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완. (2017). 중국 현지 거주 탈북여성의 생활 실태 및 지원 방안. 북한학보, 42(1), 155-197.
Kang, Dong Wan (2017). Actual Life of and Support Plans for Female North Korean Defectors Living in China, Institute of North Korean Studies, 42(1), 155-197.
1. 서론
이 글은 중국 거주(체류) 탈북여성들의 현지 생활실태를 다룬 글이다. 현재 중국에서 살고 있는 탈북여성 100명을 현지에서 면접했다. 그녀들이 살고 있는 곳을 직접 찾아다니며 그녀들의 생활 실태와 일상을 담아냈다. 그녀들은 그곳에서 체류하는 것 이 아니라 거주하고 있다. 중국에서 거주한다는 의미는 탈북 후 한국행을 기다리며 잠시 체류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에서 최소 1 년 이상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체류의 사전적 의미는 ‘객지에 가서 머물러 있음’을 뜻한다. 그들이 북한을 떠나 중국 이라는 객지에서 머물러 있으니 체류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 다. 그러나 필자가 만난 대상자 중 대부분은 5년에서 10년 이상 을 중국에서 가정을 꾸려 살고 있으며 20년 이상 거주2)한 사람 도 있었다. 물론 장기체류라는 표현으로 그들의 정체성을 구별 할 수도 있지만 비정상적인 결혼이지만 자녀를 출산하고 가정을 꾸리고 있기에 거주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것 같다. [157]
탈북여성들은 중국 체류동안에 매매혼을 통해 가사노동과 자녀출산, 부모부양 등의 사회적 재생산 노동을 하면서 중국 농촌 지역의 남성 중심 부계가족유지를 위한 삶을 살았다. 많은 탈북 여성은 중국에서 혼인, 자녀출산과 자녀양육이라는 생애경험을 하면서 아내, 어머니, 며느리라는 성역할을 하였다. 어머니가 살아 계신지 목소리만이라도 듣고 싶어 북한에 있는 가족과 어렵게 연락이 닿으면 돌아오는 것은 돈을 보내달라는 하소연이었다. 혼자 살아내기도 빠듯한 제3국에서의 삶인데 자신이 보내주 는 돈으로 연명할 가족들을 생각하면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무 슨 일이든 해야 했다. ‘몸팔기’와 ‘뜀뛰기’ 사이에서 어느 것이 더 도덕적으로 ‘덜 나쁜지’를 고민하며 살아간다. 북한에 어머니를 두고 온 대상자는 중국에서 출생한 자녀에게 본인이 자식을 버린 또 다른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한국행을 포기하고 살아간다. [158]
‘몸팔기’는 불법적으로 이루어지는 성매매를 의미한다. 현지에서 마사지샵, 음란채팅방, 유흥주점에서 성매매를 한다. ‘뜀뛰기’는 인신매매를 의미한다. 현지에서 시골로 팔려간 탈북여성이 중개꾼이나 다른 탈북여성과 모의하여 결혼대상자로 팔려가서 돈을 받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곳으로 도망 가는 행위를 의미한다. 158, 4번 각주
2002년 연구 당시 중국 내 탈북자를 10만 명 정도로 추산하며 이 가운데 70%이상을 여성으로 분류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탈북여성을 위한 정책지원으로 난민지위 확보운 동과 탈북자의 강제송환 중단 노력, 결혼의 합법성 인정, 임시보 호시설 지원, 국제기구와의 연계활동 강화 등을 제시했다. [159]
2. 조사결과 및 해석
현재 나이가 아닌 북한에서 중국으로 탈북 할 당시 연령대를 살펴보면 10대 13명, 20대 57명, 30대 28명, 40대 2명으로 나 타났다. 탈북 당시의 나이는 20대가 57명으로 절반을 넘었다 [162]
북한에 있을 때 그녀들의 학력은 어떠했을까? 100명 가운데 소학교 25명, 고등중학교 55명, 전문학교 13명, 대학교 7명 순 으로 나타났다. 대학교 졸업자 가운데는 김일성종합대학교를 다닌 대상자도 1명 있었다. [164]
북한에서의 출신지역을 살펴보면 함경북도 76명, 양강도 14명, 함경남도 6명, 평안남도 2명, 강원도 1명, 평양시 1명 순이 었다. 출신지역과 관련하여 함경도 회령시와 청진시, 양강도 혜산시 출신자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내 입국 탈북민의 북한 출신지역과 동일한 분포도를 보이고 있다. 국내 입국 탈북 민의 지역 출신지 역시 2016년까지 통계를 보면 함경북도 지역 이 62.7%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그 다음으로 양강도 지역이 16.7%로 조사되었다 [165]
