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inental 65

도덕 형이상학 정초 (1) 머리말

임마누엘 칸트, 『도덕형이상학 정초Grundlegung zur Metaphysik der Sitten』, 번역 김석수, 김종국, 한길사, 2019를 정리한 것이다. 머리말 고대 그리스 철학은 세 학문으로, 즉 자연학Physik, 윤리학Ethik, 논리학LogikLogik으로 나뉘어 있다. 이러한 분류는 사태의 본성에 완전히 적합하다. 그래서 여기에 분류의 원리 정도만 덧붙이면 되지 달리 더 개선해야 할 점은 없다. 우리는 이렇게 함으로써 한편으로는 분류의 완전함을 확실히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반드시 필요한 하위 분류를 제대로 결정할 수 있다. 모든 인식은 질료적이거나 형식적이다. (즉 경험에 근거하거나, 아니면 경험으로부터 독립되어 그것의 형식을 담당한다.) 질료적 이성 인식은 어떤 한 객관Objekt..

“예술철학이란 무엇인가?” - 시(時)와 사유의 관계성을 중심으로

2019-2 예술철학 “예술철학이란 무엇인가?” - 시(時)와 사유의 관계성을 중심으로 우리는 이 글에서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루지 않고, 곧장 “예술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룬다. 왜냐하면 후자의 질문이 합당하게 해명되고 나서야,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다시금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접근은 영미의 분석 철학적 접근을 시도하는 철학자들, 즉 예술 정의 불가론을 주장하는 웨이츠(M. Weitz)나, 정반대로 예술이 정의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단토(A. Danto) 혹은 디키(G. Dicky) 등에게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이들은 “예술은 정의(定議) 가능한가?”라는 문제에 있어 양 극단에 있으나, 근본적으로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이는 다시 말해 ..

역사와 나

2018-2 서양 현대 철학 역사와 나 1 들뢰즈(Gilles Deleuze)는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철학에 대한 업적은 철학에 ‘가치’라는 개념을 도입한 것이라고 말한다. 들뢰즈의 니체 해석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독창성으로 인해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으나, 적어도 이러한 평가 자체에 대해서는 크게 반대할만한 사람이 없으리라. 모든 존재자의 존재는 그것이 존재한다는 바로 그 이유에서 그 자체로 정당하기도 하고, 또 부당하기도 하다는 점. 그러기에 존재에 대한 정당화는 있을 수 없고, 우리는 다만 도덕 내지 윤리라는 이름 아래에서 존재의 가치에 대한 정당화를 시도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 니체의 통찰은 존재의 가치에 대한 정당화가 언제나 특수한 관점 아래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

철학의 위기

새로운 해석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기존 해석에 대한 비판이라는 예비작업이 필요하다. 니체식으로 말하자면 “우리 문헌학자들”의 작업은 창조하는 자의 발자취를 따라갈 뿐이라는 점에서, 열등한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니체 역시 철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소처럼 되새김질하는 문헌학을 거쳐야만 했다는 사실은 다음의 점을 시사한다. 즉, 학문에 있어 대상을 인식하는 방식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으니, 하나는 소극적인 “~이 아님”의 규정이며 다른 하나는 적극적인 “~임”의 규정이다. 플라톤은 후자를 철학 탐구에 있어 가장 탁월한 방식인 정의(Definition)라 부르는데 소크라테스가 말했듯이 우리가 궁금한 것은 대상의 개별적인 사례들이 아니라 그 존재자들을 존재자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그것이기 때문이다..

낭만주의의 시작과 헤르더의 출항

2019 미학반 발제문 낭만주의의 시작과 헤르더의 출항 1장 낭만주의(Romantik)을 읽기 위한 예비 작업 1절 예술과 철학 사이의 공명은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가? 우리가 뤼디거 자프란스키(Rüdiger Safranski)의 《낭만주의 : 어떤 독일적 분쟁(Romantik : Eine deutsche Affäre)》을 읽기에 앞서 숙고해볼만한 문제는 이 책이 다루고자 하는 질풍노도Strum und Drang의 시기에 관한 사실Tatsache 너머에 있다. 그것은 “낭만주의 운동은 철학에 있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물음이다. 우리가 어떤 사상가들의 특정한 면모를 드러내고자 할 때에는, 그 면모가 사상가의 사상Gedanken에 있어 어떠한 방식으로 그 핵심을 담지하고 있는가를 먼저 고려..

