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alytic/Social & Political Phil

김희경 (2010) 탈북 여성의 방어기제와 정신건강의 관계

Soyo_Kim 2024. 11. 29. 16:17

김희경. (2010). 탈북 여성의 방어기제와 정신건강의 관계. 한국심리학회지:여성, 15(1), 155-173.

Kim, Hee Kyung (2010). The relations between defense mechanism and mental health problems of North Korean Female Refugees, The Korean Journal of Woman Psychology, 15(1), 155-173.

자아방어기제(ego defense mechanism)는 정신역동적 입장에서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 주요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불안이나 공격성 같은 받아들일 수 없는 충동, 내적 갈등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고, 이러한 욕구나 본능, 희망, 충동과 외부 현실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갈등을중재하고 조정하는 심리적 기 제로 정의된다(Freud, 1897).

Vaillant, Bond와 Vaillant(1986) 등은 자아의 성숙도에 따라 방어 기제가 3단계로 나누어질 수 있음을 제안하였 고, Kaplan과 Sadock(1989)은 이를 보완하여 4단계로 체계화하였는데, 자아도취적 단계(투사, 부정, 왜곡, 투사적 동일시), 미성숙 단계(동일 시, 수동-공격, 신체화, 행동화, 퇴행, 회피), 신경증적 단계(반동형성, 전치, 통제, 해리, 고립, 이지화, 억압), 성숙 단계(억제, 예견, 승화, 이 타주의, 유머) 등이다. 국내에서는 이화방어기 제검사 표준화 과정에서 20가지 방어기제의 하위 척도들을 요인분석 한 결과 네요인으로 분류되었으며, 각각을 불안정한 예민화방식(행동화, 전치, 신체화, 해리, 투사, 수동-공격), 자아 확대적 방식(통제, 왜곡, 이타주의 유머, 승 화), 자아 부정적 방식(반동형성, 허세, 동일시, 퇴행), 행동 억제적 방식(부정, 합리화, 억제, 예견, 회피)으로 명명하였다(김재은, 이근후, 김정규, 박영숙, 1991). [157]

방어기제 유형과 적응의 관계를 다룬 연구 들에 따르면, 성숙한 방어기제를 주로 사용 할수록 자아존중감이 높고(Plutchik & Conte, 1989), 자아발달 수준이 높으며(Bond, Gardner, Christian, & Sigal, 1983), 정신적, 신체적 건강 문제가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Vaillant & Schnurr, 1988; Vaillant & Vaillant, 1990). 이에 비해 미성숙한 방어기제는 부적응의 지표가 되며(Cramer, Blatt, & Ford, 1988; Perry & Cooper, 1992), 미성숙한 방어기제를 많이 사용 할수록 정신과적 증상을 더 많이 호소하고, 전반적인 기능 수준이 낮았다(Lingiardi, Lonati, Delucchi, Fossate, Vanzuli, & Maffei, 1999; Paris, Zweig-Frank, Bond, & Guzder, 1996; Vaillant, 1994). 간이정신진단검사(Symptom Check List 90-Revision; SCL-90-R)와 방어 성숙도의 관련성 을 다룬 연구(김정욱, 2003)에 따르면, 미성숙 한 방어기제는 심리적 문제와 정적 상관을 보 였으며 성숙한 방어기제는 유의한 부적 상관 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미성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할수록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 하지만, 성숙한 방어기제와 정신건강의 관련 성은 뚜렷하지 않다는 연구들(성에스더, 2009; 유영수, 1995)도 있어 다소 상충된 결과를 보 이고 있다. [157]

자아도취적 단계 미성숙 단계 신경증적 단계 성숙 단계
투사, 부정, 왜곡, 투사적 동일시 동일시, 수동-공격, 신체화, 행동화, 퇴행, 회피 반동형성, 전치, 통제, 해리, 고립, 이지화, 억압 억제, 예견, 승화, 이타주의, 유머

남한 사람들은 반동형성, 동일시, 수동-공격, 투사, 전치 등과 같은 방어 기제를 많이 사용(배기영, 1984; 이근후, 박영 숙, 1990)하는데 비해, 북한 사람들은 억제, 투사, 반동형성, 이타주의, 행동화, 수동-공격, 분리 등의 방어기제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은 것 으로 보고 있다(민성길, 2001). [158]

방어기제 유형별로 보면, 탈북 여성들은 성숙 단계와 자아도취적 단계의 방어기제들을 전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비해, 미성숙 단계와 신경증적 단계에 속하는 방어기제들은 일부만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척도별로 보면, 스텐 점수에서 8 이상의 높은 점수를 보인 비율이 높게 나타난 방어기제는 예견, 합리화, 부정으로 각각 47.3%, 46.3%, 43.8%로 나타났다. 그다음으로 높은 점수를 보인 척도는 왜곡, 유머, 회피, 이타주의, 억제, 승화 방어기제였으며, 40.3%~25.1%가 스텐 점수 8 이상을 보였다. 가장 낮은 점수를 보인 방어기제는 퇴행, 통제, 투사로, 스텐 점수에서 8 이상을 보인 비율이 10% 미만으로 낮게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탈북 여성들이 신경증적 단계에 속하는 합리화, 자아도취적 단계에 속하는 부정과 왜곡 방어기제와 함께 성숙한 단계에 속하는 방어기제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퇴행과 통제, 투사와 같은 방어기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160-161]