국내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의 경우 탈북연도에 따라 출신지역이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 기존에는 대부분 함경북도 출신이 많았으나 지난 2015년 이후부터 양강도 지역 출신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본 연구에서도 탈북년도와 출신지역별로 차이가 있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함경북도 출신이 76명인데 교차분석 결과 이들은 대부분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 탈북이 이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양강도 출신은 2010년 이후 탈북이 이뤄졌는데 이는 국내 입국 탈북민의 출신지역 분포와 동일한 양상을 나타낸다. [165-166]
탈북여성들은 중국에서 결혼생활을 하며 아이를 출산했다. 1 자녀 45명, 2자녀 40명, 3자녀 7명이며 자녀가 없다는 응답은 8명이었다. 그녀들은 인신매매 과정에서 여러 집으로 팔려 다니며 여러 명의 남편을 만나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자녀도 2-3명 인 경우가 많았다. 이들 자녀들이 한 집안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탈북여성들이 여러 군데 팔려 다니면서 각기 다른 중국인 사이에서 태어나는 경우가 있다. 또한 중국에 와서 중국인 남편 사이에서 출산하는 경우도 있 지만 북한에서 결혼생활을 하여 북한에 두고 온 자녀가 있는 여 성들도 많았다. 전체 100명 가운데 북한에 자녀가 있는 경우는 14명이었다. [166]
3. 중국 거주 탈북여성들의 생활 실태 및 특징
중국에 거주하는 탈북여성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호구가 없다 는 점이다. 호구가 없으면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언제든 북송위 기에 처해질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 호구가 없는 사람들을 ‘검은 사람’이라 부른다. 탈북여성들은 이웃으로부터 불리는 이름이 ‘검은사람’이다. 보험혜택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병원비도 턱없이 비싸다. 기차나 버스와 같은 공용 교통을 이용할 수도 없다. [167]
중국에서 호구가 없는 사람들은 죽으면 그냥 길에 버리면 되는 존재로 인식될 만큼 천한 신분으로 여겨진다. 이번 조사에서 만난 탈북여성들 역시 ‘자신들은 짐승만도 못해 죽으면 그냥 길 바닥에 버려지는 존재’라는 표현을 썼다. 신분이 없으니 사람대접을 못 받는다. 결혼은 했지만 정작 남편으로부터 사람이 아닌 돈을 주고 사온 물건과도 같은 취급을 받는다고 말한다. [167]
사례6의 경우 어느 집에 팔려온 지 1주일 정도 지났을 때, 시 어머니가 자신을 데리고 시장에 가서 목에 무엇인가를 걸어주었 다고 한다. 중국에 온지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 말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지나가며 사례 6을 꼼꼼히 살펴보고 만져 보기도 했다. 그제야 그녀는 목에 건 푯말이 자신을 판다는 내용인지 눈치 챘다. 그 자리에서 시어머니께 무릎 꿇고 울면서 빌고 또 빌었다. 중국말을 모르기 때문에 제발 팔 지만 말아 달라며 손을 모았다. 며느리의 사정하는 모습에 시어 머니의 마음이 움직여서일까, 아니면 팔리지 않아서였을까? 그 녀는 다른 사람에게 팔리는 것을 겨우 모면하고 다시 집으로 돌 아올 수 있었다. [168]
한국행을 희망하는 경우도 중국에서 거주하면서 생활이 힘든 것도 있지만 호구가 없어서 받게 되는 차별과 멸시가 가장 큰 요인이 된다고 말한다. 같은 마을에서 살다가 한국행을 선택한 탈북여성들이 한국에 와서 주민등록증을 받고 중국에 잠시 다녀 가는 경우 그들에게 가장 부러웠던 점도 여권과 주민등록증이었 다고 말한다. 자신의 신분이 누구인지를 증명할 수 없는 사람들 이 바로 중국 내 탈북여성들이다. [169]
