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숙 and 윤인진. (2008). 북한 이주민의 성 역할 태도와 부부권력의 변화와 지속. 가족과 문화, 20(3), 99-126.
Lim, In-Sook and Yoon, In-Jin (2008) The Change and Continuity in Sex-Role attitude and Marital Power Relation among North Korean Migrants, Family and Culture, 20(3), 99-126.
1. 들어가는 글
이러한 북한의 현실은 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상대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개선되어 온 남한 사회와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김혜영의 연구(2000)에 의하면, 북한 여 성들은 남한 여성들보다 희생과 순종을 여성의 미덕으로 삼는 전통적인 가치를 더 강 하게 내면화하고 있다. 남녀평등 의식을 비교한 정진경의 연구(2002)에서도 북한 사 람들이 남한 사람들보다 더 보수적이며,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남북한의 의식 격차가 크게 나타난다. 탈북자들 사이에서도 매우 차별적인 성역할 의식이 유지되고 있고(안 연진, 2002), 가장을 중심으로 한 수직적인 위계질서가 강하게 나타나고 아내는 남편 의 의사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당연시되고 있다고 보고된다(이기춘 외, 1998). [100]
2. 북한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와 역할
북한 당국은 유교문화의 영향을 받은 가족제도는 비생산적이며 봉건적이라고 비난 하면서 여성을 가사로부터 해방시켜 국가의 노동력을 극대화하는 정책을 펴왔다(남 인숙, 1999).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북한 여성들에게는 경제활동 참여뿐만 아니라 가족부양도 당연시되어왔다. [101]
북한 당국은 1990년대 경제난에 직면하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가족법’1) 등을 통해서, 가족위기 시에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경제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의 식을 고취시켜왔다.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를 시작으로 한 일련의 개혁과정 에서 배급제 및 사회보장서비스가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축소되면서 가족책임제가 강화되고 여성의 사경제활동이 확대되었다. 국가가 축소시킨 복지 부담을 개인과 가 족이 떠안게 되었고, 특히 가족경영의 주체인 여성들이 궁극적으로 그 부담을 지게 되었다(박현선, 2005: 79). 따라서 많은 북한 여성들은 탈북 이전부터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국경지대에서 보따리 장사를 하거나 생필품을 되파는 등 생활전선에 나선 경 험을 가지고 있다. 북한당국조차 묵인하고 있는 비합법적인 상행위는 북한 주민들에 게는 주요한 생존전략이고 그 주체는 대부분 여성이다(박현선, 2005; 오유석, 2001). [101]
그런데 북한 여성들은 경제난 이후 부족한 식량이나 생활비를 충당하는 일뿐만 아 니라 가사노동까지 거의 전담하는 이중부담을 지고 있다. 탈북자를 대상으로 한 박현 선의 연구(1999)에서, 응답자의 약 97%는 부인이 전적으로나(44.5%) 주로(52.4%) 가 사노동을 담당했다고 보고된다. 자녀양육이나 가사노동의 사회화가 이루어져 여성들 의 부담이 완화된 시기는 1950-60년대 경제 발전기에 거의 국한된다(오유석, 2001; 황애리, 2001). 그 시기를 제외하고는, 북한에서 강조하는 ‘혁명적 현모양처’는 언제 나 사회활동과 가정활동을 통합적으로 수행하는 여성 이미지였다.[102]
탈북자 남편들은 자신들보다 더 쉽게 일자리를 구하 고 남한 사회에 더 빠르게 적응하는 듯 보이는 아내들이 마땅치 않고, 북한에서 용납 되던 아내구타를 할 수 없는 남한 사회에서 스트레스를 느낀다(이기영, 1999). [103] [???]