연구 결과, 탈북 여성들이 많 이 사용하는 방어기제는 예견, 합리화, 부정, 회피, 억제, 왜곡, 유머, 이타주의, 승화 순으 로 나타났다. 이 중 합리화와 부정, 회피, 왜곡을 제외한 방어기제들은 모두 성숙한 단계 에 속하는 방어기제들이다. 이러한 본 연구의 결과는 북한이탈주민이 대체로 능동적인 방어 기제(유머, 승화, 예견, 이타주의) 및 자제, 부정 등의 방어기제를 많이 사용한다는 선행연 구(조영아, 2002)를 지지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165]

예견과 부정은 탈북 여성이 공통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방어기제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탈북 여성에서 이러한 방어기제들의 사용 빈도가 높게 나타난 이유는 분명하지 않으나, 조영아는 그것이 희생이나 헌신을 강조하는 북한의 정치교육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북한에서는 개인의 기본적인 욕구나 여러 가지 결핍에 따른 부정적인 감정들은 참아내는 반면, 당이나 국가에 대해서는 충성심을 보여야 하고, 외부로부터의 인정이 행동의 주요한 결정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김정규, 1995; 성영신, 서정희, 심진섭, 1993). 예견은 미래의 내적 불편함에 대해 현실적인 예측을 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며, 억제는 행동을 지연시키거나 결정을 유보시키는 것이고, 회피와 부정, 합리화는 현실에 직면하지 않기 위하여 그럴 듯한 이유를 붙이거나 피해버리는 것이다. [166]

본 연구에서 탈북 여성들이 가장 적게사용 하는 방어기제는 퇴행, 통제, 투사였다. 특히 투사는 북한이탈주민이 많이 사용하는 방어기제일 것으로 논의되곤 하였는데, 북한 내부의 불만이나 좌절, 분노를 처리하기 위해 사회적 차원에서도 투사 기제를 활용하여 사회적인 분노나 좌절감을 외부의 적에게 투사하여 내 부의 갈등을 다소나마 해결한다는 것이다(민 성길, 2001). 투사 기제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의심이 많고, 회의적이며, 사건 이면에 숨겨진 의도를 알아내려고 하거나 경계심이 강하고, 다른 사람을 탓하거나 비난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Millon, 1984). 이는 북한이탈주민에게서 흔히 보이는 행동적 특징과 유사한 면이 있는데, 매사에 조심스럽고 경계적인 태도를 보이며, 좀처럼 자신의 속내를 보이지 않고, 피해의식이 많다(김정규, 1995; 전우택, 2002). 탈북 여성과의 실제 상담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전술한 양상들이 쉽게 관찰 되고 보고된다. 이들은 가족과 같이 가까운 사람조차도 믿을 수 없고, 항상 주변을 경계 해야만 안심이 되며, 타인이 자신을 이용하거 나 자신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할지도 모른다는 것에 대해 걱정한다. 그러나 본 연구의 결과와 마찬가지로 조영아(2002)의 연구에서도 24개의 방어기제 중 투사의 평균 점수 가 거의 최하위를 차지한 점에 비추어 볼 때, 탈북 여성에서 투사 방어기제의 사용 빈도는 높지 않다고 할 수 있다. [166-167]

이러한 결과가 나타난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몇 가지 가능성 을 고려해 볼 수있을 것 같다. 우선, 방어기제로서의 투사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개인의 감정이나 소망, 태도, 성격 특징이 자신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속한 것이라고 지각하는 것을 말한다(김재은 등, 1991).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북한과 같은 국가 체제에서 투사는 촉진되기보다는 오히려 억압될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불만족이나 욕구 좌절의 원인을 외부의 원천으로 투사하는 것은 곧 지도자나 사회에 대한 비판 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자신의 소망이나 감정을 억제하거나 보다 그럴 듯한 이유를 붙여 합리화하고, 혹은 적극적으로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 더 적응적일 수 있 다. 방어기제로서의 투사와는 달리, 북한이탈 주민의 행동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주변에 대한 불신감이나 경계심은 자신의 억압된 욕구나 불만을 타인에게 드러나지 않게 해주고, 그로 인해 야기될 사회적인 비난이나 곤란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북한 사회에서는 적응적인 방략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성은 탈북과 중국 체류, 국내 입국에 이르는 과정에서 다양한 이유로 인해 강화되었기 때문에 행동상의 특징으로 더 두드러지게 나타 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북한이탈주민이 편 집 경향을 뚜렷하게 드러낸다고 해서 그것이 곧 투사 방어기제를 많이 사용하는 것을의미 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이러한 해석은 현상적으로 관찰되는 것과 본 연구 결과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한 잠정적 시도에 불과하며, 북한이탈주민의 성격 특성이나 병리적 요인에 따른방어기제 사용의 차이에대한 추후 연구를 통해 비교하고 검증되어야 할 것 으로 보인다 [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