어느 지방 공안국에서 자체적으로 탈북여성에 대 한 신분정리를 해 주었다는 점이다. 공식적으로 호구를 발행해 준 게 아니라, 한 사람 당 3,000-5,000위엔 정도의 돈을 받고 벌금 영수증 정도를 떼 주었다. 이렇게 등록을 한 경우에는 검 문을 당해도 등록된 남편의 신분으로 확인하여 최소한 북송되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는다고 한다. 신고하는 거 생활조사 안하고 범죄자나 잡아가지 나머지는 다 보호해줍니다. 동네에서 보호해준 다고... 지금은 잡아가고 그런 일 없습니다. 요 즈음에 5,000위엔 내고 보장 다 받았단 말입 니다. 중국공민증은 아니지만 외국에 이민 와 서 보호받는 그런 걸 받았단 말입니다 [169-170]
중국 거주 탈북여성들은 자신들의 삶을 한마디로 ‘짐승만도 못한 삶’이라고 잘라 말했다. 중국에 가면 돈을 벌어서 금방 돌 아올 수 있다는 브로커의 말에 속아 부모와 생이별을 했다. 중국에 넘어온 첫날부터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남자를 남편이라 여기며 살아간다. 북한이 아무리 못 살아도 집이 이 정도는 아 니었다고 할 만큼 중국 농촌마을의 흙집은 사람이 생활하기 어 려울 정도로 폐허와 같은 곳이었다. [172]
중국으로 인신매매된 여성들은 강제 결혼, 성폭행, 원치 않는 임신과 부인과 질병, 노동착취, 유흥가 매춘 강요 등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특히 결혼한 여성들의 대부분은 남편과 시댁식구 들의 무시와 구타, 경제적 어려움, 북한 거주 가족에 대한 그리 움 불법체류 신고 협박 등에 시달리고 있다. [178]
중국 내 탈북여성들은 저마다 자신을 거래하는 가격이 있다. 언제, 몇 살 때, 어떻게 생겼느냐 등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브로커와 여성을 사는 남편 될 사람과 가격 흥정도 벌어진다. 가난한 농촌 출신의 남편들은 한번에 돈을 지불하지 못할 경우 브로커가 빚쟁이처럼 계속 집에 찾아오기도 한다. 남편 될 사람 이 누구인지 선택권은 거의 없다. 그저 소개해 주는 대로, 팔려 가는 대로 가서 그 길로 낯선 남자의 아내로 살아간다. 아내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돈을 주고 사 온 물건처 럼 취급하거나 그냥 일꾼 하나 집에 들인다는 생각으로 받아주 는 경우도 많다. 더욱이 남편 될 사람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정상이라면 더 이 상 바랄 것이 없다고 말할 정도다. 나이가 10여년 이상 차이가 나거나 많게는 30살 처녀가 60세 노인에게 팔려가는 경우도 있 었다. 그나마 나이 차이도 그렇지만 정신병이 있거나 신체적으 로 장애가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180]
4. 중국 내 탈북여성들의 거주 현상과 특징
최근 국내 입국 탈북민의 탈북동기가 변화하고 있다. 과거 북한의 심각한 경제난으로 인해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탈북 했 다가 한국으로 입국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배고픔의 이유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목적과, 먼저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가 자신의 가족을 데리고 오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양상은 중국 내 탈북여성들 사이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탈북한 중국 내 탈북 여성들은 그야말로 배고픔 때문에 탈북했다는 이유가 많았다. 브로커 역시 중국에 가면 돈 벌어서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다 는 말로 그들을 유인했다. 그들이 중국에 와서 첫 번째로 충격 을 받은 것은 그렇게 못산다고 하는 농촌마을에서도 하얀 쌀밥 을 배불리 먹는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는 고난의 행군 시기 굶 어 죽어가는 가족을 뒤로 하고 생존을 위해 탈북 했는데 막상 중국에 오니 개도 쌀밥을 먹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 다. 