이주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더 쉽게 직장을 구할 수 있는 현실도 이주여성들을 유일한 가족부양자로 만들 수 있다(Boyd, 1990. 가족부양자 역할을 한 적도 없고, 미국 이주 후 적절한 취업준비를 하지 않았던 인도차이나 난민 여성들이 정착 초기에 남편들보다 직업적인 성취가 더 빠르다(Brown, 1982; Spring, 1979; Stein, 1986). 남편은 실업 상태에 있어도, 탈북여성들은 청소나 식당 일을 쉽게 구할 수 있는데, 이는 이런 직종 들이 여성 노동력을 필요로 하고 별다른 취업준비나 기술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103]
이처럼 남성과 여성이 이주 후 노동시장에서 처한 현실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부인의 가족부양과 남편의 경제적 의존은 그들의 ‘개인적’인 결함이나 무능력 탓이라기보다는 ‘이민자 집단’의 성원이라면 그 누구도 어쩔 수 없는 현실 탓으 로 해석될 수 있다. ‘이주자’라는 지위는 전통적인 성별분업으로부터의 이탈을 합리화 하는데 핵심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임인숙, 1997; Boyd, R., 1990; Dallalfar, 1989; Zhou & Logan, 1989). [104]
미국에 거주하는 베트남 난민 가족들에 관한 연구(Kibria, 1994)에 의하면, 전통적으로 남성과 연장 자가 누렸던 권위는 미국 생활에서 약화된다. 이런 변화는 간헐적으로나 만성적으로 실직상태에 있는 이주남성들은 경제적 기반이 약화되는 반면, 지속적으로 일을 하면 서 가족경제에 상당 부분 기여하는 이주여성들은 자신들의 입지를 새로이 구축할 수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취업을 통해 여성들이 획득한 심리적 자원 역시 불평등한 부부관계를 개선하려는 시도를 촉진한다고 보고된다. 경제적 어려움을 피할 수 없는 이주민 사회에서는 여성 취업의 불가피성이 사회적으로 인정되고, 사회노동의 평가 절상과 가사노동의 평가절하가 심화된다. 이런 상황에서, 취업부인들은 전업주부였 던 때보다 자신을 더 가치 있고 당당한 존재로 인식할 수 있다. 이렇게 새로이 축적된 여성들의 심리적 자원들은 남편의 권력독점과 가사불참을 개선하려는 시도를 낳을 수 있다. 재미 한국교포 맞벌이 부부들에 관한 연구(임인숙, 1997)를 보면, 전업주부 에서 취업주부로의 변화를 경험한 부인들은 이전보다 자신들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게 되고, 슈퍼우먼이 되어야한다는 강박관념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질과 양적 측면에서 허술해진 자신들의 가사수행에 대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미경 의 연구(2006)에 의하면, 최근 북한여성들 사이에서도 경제행위의 주체라는 자의식 이 높아지고 있고 생계를 꾸리기 위한 경제활동을 넘어 이윤추구와 생활수준향상을 위한 경제활동이 늘어나고 있고, 이런 변화를 토대로 자신들의 지위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고 기대된다. [105]
이주 이후에도 여성들은 부부관계와 부부역할을 규정하고 통제해온 이주 전 사회 의 가부장적 규범과 가치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남편보다 수입이 많은 부인들의 경 우, 오히려 자신이 남편의 열등감을 자극하고 있다는 죄책감을 갖거나 남편의 지배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경향도 있다. 모국에서 내면화한 엄격한 성 역할에 대한 태도가 이주사회에서도 여성의 권력을 제한하는 요소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105-106]
3. 남북한에서의 성 역할 태도 비교
1) 전통적인 성별 고정관념의 변화와 지속
① 가사노동 탈북자들의 성 역할 고정관념은 북한에서보다는 남한에 와서 상당히 약화된 것으로 나타난다. 북한에서의 성 역할 태도는 평균 3.67이었던 반면, 남한에서는 평균 3.14로 하락한다(5점 척도). 특히 북한에서는 ‘맞벌이를 하더라도 가사노동은 여자의 몫’이라는 생각이 매우 강했지만 남한에 살면서 상당히 약화된다(북한 3.50, 남한 2.52). 가사노동은 성별을 불문하고, 남한 정착 후 가장 큰 변화를 보인 성 역할 영역 이다. ‘아내는 가정을 돌보고 남편은 바깥일을 하는 것이 좋다’는 태도 역시 북한에서는 평균 3.94였지만, 남한에서는 평균 3.22로 감소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성별에 따라 마땅히 책임져야 할 역할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고정관념은 남한 이주 후에 상당히 약화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110-111]
② 가족부양 반면, 가족부양에 대해서는 여전히 보수적인 태도가 유지되고 있다. ‘가족의 생계 는 남편이 책임져야한다’는 생각은 북한에서(3.84)보다는 남한(3.45)에서 약해졌지 만, 특히 남성들 사이에서 여전히 강하게 유지되고 있다(북한 4.17, 남한 3.67). 사실 상, 북한에서부터 가족부양은 남성의 책임 영역이라는 고정관념이 다른 영역의 고정 관념보다 유독 강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는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를 당연시하는 북한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가족부양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은 부부가 공유한다기보 다는 남편이 단독으로 지는 것으로 간주되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111]
③ 남편의 권위 남편의 권위에 복종해야 하고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북한에서 보다는 약화되었지만, 남한에서도 다른 성 역할 영역보다는 여전히 강한 편이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아내는 남편의 의견에 따라야한다’는 태도(3.77)나 ‘여자는 자기 자신의 일보다 남편이나 가족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한다’는 태도(3.62)는 북한에서 뿐만 아니라 남한에서도 강하게 유지되고 있다. 아내로서 남편의 권위에 복종을 당연 시하고, 아내나 어머니로서 가족을 위한 희생을 당연시하는 가부장적 태도는 남한에서도 여전다고 해석할 수 있다. [111-112]