플라톤 - 국가 9권

1) 제 9권의 논의 전개 제 8권은 참주 정체에 관한 언급으로 끝나고, 정작 참주 정체를 닮은 사람에 관한 언급은 거의 하지 않았다. 그래서 제 9권은 참주 정체를 닮은 사람에 관한 언급으로 시작되는데, 먼저 그런 사람이 어떻게 해서 탄생되며 그가 보이는 행태에 대한 자세한 묘사를 시도한다. 이어 제 2권에서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가 '올바름'에 관한 소크라테스의 적극적인 옹호를 유도해 내기 위해서 행한 도전적 발언에 대한 결론적 응답을 얻게 된다. 1) 참주 정체를 닮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올바르지 못하며 가장 비참한 자이다. 2)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누리는 즐거움이 가장 참된 즐거움인지를 밝힘으로써, 어느 쪽이 가장 즐거운 삶을 살게 될 것인지를 보여 준다. 3) 즐거움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통해 ..

플라톤 - 국가 7권

플라톤, 『국가』, 번역 박종현, 서광사, 2005 1) 제 7권의 논의 전개 제 6권에서 "태양의 비유"와 "선분의 비유"를 통해 시도된 "좋음의 이데아"와 앎의 대상들 및 앎의 단계들에 대한 도식적 설명 대신에, 7권에서는 "동굴의 비유"를 통한 보다 입체적 설명을 시도한다. 동굴 안은 가시적 현상의 세계를, 동굴 밖은 지성에 의해서 알 수 있는 실재의 세계를 각기 비유한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실재들을 인식하는 것인데, 이 길에 이르기 위해서는 예비교육의 단계가 필요하고, 따라서 이를 위한 교과가 제시된다. 이 예비 교육이 끝난 이후에 변증술에 대한 집중적인 단련을 거치게 된다. 그러나 변증술적 논변의 오용과 관련된 위험성에 대한 언급도 빠뜨리지 않는다. 이러한 단련을 거친 후에는 오랜 세월 동안의..

에드문트 후설과 마르틴 하이데거의 현상학 개론 (3)

8절 후설의 시간의식Zeitbewußtsein을 다루기 위한 예비 작업 - 임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중심으로 후설은 명증성Evidenz을 ‘사고한 것이 주어진 사태나 대상과 일치함’으로 사용한다.[각주:1] 이러한 명증성은 다시 사태와 사고가 일치하는, 즉 지향한 대상이 충족되는 충전적adäquat 명증성과, 주어진 사태가 존재하는 것을 결코 의심할 수 없는 필증적apodiktisch 명증성으로 구분된다.[각주:2] 이 부분에서는 일종의 전통적인 형이상학을 따르고 있는 셈이다. 아데쿠아티오(adequatio)라는 단어는 흔히 동화, 일치라는 뜻을 지니며, 전통적인 진리개념- 즉, “진리는 대상과 판단 사이의 ‘일치’에 있다.”에서 바로 그 ‘일치’에 해당한다. 이 단어의 유래는 아리스토텔레스로,..

에드문트 후설과 마르틴 하이데거의 현상학 개론 (2)

에드문트 후설과 마르틴 하이데거의 현상학 개론 2장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과 현상학(Phänomenologie)의 창설 4절 논리주의(Logizismus)와 심리학주의(Physchologismus)의 대립 앞서 설명했듯이 데카르트가 결행한 cogito의 확립은 근대의 존재론을 확실성을 기반으로 한 마주-세움(Gegen-stand)의 존재론으로 이끌었다. 이 확실성은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clara et distincta, 즉 명석하고 판명한 것과 동일한 것이다. 명석한 지각이란 “집중하고 있는 정신에 현존하며 드러난 지각”을 의미하며, 판명한 지각이란 "명석하기 때문에 모든 다른 지각과 잘 구별되어 단지 명석한 것만을 담고 있는 지각"을 의미한다. 이 최초의 인식 속에 포함되어 있는..

에드문트 후설과 마르틴 하이데거의 현상학 개론 (1)

2019.04 사회철학반 발제문 에드문트 후설과 마르틴 하이데거의 현상학 개론 1장 후설 이전의 근대 철학의 문제의식에 대하여 대강 서술함 1절 근대 철학 이전 존재론Ontology의 주요 개념들- 아리스토텔레스의 ‘ousia’ 개념에 대한 중세 철학의 수용 지성사에 있어 사유가 인식과 맺는 독특한 관계는 언제나, 하나의 단일한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철학사는 마치 자연수로부터 정수, 유리수, 실수로 나아가는 교과서와 같은 형태를 지니게 되었을 텐데, 이는 철학사 곳곳에서 나타나는 돌발적인 사건들- 즉, 차이를 지닌 사상들 사이의 전투와 대립, 예기치 못한 공명과 결합을 온전히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철학사를 고대, 중세, 근대, 현대로 구분하는 것이 그 자체로 ..