그런데 최근에는 배고픔의 이유보다 중국에 가면 북한에서 사 는 것보다는 비교적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중국행을 선 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물론 이번 조사과정에서 최근 중 국에 탈북한 여성 가운데는 불법적 장사(빙두 거래)나 밀수를 하다 적발되어 교화소에 가기 전에 급히 탈북한 사례도 있었다. 이러한 사례 역시 단순히 과거에 배고픔 때문에 탈북한 사례와 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181-182]
현지에서 만난 탈북여성들은 ‘남은 자’인데 하루에도 수십 번 씩 한국에 갈 생각을 하지만 정작 길을 떠나려 하면 자녀 때문 에 갈 수 없다는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내가 엄마를 버리고 왔 는데, 여기에서 내 자식들에게 또 그런 엄마가 될 수 없다’는 이 유였다. 실제로 남편에게 동의까지 받고 한국행을 결정해서 길 을 떠났다가 중간에 집에 전화를 했는데 자녀가 울고 있는 목소 리를 듣고 그 길로 다시 집에 돌아왔다는 사례도 있었다. [182]
한편, 자녀 외에 북한에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한국행을 포기한 사례도 적지 않았다. 북한과 중국이 상호 협정 을 맺어 중국 내 거주하고 있는 탈북여성들의 왕래를 허용하면 그 길로 고향에 가서 가족들을 만나겠다는 경우다. 중국에서 생 활하면 그나마 북한으로 갈 수 있지만, 남한으로 가버리면 정작 통일이 되지 않고서는 고향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고 말을 한다. 그런데 그 통일은 절대 되지 않을 것 같아 한국행을 포기한다는 말이었다. 그 밖에 소수이기는 하지만 ‘남한 입국 까 지 험난한 길을 갈 자신이 없다’거나 ‘한국에 입국해서 국정원 조사와 3개월의 감옥생활12)을 하는 데 두렵다’는 응답도 있었다. [182-183]
중국 내 탈북여성에 대한 기존연구를 살펴보면 2000년대 중 반까지는 대부분 탈북여성들의 거주지역이 동북3성의 북중 접경 지역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연길을 대표로 하여 연변지역과 장춘, 심양 등지가 대표적으로 탈북여성들이 많이 거 주하는 지역이었다. 중국 12개 성 중에 헤이룽장성(하얼빈시), 라오닝성(심양시), 지린성(장춘시) 등의 동북3성에 주로 거주하던 탈북여성들은 이번 조사에서는 허베이성, 저장성, 산둥성, 장 수성까지 거주지역이 확대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동북3성 지역이라 하더라도 접경과 가까운 지역일수록 오히려 탈북여성들의 거주가 현격히 낮음을 알 수 있었다. 본 조사를 위해 직접 면접한 사례는 아니지만 중국 내 SNS를 통 해 연계된 탈북여성의 거주지를 살펴보면 중국 12개 성 대부분 지역에 거주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심지어 네이멍구 자 치구나 북중접경과 가장 멀리 떨어진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이 르기까지 탈북여성이 거주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탈북 초기 접경지역과 가까운 지역일수록 단속과 북송이 많이 이루어짐에 따라 브로커의 활동이 중국 내륙지역으로 불가피하 게 확대된 결과라 할 수 있다. [183]
위쳇은 메시지 전송기능이 있어 전화 대신 음성메시지를 통해 간단한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실제로 이번 조사를 위해 자신의 집을 알려 주거나 약속을 정할 때 대부분 위쳇 음성메시지 기능을 사용하 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더욱 주목할 점은 단순히 메시지 전달 기능뿐만 아니라 모멘트라는 단체방을 통해 실시간으로 자신들 의 상황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소규모 커뮤니티에 속한 탈북여성들은 서로의 생일이나 기념 일에 함께 모임을 갖거나 현지 선교단체의 지원을 받아 모임을 형성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례는 ‘말도 통하지 않는 중국에 와 서 조선말을 알아듣고 말할 수 있는 조선사람들을 만났을 때 가 장 기쁘고 위안이 되었다’고 한다. 