)로 향한다. […] 모든 판단은 가치평가이다. 범죄자는 평가하지 않으며, 그는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도 평가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는 심리적 사건을 넘어서는 자아[의 존재]를 확언하려 시도하지조차 않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관찰하지 않으며 무의식적으로 산다. (Weininger (2001), pp. 98-99)
그런데 놀랍게도 바이닝거는 이러한 유형들을 남성과 여성의 이원론으로 정립하였다. 즉, “남성은 의식적으로 살며, 여성은 무의식적으로 산다.” (GC, S. 124/p. 90)는 것이다. 여성의 삶을 범죄자의 삶과 동일한 것으로 이해하는 바이닝거의 극단적인 여성 혐오 이론은 그가 여성을 오직 성(Sexualität)으로, 남성을 성적인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는 무언가로 규정함으로써 완성되었다 (GC, S. 108/p. 80 참조). 그가 생각하기에 여성이란 자신의 완성을 오직 객체로서만 지니는 무(無)와 다름없으며, 남성이 성(Sexualität)이나 사랑(Liebe)과 같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할 때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 (GC, S. 314, 385/pp. 217, 263 참조).
순수한 남성은 신과 절대적인 무언가의 초상이다. 여성과 남성 속에 존재하는 여성은 무(無)의 상징이다: 이것이 우주에서의 여성의 의미이며 그렇게 하여 여성과 남성은 서로를 보완하고 의존한다. […] 여성은 무(das Nichts), 신성의 반대 극(den Gegenpol der Gottheit), 그리고 인간의 또 다른 가능성을 표상한다. […] 남성이 최초로 그 자신의 성(Sexualität)을 긍정하는 순간, 절대적인 것을 부정하는 순간, 그리고 영원한 삶으로부터 낮은 곳으로 방향을 돌리는 순간, 여성은 존재를 얻는다. (GC, S. 392-394/pp. 268-269)
또한, 바이닝거는 여성성을 민족의 차원에 적용하고 유대인 역시 여성과 마찬가지로 영혼이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비난을 자초하였다 (GC, S. 398-441/pp. 272-300 참조). 결국, 바이닝거가 생각하는 윤리는 여성성과 유대성을 부정하고 남성성을 극도로 고양함으로써 영원을 추구하는 삶으로 귀결된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단순한 이원론은 우리에게 단 한 가지 방식의 삶만을 허용한다. “만약 ‘여성’이나 ‘유대인’으로서만 살게 된다면, 즉 만약 자신을 감각과 세속적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없다면 사람은 살 권리가 없다. 살 가치가 있는 유일한 삶은 영적인 삶이다.” (몽크 (2012), 50쪽) 완전한 남성이 됨으로써 시간을 극복하고 자신의 의무를 우주의 뜻(der Sinn des Weltalls)으로 만드는 생동하는 소우주가 바이닝거가 개량한 새로운 칸트적 자아의 의미이다 (GC, S. 202/p. 142; Schulte (2004), p. 130 참조).
4. 가치에의 의지와 언어의 한계로 달려가 부딪침
몽크는 바이닝거에 대한 비트겐슈타인의 높은 평가를 매우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그의 지적처럼 『성과 성격』을 “생물학적 주장들은 분명히 잘못되었고, 그 인식론은 엉뚱하며, 심리학은 원시적이고, 윤리적 진단은 불쾌한” (몽크 (2012), 48쪽) 책으로만 바라본다면, 양자의 관계는 그저 비트겐슈타인의 독특한 삶을 조명하기 위한 하나의 여담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몽크의 평가가 설령 적확한 것이라 할지라도, 비트겐슈타인이 파악했던 바이닝거의 거대한 실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해명이 더해질 필요가 있다.
첫째, 우리는 바이닝거가 유형과 개체를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에게 있어 유형들에 속하는 남성과 여성, 그리고 유대인은 어디까지나 학문의 대상으로서 이상적으로 구축된 것일 뿐 현실에 존재하는 개별자가 아니다 (GC, S. 9/p. 13 참조). 바이닝거는 또한 남성과 여성의 두 가지 유형이 현실적으로는 언제나 개체 안에서 분할된 상태로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GC, S. 10/p. 14 참조). 즉, 모든 사람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에, 여성성의 극복은 여성들의 의무만큼이나 남성들의 의무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그는 유대주의라는 용어가 특정 인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 모든 사람에게 잠재해 있는 마음의 태도를 의미할 뿐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GC, S. 401/p. 274 참조). 재닉에 따르면 “이는 설명항(explanans)과 피설명항(explanandum), 개체들과 유형들 사이에 변증법적 관계가 있다는 가정에서 비롯한 바이닝거의 신-칸트주의적 방법론 때문이다.” (Janik (1981), p.288) 4