④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북한에서 성별 역할분리에 대한 고정관념은 남녀를 불문하고 20대 젊은 세대에서도 매우 강하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북한에서 20대 여성들 의 성 고정관념은 평균 3.63으로 오히려 30-40대보다도 더 높았다(30대 3.53, 40대 3.51, 50대 이상 3.95). 그런데 남한에 살면서 20대 탈북여성들의 성 역할 고정관념은 2.94로 크게 떨어져 전 연령층 중 가장 낮게 나타난다(40대 미만 3.08, 50대 미만은 3.21, 50대 이상은 3.46) [113]
남북한에서의 태도 차이가 남성들은 크지 않은데 여성들만 크게 나타나는 영역은 ‘생계부양’이다. 가족부양을 기혼여성의 가장 중요한 역할로 생각하는 남성들의 비율 은 북한에서와 비교해서 남한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북한 13.5%, 남한 11.1%). 그 러나 북한에서 가족부양을 여성들의 가장 중요한 역할로 간주했던 여성의 비율은 (16.7%)에서 남한에서 절반 이상 줄어든다(8.3%). 남한에 이주한 탈북여성들 사이에 서 가족부양은 남편이 책임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약해지고 있지만(<표 1> 참조), 그렇다고 가족부양을 결혼한 여성이 가장 우선시해야 할 역할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115]
4. 남북한에서의 부부권력 비교
부부 사이의 상호존중과 평등성은 북한에서보다는 남한에서 더 증가한 것으로 나 타난다. 남한에서 부부관계가 평등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전체 응답자 중 54.6%인 반 면, 북한에서의 부부관계가 평등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37.7%에 불과하다. 같은 맥락 에서, 북한에서 배우자로부터 존중받았다고 느끼는 응답자의 비율은 약 55%인 반면, 남한에서 그렇게 느끼는 비율은 약 64%로 더 높다. 배우자와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다거나(북한 16.6%, 남한 12.1%) 말다툼(북한 19.8%, 남한 16.6)이나 구타행위(북한 3.2%, 남한 2.5%)도 북한보다는 남한에서 다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난다. [116]
북한 이주민의 성 역할 고정관념은 전반적으로 남한에서 상당히 약화된 것으로 나 타난다. 그런데 성 역할 고정관념의 변화 정도는 구체적인 영역에 따라 차이를 보이 고 있다. 가사노동을 전적으로 여성의 책임으로 생각하는 고정관념은 성별을 불문하 고 가장 크게 약화되었다. 그 다음으로 변화가 큰 고정관념 영역은 ‘아내는 가정을 돌보고 남편은 바깥일을 하는 것이 좋다’이다. 이 영역만으로 보면, 탈북자들 사이에 서 성별에 따른 역할 분리와 책임을 당연시하는 고정관념은 남한 이주 후 상당히 약 화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가족부양에 대한 태도는 가사노동에 대한 태도와 비교해서 변화의 폭이 적은 편이다. 북한은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를 당연시하는 사회주의 체제였음에도 불구하고 가족부양을 남편의 ‘책임’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매우 강했고, 이주민들은 남한 이주 후에도 이런 태도를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다. [119-120]
‘자녀양육’은 탈북남성들에게 남한의 기혼여성이 담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로 평가되고, 탈북여성들에게는 ‘남편내조’ 다음으로 중요성을 갖는 역할로 평가된다. 이 런 현상은, 북한에서는 ‘자녀양육’이 ‘남편내조’, ‘시부모 공경’ ‘생계부양’ 다음으로 중 요도가 매겨졌던 것과 대조를 이룬다. 자녀양육에 대한 이러한 태도 변화는, 북한 이주 민들이 남한 사회에서 자녀양육과 교육이 가정의 중대사이며 대체로 어머니들이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현실을 목격하면서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120]
다음은 탈북여성들의 개인별 특성에 따라 성 고정관념이나 부부권력 관계의 변화 와 지속성 정도가 다른지 분석했다. 남한에서 탈북여성의 취업 여부나 그들의 임금소 득 수준에 따라서 부부권력 양상이 다르지는 않았다. 전체 응답자의 과반수가 100만 원 미만의 가족 월수입으로 살아가는 형편으로 보면, 북한에서처럼 남한에서도 여성 들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 취업 일선에 나서야 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남한의 노 동시장이 요구하는 인적자본과 연결망의 부재 탓인지 탈북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율 은 북한에서보다 크게 감소했다. 북한에서 약 6%에 지나지 않았던 전업주부와 무직 여성의 비율은 남한에서 약 51%까지 치솟는다. 남성들의 경우에도, 무직의 비율이 북 한에서보다 36%나 증가되었기 때문에 경제부양자로서 역할이 위축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전반적인 임금소득 수준은 여성들에 비해서 더 나은 편이다. [120-121]
그렇다면, 탈북여성들의 경제적 입지는 남성들보다 열악하고, 북한에서보다 남한 에서 오히려 악화된 것처럼 보인다. 이주 후 탈북여성들이 평등한 부부관계를 협상할 수 있는 경제적 자원을 더 많이 확보했고, 이를 바탕으로 보다 평등한 부부관계를 만 들어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런 면에서, 이주여성들이 모국에서보다 더 적극적 으로 취업활동을 하면서 경제적, 심리적 자원을 확보하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불평 등한 부부관계에 도전한다는 선행연구들과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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