특히, 시골마을의 경우 같은 마을에 사는 탈북여성들끼리 서로 어울려 지내며 생활했다. 중 국에 온지 15여년이 된 한 사례는 10여년 동안 조선사람과 교 류하지 못했는데 위쳇을 사용하며 같은 마을에 조선여성이 있다 는 사실을 알았다. 서로 만남을 통해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 었다고 말한다. 이같은 소규모 커뮤니티는 적게는 4명에서 많게는 수십 명까 지 한꺼번에 모임을 가질 만큼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었다. 특히, 이 커뮤니티에는 리더와 같은 역할을 하는 ‘언니’가 반드시 존재 하는데 그녀를 통해 하나의 구심점이 형성되는 듯했다. [184]
5. 결론을 대신하여: 재중 탈북여성 지원을 위한 정책제언
본 조사 결과 중국 거주 탈북 여성들의 삶을 가장 위협하는 건 당연히 중국 공안에 체포되어 강제로 북송되는 두려움이었 다. 실제로 인터뷰 대상자 중에는 강제북송 되어 교화형에 처해 졌던 여성들도 있었다. 또다시 북송되어 교화소에 가면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 차라리 죽는 게 낫다며 입술을 깨무는 그녀들이 었다. 그만큼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세월을 참아내야 했다. [...] 중국 정부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공식 적으로 탈북민 강제 북송을 중단한다는 발표를 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북한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그러한 조치 가 취해질 경우 발생하게 될 만약의 사태를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이 강제북송을 하지 않는다고 하면 북한주민의 대 량탈북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혈맹관계라 부르는 북한과의 외교적 문제도 중국정부로서는 부담스럽다. [186]
실제로 이번 조사를 통해 만난 대상자들은 부인과 질병에 대한 검진과 예방진료를 한번이 라도 받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호구가 없어서 아파도 병원 에 갈 수 없는 형편이기 때문에 건강검진이나 예방진료는 상상 도 못한다. 또한 탈북과정은 물론 현지생활의 극심한 스트레스와 강제북 송에 대한 정신적 압박으로 인해 심리, 정서 치유프로그램이 필요한 상황이다. [187]
이번 조사를 통해 만난 탈북여성들은 원치 않는 가정이지만 자신이 낳은 자녀는 꼭 책임져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다. ‘남은 자’와 ‘떠난자’를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자녀와의 관계 였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존재 이유가 자녀 때문이라고 할 만큼 자녀들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탈북여성이 북송 후 고문의 후유증을 안고서도 다시 중국으로 들어온 이유도 삶의 제한성을 뛰어 넘어 자녀를 지키려는 모성 과 연계 된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극빈한 가정생활에서도 참 여자들의 자녀교육에 대한 의지는 중국의 중산층 어머니와 다르 지 않았다. 그런데 대부분 농촌에서 살아가는 탈북여성들의 경우 경제적으로 어려운 생활로 인해 자녀들의 미래에 대한 걱 정이 많았다. 특히, 자녀가 대학진학을 희망한다 해도 등록금, 기숙사 비용 등 경제적 부담 때문에 학업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 도 많다고 한다. [188]