둘째, 일차적으로 여성을 비난하고 있는 『성과 성격』의 겉모습과 달리, 많은 이들은 바이닝거의 편협한 비난이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겨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바이닝거는 스스로가 여성성을 극복하지 못한 유형으로 여겼던 동성애자이자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몽크 (2012), 47쪽 참조). 그리하여 바이닝거의 책은 곧 ‘유대인의 자기-혐오(Jewish self-hatred)’라는 주제 아래에서 이해되었으며 역사적으로는 히틀러의 나치즘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악용되었다(Hymas (1995), pp. 155-168; Achinger (2013), p. 122 참조 ). 이에 더해, 바이닝거가 정립한 이상적 남성의 유형이 계몽의 시기 정립된 근대적 주체의 전형적인 특징들을 모두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동성애자이자 유대인으로서 받았던 사회적 배제와 차별의 압력을 내적 투쟁으로 전환함으로써 극복하려 시도했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Achinger (2013), p. 137 참조). 5 6
셋째, 이로부터 우리는 바이닝거가 (1) 타인의 자아는 물론이고 심지어 그 자신의 자아에 대해서조차 회의했다는 것, (2) 이러한 회의를 이상적 유형의 추구를 통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는 것, (3) 자기 극복의 실패를 비-존재와 다름없는 것으로 생각했음을 추론할 수 있다. 바이닝거는 자기 극복의 실패에 따르는 마지막 의무를 자살로 간주하였다. 그는 『성과 성격』을 출판한 이후 1903년 8월 21일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적었다. “자살은 용기가 아닌 비겁의 표시이다. 설령 그것이 가장 덜 비겁한 행위라 할지라도.” (Weininger (2001), p. 157) 1903년 10월 3일 베토벤이 살았던 집에서 일어난 그의 자살은 『성과 성격』을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만들었으며 베르테르 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Sengoopta (2000), pp. 20, 140; Lester (2004), pp. 293-294 참조.). 몽크는 이러한 기묘한 열광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7
많은 사람들은 바이닝거의 자살을 그의 책의 논리적 결과로 받아들였다. […] 목숨을 스스로 끊은 행위가 고통으로부터의 비겁한 탈출이 아니라 비극적 결론을 용감하게 받아들인 윤리적 행위로 여겨졌다. […] 그 영향으로 바이닝거의 죽음을 모방한 자살이 일어났고 비트겐슈타인 자신도 감히 자살을 하지 못한 것을, 자신이 이 세계의 군더더기라는 암시를 무시했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기 시작했다. […] 그의 형제였던 루돌프는 바이닝거가 자살한 지 여섯 달 뒤에 자살했으며 앞에서 보았듯이 극적인 방식의 자살이었다.” (몽크 (2012), 43쪽. 강조는 필자의 것)
우리는 또한 비트겐슈타인이 바이닝거와 같은 세기말 빈의 시공간 속에서 호흡하며 그와 매우 유사한 문제들(유대인의 자기 혐오와 동성애)을 겪었다는 것을 여러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Peters (2019), pp. 984-986 참조). 그렇다면 비트겐슈타인은 어떻게 바이닝거의 해결책과 차별화되는 자기 극복으로 나아가게 되었는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유아론을 검토하고자 한다.
- Sengoopta (2000), pp. 149-150; Szabados (2004), pp. 33-37; Schulte (2004), p. 119; Haller (2014), p. 90 참조. [본문으로]
- 스턴과 사바도스는 이 목록이 연대 순(the chronological order)으로 작성되었을 것이라는 G. H. 폰 릭트의 주장에 근거하여 바이닝거가 비트겐슈타인의 사유에 영향을 준 시점을 제1차 세계대전 시기 혹은 그 이전으로 파악한다(Stern and Szabados (2004), pp. 1-2; Szabados (2004), p. 29). [본문으로]
- “나에게 여기서 전달된 사고들의 진리성은 불가침적이며 결정적이라고 보인다.”(TLP, 머리말) [본문으로]
- 스턴 역시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바이닝거를 동정적으로-바이닝거의 옹호자로서-읽는 이들은 그 누구도 완전한 남성이거나 여성, 동성애자이거나 유대인이 아니라는 그의 의견에 방점을 찍는다. 이것들은 모두 이상적 유형들이기 때문에 바이닝거는 인종차별주의자나 성차별주의자, 혹은 동성애 혐오자의 관점에 전념하지 않는다. […] 바이닝거를 냉담하게-바이닝거의 비판자로서-읽는 이들은 설령 그의 글들이 명시적으로 그것을 거부한다 할지라도 암암리에 그러한 편협한 사용을 불러들이고 장려한다고 주장한다.”(Stern (2000), p. 387.) [본문으로]
- 대표적으로 히틀러의 멘토였던 디트리히 에카르트는 바이닝거를 “유일하게 괜찮은 유대인”으로 평가하면서, 바이닝거의 자살은 유대인이 다른 사람들의 파멸로부터 살아간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주장하였다(Hyams (1995), p. 160 참조). [본문으로]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만연했던 반유대주의와 당대 유대인 사상가들이 겪었던 불안에 관해서는 : 존스턴 (2008), 50-60쪽 참조. 특히 프란츠 카프카를 중심으로 하는 프라하 유대인들의 마르치온주의에 관해서는 : 존스턴 (2008), 438-445쪽 참조. [본문으로]
- “만약 타자의 마음에 관한 회의주의가 최소한 한 사람이 그 자신의 마음을 소유하고 있음을 일반적으로 가정하고 있다면, 그리고 유아론이 외부세계에 대한 회의주의의 한 유형일지언정 한 사람의 자아나 그 사람의 내부 세계에 대한 회의주의는 아니라면, 바이닝거는 심지어 그 자신이 자아를 지니고 있기는 한가라는 물음을 가장 근본적인 철학적 물음으로 생각했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Burns (2004), p. 10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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