아울러 현재 중국 내에는 아이를 버려두고 한국으로 입국한 탈북여성들로 인해 고아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엄마가 떠나고 나면 아이는 아버지나 조부모 밑에서 자라게 되는 데 중국 농촌마을에서 아이들이 엄마 없이 자라기가 결코 쉽지 않다. 자녀를 두고 간 엄마 대신 같은 동네에 사는 탈북여성들 이 아이들을 돌봐 주기도 하지만 이는 한계가 있다. ‘꽃제비와 같이 살아간다’고 표현하는 그녀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엄마에게 버려진 아이들의 현지 생활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중국 현지의 문제로만 그치지 않는다. 중국에 자녀를 두고 한국에 입국한 탈북여성들의 정착과도 연계된다.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해도 모성애를 가진 어머니로서 버려두고 온 자식을 생각하면 심리적, 정서적 불안감과 죄책감을 받는다. 이러한 스트레스는 곧 안정적 정착을 저해하는 심각 한 요인이 된다. 물론 중국에 버려진 아이들은 그 신분이 비보호이면서 이미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공식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논쟁의 여지는 있다. 그러나 통일과 통합이라는 장기적 관점과 국내에 입국한 탈북여성들의 안정적 정착을 위한 근본적 대책이라는 점에서 중국내 탈북자녀들에 대한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 [189]
이번 조사 결과를 보면 중국에 가서 몇 개월만 일하고 돈을 벌어서 돌아오면 된다는 말에 속아서 탈북한 대상자들이 많았 다. 중국에 가는 루트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반드시 이 과정에 서 브로커가 개입된다. 문제는 대상자들이 중국에서 자발적 의 지로는 절대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한다는 점이다. 중국에 건너온 탈북여성들은 인신매매 에 그대로 노출된다. 강제유인 납치 될 경우 북한에 있는 남편 과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으로 인해 중국에서 거주하는 동안 심각한 스트레스를 겪는다. ‘본인이 스스로 원해서’와 ‘브 로커에게 속아서 강제로’의 중국 생활은 엄연히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특히, 북한에 자녀를 두고 중국에 넘어와서 여러 번 인신매매 를 당하게 되면 각기 다른 남편으로부터 여러 명의 자녀를 출산 하게 된다. 이 경우 어머니로서의 죄책감과 스트레스는 극에 달 한다. 따라서 북한으로의 정보 유입을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중국으로의 탈북이 강제성을 띤 인신매매라는 사실을 알 수 있도 록 해야 한다. 중국으로 가면 강제결혼을 하거나 유흥업소에 팔 려갈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결혼을 전제로 한다 해도 본인이 받을 수 있는 지참금은 전혀 없고 브로커에게 인신매매를 당한다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중 국에 가서 몇 달 돈 벌어서 돌아오면 된다는 말이 거짓이라는 점을 인지시킬 필요가 있다. [190]
국내에 입국한 탈북민은 현재 3만 명을 넘어 섰는데 그중 여성이 80프로 이상을 차지한다. 중요한 것은 이 여성들 가운데 대부분이 중국에서 장기간 거주했다는 점이다. 탈북민 사이에서도 북한을 탈북해서 바로 한국에 들어온 경우 를 직행이라 부르며 중국에서 생활하던 사람들과 구분한다. 직 행과 중국거주 사이 여성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북한에서의 생 활과는 전혀 다른 중국의 생활문화를 경험하고 습득한다. 현재 국내 탈북민 지원정책은 대상자를 북한에서 온 사람으로 규정하 고 이에 대한 정책이 마련되었다. 북한에서 사상교육을 받고 집 단생활을 하며 독재체제에서 엄격한 규율아래 살았을 거라 생각 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그것으로부터 벗어난 지 오래다. 북한 사람이 아닌 이미 제3국의 생활문화를 경험한 사람을 대상으로 시사점을 찾고, 이를 통일시대에 북한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다 는 논리는 수정되어야 한다.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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